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화감각 - 이상하고 가끔 아름다운 세계에 관하여
미시나 데루오키 지음, 이건우 옮김 / 푸른숲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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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잡화일까 책일까. 누군가에게는 오브제가 될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공감할 수 있는 멋진 책일 것이다. 잡화로 가득한 책상에 앉아 갖고 싶다는 욕망이 오로지 내 안에서 생겨난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으며 도쿄 잡화 주인의 이야기에 집중해 본다.


도쿄 니시오기부코에 잡화점 FALL을 개점하고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는 저자는 잡화의 쓸모에 대해 고민하며 '잡화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잡화라는 키워드를 통해 현대 소비의 흐름을 이야기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느 가을 날 다이칸야마의 골목을 걸으며 만났던 잡화점들이었다. 한창 여행을 다니던 시기에 목적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걷는 것을 좋아하던 시절에 무수한 잡화점을 거쳤다. 단 한 번도 이곳들을 그냥 지나친 적이 없었다. 신기해서 예뻐서 독특해서 이국적이라는 수많은 핑계를 안고 보이는 족족 잡화점에 들어갔다. 


그렇게 형성된 나의 소소한 소비 성향은 경험이 더해져 '나'라는 사람에 대한 틀을 만들었다. 내 지인들은 어떤 물건을 보거나 책을 보면 '나'를 떠올린다고 한다. 나를 둘러싼 잡화는 나를 대신하게 되었다.


작가와 비슷한 연배라 그럴까. 사는 곳은 달라지만 이야기의 많은 부분에 공감대가 형성할 수 있었다. 알게 모르게 반가웠고 소비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지만 가끔은 아름다운 잡화 세계는 추억과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언젠가 다시 여행을 다니는 날이 온다면 도쿄의 잡화점 FALL에 가장 먼저 가보고 싶다. 

이 세상에 잡화점 주인이 잡화를 소개하는 책은 썩어 문드러질 만큼 많지만 메타잡화론을 말하고자 하는 사람을 잘 모르는 이유는 모두 자신이 믿는 잡화를 파는 데 필사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나를 포함한 모두가 잡화 따위를 완전히 믿지 못하고, 잡화 전체에 관해 이야기하는 의미를 이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p. 92

레고는 알려준다. 우리가 어렸을 때 별생각 없이 마음 속에 담아 두었던 풍경이 긴 세월에 걸쳐 비바람을 견디는 방이 되고, 푸른 초원이 되고, 오두막이 되고, 2층집이 되고, 끝내 마을이 되고 그 사람 자신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그리고 아이들은 언젠가 만나고 또 언젠가는 헤어진다는 사실도.

p.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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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 기자·PD·아나운서가 되기 위한 글쓰기의 모든 것
김창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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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언론인 시험을 준비했었다. 기사를 작성하고 카메라 앞에서 원고를 읽으며 꿈을 키우던 시기였지만 글쓰기는 늘 어려웠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생각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며 마음에 남은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썼다 지웠다 했는지 모른다. 이 책을 읽고 있으니 열정 가득했던 청춘의 시절이 떠올랐다.


어릴 때부터 글쓰기에 대한 관심과 동경이 있었다는 저자는 한겨레신문사 취재기자를 거쳐 대학에서 예비 언론인들을 위한 강의를 했다. 1,000여 명의 언론인을 배출한 저자의 노하우가 담긴 이 책에서는 저널리즘 글쓰기의 모든 것이 전해준다. 언론사 입사를 꿈꾸거나 자신의 글의 장단점을 알고 싶은 이들에게 필요한 정보가 곳곳에 담겨 있다.


언론인을 꿈꾸지 않더라도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분명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종종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있기 때문에 저자가 전해주는 글쓰기의 이론과 실전이 무척 달가웠다. 이해하기 쉽고 논리적이며 자신의 관점을 담고 있는 글쓰기를 배우고 싶었기에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읽었다.


저자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독서노트를 활용하고 끊임없이 고쳐 써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적절한 어휘를 선택하고 문장을 다듬는 팁을 전해주고 비교와 첨삭을 통해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읽기-쓰기-생각하기가 일상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깊이 공감한다. 내게 부족한 '생각하기'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천천히 고민해 본다.


언론인에게 글쓰기는 자신의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기초이자 무기가 된다. 나처럼 서평쓰기가 일상이 된 사람들에게도 글쓰기는 중요하다. 이 책을 통해 각자의 글쓰기 습관을 돌아보며 약점과 강점을 파악하고 자신만의 글쓰기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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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의 루시 - 루시 바턴 시리즈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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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를 뒤덮은 팬데믹이 이제 막 시작되던 때, 루시 바턴은 이제는 친구가 된 전남편 윌리엄과 함께 뉴욕을 떠나 메인 해안의 어느 마을로 떠난다. 처음에는 몇 주 정도 되리라 생각했던 바닷가 마을 생활은 기약 없이 늘어간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에도 삶은 계속되고, 삶이기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상하고 아름답고 슬픈 만남과 헤어짐이 계속된다.

이 삶에서 앞으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은 선물이다.

P. 290


처음 겪어본 팬데믹은 일상에 큰 변화를 주었다. 좋아하는 여행도 갈 수 없게 되었고 내 삶은 집이라는 공간에 한정되었다. 바이러스는 여전히 변이를 거듭하고 있고 팬데믹이 완전히 끝났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루시 바턴의 이야기는 바로 계속되는 삶을 이야기한다. 사실 전작을 읽지 않았기에 루시와 윌리엄 사이에 어떤 서사가 있었는지 잘 모른다. 다만 팬데믹의 위기에서 루시를 살리기 위해 함께 떠나자고 한 윌리엄의 진심이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다. 뉴욕 주를 떠나 잠시 피신하려 온 메인 주에서 이들은 이방인이다. 타인의 차가운 시선을 받지만 조금씩 적응해가면서 자신들의 삶을 되찾으려 한다. 사랑과 이별, 결혼과 이혼, 삶과 죽음 등 인생의 여러 과정 속에서 가족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본다. 

<바닷가의 루시>는 인위적인 감동을 주지 않아서 좋았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삶의 한 부분을 보여주며 소설 속 인물과 현실의 인물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내고 공감할 수 있었다. 젊은 날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헤어졌지만 나이가 들면서 타인을 이해하고 함께 의지하며 소소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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겅클
스티븐 롤리 지음, 최정수 옮김 / 이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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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던 할리우드 스타이자 성소수자인 패트릭 오하라와 어린 두 조카의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들의 만남이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됐지만 예상보다 훨씬 더 즐겁고 훈훈했다. 초반에는 어처구니없는 대사들의 향연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만 어느 순간 적응하게 되더니 이 가족이 진심으로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까지 생겨났다. 


제목의 '겅클'이 무슨 뜻일까..라는 궁금증으로 시작된 소설 읽기는 성소수자 남성, 할리우드 문화, 육아, 상실의 치유 등을 맛있게 버무리며 훈훈한 감동을 끝맺는다. 남성 성소수자를 뜻하는 게이(gay)와 삼촌을 뜻하는 엉클(uncle)의 합성어라는 점부터 예사롭지 않다. 썰렁하고 이해할 수 없는 패트릭의 유머라는 커다란 장애물을 넘고 나면 사랑스러운 이야기에 한없이 빠져들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경험을 공유하며 서로의 아픔을 치유하는 삼촌과 조카들의 이야기는 유쾌하면서도 따뜻하다. 죽음으로 인한 상실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이토록 경쾌하게 다룰 수 있다는 점이 놀라울 뿐이다. 아직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아이 둘을 90일 동안 맡아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으로 서서히 달라지는 패트릭의 모습을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준다. 아이와 어른이 모두 서로의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다독이면서 조금씩 성장해가는 과정이 따뜻하면서도 안쓰럽다. 엄마의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소원을 빌고 춤을 추는 모습에선 뭉클한 감정을 느꼈다. 인생을 포기했던 패트릭이 다시 무대 위에 서고 엄마의 부재를 받아들이며 성장해 가는 아이들이 오래도록 행복하길 바라본다.

그들은 볼과 볼을 맞댔고, 패트릭의 심장이 잠시 쿵쿵 뛰었다. 찰나의 순간 심장박동이 멈춘 느낌이었다. 패트릭은 날카롭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랬다. 그는 알지 못했다. 그런 달콤함을. 그렇기는 하지만 마음속 깊이 진심이었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뭔가를 느꼈고, 눈을 감았다.

사랑한다. 그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자기 자신에게. 아이들에게. 조에게. 세라에게. 아무나에게. 모두에게.

p.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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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들의 모국어
권여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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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선선해져서일까. 술과 음식에 관련한 이야기가 유독 눈길을 끈다. 자신의 입맛을 키운 건 팔 할이 소주라고 말하는 작가 권여선. 그녀가 전하는 먹고 마시는 이야기는 자꾸만 군침이 돌게 한다. 

술꾼이 딱 그렇다. 세상에 맛없는 음식은 많아도 맛없는 안주는 없다. 음식 뒤에 ‘안주’ 자만 붙으면 못 먹을 게 없다.

P. 7 

이 책에는 계절에 어울리는 다양한 음식들이 맛깔나게 등장한다. 그녀에게 음식은 갈등을 만들기도 하고 화해의 자리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또한 음식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도 한다. 그녀에게 술과 안주는 삶의 다양한 순간에 윤활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음식을 만들고 먹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땐 제법 술도 마시고 요리하는 것도 좋아했는데 언제부턴가 과정보다는 편리함에 익숙해졌다. 일종의 보상심리하고 해야 할까. 노동의 강도가 높아진 만큼 배달 음식에 대한 의존도도 높아져만 간다.

단식이 짧은 죽음이라면, 단식 후에 먹는 죽과 젓갈은 단연코 부활의 음식이다.

P. 69 

작가는 음식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위기를 만들기도 하고 위안을 받기도 한다. 음식에서 '간 맞추기'가 중요한 만큼 관계를 적당하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람들과 둘러앉아 술잔을 부딪히고 안주를 권했던 적이 언제였던가. 그녀의 글을 읽다 보니 문득 그런 시절이 그리워진다. 맛있는 음식을 두고 둘러앉아 먹기를 권하며 연대감을 느끼고 미각을 통해 공감하며 함께 하는 시간의 중요성을 새삼 떠올려 본다.

뭔가를 먹고 만족하기 위해서는 맛과 온도도 중요하지만, 원하는 스타일로 먹는 것도 중요하다. 밥 먹을 때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이 있는데, 그건 개도 자기가 원하는 스타일로 음식을 즐길 권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P. 124 

아침저녁 쌀쌀한 바람에 뜨끈한 국물이 당기는 계절이다. 재료가 품고 있는 단맛을 몸서리치게 탐닉한다는 작가의 말에 무를 넣고 조린 칼칼한 조림이 먹고 싶어졌다. 하얀 쌀밥에 매콤하고 달큼한 무 한 조각이면 금방 밥 한 공기 뚝딱 해치울 텐데.. 먹고 싶은 마음과 귀차니즘 중 누가 이길까. 판결은 오늘 저녁 밥상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봄에 싹텄던 것들은 여름에 왕성히 자라 마침내 가을이면 완숙에 이른다. 그런 의미에서 맛에 있어서만은 가을이 쇠락의 계절이 아니라 절정의 계절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 절정은 단맛으로 표현된다. 모든 먹을거리들은 가을에 가장 달콤해진다.

P.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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