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초록빛 - 아끼고 고치고 키우고 나누는, 환경작가 박경화의 에코한 하루
박경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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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환경을 위해 실천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떠올릴 때면 텀블러와 장바구니 사용을 예로 든다. 사실 내가 하는 실천이 딱 그 정도이기에 더 이상 무엇이 있을지는 고민도 하지 않았다. 이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때가 종종 있으니 진정으로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지도 의문스럽다. 기후 위기를 몸소 겪고 있는 현실에서 환경 작가의 삶이 궁금해졌다.


20년 차 환경 작가인 저자는 '오래 쓰는 즐거움을 누리고 나누는 재미에 감사하며 초록초록한 식물과 더불어 아끼는 기쁨까지 만끽하는 삶'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이 당연한 말이 왜 이토록 새롭게 느껴질까. 언제부터가 일회용에 익숙해지면서 고쳐쓰기보다는 새로 사는 게 쉬웠다. '뭘 이런 걸 고쳐, 새로 사면 되지'라는 인식이 내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저자가 실천하는 삶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환경에 위협이 되는 삶에 익숙해졌는지 돌아볼 수 있었다.


오래 쓰는 즐거움을 느껴본 게 언제일까. 나누기보다는 버리는 게 편하고 아끼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던 생활 습관을 전면적으로 돌아보며 반성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가장 부러웠던 부분은 초록 식물과 더불어 사는 삶이다. 이상하게 내 손에 들어온 식물들은 오래 자라지 못한다. 나름 정성을 다해서 키우려 노력했지만 생명을 단축할 뿐이다. 반려 식물을 키우며 유기 식물을 구출하고 화분을 나누는 환경 작가의 일상이 나에게는 판타지 소설처럼 들려온다. 


저자의 에코한 하루는 편리함에 익숙해진 내 삶과 대조적이다. 깨끗하고 튼튼한 포장지나 택배 상자는 버리지 않고 모았다가 상점과 우체국에 되돌려준다. 고장 난 우산에서 뜯어낸 천은 근사한 돗자리로 변신하고 여행지에서도 직접 만든 수젓집에 챙긴 수저를 사용한다.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에코 라이프는 환경 문제에 동참하는 첫발을 내디딜 수 있는 힌트를 준다. 어제보다 무해한 오늘을 위한 작은 행동이 모여 기후 위기라는 전 인류적 문제를 함께 풀어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는 옷을 적당히 입다가 의류 수거함에 넣으면 우리나라에서 재판매가 되든, 외국으로 수출하든, 잘라서 농업용 덮개를 만들든 누군가 입거나 재활용이 잘될 거라고 믿었다. 한때 골목에 여러 종류의 의류 수거함이 경쟁하듯 설치되고, 헌 옷을 모으려는 이들과 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할 정도로 인기가 높으니 어디선가 새로운 쓸모를 찾게 될 거라고 안심했다. 그러나 현실은 내가 버린 헌 옷이 아프리카의 생태계를 망치고 있다니 정말로 불편한 진실이 아닐 수 없다.

P. 68

새로 돋아난 나비란의 새순이 무성하게 자랄 때마다 약국 앞 긴 의자에서 나눔을 했다. 늘 그랬듯 비대면 접선장소는 동네 약국 앞이었다. 일 년에도 여러 차례, 여러 해 동안 꾸준히 나눔을 했다. 마을 SNS에 나비란 나눔 안내글을 올리면 약속시간에 벌써 와서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다. 환한 얼굴로 나를 반기던 이가 시집이나 사탕 같은 작은 선물을 주기도 했다. 우리 동네에 참 좋은 사람들이 많구나. 

P. 114 

※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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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머더 클럽
로버트 소로굿 지음, 김마림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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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릴레이 추리 클럽>

첫 번째 사건

「말로 머더 클럽」

우리는 <늙은> 여자들이잖아요. 마흔 넘은 여자들은 아무도 신경 안 써요.

p. 246


77세 할머니 주디스, 교회 신부의 아내 벡스, 그리고 개 산책꾼 수지. 세 여자의 기막힌 활약을 만날 수 있는 소설이다. 아무도 이 세 사람이 살인 사건을 추적하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어느 날 평화로운 마을 말로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첫 번째 희생자의 옆집에 살고 있던 주디스는 누군가의 비명과 총소리를 듣고 사건이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용감한 할머니는 이웃을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 벡스, 수지와 함께 범인을 찾아 나선다. 특히 주디스 할머니의 추리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사회에서는 눈에 띄지도 않는 나이 든 여자들이지만 왕성한 호기심, 십자말풀이로 다져진 추리력, 빼어난 말솜씨와 마을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마당발 성격을 무기로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의 범인에게 다가간다. 이들의 활약은 아슬아슬하다. 때로는 엉성해 보이고 무모해 보이지만 각자가 가진 장점을 드러내며 살인범을 추적한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 여자의 유쾌할 활약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실 이번 소설은 범인 맞추기에 실패했다. 정확히는 1/3만 맞춘 셈이다. 제법 두꺼운 소설이지만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세 여자의 활약이 궁금해서 책장을 넘기는 손이 빨라진다. 자신들의 사회적 약점을 역이용하여 대범하게 증거를 찾아내는 모습이 엉뚱해 보이면서도 긴장감이 흐른다. 특히 신체적으로 민첩하게 움직이지 못하기에 들킬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된다. 말로 마을의 비공식 탐정 클럽은 조용한 마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특히 벡스의 성장이 가장 인상 깊었다. 신부의 아내이기에 남편 내조와 지지자들의 접대가 삶의 전부였던 그녀의 변화에서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말로 머더 클럽」은 분명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세 여자의 활약을 보여주며 사건을 추리하는 신선한 즐거움과 뿌듯함을 전해준다. 이미 BBC에서 시리즈로 제작되었다고 하는 데, 우리나라에서도 빨리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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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삶에 관한, 조금은 다른 이야기 - 다 이룰 수 없는 어른의 인생을 위한 수용전념 심리학
이두형 지음 / 갈매나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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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완벽한 삶을 살거라 생각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친구와 해질녘에 여의도 공원에 앉아 커다란 빌딩들을 보며 커리어 우먼으로 성공하자고 다짐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실제 어른이 되어 만난 세상은 전쟁터였다. 인간관계에 상처받고 성과주의에 허덕이던 삶은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내 안에서 부정적 마음과 불안함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고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때 오로지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도망쳤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저자는 우리 삶에서 갈등과 고통이 완벽하게 제거될 수 없다고 말하며 불편한 감정이나 느낌을 없애기보다 포용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내가 힘든 건 잘못 살아온 탓이 아니라는 점을 설파하며 다 이룰 수 없는 어른의 인생을 위한 '수용전념' 심리학을 전해준다. 

수용전념치료(ACT)는 삶의 불완전성, 인간의 심리적인 고통이 만연하다는 사실과 그러한 고통을 경감하려는 시도만으로는 더 나은 삶과 행복을 충분히 제공해 주지 못한다는 한계로부터 시작되었다.

p.19

저자가 말하는 수용전념 심리학에는 여섯 가지 기둥이 있다. 첫째 지난날을 안아주며 아픔을 다르게 보기, 둘째 언어의 감옥에서 빠져나오기, 셋째 지금 이 순간 관찰하고 보살피기, 넷째 과거 현재 미래의 나를 느껴보기, 다섯째 충동과 쾌락의 뒷모습 들여다보기, 여섯째 뒤엉킨 불행과 행복을 기꺼이 마주하기.


이러한 여섯 가지 기둥을 통해 우리는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저자는 다양한 환자 사례를 통해 마음의 방향을 잡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조언을 건넨다. 특히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소한 일에 고민만 하는 나에게 3장의 이야기는 귀가 쫑긋하게 만든다. 지금 이 순간에 몰두해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하고 현실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것들을 기억해둔다. 


사실 수용전념이라는 개념을 실천에 옮기기까지는 쉽지 않다. 자꾸만 실수한 것만 떠오르고 자책만 늘어간다. 심리학을 다룬 책이라 여기고 처음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저자가 제시한 제안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떠한 고민과 고통이 있더라고, 어차피 먹어야 할 저녁식사 메뉴를 고심해서 고르고, 먹을 때 그 맛을 온전히 느껴보자." 지나간 일을 되씹고 고민해 봤자 이미 벌어진 일인데 뭐..라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웃음이 났다. 그래 쓸데없는 고민에 우울의 늪에 빠지느니 맛있는 저녁을 고민해 보자.


지금의 내 삶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심지어 내가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을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다. 거창한 행복과 성공이 아닌 소소한 기쁨을 떠올려본다. 이렇게 꾸준히 일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나는 성공에 가까워지는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조금 더 나를 믿고 내가 가는 길이 맞다는 확신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삶이 힘겨운 모든 어른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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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차트 속에 숨은 경제학 - 생각지 못한 변수들이 어떻게 우리의 건강을 좌우하는가
아누팜 B. 제나.크리스토퍼 워샴 지음, 고현석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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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재미있는 책이다. 의학과 경제학, 다소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두 학문의 만남이 새로운 재미를 선사한다. 의학계의 괴짜 경제학자라고 불리는 두 저자는 경제학적 관점에서 의료현장을 주목했다. 생각지 못한 변수들이 우리의 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하면서 의료현장의 문제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여름에 태어난 아이들이 독감에 더 잘 걸리고 마라톤이 열리는 곳에 살고 있다면 위급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기를 기도해야 하며 의사의 정치적 성향에 환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호기심 많다고 생각했던 나도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한 문제들을 '자연실험' 방법을 통해 조사하고 분석한 저자들의 머릿속이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9장이다. 학창 시절 의학드라마 <ER>을 보며 의사들을 동경한 적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병원 갈 일이 거의 없었기에 TV 속 의사들의 모습을 보며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화면 속 의사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미시간 의대 교수는 드라마 속 의사들과 현실 속 의사들의 차이점에 주목하고 이를 연구하여 의학 드라마를 전문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의 연구 결과에 따라 각자에게 좋은 의사란 어떤 모습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 책을 통해 생년월일과 교통체증처럼 개인의 의지로는 바꿀 수 없는 생각지 못한 변수들이 상상외로 우리의 건강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의료현장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우연이 한 사람의 생명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사례이기에 단순히 보고 지나칠 수는 없을 것 같다. 


저자들의 실험 결과는 개인과 공동체를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시도였다. 의료현장의 교란인자를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통해 보다 건강한 삶을 만끽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생겨난다. 경제학과 의학의 만남은 그동안 가지고 있던 편견을 깨고 생각을 유연하게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 <진료차트 속에 숨은 경제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준 책이다.


※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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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태수 지음 / 페이지2(page2)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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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무엇일까.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먹고 싶은 것 먹고 하고 싶은 일 하고 갖고 싶은 거 가질 수 있는 삶,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는 제목부터 공감이 간다.


인생의 절반 정도를 살고 보니 요란한 세상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내 길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어릴 때처럼 신나고 자극적인 걸 찾지도 않고 슬픔과 아픔이라는 감정에도 익숙해졌다. 세상이 마냥 꽃밭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무심해 보이는 위로가 유독 마음에 와닿았다. 열심히 살수록 피로감만 쌓여가는 현실에서 '다정함은 체력에서 나온다'는 첫 번째 글부터 시선을 사로잡았다. 


사실 최근에 에세이는 잘 읽지 않았다. 너무 좋은 말만 있고 너무 희망찬 문장으로 가득한 책들을 보면 답답했다. 현실을 살아가다 보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기에 한없이 다정한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태수 작가의 글은 달랐다. 문장이 이어질수록 내가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행복이라는 감정이 무뎌지는 것 같았다. 사실 살면서 거창한 행복을 바랐던 적도 없었다. 그저 오늘 하루 무탈하게 마음 편하게 살아가는 것. 딱 그 정도의 행복을 기대했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하루하루 전쟁과도 같았다. 그런 시간 속에서도 웃음이 넘치진 않지만 울음이 넘치지도 않는 그런 조용한 행복은 늘 내 곁에 있었다. 


이젠 나도 평범한 삶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오늘 하루도 무탈하게 보내는 거, 소박하고 소소한 일상의 진가를 이젠 알 것만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도 모르게 생각했다. 희생은 아름답지만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우린 참고 억누르는 것이 어른스러운 것이라 배워왔지만, 사실 아무도 자신의 자식마저 그런 인생을 살길 바라지는 않는다. 어른이란 자신을 가장 먼저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에게까지 선물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p.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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