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털터리 세대 - 2030세대 왜 이렇게 살기 힘든가?
타마라 드라우트 지음, 에밀리 문 옮김 / 오픈마인드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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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의 원제는 <Strapped: Why America's 20- and 30-Somethings Can't Get Ahead>로 책에서 다루고 있는 빈털터리 세대란 미국의 20대와 30대이다. 이른바 X세대로 불리는 이 세대는 베이비붐 세대 이후 세대로, 1965년에서 1981년 사이에 태어난 이들을 말한다. 이 책이 쓰인 2005년을 기준으로 24세에서 34세에 이르는 이들이다. 미국의 일이라 우리와 얼마나 환경이 비슷할까? 하는 생각도 들 수 있겠지만 X세대에 대한 구분부터 그들이 처한 현실이 지금 우리나라의 20~30대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과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유럽의 ‘천유로세대’, 일본의 ‘비참세대’ 등등 전 세계의 2030 세대는 일찍이 유례없이 가혹하게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살고 있다. 왜? 이 책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과거에 비해 좋은 일자리는 많이 줄었고, 실질 임금은 오히려 감소했다. 집값이나 물가는 계속해서 오르는데, 그에 비해 임금 수준은 턱없이 낮다. 특히 비정규직 등 저임금 시장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의 주범이 바로 ‘신자유주의 경제’라는 것.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 심화, 기술의 진보, 단기 이익 중심의 경영 방침을 내세워 고용 안정을 포기하고 고용의 유연성을 추구’했으며 때문에 기업들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건물 관리부터 접수 업무에 이르기까지 서비스 업무 대부분을 외주업체에 맡기면서 비정규직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정부에서 공공연히 말하지만, 일자리가 늘어난 그 면모를 살펴보면 좋은 일자리가 아닌 저임금직만 늘었다. 그러니 모두가 공무원, 공무원으로 몰린다.


미국의 2030세대는 사회에 진출할 때부터 이미 수 만 달러의 빚을 안고 진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대학교육비’ 때문이다. 높은 대학교육비를 감당할 길이 없어 대학생 때부터 학자금 대출 서비스를 받고, 사회에 나올 때부터 빚을 떠안고 출발을 한다. 게다가 그렇게 나와 봤자 학력인플레이션이 높아, 석사 이상의 경우에나 조금 좋은 일자리를 얻는다. 때문에 사람들은 또 빚을 지며 석사까지 마치고 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게 나온 사회에서도 좋은 일자리는 그다지 없고, 비정규직 일자리가 많으니 자동적으로 건강보험이나 퇴직연금 등을 기대할 수 없는 불안정한 고용시장으로 편입된다. 게다가 집값은 또 오죽 비싼가? 괜찮은 일자리가 많은 대도시는 그만큼 살인적인 집값을 자랑하니 사회에 진출한 2030세대는 대학 학자금 대출 빚에 살인적인 집값에 월급을 받으면 바로 통장이 비어버리는 ‘빈털터리 세대’가 되어버린다. 미래를 위해 돈을 모으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여기에 결혼을 해서 애라도 낳으면 자녀교육비 때문에 빚잔치는 더더욱 커진다. 아이를 낳을 경우 파산의 위험은 두 배로 늘어난다. 그러니 독립을 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부메랑키즈’ 현상과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현상은 계속해서 확산된다.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미 대학등록금 천만 원 시대에 육박, 대학생 때부터 학자금 대출로 빚쟁이가 되고, 그렇게 빚을 지며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와도 학력인플레이션 때문에 일자리는 모자른다. 신경제의 영향으로 좋은 일자리보다는 저임금의 비정규직이 훨씬 많다. 집값은 말할 것도 없고.... 결혼 포기는 물론,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 낳기를 포기한다. 출산율은 갈수록 줄어든다. 모두가 공무원으로 몰린다. 얼마 전 공무원 시험에 줄곧 낙방한 뒤 끝내 자살한 어느 청년의 이야기는 그저 남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자신이 누릴 몫은 스스로 찾아라’고 말한다. 어떻게? ‘국가가 내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정치적인 ‘한 표’의 행사부터가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이들 X세대는 정치에 매우 무관심하다. 정치가 ‘나’와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모든 국가 정책은 정치에 관심이 많은 그들 부모세대 ‘베이비붐’ 세대를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미국의 X세대들은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 시절 성년기를 보냈고, 클린턴 시절에 고용시장에 진입하게 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젊은 세대들은 오늘날 집을 사고 자식을 키우느라 고생을 하면서도 정부의 정책이 옳은가를 묻기보다는 자신의 자립능력에 부족하기 때문은 아닐까 의심한다’는데 이는 '레이건 효과'로 ‘레이건은 집권 기간 내내 정부는 골칫거리, 세금삭감과 자유시장이 성장의 엔진, 개인의 책임이 민주주의의 초석’이라는 이념을 젊은 세대의 의식에 주입했다.

우리나라 역시 다르지 않다. 이 책은 10년 전에 쓰였지만 그때의 한국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나아지기는커녕 더 암울하다. 빚에 쪼들리고, 늘 텅텅 빈 월급봉투를 매만지면서 ‘나는 대체 왜 이럴까?’ ‘내가 왜 이렇게 못났을까?’ 하고 생각하는 이들. 2030 더 나아가 40대의 대부분이 이런 생각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능력위주의 무한 경쟁, 자율경쟁’ 이라는 슬로건이 정부의 사회적 책임은 뒤로 한 채 스스로 개인에게 책임을 묻게 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이 모든 사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치에 무관심한 유권자의 '무모한 투표'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후보자의 정치공약을 진정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직감이나 부모의 신념 혹은 충동에 따라 표를 던지는 행위’ ‘성격이나 외모가 마음에 들어 표를 던지기도 하고, 선거 광고나 심야 토론회를 보고, 또는 부모님이나 친구의 말에 솔깃해서 선뜻 표를 내주는 행위’ 등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우리 세대’에게 이로운 공약을 내 세우는 사람, ‘우리를 이롭게 하는 이를 선택하라’고 거듭 촉구한다.

우리나라 또한 부동산 가격폭등의 수혜자도 결국 기성세대이며(부자 부모를 못만난 대부분의 2030세대는 부동산은커녕 전월세 방 한 칸이라도 얻는 것에 허덕이지 않은가), 국민연금제도 또한 기성세대들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좋은 일자리는 기성세대가 차지하고 있는 등 대부분의 국가 정책은 2030세대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들보다 앞선 세대를 위해 집행되고 있다. 왜? 젊은 세대가 정치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무지가 악을 계속 부르는 것이다.

대선을 앞둔 이 시점. ‘우리를 이롭게 하는 이를 선택하라’는 저자의 말이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에게도 깊이 각인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해본다.

끝으로, 이 책에서 좀 생뚱맞았던 것은 마지막 8장이다. ‘한국 실정에 맞는 대안을 제시’한다며 저자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글을 덧붙였다(8장을 쓴 사람은 저자와 다른 사람으로, ‘500만원으로 45억 원을 만든 뒤, 다시 제로에서 25억 원을 만들어낸 분석투자의 귀재, 브라운스톤이라는 사람이다. 어떤 글을 써놨을지는 뻔하다). 진짜 왜 붙였나 싶다. ‘새로운 투자법을 배우고’ ‘개인경쟁력’을 키우라니. 이 책 저자가 이 사실을 알면 완전 100000% 분노했을 거 같다. 혹시라도 이 책을 읽을 분은 8장은 꼭 제하고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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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27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각 후보들마다 장단점이 하나씩 있습니다. 단점, 즉 네거티브가 눈에 띄면 장점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이롭게 하는 이를 선택하라’는 말이 어떻게 보면 맞는 말 같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찝찝한 말입니다. 장점만 보게 되면, 정말 심각한 단점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박사모가 그런 함정에 빠진 사람들입니다.


잠자냥 2017-04-27 12:05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럴 수도 있겠군요. ㅎㅎ 어쨌든 여기서(이 책에서) 말하는 ‘우리‘란 젊은 세대를 뜻하는 말이니.... 그들이 자신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는 후보에게 한 표 행사하면 좋겠습니다.
 
뜬 세상에 살기에 세트 - 전2권 - 초판 복간본 + 개정판
김승옥 지음 / 예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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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수필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일단 기쁨을... 김승옥을 비롯해 김현, 김치수, 염무웅, 최하림, 서정인 그리고 이청준과 김광규 등 문학동인지 <산문시대> 관련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울컥 무언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른다. 그 시절이 어쩌면 우리 문학계의 벨에포크 시대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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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긴 편지 열린책들 세계문학 170
마리아마 바 지음, 백선희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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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지식계급 여성일지라도 이슬람 사회 속 일부다처제 불합리한 제도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 두 여성의 억압과 차별을 편지 형식으로 생생히 전한다. 그들 자식 세대의 삶은 변화의 조짐도 보이지만 더디기만하다. 그저 먼 나라 이야기로만 다가오지는 않는다는 게 어쩐지 서글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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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
로베르트 발저 지음, 배수아 옮김 / 한겨레출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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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또 다른 작품인 <벤야멘타 하인 학교- 야콥 폰 군텐 이야기>를 ‘알아야만’ 한다. ‘알아야만’에 강조를 두는 까닭은 그렇지 않고 서는 이 어쩌면 기이한 작품집인 <산책자>를 또는, 로베르트 발저 그 자체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몇 해 전인가 <벤야멘타 하인학교- 야콥 폰 군텐 이야기>를 읽고 난 뒤의 가벼운 충격을 기억한다. 애초에 ‘하인학교’라는 설정 자체가 인상 깊다. 누구나 무엇인가 위대한 존재, 큰 존재가 되기 위해 학교에 간다. 꼭 직업적 성공이나 사회적 성공이 아닐지라도 적어도 ‘훌륭한 사람’ 그러니까 ‘훌륭한 존재’가 되기 위해 학교라는 곳을 간다. 그런데 야콥 폰 군텐은 그와 반대로 아무것도 아닌, 완전히 미미한 존재가 되기 위해 스스로 ‘하인학교’에 입학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자 자신을 갈고 닦는다. 철저한 반 성장, 반 영웅의 이야기이다.

<벤야멘타 하인학교>를 읽고 난 뒤 이런 세계도 존재할 수 있구나, 놀라웠다. 왜 사람은 꼭 더 나은 존재, 앞으로 더 나아가는 존재여야만 할까, 꼭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존재 그 자체로서 살아 숨 쉴 수도 있을 텐데. 세계는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진보하고 발전하고 성장해야만 아름다운, 쓸모 있는, 존재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쉽사리 결론내리기 어려운 물음을 안고 생각에 빠져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이런 작품을 쓴 사람, ‘로베르트 발저’라는 이름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곧바로 국내에 출간된 발저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았으나 이렇다 할 작품은 없었다. 안타까웠다. 그를 더 알고 싶었다. 헤세가 말하기를 ‘로베르트 발저의 책을 수십만, 수백만의 사람이 읽었다면 세상은 보다 나은 곳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하는 사람, 카프카가 사랑한 작가, 수잔 손택이 말하기를 ‘발저의 작품에 나타나는 윤리의 핵심은 권력과 지배에 대한 저항이다. 발저의 힘은 고도로 세련된 예술의 힘이다. 그는 진실로 놀라움과 저릿함을 느끼게 하는 작가이다.’라고 하는 사람, 로베르트 발저. 그가 더 알고 싶고 궁금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그의 작품집이 두 출판사에서 거의 동시에 출간되었을 때 나는 진심으로 기뻤고, 그 두 가지 책을 모두 샀다. 민음사에서 나온 <산책>은 작품 수가 얼마 되지 않아 안타까웠는데 한겨레출판에서 나온 <산책자>는 그 아쉬움을 충분히 채워주고도 남았다. <산책자>를 받아들고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로베르트 발저를 몇 년 만에 다시 만났고, 이제야 그를 제대로(하지만 그럼에도 아직은 부족한) 마주하는 기분이 들었다.

<산책자>를 통해 만난 로베르트 발저는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고독한 시인이었고, 작고 미미한 것들, 보잘것없는 것들의 아름다움과 그 가치를 누구보다 제대로 볼 줄 아는 세심한 영혼의 소유자이며, 그러므로 발전과 진보와 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이 지구라는 세계와는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그렇기에 결국 미쳐버리고만 가엾은 영혼이었다. 그래서 나는 <산책자>를 덮을 즈음에는 가슴 한구석이 저릿했다. 수잔 손택의 말처럼 ‘저릿함’이라는 그 단어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한 번이라도 가난하고 고독한 신세를 경험해본 자는 시간이 지난 다음에도 타인의 가난과 고독을 더 잘 이해한다. 우리는 타인의 불행, 타인의 굴욕, 타인의 고통, 타인이 무력함, 타인의 죽음을 조금도 덜어주지 못하므로 최소한 타인을 이해하는 법이라도 배워야 한다. (<산책자>, ‘빌케부인’, 15쪽)

내 주변에는 방임과 방탕과 모순이 특정 분량과 무게만큼 꼭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숨쉬기가 고통스럽습니다. 만약 고상하고 훌륭하고 우아해져야만 한다면, 삶은 고통 그 자체로 변합니다. 세련됨은 내 적입니다. 우아하게 절을 해야 하는 무모한 상황에 얽혀 들어가느니 차라리 사흘 동안 굶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 내가 나 자신으로 있지 못하고 내가 아닌 것이 되어야 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내가 나일 때, 나는 나에게 만족합니다. (.....) 예를 들어 새 양복을 입는 것만으로도 나는 심히 불만스럽고 불행해집니다. 그런 사실로 추측하건대 나라는 인간은 새롭고 보기 좋은 고급 물건은 뭐든지 다 싫고, 오래되고 낡은 중고품은 뭐든지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 만약 세상 모든 사물들이 새것이고 말끔하기만 하다면 나는 살고 싶지 않을 겁니다. 자살이라도 해버릴 거예요. (.....)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일. 그건 어떤 의미에서건 어느 정도는 노동입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이미 밝혔듯이, 나는 전적으로 편한 것이 좋습니다.(<산책자>, ‘한 시인이 한 남자에게 보내는 편지’, 73쪽~75쪽)

내 해석에 따르면 로맨틱하다는 것은 절반쯤만 살아 있다는 의미와 같다. 결함, 파손, 질병, 예를 들면 낡아빠진 성벽 같은 것, 그렇듯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 아무도 모르게 비밀스러운 방식으로 아름다운 것, 그것이 바로 로맨틱한 것이다. 물론 나도 그런 것들을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꿈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존재하는 것 중에서 가장 로맨틱한 것은 심장이므로, 감수성 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오래된 성벽으로 둘러싸인 오래된 도시를 가지고 있는 셈이니까. (<산책자>, ‘작은 베를린 여인’, 261쪽)


귀족 가문 출신이면서도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기 위해 하인학교에 들어간 ‘야콥 폰 군텐’처럼 로베르트 발저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미미한 것들, 쓸모없는 것들을 예찬한다. 그런 존재에서 ‘로맨틱’함을 발견하기도 한다. 고상하고 훌륭하고 우아해져야만 한다면 삶은 고통 그 자체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산책자>에 실린 42편의 그의 글들. 단편 소설일수도 있고 산문일수도 있고 때로는 시일수도 있는 그 모든 글들에서 발저는 이렇게 일관된 세계관을 보여준다. ‘작고 미미한 것으로 돌아가라’

그러나 이 세계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존재하는 것들을, 그런 사람들을 몰아세우기 마련이다. 쓸모 있게 되어라! 더 크게 되어라! 더 큰 권력을 지녀라! 이 세계를 위해 뭔가를 하라! 그렇기에 일반적인 관점, 이 세계의 관점에서 보자면 발저는, 또는 발저가 그리고자 하는 작품 속 인물들은 이 세계와는 영원히 화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그는 그 사실을 너무도 또렷하게 알고 있다.



시민적 지위, 시민적 명망, 어느 것 하나 나는 갖추지 못했습니다. 이건 너무도 자명합니다. 나와 같은 인간을 필요로 하는 자리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산책자>, ‘산책’, 338쪽)


그래서 그는 걷고 또 걷는다. 자연 속으로 방랑하고 떠돈다. 오직 산책만이 그를 숨 쉬게 한다. 산책하는 동안 그는 홀로이지만 자유롭고 그가 마주하는 이 세계의 보잘것없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누구도 그를 방해하지 않고, 좋은 옷차림이나 훌륭한 지위나 쓸모 있는 노동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발저는 실제로 눈을 뜨고 있는 거의 모든 시간은 걷거나 글을 썼다. 사람들은 그의 글조차도 이상하다고 여겨,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았다. 그는 철저히 홀로 산책하거나 다락방에서 홀로 글을 쓰고 살았다. 그러다 마침내 세계와의 불화는 그를 정신병원에 스스로 가두게 한다.

산책은.... 나에게는 무조건 필요한 겁니다. 나를 살게 하고, 나에게 살아 있는 세계와의 연결을 유지시켜주는 수단이니까요. 그 세계를 느끼지 못하면 단 한 글자도 쓸 수가 없고, 단 한 줄의 시나 산문도 내 입에서 흘러나오지 못할 겁니다. 산책을 못하면 나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고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내 일도 무너져버릴 겁니다. (......) 멋진 산책길에는 형상, 살아 있는 시, 마법, 그리고 온갖 아름다운 자연물들이, 비록 작은 존재들이라고 해도 꿈틀거리며 차고 넘치는 것이 보통이죠. (.....) 가장 좋은 것과 가장 남루한 것, 가장 진지한 것과 가장 유쾌한 것, 산책자에게는 이 모두가 마찬가지로 마음이 끌리며 아름답고 소중합니다. (<산책자>, ‘산책’, 339쪽~341쪽)

끝내 발저는 그토록 그가 사랑하던 행위, 즉 산책을 하던 중 심장마비로 죽었고, 어느 자연의 일부로 그가 그토록 예찬하던 보잘것없는 한 세계로 돌아갔을 것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그런 존재로 그의 영혼은 떠돌고 있을까? 죽은 뒤 오랜 세월이 흘러서야 그의 ‘이상하다’던 글들은 새롭게 조명을 받고, 그의 반 영웅주의적 세계관도 여러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과연 로베르트 발저 그 자신이 그렇게 되기를 바랐을까? 그건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점은 그는 걷고 싶었기에 걸었고, 쓰고 싶었기에 썼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이었기에 누군가, 어떤 독자들에게는 영원히 ‘이상’할 수밖에 없는 글을 썼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 고백들은 무척 아름답고 진실로 가득하다. 그의 삶과 그 삶을 고스란히 닮은 42편의 글들에서 ‘저릿함’을 거듭 느낀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열린 창으로 무엇인가 위대한 존재, 이 땅의 최고 권력자가 되기 위해 대통령 선거 유세를 벌이고 있는 이들의 목청 드높은 소리가 들려온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그토록 큰 존재가 되고자 하는 것일까? 그런 이들은 절대로 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기 위해 애쓰던 한 남자, 새 양복을 입으면 불행해지고, 우아하게 절을 해야 하는 무모한 상황에 얽혀 들어가느니 차라리 사흘 동안 굶겠다던 이 남자의 삶을, 세계를 도저히 이해할 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나는 그의 삶에서, 한 인간으로서 그 누구에게서도 얻을 수 없는 감동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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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
로베르트 발저 지음, 배수아 옮김 / 한겨레출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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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걷는다. '아무것도 아닌 세계로' 그는 또 걷는다. '보잘것없고, 보잘것없는 그런 미미한 세계로' 그러나 그 걸음 걸음에서 시가 탄생하고 아름다운 문장이 태어난다. 로베르트 발저의 아무것도 아닌, 그러나 그렇기에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42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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