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맛 멋
김혜나 지음, 김현종 감수 / 은행나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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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술잔을 들게 된 건 아빠와의 한 잔이었다. 술은 어른에게 배우는 거라는 말과 호기심에 한 모금 마셨고 도대체 이 쓴 걸 왜 마시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성인이 되어 마신 술은 젊은 날의 호기였다. 억눌러왔던 일탈을 한꺼번에 폭발시키며 부어라 마셔라 했었다. 그렇게 이어지던 술 한잔은 직장 생활을 하던 끝이 났다. 무조건 참석해야 하는 회식이 힘겨워 술을 못한다는 말로 거절의 뜻을 보인 이후로 10년이 넘게 술 한잔 입에 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혼술의 기분을 느껴보고 싶을 때가 있다.


소설가가 쓴 술 리뷰라는 말에 궁금증이 일었다. 예전에 술을 마셨을 때도 그 맛을 잘 몰라기에 진짜 술 맛을 알고 싶었다. 속초에서 작업을 하던 작가는 문득 '속초의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에 지역 전통주인 '동해소주'로 술상을 차린다. 그렇게 시작된 작가의 우리 술 찾기는 우리 문학의 맛과 분위기를 곁들이며 새로운 세상을 알려준다.


우리나라에 이토록 많은 전통주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술이 품고 있는 문학의 향기 또한 짙게 배어났다. 문장과 풍경, 계절로 빚은 우리 술 이야기는 고단한 삶에 위로와 평안을 준다.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동안 마음만큼은 기분 좋게 취한 것 같았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 술에 푹 빠진 작가와 고생하면서도 행복하게 우리 술을 빚는 장인들의 이야기는 진정한 행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


가끔 술 한잔 생각날 때가 있다. 연말이 다가오면 그 분위기에 와인 한잔해볼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 입에 대지 않은 알코올이 나이가 든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몰라 망설이게 된다. 그래도 언젠가는 마음 맞는 사람들과 맛있는 술 한 잔을 곁들이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다. 

 

오로지 홀로 이어가는 글쓰기의 순간에 마시는 한 잔 술은 작가에게 가히 노동주이자 소울메이트라 칭할 법했다.

p. 14

강렬하면서 맑고, 맑으면서 독하고, 독하면서 쓰고, 쓰면서 달고, 달면서 짜고, 짜면서 구수하다. 단 한 방울만으로 깊고 풍부하게 입안에 차올랐다가 뜨거운 기운으로 목울대와 가슴을 쓸고 내려가는 삼해소주는 나라 잃은 시인의 눈물방울을 닮은 듯하다. 그토록 그리던 나라를 되찾았음에도 마냥 기뻐할 수만 없는 시인의 눈물, 그렇다고 현실을 그저 증오하고 절망할 수만도 없는 시인의 얼룩진 눈물이 바로 이런 맛이지 않을까?

 p. 108

※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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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플라이트
줄리 클라크 지음, 김지선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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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는 푸에르토리코로 출장을 떠나게 되어 있었고, 이바는 집이 있는 버클리로 돌아가려고 오클랜드행 항공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두 여자에게는 커다란 공통점이 있다. 현재의 위태로운 처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찾길 갈망한다는 것이다. 클레어는 가스라이팅과 폭력을 일삼는 남편, 이바는 마약 조직으로부터 탈출을 모색한다. 서로의 존재도 모르던 두 여자는 존 F. 케네디 공항에서 만나 각자 지니고 있던 항공권을 바꿔치기한다.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푸에르토리코를 향하던 비행기가 추락하기 전까지...

소설은 클레어와 이바의 상황을 교차로 보여주며 두 여성이 자신들이 처한 절망을 어떻게 극복해 가는지 보여준다. 재미있는 건 두 여성의 시점이 반대로 보인다는 것이다. 클레어의 경우 추락 이후의 상황을 보여주지만 이바의 경우는 추락 전 과거부터 이어진다. 두 여성 중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진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나려는 클레어의 상황이 유독 신경 쓰였다.


친구의 도움으로 가짜 여권과 신분증까지 마련했지만 이조차 남편의 손에 들어간 상황에서 그녀는 어떻게 자신의 삶을 찾을 수 있을까. 타고 가려던 비행기가 추락까지 하면서 그녀의 도주가 성공할 수 있을지 빨리 결말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클레어에게 마음이 기운 건 현실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바의 경우는 운명의 굴레를 끊고 싶다는 바람이 마약 조직이라는 상황과 만나면서 거리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작가는 가슴 시린 두 여성의 삶을 속도감 있게 그려내며 희망을 품고 삶을 바꾸려 한 절박함을 표현한다. 작가는 유약한 여성일지라도 서로 연대하여 힘을 합친다면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권력의 벽을 부수기 위해 언론과 여론의 힘을 빌려 타개할 방안을 모색함으로써 가정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라는 용기를 북돋아 준다. 잃어버린 온전한 삶을 되찾으려는 두 여성의 이야기가 매력적인 작품이다.


※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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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풍경 을유세계문학전집 135
E.T.A. 호프만 지음, 권혁준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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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소설의 선구자이자 후기 낭만주의 대가인 E. T. A. 호프만의 걸작 중단편집이다. 그의 대표작인 <모래 사나이>를 포함하여 생전에 출간되었던 <밤 풍경> 1, 2권을 합본으로 하여 을유세계문학전집 135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근현대 예술가들을 매료시킨 걸작이라는 찬사와 함께 호프만의 작품을 처음 만났다. 장르소설을 즐겨 읽기에 그의 작품 또한 기대가 되었는데, 전체적인 분위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둡고 기괴하였다.

소설에는 어둠을 중심으로 살인, 사고, 사건 등 공포적 요소가 만연하게 깔려 있고 이성의 힘으로 해명할 수 없는 정신적 심리적으로 파멸로 이끄는 어두운 힘이 분위기를 좌우한다. 밤 풍경이라는 제목답게 그의 소설은 읽는 내내 19세기 어두운 밤으로 끌어당겼다.

첫 번째 단편 <모래 사나이>부터 괴이하다. 동화와 비밀스러운 실험이 교묘하게 섞이면서 주인공은 자신의 눈을 모래 사나이에게 빼앗길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망원경과 안경 등은 모두 눈과 관련된 것으로 실명의 공포와 어린 시절 두려움의 대상은 결국 한 영혼을 파멸로 이끈다.

<밤 풍경> 2권의 두 번째 작품인 <장자 상속>도 인상적이었다. 해설에 따르면 호프만 자신의 현실을 많이 담고 있다고 하는 데, 한 가문의 사악한 숙명을 통해 상속을 향한 인간의 집요한 탐욕을 마주할 수 있다. 돈을 탐하고 고압적인 형과 형을 무너뜨릴 음모를 꾸미는 동생. 증오와 시기심으로 일그러진 가문의 이야기는 유령의 출현과 가문에 내려진 저주 등을 소개로 고딕 소설의 전형적인 양상을 보여준다.

처음 만나는 작가이고 고전 문학은 아직 어색하지만 낭만주의 문학과 환상소설이 어우러진 낯선 장르의 조합이 흥미로웠다. 밤이 길어지는 계절에 어울리는 작품이다.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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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이끄는 곳으로
백희성 지음 / 북로망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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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건축가 뤼미에르는 아주 싸고 낡은 건물을 구해 자신만의 공간으로 꾸미고 싶어 부동산을 알아보는 중이다. 어느 날 아침 부동산으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 통은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뤼미에르는 시테 섬의 유서 깊은 저택이 헐값에 나왔다는 전화에 집 주인을 만나러 스위스 요양병원으로 가게 되고 부서진 중세 수도원을 개축해서 운영 중인 독특한 요양병원에서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그가 방문한 날은 4월 15일. 요양병원과 시테 섬의 저택에 숨겨진 비밀에 대한 단서이기도 한 4월 15일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눈앞에 펼쳐진 건물과 빛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가족을 향한 사랑을 건축이라는 측면에서 세밀하고 정교하게 그려냈다. 두 권의 일기장을 통해 숨겨진 진심을 찾아가는 과정이 따스하면서도 여운을 남겨 준다. 인생의 힘겨운 순간을 지탱해 준 기억의 힘을 상기시켜 주며 가족에 대한 사랑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작가가 실제 건축가라는 이력 때문인지 건물에 펼쳐지는 빛의 유영이나 숨겨진 비밀 공간 등 건축에 대한 호기심을 자아낸다. 과거의 기억과 자연이 주는 빛과 시간이 만들어낸 따스한 이야기는 오래된 공간에 담긴 사랑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주인공은 두 권의 일기장을 단서로 공간이 가진 비밀을 풀어나가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진정한 건축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건축이라는 소재를 통해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넘어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까지 새겨 넣은 감동이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 같다.

매번 누군가를 위해 저렴하게 빠르게 찍어내던 나의 건축에 영혼이 담겨 있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건축에 돈과 아이디어만을 담았던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와는 자신의 영혼을 담았다. 깊은 숨을 내쉬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p.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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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신료 전쟁 - 세계화, 제국주의, 주식회사를 탄생시킨 향신료 탐욕사
최광용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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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요리 문화가 발달하면서 향신료에 대한 소비도 증가했다. 이국적인 음식을 맛볼 때면 향신료가 어디서부터 온 건지 궁금하다. 향신료의 역사와 매력에 빠진 저자는 세계 80여 개국을 돌아다니며 독자적으로 향신료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 나갔다. 이 책은 그가 전해주는 향신료를 둘러싼 흥미진진한 역사 이야기를 담고 있다.


"향신료의 역사는 단순한 맛의 역사가 아니다. 우리의 지성과 마음을 풍성하게 살찌우는 좋은 책!"이라는 역사학자 심용환 선생님의 추천사처럼 저자는 모험의 맛과 탐욕의 향으로 가득한 향신료 쟁탈전에 기꺼이 초대한다. 


과거 향신료는 매우 진귀한 기호품이었다. 이를 운반하고 거래할 수 있는 교역로를 확보하는 것은 막대한 부를 누리고 해상 패권을 지배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었다. 따라서 유럽 열강들은 치혈한 각축전을 벌이며 향신료 전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내 집 식탁에서도 주문 한 번으로 세계 각지의 향신료를 편하게 맛볼 수 있지만 과거에는 소수의 힘 있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전유물이었다. 저자는 향신료가 오늘날 대중적으로 사용되기까지 세계사의 주요 사건들을 설명하며 생생한 재미와 감동을 전해준다. 또한 알면 알수록 더 향긋해지는 향신료의 특징까지 소개하며 한층 더 눈길을 끈다.


서구 열강들은 향신료 때문에 먼 아시아까지 식민지를 건설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식민 지배를 이어간다. 향신료를 향한 인간의 끝없는 탐욕은 원주민을 침략하고 약탈하며 학살을 자행하였고 세계사에서 제노사이드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음식의 맛을 풍부하게 하고 감칠맛을 돋우어주는 향신료의 이면에 담긴 인류의 슬픈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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