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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이경 지음 / 래빗홀 / 2023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육아'라는 말을 들으면 두려움과 당혹스러운 감정이 먼저 든다. 그래서 내가 조카와 단 둘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 10분이다. 그 이상은 서로에게 고통만 안길 뿐이다. 이경 작가는 이 예측할 수 없는 작은 생명체를 키우는 육아라는 과정을 소재로 유쾌하면서도 기발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제목부터 독특한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는 육아에 지친 부부가 인공지능 젖병소독기 홀로그램을 만나며 겪는 해프닝을 보여준다. 나와는 거리가 먼 소재라 생각했기에 심드렁하게 책자를 펼쳐들었지만, 미주가 한밤중 거실에 갑자기 나타난 스웨덴 배우 얼굴의 AI 육아 도우미를 처음 마주했을 때 내뱉은 한마디에 작가의 글에 빠져들었다. 머릿속에서 자꾸만 울리는 그 한마디에 이끌려 낯선 AI들과의 만남이 기다리게 됐다. 비록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입으로만 육아를 돕고 있지만 이 AI는 젊은 육아에 지친 젊은 부부에게 말동무가 되어주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역할을 다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어지는 단편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도 어린이집 휴원으로 인해 아기랑 둘이 친정으로 가야 하는 직장맘의 고단함을 달래줄 AI 돌보미가 등장한다. '나'는 혼자 아이와 기차를 타고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자 '황새영아송영' 앱을 열었다. 비록 KTX 편도 여행 비용의 여섯 배 정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나'는 AI 돌보미 덕분에 깊은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된다. 고달픈 육아와 직장맘의 애환이 짠하게 느껴지던 이야기는 AI 직원이 앞치마 주머니에서 꺼낸 브로슈어 한 장으로 코믹한 장르로 탈바꿈한다. 인공지능과 돌봄 노동이라는 주제를 이토록 유쾌하게 풀어낼 수 있다니... 작가의 세계에 푹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