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서 온 남자 폰 노이만 - 20세기 가장 혁명적인 인간, 그리고 그가 만든 21세기
아난요 바타차리야 지음, 박병철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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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펜하이머>가 개봉하면서 '맨해튼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고 관련한 다양한 정보를 취하면서 수학자 존 폰 노이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수학자라고 하면 어려운 공식을 풀어내고 만드는 사람이라 여겼지만 폰 노이만은 오늘날 거의 모든 컴퓨터 설계의 기본이 되는 새로운 개념의 컴퓨터를 만들었다. 수학자와 컴퓨터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지 못한 조합은 폰 노이만이라는 한 개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이 책은 21세기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과학자 폰 존 노이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역사적으로 덜 알려진 존 폰 노이만의 탄생부터 그가 이룬 학문적 성과와 인류에 이바지한 업적을 설명하면서 20세기 과학사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책 초반의 양자역학 이야기에 잠시 어질한 기분을 느꼈지만 역시나 내가 관심 있게 읽은 부분은 4장 맨해튼 프로젝트와 핵 전쟁에 관한 부분이었다. 폰 노이만의 이론적 연구가 실제 폭파 실험에 적용되고 세계 최초의 핵무기 발파 계획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순간을 조금 더 뚜렷하게 목격할 수 있었다.


​천재의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들이 들어있는 걸까. 양자역학, 컴퓨터, 게임이론 등 폰 노이만의 관심사는 단백질 구조를 밝히는 생물학까지 확장된다. 그는 더 나아가 두뇌와 컴퓨터의 연관성을 연구하고 DNA 구조가 밝혀지기 전에 이미 분자생물학의 이론적 기초를 제시하였다. 폰 노이만에 대해 알아갈수록 과연 그에게도 한계란 게 있을지 궁금해졌다. 왜 21세기 과학사의 굵직한 아이디어가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는지 그 말의 의미를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비범한 과학자의 삶을 통해 20세기 과학사의 생생한 현장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천재의 머릿속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본 것 같아 자극을 받기도 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노이만이 설계한 미래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추천사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P. 299 
노이만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인간의 막연한 욕망과 편애적 성향에 숫자를 할당하는 엄밀한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P. 466 
노이만의 세포 오토마타는 이 분야에 등장한 모든 이론의 씨앗이 되었으며, 생명을 창조하겠다고 나선 용감한 개척자들에게 번뜩이는 영감을 불어넣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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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이경 지음 / 래빗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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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육아'라는 말을 들으면 두려움과 당혹스러운 감정이 먼저 든다. 그래서 내가 조카와 단 둘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 10분이다. 그 이상은 서로에게 고통만 안길 뿐이다. 이경 작가는 이 예측할 수 없는 작은 생명체를 키우는 육아라는 과정을 소재로 유쾌하면서도 기발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제목부터 독특한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는 육아에 지친 부부가 인공지능 젖병소독기 홀로그램을 만나며 겪는 해프닝을 보여준다. 나와는 거리가 먼 소재라 생각했기에 심드렁하게 책자를 펼쳐들었지만, 미주가 한밤중 거실에 갑자기 나타난 스웨덴 배우 얼굴의 AI 육아 도우미를 처음 마주했을 때 내뱉은 한마디에 작가의 글에 빠져들었다. 머릿속에서 자꾸만 울리는 그 한마디에 이끌려 낯선 AI들과의 만남이 기다리게 됐다. 비록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입으로만 육아를 돕고 있지만 이 AI는 젊은 육아에 지친 젊은 부부에게 말동무가 되어주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역할을 다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어지는 단편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도 어린이집 휴원으로 인해 아기랑 둘이 친정으로 가야 하는 직장맘의 고단함을 달래줄 AI 돌보미가 등장한다. '나'는 혼자 아이와 기차를 타고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자 '황새영아송영' 앱을 열었다. 비록 KTX 편도 여행 비용의 여섯 배 정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나'는 AI 돌보미 덕분에 깊은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된다. 고달픈 육아와 직장맘의 애환이 짠하게 느껴지던 이야기는 AI 직원이 앞치마 주머니에서 꺼낸 브로슈어 한 장으로 코믹한 장르로 탈바꿈한다. 인공지능과 돌봄 노동이라는 주제를 이토록 유쾌하게 풀어낼 수 있다니... 작가의 세계에 푹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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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함의 힘 - 세상을 다르게 감지하는 특별한 재능
젠 그랜만.안드레 솔로 지음, 고영훈 옮김 / 21세기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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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하다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별거 아닌 일에 날카롭게 반응하고 극도의 감정 기복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주변 상황 핑계를 대며 예민함을 다스리려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이 책은 이러한 예민함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고 예민함을 장점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알려주는 책이다.


​예민함을 약점으로 보지 않고 재능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독특하다. 두 저자는 민감한 감성으로 세상을 독특하게 바라보며 이러한 성질을 창조 능력의 원천이라고 이야기한다. 예민함을 모난 성격으로 치부하고 유별나다는 소리를 들으며 이제 나이에 맞게 둥글게 사는게 좋지 않겠냐는 충고만 듣어왔던 터라 예민한 기질에 숨겨진 무한한 잠재력이 궁금해졌다. 


​저자들은 지나치게 시끄럽고 복잡하고 빠른 세상에서 예민함을 받아들이려는 사회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회는 이러한 변화를 통해 우리가 맺는 다양한 관계 속에서 갈등을 예방하고 공감 능력을 키우는 장을 마련해 줄 수 있다. 


특히 예민한 아이를 키우고 돌보고 있다면 7장을 유심히 살펴보면 좋을 것이다. 아이가 가진 예민함의 일반적인 특징과 잘못된 오해를 알려주고 부드럽게 훈육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자녀와 부모가 감정을 다스리고 잠재력을 발휘하여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는 모두 예민함을 포용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저자들은 각자의 예민함을 파악할 수 있는 체크리스크를 함께 실어 내재된 예민함을 이해하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 다양한 사례를 읽으며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예민한 상황을 이해하고 체크리스트를 통해 확인한 자신의 성격적 특성과 비교해 보면서 예민함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예민함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동안의 사회적 시각 때문에 숨기려고만 했다면 이 책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P. 294-295 
시끄럽고, 빠르며 지나치게 과도한 세상에서 우리는 예민한 사람들에게 주목하고 기대를 걸어야 한다. 우리에게 배워야 할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그들은 속도를 늦추는 것의 가치를 보여준다. 그들은 깊이 교감하고, 우리의 평범한 삶에서 의미를 창조하는 사람들이다. 그뿐만 아니라 예민한 사람들은 세상이 필요로 하는 연민의 마음을 가진 리더들이다. 그들은 사회의 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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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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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중심의 작은 나무, 그 나무가 뿜어낸 깊은 감정, 나무를 호위하는 숲, 숲을 움켜쥐고 있는 거대한 뿌리를 직감했다. 마치 자신이 그 뿌리에 사로잡힌 숲 자체인 것처럼.

p. 95

나무와 인간 사이에서 죽을 위기에 처한 단 한 명만 살릴 수 있는 수명 중개인. 소설은 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열여섯 살 목화는 현실처럼 생생한 꿈속에서 무작위한 죽음을 목격한다. 그리고 나무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네가 구하면 살아.' 다만 수많은 죽음 중에서 목화가 구할 수 있는 건 단 하나의 목숨이다. 외할머니에서 어머니, 그리고 목화로 이어진 과업은 수천 년의 시간을 살아온 나무의 이파리 한 장만큼을 빌려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 할머니는 이를 기적이라 말하지만 엄마는 악마라 칭한다. 다소 낯선 세계관에 잠시 당황했지만 어느새 살리는 자의 숙명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목화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닫고 목표를 세운다. 알아내는 것, 통과하는 것, 그리고 증명하는 것. 목화는 중개인으로서의 삶을 이어가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사람을 살리는 일의 의미를 찾아간다. 삶과 죽음의 의미와 나와 가까운 이들, 그리고 나의 죽음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목화는 사라진 금화를 찾게 될까. 왜 목화에게 숙명이 이어진 걸까. 구하지 못한 죽음은 어떻게 되는 걸까. 남아있는 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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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맛집 산책 - 식민지 시대 소설로 만나는 경성의 줄 서는 식당들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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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TV에서 한국 근대사의 문학가에 대한 방송을 보게 되었다. 천재 시인 이상이 문을 연 다방 제비에 대한 소개와 구인회의 문인들이 즐겨 찾았던 '낙랑 파라'를 알게 되었다. 지금의 다방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와 의미를 지닌 이곳의 분위기가 궁금했다. 고달픈 예술가들의 소일터였던 경성 시대 핫플레이스. 드디어 그곳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경성 맛집 산책>은 식민지 시대 외식 풍경을 담아낸 책이다.  암울한 시대에도 화려했던 역사 속 맛집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한국 근현대 소설에 등장한 음식점을 소개한다. 최초의 서양요리점인 청목당을 시작으로 과일 디저트 카페부터 지금도 정상 영업 중인 김두한의 단골 설렁탕집, 최초로 정통 프렌치 코스 요리를 선보인 조선호텔 식당, 경성 천재들의 단골 카페인 낙랑파라, 조선인이 경영한 최초의 백화점인 화신백화점 식당까지 근대사의 외식 문화와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서양의 신문물과 우리 고유의 문화가 충돌했던 시기인 만큼 슬픈 역사의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지만 지금 표현으로 '힙'한 외식 풍경이 흥미로웠다. 당시 사진과 기사 등 객관적인 자료가 첨부되어 있는 경성의 풍경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다. 특히 소설 속에 그려진 맛집들은 낯선 음식을 처음 맛본 사람들의 반응과 메뉴 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현재와 닮은 듯 다른 음식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온다. 


​이 책을 통해 만난 경성은 생각보다 신식이었고 화려했으며 신기했다. 하지만 이를 경험할 수 있는 조선인의 수는 극히 드물었다. 암울한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조선인들에게는 굶주림이 일상이었고 값싼 임금만을 받으며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었다. 그런 서민들이 즐겨 찾는 음식은 설렁탕이나 냉면과 같이 저렴한 가격의 음식이었다. 평범한 서민들이 단골이었던 '이문식당'이 여전히 영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책에 소개된 맛집은 '이문식당'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종로와 명동 일대를 지나다 보면 세련된 맛집과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의 화려한 모습이 눈앞에 그려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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