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생 텍쥐페리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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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조그만 별에서는 의자를 몇 발짝 뒤로 물려놓기만 하면 되었지. 그렇게만 하면 맘 내킬 때마다 해지는 광경을 볼 수가 있었던 거야.

"나는 그 때 아무것도 이해할 줄 몰랐던 거야! 그 꽃이 하는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판단했어야 하는 건데 말이야. ...꽃들은 앞뒤가 어긋나는 말을 너무나 잘 하니까! 하지만 난 너무 어려서 꽃을 사랑할 줄 몰랐던 거야."

"가령, 네가 오후 네시에 온다면 난 세시부터 벌써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알게 되겠지."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 너는 영원히 책임이 있는 거야. 너는 네 장미꽃에 대해 책임이 있어."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모든 사람에게 익숙한 책이다. 모든 구절이 익숙하고 모두가 어린 왕자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과연 정말 그럴까? 나는 <어린 왕자>를 읽은 적이 있을까?

신기했다. <어린 왕자>를 읽는 내내 생소한 익숙함에 시달려야 했다. 아무래도 나는 어린 왕자를 친숙한 하나의 '이미지'로 기억해 두었었나 보다. 서사의 흐름이라던가 풍부한 알레고리에 대해서 전혀 새롭게 다가오니 말이다. 아니면 예전의 <어린 왕자>를 읽었던 때-기억나진 않지만-로부터 조금이나마 더 성장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상징이 풍부한 책은 읽는 사람의 처지와 환경에 따라 매번 그 느낌이 다르게 읽힌다. 좋은 책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랜만에 읽은 <어린 왕자>는 조금 생소했다. 그리고 그것보다 조금 더 친절했다. 책을 덮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예전의 내가 '어린 왕자'에 가까웠다면, 지금의 나는 어린 왕자의 말을 경청하는 화자-파일럿-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책을 덮고 바깥을 보았다. 유리창에는 나만의 소혹성과 나만의 장미꽃, 나만의 여우, 나만의 양, 코끼리를 먹은 보아뱀을 그리던 나는 사라지고, 사막 한가운데서 고장나버린 비행기의 엔진을 고치며 가족과 일사병과 내일의 출근을 걱정하는 내가 있었다. 유리창 바깥의 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분주한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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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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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수학박사와 그의 파출부, 그리고 파출부의 아이. 세 사람이 주인공인 소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읽었다. 이 책은 수학박사의 입장에서는 '노력과 끈기, 성취'에 대한 인물에세이 같은 느낌이었고, 파출부의 입장에서는 '내적 변화를 다룬 자기계발' 같은 느낌이었으며, 아이인 루트의 입장에서는 '성장소설' 같은 느낌의 책이었다. 세 가지 모두 잘 드러냈다고 생각하며, 그 만큼의 감동도 있었다.

그러나 세 사람의 미묘한 섞임을 통해 나는 '오가와 요코'라는 작가의 '휴머니티'에 대해 생각했다. 인간적인 것, 인류애, 인간과 인간, 인간의 감성, 배려, 인권, 인간성, 인간에 대한 예의, 그것에 대한 발현으로서의 침묵.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조용한 침묵 안에 있는 것이 아닐까, 란 생각이 들 정도로 책은 여러가지를 침묵했으며, 침묵함으로써 인물들은 서로를 더욱 신뢰하고 있었다.

끝끝내 이질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개별성에 대해, 그래도 희망은 있다, 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 그래야 사람다운 거지, 라고 그 조곤조곤한 침묵 앞에 나는 주저않고 동의했다. 문제인식, 사회비판, 그도 아니면 현란한 수식과 기발한 설정에 함몰되어 가는 국내소설들을 생각하며 나는 처음으로 일본문학에, 일본문학의 그 순수한 휴머니즘에 별 다섯 개를 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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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프로젝트 - 얼렁뚱땅 오공식의 만화 북한기행
오영진 지음 / 창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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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의 만화는 묵직하다.

웃어도 웃긴게 아니고, 울어도 시원한 게 아니다. 독자들에게 그런 각오쯤은 갖게 하는 것이 <십시일반>부터 <평양프로젝트>까지의 창비스타일이다. 그렇지만 '만화'라는 양식을 차용하면서 스스로의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조금은 양보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해, 창비의 만화는 한 편으로 독자와의 타협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평양프로젝트>는 참 곱씹는 맛이 있는 창비 만화의 전형이었다.

이 만화는 남과 북이 평양과 서울에 작가를 파견해, 현지의 생활상을 취재하게 하는 재미있는 설정으로부터 출발한다. 서울출신 작가 오공식이 평양에서 보내는 일 년여 남짓한 시간을 73개의 콩트로 구성해 북한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이도, 어느 부분부터 펼쳐놓아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렇지만 전체가 서사-헐겁지만-를 갖고 있어서 왠만하면 앞부분부터 순서대로 읽는 것을 권한다.

권말의 도종환 시인의 추천사도 참 맑았고, 그 외의 여러 장점들이 있겠지만, 그래도 <평양프로젝트>의 가장 큰 덕목은 '정보'다. 단순한 정보에서 그치지 않고, 알고 난 것을 되새기게 해주기도 해서 맛깔스러운 여운도 남는다. 북한에 무지했던 나로서는 관련된 지식 전달에 이보다 좋은 책을 찾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을 떠올리라고 했을 때 아직도 '뿔 달린 늑대'를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현재의 북한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우리와 비슷하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와 다르다.

2006년 12월에 출간된 <평양프로젝트>를 북한을 왜곡하여 알고 있을 2007년의 서울에게 바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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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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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동안 다른 책을 읽지 못했다. 여운이 길었던 것은 아니었고, 기간 내내 이 책을 들고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번역체 때문에 외국문학을 읽지 않는 습관이 몸에 밴 내게 미국적 정서로 가득 찬 <호밀밭의 파수꾼>은 그리 환호할만한 책은 아니었다.

50년 이상이 흘렀음에도, 아이들의 성장은 늘 이렇게 비슷했던 것일까. 주인공 '홀든 콜필드'의 며칠 간의 삶을 들여다보는 이 책은 성장에 대한 냉정하고도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냉정하다는 것은 특별한 사건 전개가 없는 주인공의 일상을 무미건조한 그대로 드러낸다는 의미이고-사실 이런 부분이 가독을 방해했다- 따뜻하다는 것은 주인공의 내적 변화가 훼손되지 않은 날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의미이다. 어쨌거나 유의미한 성장소설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번역체와 미국적인 정서를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굉장히 유익한 독서가 될 테고, 굳이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인내를 가지고 보길 바란다. 인내한 만큼의 여운은 준다.

'홀든 콜필드'. 이 한 사람을 만나게 되어서 좋다. 좋은 소설은 이야기가 사라지더라도 인물이 남는 법이므로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지금은 둔기로 맞은 듯한 정서적 충격은 없지만, 오래오래 한 인물이 내 안에 남아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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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4-16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홀든, 저도 오래 기억으로 남아있는 인물이에요^^

산도 2007-04-18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반갑습니다~ 홀든 콜필드, 내게 남아있지 않은 비뚤어진 열정을 아직 갖고 있는 소년 같아서 좋았습니다.
 
오 하느님
조정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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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사진은 인물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네 사람이 보이고 모두 군복을 입고 있는 흑백사진이다. 5~60년대 언저리쯤 될까. 왼쪽의 한 인물이 강렬하다. 그는 사진기가 처음 보는 귀신처럼 신기한 듯 인상을 찌푸리며 애써 정면을 외면하고 있다. 아니면 마음에 들지 않는 어떤 일이라도 생긴 것일까. 아마추어가 찍은 듯 구도며 초점이 엉망인 사진은, 그러나 한 인물을 생생하게 담아내는 데는 성공했다. 그리고 동양인으로 보이는 그 인물, 그 시선으로부터 이 소설은 시작된다.

'노르망디 해변의 동양인'으로 불리는 사진은 2차 세계대전에 찍은 것이라고 한다. 저 동양인, 저 앳되고 작은 체구의 동양인이 어떻게 독일 군복을 입은 채, 프랑스의 한 해변에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조정래라는 작가를 움직였다고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술회한다. 시작이 이슈화될만한 것이라, 책이 잘 팔릴 것 같다. 그러나 그렇다고 작품이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집필 동기를 알고 나니 작품이 오히려 더 생생하고 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조정래, 민초와 함께 한 평생---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의 배경은 1950년대 말, 대하소설 <아리랑>의 일제 말기를 고스란히 이어받아 써내려간 셈이다. 배경뿐만 아니라 역사의식과 문장의 아우라도 비슷하다. 마치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영화의 후속편 같은 느낌도 든다. 분량은 짧지만, 조정래의 '조정래다운 책'을 기대했던 사람에게 이 책은 믿을만한 선물인 셈이다. 역시나 주인공도 한 명이 아닌 여럿으로, 모두가 소작농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일반 민초들이다. 참, 그나저나 그네들 명이 기구하다 못해 헛웃음이 나왔다. 이러니 우리 조상들이 하회탈을 쓰고 해학극을 안 하냔 말이다.

 

국가를 넘어 인간으로 눈을 돌리다---

그간의 글들을 보면, 소설이라기보다는 작업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의 페이지를 써내려갔지만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 민중들을 위해, 그들의 목소리를 재생시켜나가는 고단하고 오래된 장인의 작업. 이전까지는 그것이 아나키즘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졌다면, 이번 작품은 한국인이 아닌 인간, 그 본연의 모습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추어진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전투 장면의 묘사는 장엄하기까지 했다.

하얗게 눈 덮인 대지는 피로 붉게 물들었다. 그 위에 다시 눈이 내려덮었다. 그러나 다음날이면 눈은 또 붉게 물들었다. 마치 하늘과 인간이 거대한 화폭의 추상화를 그리고 지우는 다툼을 벌이는 것 같았다. -본문106p

 

에필로그---

조정래는 어떤 의미에서 '국내용'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위상을 떨치는 운동선수나 가수들이 범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이왕 알려질 거라면 나는 그네들보다는 '조정래'라는 작가였으면 한다.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노벨문학상'이라는 것이 먼 얘기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역하기 쉬운 단문, 서사가 강조된 플롯, 역사의 테두리를 구성한 민중들의 이야기를 오랜 기간 작업해 온 작가의 노력, 유일한 분단 국가라는 나라의 특수성. '노벨문학상'은 상징일 뿐이지만, 뿌듯하지 않은가. 그런 상징 하나 정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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