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31 | 3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사람의 향기
송기원 지음 / 창비 / 200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의 빠른 변화가 무섭다는 말이 이제는 응당 고개를 끄덕이는 것조차도 진부한 표현이 되었다. 전쟁, 산업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붕괴, 과학으로서의 세계 인식, 가상 현실... 그리고 현재 50대 이상의 사람들은 그 급속한 변화를 고스란히 겪었으며, 또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들은 변화의 중심에서 최후이자 또한 최초다. 바꾸어말하면 그들은 개인화되지 못한 사회의 피해자들이라는 것.

그런 그들을 개인화시켜놓은 소설을 읽었다. 바로 이 책 '사람의 향기'.

유목에 가까운 삶을 견디며-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 여기에 우리 민족 특유의 '한'의 정서가 내재되어 있다- 도대체 자신의 삶의 방향을 어찌하지 못하고 부유하던 사람들, 일가로 구성되어 있지만 가족사 안에서도 철저하게 개인이었던 그들. 송기원은 그들의 삶을 수채물감으로 채색했다. 너무나 투명해 고통과 쾌락이 여과없이 투영되는 한 폭의 그림처럼.

소설은 연작이다. 지면에 연재했거나 따로 써 놓은 단편들을 한 데 모아서 묶은 셈. 각 편은 화자인 '나'를 통해 서술되어지는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제목이 붙어 있다. '폰개 성', '물총새 성관이', '정애 이야기' 하는 식. 그리고 각 주인공들의 개인사적 이야기들이 사회사 안에 집어넣어진 플롯으로 구성되어졌다. '오만과 편견'이나 '안나 까레리나'를 떠올리면 정확할 듯. 그러나 이 소설이 가지는 장점은 그것들과는 사뭇 다르다. 먼저 서술자인 '나'가 등장해 사회사가 아닌 개인적인 정황에 주인공들의 초점을 맞춘다는 것. 이것은 보다 연대의식이 강한 우리나라의 특질을 잘 보여주는 장치로 기능한다. 두 번째로는-이것이 중요하다!- 그 개별적 주인공들이 하나의 공통된 연대감을 형성한다는 것.

"자, 아무 말 말고 작은어머님을 만나세. 어쨌거나 지금으로서는 살아 계신 피붙이로는 자네에게 유일한 어른인 셈이네." -폰개 성

"오매, 용반떡이 말을 다 하네. 시상에, 자석이 왔다고, 시방까장 닫았던 입이 열려뿐구만잉. 이녁 배를 앓음시롱 낳은 자석은 아니라제만 그래도 자석은 자석인 모냥이네."

"오냐, 떼레쥑에라. 나가 이녁 손에 죽으먼 죽었제, 한나밖에 없는 내 새끼를 근본도 모르는 장갓 쌍것으로 맨들 수는 없어야." -주인공 '나'의 어머니

"근디 말다, 나가 여그 온 그러께부터 해마둥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 때먼, 누군 중 몰르제만, 가게문 앞에다가 새벡같이 조구랑 서대랑 육괴기를 살모시 나놓고 간단 말다아." - 끝순이 누님

부분을 인용해서 내용 전달은 힘들지만, 내포작가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 이 발화에 드러나 있다. 그렇다. 그것은 '핏줄'이다. 한 명 한 명의 개별적인 이야기가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야 비로서 아우라로 형성되는 것을 느끼며, 연작소설이 가져야 하는 미덕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주인공들이 절규하듯 주장하는 그 '핏줄'의 한국적 계승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성찰이라도 하고 있는가를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현재'를 개선해야 하는 문학적 과업을 지닌 것이 작가의 제 1 덕목이라고 한다면 이 책 '사람의 향기'는 그것에 아주 충실하다. 또한 지금까지 아무도 이러한 소설을 써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는 이 책에 기꺼이 별 다섯 개를 주겠다. 사회가 급속하게 도시화, 산업화로 이행되면서 우리가 간과해 마지 않았던 바로 그 것. 한국적인 것을 유지하고 지켜나가려고 하는 50대 이상, 아니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핏줄'에 대한 한국적인 연대의식을 우리는 찾아볼 수 없다. 이번 설 연휴에도 나 역시 고향 집에 내려가는 것이 마냥 귀찮기만 했다. 그리고 올라오는 길에 이 책을 정독했다. 읽으면서 콧등이 시렸다. 대가리가 커버린 자식에게 미처 내색하진 않았지만, 늙은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가족이 같이 내려가서 맞는 설이 얼마나 큰 연례행사인가를 생각하면서. 그리고 바쁘지도 않으면서 바쁜 척 서울로 올라와버린 나의 차가운 등허리를 애타게 보았을 부모님의 눈동자를 생각하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스티븐 코비 지음, 김경섭 옮김 / 김영사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믿을 수가 없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폭죽처럼 삶의 비밀이 밝혀지곤 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움을 넘어서는 감동과 희열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가끔 몸이 부르르 떨리기도 했다. 나는 지금까지 자기계발서를 착각해왔던 것 같다. 이것이야말로 자기계발서라고 부를 만하다. 내면에서부터의 충만감을 행복으로 치환시켜주는 놀라운 성찰. 아직 읽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서점으로 가기를 권한다. 그리고 기대를 가지고 보길 바란다. 어떤 기대감도 넘어서는 만족을 줄 테니까.

 

우주선의 달 착륙 비유

" 우주비행사들은 달에 도달하기 위해 거대한 지구의 중력을 돌파해야 했다. 우주선이 발사되어 처음 몇 분간 몇 마일을 비행하기 위해 소모하는 에너지의 양은 그 후 며칠에 걸쳐 50만 마일을 여행하는 데 드는 에너지의 양보다 더 많다. 습관 역시 거대한 중력을 가지고 있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깨닫고 인정하고 있는 것보다 더 큰 중력이다. (......) 성공적인 인간은 실패자들이 싫어하는 일을 기꺼이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들도 그것이 좋아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분명한 목적의식이 좋고 싫은 감정을 뒤로 밀어내는 것뿐이다"

시간관리 매트릭스

"당신의 일을 긴급하고 중요한 것/ 긴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것/ 긴급하지 않으나 중요한 것/ 긴급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것으로 나눠라. 이 4단계의 시간관리 매트릭스는 당신의 미래에 엄청난 효율과 효과를 동시에 가져다 줄 것이다. 이 매트릭스를 사용하면서 당신은 중요하지만 긴급하지는 않은 일에 대한 일을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 이 일은 위기로 번져 나갈 상황을 사전에 생각하여 방지하고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고 나아가 예방 차원의 행동을 하게 한다. 이를 시간관리 용어로는 파레토 원칙이라 부른다. 즉 80%의 결과는 20%의 중요한 활동에서 나온다."

감정은행 계좌

"당신과 관계하는 모든 사람에게 당신은 계좌를 예치시켜놓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계좌를 풍족하게 할 주요 예입 수단으로 이 여섯 가지를 명심하라. 1. 상대방에 대한 이해심, 2. 사소한 일에 대한 관심, 3. 약속의 이행, 4. 기대의 명확화, 5. 언행일치, 6. 진지한 사과"

시너지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 두 사람이 모두 옳을 수 있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가능한가? 이것은 논리가 아니다. 심리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아주 현실적인 것이다. (......) 사람들간의 정신적, 감정적, 심리적 차이점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시너지의 본질이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점을 소중히 여기는 관건은 모든 사람들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자신의 관점을 통하여 본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이 책을 권독하기 위해 몇 개의 문구를 빌려온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이 책은 방법론적인 책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책이다. 구체적인 방법이 아닌,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그러나 나는 인용하겠다. 지금 이 리뷰를 읽는 당신이 이 책을 사서 볼 수 있도록. 그리고  인생의 지침서로서 이 완벽한 책이 활용되도록. 지금 나는 진심으로 당신을 돕고 싶다. 나처럼, 당신의 현실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있으므로.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arine 2007-06-10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 이 책을 읽으셨으니 필요는 없겠으나... 한 권 추천해 드린다면 앤서니 라빈스의 "네 안에 잠들어 있는 거인을 깨워라" 도 비슷한 맥락의 책입니다 자기계발서 치고는 논리가 있고 주제가 돋보여 인상깊게 봤거든요
 
이문재 산문집
이문재 지음, 강운구 사진 / 호미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눌하지도 않고, 방만하지도 않고, 예리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고... 여하튼 어떤 특장에서든 조금은 멀리 떨어져 있는 그의 '...않는' 그의 스타일은 '발효의 시간'을 거쳐, 누구에게 읽혀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완성된 형태로 세상에 나왔다. 25년 동안 자신의 문학과 그것을 아우르는 그 세계를 일관되게 지켜온 그 가슴에서 자라서일까. 긴 세월동안 묵혀두었던 그의 첫 번째 산문집에서는 아주 오래전에 맡아본 것 같은, 그래서 더 희어멀게진 밥 짓는 향기 같은 것이 곰슬거리며 피어올랐다.

 "몸 없는 마음의 질주가 연애다. 몸 없는 마음은 몸이 없어서 오직 상대방의 몸에 집중한다. 상대방의 몸을 광적으로 겨냥할 때, 상대방은 마음 없는 몸이다. (......) 연애와 사랑을 혼동하는 것은 100미터 달리기와 마라톤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강폭이 넓어질수록 유속이 느려지는 섬진강 하류에서 나는 그대에게 뒤늦게 사랑을 말하려 한다. 이십여 년 전, 나의 그 무모한 돌진, 그 무지막지한 에너지의 폭발을 감당해 준 그대에게 나는 이제 사랑을 말하려 한다. 헌신과 희생이 아닌 사랑 말이다. K, 길 위에서 먹은 밥이 그대로 힘이 되고 있다. 섬진강 제방 길이 그대로 내 몸 속으로 들어온다. 나는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니다. 나는, 내 몸은 오늘, 오늘이다(p124)" 이 책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도 나오고,

"녹차 마시기에는 기다림이 있다. 물이 끓는 동안 기다려야 하고, 또 물이 식기를 기다려야 한다. 다관에 물을 넣고 차가 우러나는 동안 또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기다리는 동안 마음은 고요해진다. 향이 그윽하고 맛이 깊은 녹차를 마시는 것은 몸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다. (......) 차와 다기는 수단이나 매개일 뿐이다. (......) 걷기가 그런 것처럼, 휴대 전화 전원을 꺼 넣는 것이 그런 것처럼, 녹차 마시기는 자발적 망명이다.(p280)" 이렇게 생태적인 시선도 나오며,

"원고료 대신 유기농 쌀을 받아들고, 아직도 도시적 삶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사십대 중반의 나를 돌아본다. 내 시가 저 쌀 한 줌만큼의 효용이 있을 것인가. 내 시 쓰기는 농약과 비료를 치지 않는 저 농부의 지극한 정성을 흉내라도 내고 있는 것일까. 내 시업은 '하농'이었다. 풀이나 겨우 키우는 하급 농업이었다. 저 온전한 쌀로 지은 밥을 한 그릇 지어 먹으면 시가 한 줄 나올지도 모를텐데, 나는 부끄러워,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다.(p214)" 25년 동안 둥글게 굴린 죽비로 정수리를 얻어맞는 것 같은 이런 구절도 나온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산도 2007-02-25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정했습니다.

2007-03-01 2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3-04 0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현의 연애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 '이진'과 그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 '이현'의 3년 간의 결혼기. 기록이 전달해야하는 진실의 실체와 그것이 깨어지면서 드러나는 비극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다. 

 < 나는 아직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진을 죽게 하고 아기가 태어나게 한 것이 나의 배신 때문이 아니라고, 그 끔찍한 불행이 나의 실수 때문이 아니라고. 아니야, 아니야, 너의 잘못이 아니야, 라고 누군가 나에게 말해준다면, 나는 그가 악마라 할지라도 나의 영혼을 바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문학의 참 가치를 내재하고 있는 신간 소설을 읽었다. 소설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앎, 정보, 습득, 깨우침, 또는 우리가 획득할 수 있는, 표현되어지는 무언가를 얻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의 이야기가 읽는 사람을 흔드는 것. 그 흔들림의 파장에게 나를 내맡기다 보면 세상이 달리 보이는 것. 책을 덮고 나서 잠시 그 감정이 아닌 다른 어떤 감정도 들어올 수 없게 되는 것.

부디 이 작품이 이승우의 작품들처럼 국내가 아닌 외국에서 먼저 호평받게 되지 않기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태우스 2006-11-23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맛 이거 벌써 읽으셨어요? 음...제가 화욜날 보냈는데 오늘쯤 도착할 것 같긴 하지만....그새를 못참으셨군요^^ 소설에 대한 님의 정의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readersu 2007-02-26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정말 읽고 싶은 책인데...아직도 못 읽어보고 있답니다.
가끔 꼭 사야지 하며 카트에 넣다보면 항상 엉뚱한 걸 사게 돼요.^^
흠..솔직하게 이야기하면...한국 소설이 매번 밀려요..- -;;;;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31 | 3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