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책을 읽으면 바로 리뷰를 쓰고는 했다. 요즘은 읽고 좀 지나서 리뷰를 쓰게 된다. 처음과 달리 시간이 지나서 더 생각이
나는 책이 있고, 처음에는 좀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냥 잊혀지는 책이 있다.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는 전자에 속한다.
두 권이나 되는 만만치 않은 양의 이 소설을 읽으면서 지루했던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두 번으로 끝나도
괜찮을 것 같은 사건이 다른 형태의 모습으로 반복되는 것 같기도 하고, 주인공 ‘필립’의 우유부단함으로 인해 어영부영 세월이 그저
‘조용히’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 지겹기도 했다. 맨 마지막 장을 넘기며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했다. ‘이제
끝났다.’하며.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필립의 인생이 우리가 사는 인생의 모습 그대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필립은 절름발이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 신체적 결함으로 인해 조금은 남과 다른 시선을 가질 수는 있었다. 육체적으로
연약했기 때문에 정신적인 일, 조용히 앉아서 사색하고 책을 읽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그것이 장점이 되기도
했지만, 때로는 독약이 되기도 했다.
예민한 감수성, 남다른 지각을 갖게 된 그는 타인을 관찰하기 시작하고, 타인의
삶을 섣불리 재단하기도 한다. 예술을 논하는 사람에게 열광적으로 매혹되기도 하지만, 어느 사이 그런 모습이 순전히 허영으로 보여
그를 멀리하기도 한다. 어릴 때는 종교에 탐닉하다, 종교의 모순을 깨닫고 그림이나 문학 등 예술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런 삶에서도
결국 만족을 못 느끼고 전도유망하다는 회계사를 하기도 하고, 의사에 도전을 하는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한다.
그 어느
것 하나 ‘내 것’이라고 부를만한 직업이나 열정적으로 매달릴만한 일을 찾지 못하고 이 직업 저 직업 끊임없이 옮겨 다닌다. 이건
생각보다 재능이 없어서, 이건 생각만큼 재미가 있지 않아서, 이건 알고 보니 겉으로 보는 것과 달리 전망이 없어서 등등 서른
가까이 되도록 자기만의 길을 찾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보낸다. 심지어 잘 하지도 못하는 주식투자를 해서 물려받은 유산마저 다 날리고
거지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기도 한다.
사랑에서도 그렇다. 분명히 이 여자와 함께 하는 것이 행복할 것이라는 걸
책을 읽는 사람도 알고, 필립 그 자신도 아는데 그렇지 못한 여자 ‘밀드레드’에게 계속 끌린다. 그냥 끌리는 것만이 아니라 필립을
이용하기만 하는 ‘밀드레드’에게 매혹되어 가산을 탕진하고, 삶을 낭비한다.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하다가도 다시 어느새 그녀를 찾아
그녀 곁에 머물게 된다. 삶이 그의 손가락 사이로 줄줄이 빠져 나간다.
이렇듯 <인간의 굴레에서>는 주인공 필립이
온전하게 자기 일을 찾고, 온전하게 자기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을 만나기까지 고난의 삶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일’의 굴레,
‘돈’의 굴레, ‘사랑’의 굴레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돌고 또 돈다. 그래서 책을 읽다보면 조금 지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특별한 재능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격적으로 훌륭하게 성숙하지도 않은 ‘필립’이라는 보통사람이 결국 ‘나’와 똑같음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 그의 끝없는 ‘방황’에 심정적으로 동요하게 된다.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난 이 일에도 결국
맞지 않는군.’ ‘이 나이가 되도록 내 길을 찾지 못하다니 이렇게 한심할 수가.’ 이런 생각을 하는 필립에게서 ‘나’를 보게
되기에 결국 그가 ‘행복한 일’을 찾고, 함께 있어서 ‘행복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 순간 그의 행복이 나의 행복으로, 그의 희망이
나의 희망으로 다가온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일, 사랑, 돈, 인간관계 등 ‘인간의 굴레’는 끝없이 계속
된다. 그것을 벗어날 수는 없다. 굴레만을 생각한다면 삶이란 ‘태어나서 고생하다 죽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은 또 다른 굴레로 걸어 들어감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또 다른 ‘굴레’가 다른 것과는 달리 특별히 행복하다고
여겨지는 ‘굴레’라면 더 이상은 ‘굴레’가 아닐 것이다. 필립이 오랫동안 생각했던 꿈을 포기하고 한 여자와의 소박한 삶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아름답다.
인생의 행운아는 오히려 벌통 속의 벌처럼 자신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행복하게 살 가능성이 가장 크다. 다 같은 활동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다 같은
즐거움을 누린다는 점에서 그들은 행복하다. (p.82)
“세상에서 가장 굴욕스러운 일은 말이지. 먹고 사는 걱정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일이야.
난 돈을 멸시하는 사람들을 보면 경멸감 밖에 들지 않네. 그런 자들은 위선자가 아니면 바보야. 돈이란 제 육감과 같아. 그게
없이는 다른 오감을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지. 적정한 수입이 없으면 인생의 가능성 가운데 절반은 막혀버리네. 딱 한 가지 조심해야
할 것은 한 푼 벌면 한 푼 이상 쓰지 않아야 한다는 거야. 예술가에겐 가난이 제일 좋은 채찍이라는 말들을 하잖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가난의 쓰라림을 직접 겪어보지 못해서 그래. 가난이 사람을 얼마나 천하게 만드는지 몰라. 사람을 끝없이 비굴하게
만드네. 사람의 날개를 꺾어버리고, 암처럼 사람의 영혼을 좀먹어 들어가지.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적어도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정도. 방해받지 않고 일을 할 수 있고, 너그럽고 솔직할 수 있을 정도. 그리고 독립적으로 살 수 있을 정도는
있어야지. 나는 말이야, 글을 쓰건 그림을 그리건 예술하는 사람이 먹고 사는 일을 자기 예술에만 의존한다면 그런 사람을 정말
가련하게 보네.” (p.414~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