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 크리크
앤지 김 지음, 이동교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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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의 작은 마을의 한국인 이민자 유씨 가족이 운영하는 고압산소 치료 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방화로 인한 이 사고로 치료 중이던 아이와

다른 아이의 보호자가 사망하고 시설을 운영하는 유씨와 딸이 중상을 입었다.

그리고 1년 후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이 시작된다.

방화 사건의 용의자는 사망한 아이의 엄마인 엘리자베스였다.

소설은 재판을 중심으로 사건 당시 시설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을 교차시킨다.

재판 내내 엘리자베스의 변호사는 그녀가 불을 지르지 않았다며 반론을 제기한다.

한 명씩 증언이 이어질 때마다 그날의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기적을 바라고 있었다.

이민자 부부는 딸의 미래를 위해 환자와 가족들은 건강한 삶을 위해

이 기적과도 같은 고압산소 치료에 기꺼이 동참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실수로 아니 어쩌면 모든 사람들의 작은 실수가 모여

희망은 커다란 불길에 휩싸여 사라져버렸다.

소설은 유씨의 거짓말로 시작된다. 그리고 유씨 아내는 남편의 거짓말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곧 후회한다. 그 거짓말이 아니었다면 기적은 계속되었을지 모른다.

도입 부분에서는 답답했다. 아내의 행동에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이 사건의 용의자로 아내가 재판을 받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재판이 시작되면서 이야기는 숨 가쁘게 흘러간다.

각자가 가진 비밀과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엘리자베스가 침묵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고 유씨 딸의 속삭임이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소설의 범인과는 달리 이 사건의 진짜 범인은 지목하게 되었다.

한 사람의 충동으로 인해 다른 한 사람의 인생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게 되고

그 상처는 끔찍한 고통의 기억을 더한다. 저마다 가지고 있던 기적에 대한 희망은

바로 그 사람 때문에 산산조각 나게 된다. 그럼에도 작가는 인간의 선의를 이야기한다.

그런 의도 때문에 등장인물들에게 측은함을 느끼게 되었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소설은 비극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결말에 이르러서는 따스함과 인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진실이 밝혀졌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 아니었을까.

세상을 조금 더 폭넓게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온기를 전해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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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 에세이&
김현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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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시작되자마자 바빠졌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오니 시간은 2021년의 끝을 향하고 있었다.

12월의 마지막 날 저녁, 모든 일을 끝내고 정신적으로 지쳐있을 때 위로가 필요했다.

아니 어쩌면 그동안 수고했다는, 열심히 살았다는 칭찬을 듣고 싶었는지 모른다.

손가락 까딱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던 그 순간 가만히 누워 작은 책을 펼쳐 들었다.

타인의 일상이지만 그 안에서 나와 닮은 점을 찾으며 위로를 받는다.

그의 글을 읽다 보니 <일렁이다>라는 단어가 자꾸만 눈에 아른거린다.

타인의 삶에 대한 작은 단편들이 뭔가 모를 힘을 보내 준다.

살면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을 이토록 다정한 글로 펼쳐낼 수 있다니

그저 부럽기만 하다.

작가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안에서 폭등하는 집값이나 프리랜서의 어려움,

층간 소음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 등 함께 분노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때로는 웃으며 때로는 안타까운 감정으로 그의 글을 따라가다 보니

고된 시간 노동의 대가로 얻게 된 몸의 통증들이 조금씩 사라진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휴식이었다.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면 수많은 생각들 때문에

고통이 더해졌을 테지만 다정한 이야기를 읽고 있으니

머릿속까지 조금씩 정리되는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

비록 세상은 다정할 수 없지만 그가 전해준 다정한 이야기에 따스한 온기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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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날씨 - 위기가 범람하는 세계 속 예술이 하는 일
올리비아 랭 지음, 이동교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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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저마다의 시선으로 예술을 바라본다.

올리비아 랭은 차별과 소외에 저항한 예술들을 살펴보며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의 삶을 보여준다.

그녀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사색에 잠기는 시간이 늘어난다.

눈으로만 읽던 글자들이 어느새 머릿속에서 저마다의 그림을 그리며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게 된다.

그녀는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이상한 세상에서, 어쩌면 위기일지도 모르는 이 현실에서

예술이 변화의 물꼬를 트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예술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찾으며

분노와 폭력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무감각해지지 않고

저항하고 회복하려는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이 책에는 환경 운동가, 성소수자의 가족, 난민 등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그녀는 다양한 형식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 준다.

자기 고백은 물론 외로운 이들의 말을 건네주면서 환대한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알 수 없는 편견에 사로잡혀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이 순간 나는 예술이란 그저 눈으로 보는 것이라 여겼던 편협한 시각에서

조금씩 벗어나 세상을 더 큰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녀가 그려낸 예술 속 가능성의 풍경들을 통해 우리 시대에 필요한 환대와 포용에 대해

생각해 본다. 또한 삶 자체가 저항의 상징이었던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들이 남긴 메시지에서 앞으로 살아갈 현실에 대해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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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두려워하는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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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 않은 임신과 임신 중절. 작가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흥미진진하고 생동감 있게 그려낸다.

주인공인 브렌던은 전기공학을 전공한 후 전기 회사에서 27년간 근무했지만

매출 감소로 인한 인원 감축으로 회사를 그만둔 후 로스앤젤레스에서 우버 운전으로

생활비를 벌며 힘겨운 감정 노동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

어느 날 은퇴한 교수 엘리스가 그의 차에 타게 되면서 브렌던의 인생은 180도 변하게 된다.

엘리스를 임신 중절 병원에 내려준 후 잠시 근방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다가

오토바이를 탄 괴한을 목격하게 된다. 괴한은 엘리스가 들어간 병원에 화염병을 던졌고

그 사건으로 경비원이 목숨을 잃게 된다.

그가 살고 있는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임신 중절을 두고 첨예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임신을 원치 않은 여성들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며 임신 중절을 옹호하는 입장과

뱃속의 태아를 죽이는 건 살인이라는 반대파의 입장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브렌던의 아내는 첫 아들을 유아 급사 증후군으로 잃은 후 입양 주선 단체에서 일하며

임신 중절을 경멸하고 이후 태어난 딸 클라라는 대학 졸업 후 복지사의 길을 가고 있다.

소설 속에서는 끊임없이 대립되는 관계가 등장한다.

그저 평범하게 하루를 살아가던 브렌던은 어느 날 갑자기 대립의 축에 서게 된다.

소설은 끊임없이 내게 질문을 던졌고 임신 중절이라는 행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과연 어느 쪽을 응원하고 있을까. 찬성이냐 반대냐. 많은 나라에서 심각한 갈등 양상을

보이는 중차대한 사회 문제에 대해 쉽게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내 시선은 줄곧 브렌던의 입장을 따라갔고 그의 결정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사회 갈등을 그려내면서 로스앤젤레스 최고의 자산가를 빌런으로 등장시킨다.

임신 중절 옹호 단체와 반대 단체에 똑같이 거액을 기부하고 양측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악당의 등장에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가게 된다.

현실을 반영한 사회 문제와 자신들의 주장을 위해서라면 폭력과 테러를 서슴지 않는

단체들의 활약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쉽게 답을 낼 수 없었던 질문에 대해서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어떠한 상황이든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중요하다는 것.

결론을 내리고 나니 마음이 조금이나마 후련해진다.


"잠시 무엇에 홀린 듯 인생의 끝장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했어요."

"어떻게 다시 정신을 수습했어요?"

"어둠이 무서웠어요."

p. 140

"직접 겪은 일이지만 제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한 일이었죠. 제 몸과 제 운명을 스스로 선택한 거예요. 인생에서 중대한 선택을 하고 나서 얻게 되는 결과는 매우 복잡하죠."

p.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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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낚시질을 시작합니다 : 팩트 피싱
염유창 지음 / 스윙테일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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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언론 신뢰도는 처참할 정도로 바닥을 헤매고 있다.

'기레기'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과거 언론인을 꿈꿨고 오랜 시간 공부하고 도전했던 경험 때문인지

그저 안타깝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한때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만 도달할 수 있었던 그 자리가 이제는 한낱 조롱거리밖에 되지 않는 현실이 참 슬프다.

이 책은 그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반영한다.

온라인 뉴스 편집 기자인 윤재는 데스크에 깨지든 기레기라 욕을 먹든

오로지 조회수를 위해 자극적인 낚시성 제목으로 독자들의 클릭을 유도한다.

그러던 어느 날 윤재의 낚시 제목으로 후배 기자가 자살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윤재는 후배가 남긴 유서에서 타살의 근거를 찾게 되고 진범을 찾아 나선다.

소설은 크게 국회의원이 얽힌 사건과 재벌가 자제가 연관된 사건으로 전개된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윤재는 주특기인 낚시 제목으로 진범을 유인하기로 결심한다.

두 사건에는 대한민국의 현재가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들만의 세상 속에서 권력과 탐욕에 타락한 공권력과 이에 대항하는 개인의 처절한 몸부림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세계가 무너지고 정의가 승리하는 그 순간을 그려본다.

여전히 나는 기자란 팩트에 기반하여 발로 뛰며 사실대로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플루언서의 SNS를 보고 끄적이거나 컨트롤 C, 컨트롤 V 식으로 기사를 쓰는

사람들을 기자라 생각하지 않는다. 비록 포털 사이트에서는 이런 식의 기사가 난무하지만

진실을 투명하게 보도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기자들이 더 많다고 믿고 싶다.

뉴스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답답하고 가짜 뉴스와 편파 보도가 난무하는 현실에서

윤재의 활약상에 잠시나마 위안을 받는다.

올바르게. 그 단어가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 윤재는 딜리트키를 꾹 눌렀다.

p. 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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