인간만세 소설, 향
오한기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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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십리 도서관 상주 작가의 입지를 지키기 위한 한 인간의 고난을 위트 있게

담아내고 있다. 약간은 괴이한 분위기의 풍기는 소설이다.

'답십리 도서관'이라는 지명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책 속에서 익숙한 지명을 발견하면 이야기는 한 층 더 가깝게 느껴진다.

가끔씩 답십리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기도 하기에 내가 아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판타지스러운 이야기에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소설 속에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문학적 가치를 부정하는 교수,

도서관 비품인 강연용 마이크를 들고 달아난 초등학생 민활성,

'나' 때문에 도서관 상주 작가에서 탈락했다며 도전장을 보내는 진진까지

종잡을 수 없는 인물들이 정신없이 나타난다.

이들이 벌이는 다소 괴팍한 일련의 사건 속에서 '나'는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을 소설로

쓰기로 결심하고 그 소재로 '똥'을 선택한다.

인간의 본질과 '똥'은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걸까. 민활성이 들고 간 마이크를 통해

끊임없이 '똥' 소리가 들리지만 아직도 그 단어가 가진 심오한 의미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상주 작가가 뭐길래 이 자리를 노리는 의문의 예고장이 날아들까.

'나'는 그저 한 달에 200만 원을 벌고 글을 쓰고자 했을 뿐인데 현실은 녹녹치 않다.

내 상상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과 사람들 투성이지만

도서관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실제와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몽환적인 분위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자기 확신과 의지를 가지고 세상에 맞서는 독특한 인물들이 전하는 거대한 농담에

실소를 터트릴 수밖에 없는 소설이다.

물론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들이 다 배설물을 배출하는데 왜 똥이 인간만의 트레이드마크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물고기들도, 새들도, 하다못해 곤충들도 똥을 싸지른다. 하나 제안한다. 이야기를 어렵게 끌고 가진 말자. 동물은 배제하고 단순하게 생각합시다. 인간 이꼬르 똥입니다. 이건 인간만의 이야기입니다!

p. 33

지금 쓰고 있는 소설 이야기하는 거죠?

고민할 필요 있을까요? 상징은 열려 있기 마련이죠.

작가님이 정하고 쓴다고 그게 그대로 읽히지 않아요.

그대로 읽히면 오히려 하수 아닌가요?

상징은 우리가 만드는 게 아니라 독자들이 만드는 거죠.

p.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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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즙 배달원 강정민
김현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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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그림만 보고 예상했던 내용과는 완전히 다른, 슬프면서도 발랄한 소설이다.

청년 강정민이 열심히 살기 위해 녹즙 배달을 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다룰 것이라 생각했지만 훨씬 심오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강정민은 웹툰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통장에 쌓이는 월급으로 위로받으며

더럽고 치사한 밥벌이를 묵묵히 견디고 있었지만 원수보다 못한 가족들로 인해

'텅장'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미련 없이 홀로서기를 택한다.

그리고 녹즙 회사 지사의 위탁 판매원으로 고용되어 노동법의 사각지대에서 살아가고 있다.

고달픈 일상을 위로하기 위해 시작된 한 잔의 술은 어느새 알코올의존증이라는

병명으로 커졌다. 그럼에도 강정민은 살기 위해 꾸준히 알코올중독 전문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세상엔 참 여럿 인간이 있다. 사람을 사람으로 동등하게 대하는 인간이 있고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고객 유치에 혈안이 되어 있는 노동자들이 있으며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이 벼슬인 양 특수고용직 노동자를 업신여기고

녹즙 값을 고의로 연체하거나 성희롱을 일삼는 말종이 있다.

더 슬픈 건 이런 인간의 모습이 소설의 설정이 아니라 현실에도 있다는 점이다.

빡빡한 현실과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가족들에서 벗어나 오늘 하루 할당된 녹즙을 배달하고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려 애쓰는 강정민 이야기는 왜 사는지와 내가 밥벌이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저자는 비정규직의 현실, 예의를 잊은 인간들, 딸의 돈을 아들 결혼 자금으로

아무렇지 않게 쓰는 가족, 직업을 계급화하는 진상, 학대당하는 여성 등 우리 사회의 이모저모를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시궁창 같은 현실이지만 그래도 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강정민을

보며 웹툰 작가라는 그녀의 꿈이 꼭 이루어질 거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술과의 이별을 선언하고 그 실연의 상처를 극복하고 나면

강정민은 술의 유혹 없이도 홀로 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그녀의 인생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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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와의 정원
오가와 이토 지음, 박우주 옮김 / 달로와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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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이 막막하지 않았던 것은 엄마 덕분이다. 엄마가 나의 빛이 되어주었기 때문에. 엄마는 나의 태양이다. 글자 그대로, 엄마는 넓고 넓은 땅을 따사롭게 비추는 태양이다.

p. 7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던 소녀 토와는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다.

토와에게 엄마는 세상의 전부였고 사랑이었으며 유일한 보호자였다.

아빠는 매주 한 번 집 앞에 생필품을 두고 갔고 아빠가 다녀 간 날이면

그날이 수요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토와는 언제까지나

엄마와 영원히 함께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두 모녀가 생계를 이어나가려면

엄마는 돈을 벌어야 했고 일을 하러 나갈 때면 토와의 입에 잠자는 숲속의 공주 사탕을

넣어주고 외출을 했다. 그래도 토와가 잠에서 깨어나면 달콤한 팬케이크 냄새에 엄마가

돌아왔다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토와의 열 살 생일을 맞아 엄마는 토와와 사진을 찍으러 함께 외출을 하기로 했다.

바깥세상으로 처음 나가는 토와는 모든 소리가 두려웠다. 엄마에게 꼭 매달려 한없이 울음을 터트리며 사진관에 도착했지만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한참을 기다려서야 겨우 한 장을 찍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턴가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토와는 홀로 외로움과 굶주림을 견디며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린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토와는 결심한다. 쓰레기 더미를 헤치고 세상으로 한 발짝 나가보기로. 신발조차 없던 그녀는

문을 열고 집 밖으로 한 걸음씩 걸어갔다.

여기서부터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그저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아담한 이층집에 살고 있는

소녀와 엄마의 이야기라 생각했다. 한없이 평화롭고 소소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세상 밖으로 나온 토와는 다시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였다.

비틀어진 사랑으로 학대받고 방치되어 가엽게만 느껴졌던 삶을 살아야만 했던 어린 소녀가

평범한 일상을 찾고 다시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슬픈 감정이 사그라들었다.

이십 년이 지나 서른 살이 되어 다시 사진관을 찾아가서 열 살 생일의 기억이 그렇게 슬픈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셔터를 누르는 순간 활짝 웃음을 띤 어린 딸과

그 딸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엄마의 옆얼굴이 사진에 담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엄마의 마음도 아주 조금은 알 것만 같다. 그렇게 토와는 토와코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갔다. 내 하루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나는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인생의 새로운 문은 지금 막 열린 참이다.

p. 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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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책
류이스 프라츠 지음, 조일아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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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레오는 책보다는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역사 과제를 위해 난생처음 간 도서관의

청소년 열람실에서 책꽂이 뒤에 숨겨져 있던 먼지로 뒤덮인 책을 한 권 발견한다.

짙은 파란색 표지에 금박으로 <파란 책>이라고 쓰여 있는 책.

도서관 사서인 옥스퍼드조차 처음 본 책이었다.

알 수 없는 끌림에 레오는 이 책을 빌리기로 했다. 집에 돌아와 침대 위에서 맨 첫 장을

펼치며 다섯 페이지를 버티면 성공이라 생각했지만 한번 읽기 시작한 책은 멈출 수가 없었다.

레오의 이야기와 소설 속 이야기가 액자식으로 구성된 모험 소설이다.

도서관을 배경으로 어린 소년이 책 속 세계로 들어가 사건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유쾌한 이야기를 그려나가고 있다. 평범한 모험 이야기라 생각했지만

소년이 읽던 책의 내용이 어느 순간 바뀌게 되자 숨겨진 미스터리가 궁금해졌다.

알렉산더 대왕의 페르시아 정복부터 중세 십자군 원정까지 흥미로운 세계사의 굵직한

사건들과 고대 유적과 유물을 소재로 보물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는 잠시나마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해 준다. 주인공의 의지대로 믿을 수 있는 주변 친구들을

책 속에 등장시켜 위험에 처한 <파란 책> 속 주인공인 폴츠를 돕는 설정은

아이들의 모험 이야기에 더 빠져들게 해 준다.

무사히 친구들을 책 속에서 꺼내고 과제까지 완성할 수 있을지 결말이 궁금해지는 책이다.

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가 레오와 같은 기묘한 체험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내가 직접 주인공이 되거나 주인공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책과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흥미진진한 모험 이야기에 빠져 순수한 아이들의 호기심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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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시간 여행자를 위한 종횡무진 역사 가이드
카트린 파시히.알렉스 숄츠 지음, 장윤경 옮김 / 부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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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린 시절에 본 영화 <백 투 더퓨처>가 생각난다.

평범한 고등학생이 괴상한 발명가가 개조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간다는

지극히 영화적 상상력을 그린 영화다.

그와 비슷하게 이 책에서도 빅뱅부터 20세기 유럽 현대사까지 과거의 한순간으로 안내해 준다. 읽으면서 실제 여행객이 된 듯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해준다.

과거 세계사 중에서 알아야 할 큼직한 사건들을 모두 담고 있는데

역사서를 여행 가이드 형식으로 풀어쓴 점에서 꽤 신선하게 다가왔다.

방대한 과거의 다양한 사건들을 마치 눈앞에서 직접 목격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지금은 잊혀진 이름인 동독을 소개하면서 당시의 시대상과 배경을 유쾌하게 소개하고

우주 대폭발을 경험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1억 년 전으로 떠날 것을 권한다.

중세 유럽으로 시간 여행을 하고 싶다면 천연두와 흑사병이 유행한 시기를

피해서 여행하라는 조언을 건넨다. 또한 실제 여행 가이드처럼 여행객이 주의해야 할

몇 가지 일반적인 조언을 담고 있어 오랜 시간 축적된 세계사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갑자기 막혀버린 여행길에 답답함을 느낀 이들이라면 참신한 여행 가이드를 통해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쳐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역사 속 사건이나

공간, 시간 등은 재치 있게 소개하고 있어서 끝까지 기분 좋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시간 여행을 하고 싶다면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여행자가 과거에 두고 온 물건은 미래의 학자들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으니

각자가 가져간 소지품은 반드시 챙겨와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자.

취향대로 떠나는 테마 여행부터 시간 여행자를 위한 필수 여행 정보까지 알뜰하게

담고 있는 이 책과 함께라면 곧 자유롭게 여행을 떠날 날을 기다리며

이 시기를 현명하게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진짜 세계는 이 책에서 그려진 모습과 완전히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세상이 우리가 상상한 대로 흘러간다면, 이 책은 시간 여행이 가능해지는 미래에 상당한 도우미가 될 것이다.

p.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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