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맡기는 보관가게 1
오야마 준코 지음, 이소담 옮김 / 모모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나, 보관료는 하루에 100엔입니다.

둘, 정해진 기간이 지나기 전에 찾으로 오셔도

보관료는 돌려드리지 않아요.

셋,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 보관품은 주인의 것이 됩니다.

넷, 맡기시는 분의 성함을 꼭 여쭙니다.

도쿄 근교의 상점가 끄트머리에는 이상한 보관가게가 있다. 누구든 무엇이든 하루 100엔이면 보관할 수 있는 이 가게의 주인 기리시마 도오루는 어릴 적 사고로 앞을 보지 못한다. 부모님마저 집을 떠나 외롭게 살아가던 그 앞에 어느 날 한 남자가 들이닥친다. 투박한 남자가 맡긴 물건은 보관가게가 생겨난 계기가 되어 준다.

이 특별한 가게에는 다양한 손님들이 찾아든다. 점자책을 만들어 찾아오는 자원봉사자, 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자전거를 보관하려는 소년, 중요한 서류를 보관해 달라는 쥐 할아버지, 이혼 서류를 보관하려 온 여자, 새끼 고양이를 데리고 온 어미 고양이, 그리고 보관가게 주인 도오루의 사랑까지 뭉클하고 잔잔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재미있는 건 이야기의 화자가 꼭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게에 걸려 있는 포렴이 화자가 되기도 하고 오래된 유리 진열장이 화자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고양이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방문한 의뢰인이 이야기를 전달할 때도 있다. 각각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다채로운 재미를 선사한다.

나라면 무엇을 잠시 맡기고 싶을까. 어린 시절이라면 일기장이나 편지를 보관하려 했을 테지만 어른이 된 나는 물건보다 '풀지 못한 관계'를 잠시 보관해두고 싶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그것뿐이니깐.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가게가 현실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나만의 장소가 있었으면 좋겠다. "잘 다녀오세요"라는 주인의 인사에는 걱정 말고 다녀오라는 응원의 힘이 실려 있다.

쉽게 사고 버리는 일이 익숙해져 잊고 있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설이다. 물건뿐만 아니라 관계에서도 서로 주고받고 포용하고 수용하는 과정이 점차 생략되어 가는 안타까운 현실에 꼭 필요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봄날에 어울리는 따스한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지음 / 달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강렬한 제목이 눈길을 끈다.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길래 이리 과격한 단어가 표지에 쓰인 걸까.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책을 다 읽은 후 누구보다 화려하고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 그녀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이 좋은 책은 나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까워 곧바로 친구에게 선물했다.

열다섯 살에 시력을 잃기 시작하면서 시각장애인으로 마사지사로 딸로 그리고 여성으로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낸 저자는 2023년 샘터 문예공모전 생활수필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녀의 인생은 감성 가득한 문장으로 나를 울고 웃게 한다. 특히 매콤한 모녀지간의 대화는 이 책을 쓴 사람이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자꾸만 잊게 만든다.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사람이 이토록 궁금해지는 것도 처음이다.

어린 나이에 어둠이 익숙해지는 삶이 결코 평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시종일관 통쾌하고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풍긴다. 알 수 없는 긍정의 힘이 글자 밖으로 쏟아진다. 보이지 않는다고 삶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생은 단단해졌고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아예 잊고 살아간다. 잊어야지만 살아갈 수 있으니깐.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가고 마사지사로서 마사지 숍에서 사람들을 마주하고 엄마와 투닥거리는 일상은 비장애인인 내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나보다 더 활기차다고 해야 할까. 그녀는 어둠으로 가려진 세상에서 자신만의 화려한 축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뜨겁고 열정 가득한 책을 읽고 보니 적막한 내 삶에도 변화가 찾아올 것만 같다.

때론 타인의 걱정 어린 말이 상처가 되기도 하고 고약한 성격의 손님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기 위해 용기를 낸다. 그녀가 선택한 것은 탱고였다. 장애 때문에 탱고 학원에서 번번이 퇴짜를 맞지만 저자는 자신의 이름처럼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승리를 거머쥔다. 그런 그녀를 선뜻 받아준 강사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그녀 모두 멋있는 사람들이다.

하루하루 일에 허덕이며 살고 있는 내 삶을 돌아보았다. 언제부턴가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눈뜨고 잠들 때까지 일이 많다는 핑계로 책상 앞에만 앉아있던 시간들을 반성한다. 그녀의 이야기는 꺼져가던 내 삶에 뜨거운 열정을 가득 부어주었다. 내 삶도 축제로 만들고 싶다는 바람도 생겨났다. 무병장수를 꿈꾸며 글을 계속 쓰고 싶다는 그녀의 바람이 오래도록 이어졌으면 좋겠다.

나는 그동안 실패가 두려워 장애를 핑계 삼아 하고 싶은 일들을 포기해왔다. 잃어버린 것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다르게 살려 노력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일로 만들기 위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기 위해 용기를 낸다. 탱고 수업은 내게 첫 도전의 시작이었고 내 가슴에 열정을 심어주었다.

p. 203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디터D 2024-04-07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말씀하신 것처럼 너무도 강렬한 제목때문에 읽고자 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는데 서평을 보고 읽어야겠다 싶네요 ㅎ 서평 잘 읽고 갑니다:)
 
행복한 이기주의자 두 번째 이야기 - 언제나 답은 내 안에 있다 행복한 이기주의자
웨인 W. 다이어 지음, 김성 옮김 / 21세기북스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나 혼자 힘으로 고난을 이겨내지 못할 때가 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하고 따스한 말 한마디에 역경을 이겨낼 묘안을 떠올리기도 한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어느 날 문득 읽은 책의 한 구절이 막혔던 생각을 뚫어주기도 하고 정체되어 있던 삶에 자극을 주기도 한다.

이 책은 위대한 인물들이 남겨준 지혜를 담아 잊고 있던 행복을 매일 만날 수 있게 해준다. 현인들이 남겨 놓은 수많은 글을 엄선하여 필요한 순간에 적절하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준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가 소개되고 부처의 지혜가 담겨 있다. 마더 테레사의 말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글이 실려있다. 이를 통해 나를 들여다보고 내 안에 잠든 가능성을 깨우며 충만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행복한 이기주의자 두 번째 이야기」는 60개 주제별로 60명의 현인들의 글을 소개한다. 따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도 좋고 매일 한 장씩 읽어도 좋다. 어느 페이지든 오늘 내게 필요한 지혜를 선택해서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특별한 장점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펼쳐든 페이지는 미국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의 글을 보여다.

너는 네가 생각하는 대로 될 것이다

p. 32

진정으로 소망하고 진정으로 갈망하고 진정으로 의하고 진정으로 열정을 느끼는 것을 머릿속에 그리고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삶에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매너리즘에 빠져 허우적대는 삶에서 탈출하고픈 바람이 이 문장을 들여다보게 만든 것 같다.

오프라 윈프리, 디팩 초프라 등 세계인이 존경하는 멘토들의 멘토인 웨인 다이어가 건네는 살아있는 지혜는 더 풍요롭고 더 행복한 삶으로 다가가는 밑거름이 되어 줄 것이다. 각자가 원하는 삶에서 가치를 찾고 오늘 하루 온전한 기쁨을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펼쳐보자. 내일은 어떤 말이 나에게 영감을 줄지 기대가 된다.

당신의 마음속에 그들의 지혜가 살아 반짝이게 하고, 당신의 삶이 더 빠르고 강하게 고동치도록 하라. 과거의 위대한 스승들은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당신 또한, 모든 시대의 지혜를 삶에 적용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p. 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셜록의 아류 네오픽션 ON시리즈 22
최윤석 지음 / 네오픽션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네오픽션 ON 시리즈 22편, 남궁민 배우의 낭독으로 눈길을 끌었던 <셜록의 아류>.

총 8편의 미스터리 단편은 눈으로 보는 텍스트가 머릿속에서 영상으로 재현되는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작가이자 연출가인 저자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8편의 단편을 다 읽은 후 가장 먼저 떠올린 단어는 인간의 '욕심과 욕망'이었다.

잘못된 믿음으로 자신이 신이 되었다 믿으며 죽음을 방조하고 아름다움에 대한 끔찍한 집착으로 패치형 인간이 탄생하고 이성 간의 만남조차 별점과 평점으로 대신하거나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해 속이는 게 일상이 된 이들의 모습에서 씁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일상의 공포를 소재로 풀어낸 이야기라 더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소설은 SNS의 '좋아요'와 '구독'에 매몰되어 더욱 자극적인 영상으로 관심을 끌어야 하는 현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또한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스토킹과 도청이라는 행위를 정당화하고 예술적 완성을 위해 타인의 목숨을 무자비하게 도려낸 모습에서 인간의 비뚤어진 욕망과 욕심을 볼 수 있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단편은 『얼굴』이었다. 패치형 인간이라는 발상이 피카소의 [큐비즘]으로 끝나는 순간 감탄이 절로 나왔다. 상식이 사라지고 비윤리적인 생각과 행위를 당연시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이 담긴 이 소설의 모든 단편은 영상으로 만나도 즐거울 것 같다.

패치형 얼굴이 뭐냐고? 몸이 쑤시고 저릴 때 제놀이나 트라스트 같은 파스를 붙였다 떼는 것처럼, 패치형 얼굴도 개인이 각자 선호하는 눈코입을 붙였다가 떼었다가 할 수 있었다.

P. 51

남에게 보이는 데만 집중한 나머지 정작 자신의 얼굴이 썩어가는 줄 모르는 이들, 그들의 게으른 눈빛에서 파블로는 지옥의 냄새를 맡았다.

P. 6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과학이 권력을 만났을 때 - 서로 협력하거나 함께 타락하거나
제프 멀건 지음, 조민호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치는 과학을 어떻게 이용하는가?

과학은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가? 과거에는 이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대답했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인류의 삶의 질 또한 향상되어 왔다. 그러나 인류는 기후 위기라는 엄청난 문제에 직면해있다. 인류가 재앙과 위기에 처할 때 과학은 정치와 서로 협력했다. 가까운 예로 전대미문의 감염병이 전 세계를 덮쳤을 때 수많은 과학자와 제약사들은 백신을 만들고 배포하기 위해 각 국가와 협력하였다. 하지만 통제불능의 과학과 이를 관리할 역량이 없는 정치는 점차 불협화음을 내기 시작했다.

이 책은 정치과 과학이 충돌하는 다양한 논리를 보여주며 국가가 과학에 개입하게 된 역사를 설명한다. 저자는 과학의 이익을 얻으면서도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중요성을 지적하며 과학과 정치의 관계를 깊이 파고든다. 과학이 순수학문의 영역을 넘어 정치적이 되면서 정치에서 결정해야 할 문제가 점점 많아졌다. 예를 들어, 과학 기술과 관련한 예산 편성이나 규제를 위한 관련 법률 제정 등 정치과 과학이 부딪히게 되는 상황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국가는 과학 발전을 통해 국력 향상을 도모한다. 과학에 기반한 군사력은 가장 좋은 예다. 또한 방사능 오염수 방출과 같은 민감한 현안에서도 과학과 정치는 국가 간의 이익에 따라 충돌한다. 과학은 어디에나 있지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므로 정치계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결국 저자가 주장은 정치의 과학화와 과학의 정치화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과학은 학문으로서 본연의 위치에서 고도화된 기술 개발을 통해 국익을 위해 활용되어야 한다. 동시에 정치는 예측할 수 없는 과학 기술의 혼란을 규제하고 통제할 기관을 만들어야 하며 과학이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

코로나19,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기후 위기 등 수많은 문제에 직면한 현실에 과학과 정치가 유기적으로 작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의 과도한 규제나 간섭은 지양해야 하지만 공익을 위해 과학을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개입이 필요하다. 쉽지 않은 이야기지만 의료계와 정부가 대립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다.

과학이 위협하고, 과학이 실패하고, 과학이 새로운 규제 마련 명분의 근거가 되는 만큼, 이제 과학은 모든 의미에서 정치적이다.

P. 36

과학은 정치에 지식을 '공급'하고 정치는 그 지식을 '수용'해 전파함으로써 주변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 이 과정을 미디어와 시민 사회가 감시하고 조율한다.

p. 2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