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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빠와 여행을 떠났냐고 묻는다면
안드라 왓킨스 지음, 신승미 옮김 / 인디고(글담)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그러고 보니 아빠와 여행을 해 본 적이 없다.
엄마와는 여러 번 짧은 여행을 다녀왔지만 곰곰이 생각하니 아빠와는 그런 적이 없었다.
그랬던 어느 날, 아니 지난 10월. 아버지 생신날에 연차를 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서로의 생활이 다른 탓에 아침저녁으로 함께 마주 앉아 식사를 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그랬기에 과감히 연차를 내기로 결심했다. 처음엔 그럴 필요 없다던 아빠도 생일 전날이 되어서는 '내일같이 밥 먹을까?'라며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오롯이 아빠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하루였다. 함께 맛있는 점심을 먹고, 서울 근교로 드라이브를 하고, 운동을 좋아하는 아빠에게 운동화도 선물하며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날 밤, 친구들과 술 한 잔 걸치신 아빠에게서 또다시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사랑하는 딸, 선물도 점심도 고마워~ 잘 자 "
성격 탓에 아빠도 나도 결코 입 밖으로는 차마 하지 못하는 사랑한다는 말.
휴가 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꼭 아빠와 함께 여행을 가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날이 언제가 될지는 장담할 순 없지만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나도 아빠도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둘만의 여행을 떠나야지.
그래서였을까. 이 책이, 정확히는 저자인 안드라 왓킨스. 그녀가 무척이나 불편했다.
물론 40대 중년 여성이 하루에 20 킬로미터 넘게 걷는 건 무모한 짓이라 여길 정도로 힘든 일이다.
그랬기에 하루 정한 걷기가 끝나면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치고 자연스레 짜증으로 가득 찰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한다. 하지만 아빠에게 꼭 그렇게 말해야 할까. 그럼에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건 정말 714 킬로미터를 완주했는지 궁금해서였다.
45세 딸과 80세 아빠가 함께 하는 여정.
분명 어려운 일일 것이다. 가족만큼이나 더 어려운 관계는 없으니깐..
특히 딸과 아빠가 함께 여행한다는 건 독특한 경험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왜 이 여행을 시작했을까?
새로 쓴 책의 홍보를 위해 이 무모한 여정을 시작한 것일까? 아빠와 함께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였을까? 그녀는 정말 책을 팔기 위해 걷기에 도전했고, 그녀를 도울 수 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다 보니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이 아빠였기에 함께 여행을 결심했다.
그리고 부녀의 여행을 읽으면서 나는 그녀에게 불편함을 느껴야만 했다.
80세의 나이에 건강도 좋지 않은 아빠에게 조금 더 따뜻한 딸이었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리고 나는 어떤 딸인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나는 차갑고 까탈스러운 딸이지만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하려 노력하는 딸이다. 함께 한 시간 보다 앞으로 함께 할 시간이 적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저자도 이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해본다. 이 책 덕분에
아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생각은 충분히 했으니 나도 행동으로 옮겨야겠다. 아빠와의 여행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