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즙 배달원 강정민
김현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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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그림만 보고 예상했던 내용과는 완전히 다른, 슬프면서도 발랄한 소설이다.

청년 강정민이 열심히 살기 위해 녹즙 배달을 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다룰 것이라 생각했지만 훨씬 심오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강정민은 웹툰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통장에 쌓이는 월급으로 위로받으며

더럽고 치사한 밥벌이를 묵묵히 견디고 있었지만 원수보다 못한 가족들로 인해

'텅장'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미련 없이 홀로서기를 택한다.

그리고 녹즙 회사 지사의 위탁 판매원으로 고용되어 노동법의 사각지대에서 살아가고 있다.

고달픈 일상을 위로하기 위해 시작된 한 잔의 술은 어느새 알코올의존증이라는

병명으로 커졌다. 그럼에도 강정민은 살기 위해 꾸준히 알코올중독 전문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세상엔 참 여럿 인간이 있다. 사람을 사람으로 동등하게 대하는 인간이 있고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고객 유치에 혈안이 되어 있는 노동자들이 있으며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이 벼슬인 양 특수고용직 노동자를 업신여기고

녹즙 값을 고의로 연체하거나 성희롱을 일삼는 말종이 있다.

더 슬픈 건 이런 인간의 모습이 소설의 설정이 아니라 현실에도 있다는 점이다.

빡빡한 현실과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가족들에서 벗어나 오늘 하루 할당된 녹즙을 배달하고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려 애쓰는 강정민 이야기는 왜 사는지와 내가 밥벌이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저자는 비정규직의 현실, 예의를 잊은 인간들, 딸의 돈을 아들 결혼 자금으로

아무렇지 않게 쓰는 가족, 직업을 계급화하는 진상, 학대당하는 여성 등 우리 사회의 이모저모를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시궁창 같은 현실이지만 그래도 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강정민을

보며 웹툰 작가라는 그녀의 꿈이 꼭 이루어질 거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술과의 이별을 선언하고 그 실연의 상처를 극복하고 나면

강정민은 술의 유혹 없이도 홀로 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그녀의 인생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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