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와 같은 책을 읽으면 오히려 무기력함을 느끼는 이들도 많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비참한 현실을
인식하게 되니 마음은 참담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오히려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사실을 알고
나면,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렇게 작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다지 많지 않구나 하고 실망에 빠지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 이들에게 <세계에서 빈곤을 없애는 30가지 방법>은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유익한
책이다.
이 책은 일본 NGO 활동가 16인이 눈으로 보고 겪은 세계의 빈곤 현실과 함께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인이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 알려주는 가장 놀라운 점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소비하는 행위가 사실은 제3세계(이 단어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편의상 사용하겠다) 어린이나 여성,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심지어 별생각 없이 구호물자를 보내는 행위가 오히려 그들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우리는 초콜릿을 무척 싼 가격에 아무 생각 없이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착취에 가까운
저임금 노동이 없다면 그렇게 싼 가격에 초콜릿을 마음껏 먹을 수는 없다. 새우만 해도 그렇다. 이 책에서는 일본의 예를 들고
있지만, 우리나라 대형 마트에 가보면 태국산 새우들이 무척 싼 가격에 팔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태국이나 필리핀 같은
곳에서 싸게 들어오는 것이다. 텔레비전에서 태국의 새우 양식업이 왜 문제인지 방영을 한 적도 있는데, 어린이와
여성을 상대로 한 저임금 노동과 환경을 생각하지 않은 양식업이 주원인이었다. 어린이들이 새우공장에서 종일 손이 부르트도록 새우를
까고 있던 모습은 잊혀지지 않는다. 게다가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는 맹그로브 숲을 베고 새우 양식장을 만드는데, 새우를 빨리
키우기 위해 항생제를 무차별적으로 투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 때문에 수질오염으로 양식장이 오래가지 않을뿐더러 환경오염으로
맹그로브 숲에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얻었던 주민의 생계가 위협을 받게 된다.
팜유도 문제다. 팜유는 콩기름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식물성 기름이 되었는데 컵라면, 마가린,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 가공식품과 화장품, 세제, 비누 등을 만드는 데 쓰인다. 팜유 생산량이 급증하는 이유는 물론 싼 가격 때문이다. 전
세계 팜유의 80%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되는데, 두 나라는 물론 저임금 노동을 담보로 한 플랜테이션 농업을 한다.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일할 수 있으니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주민들이 경제적으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열대림에서 먹을 것을 얻고, 다양한 작물을 심어 생활하던 주민들은 저임금 플랜테이션 노동자로 전락하게 될 뿐이다.
식량 자급자족을 할 수 있었던 사람들마저 기아상태에 빠진 채 선진국에 수출하기 위한 작물을 재배한다. 그런 이득은 지역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플랜테이션을 운영하는 다국적 기업에 돌아간다. 값싼 식품을 제공받는 선진국의 소비자들에게 돌아간다.
나는 그저 단순히 싼 제품을 소비한다고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누군가의 저임금 노동력 때문에 그렇게 값싼 제품을 소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이 책에서는 한 가지 방법으로 무턱대고 싸다는 이유만으로 소비하지 않기를 권유한다. 소비자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방식도 한 가지 방식이 될 수 있다. 될 수 있는 한 생산·유통 과정에서 환경과 인권을 생각하는 기업의 제품을
소비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며 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기업에 압력을 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공정무역상품'을
소비하자는 의견도 제시한다. 일본에서는 이런 마크를 달고 나오는 상품들이 꽤 있는 듯하다. '공정무역상품' 마크를 달고 나온
초콜릿은 그렇지 않은 상품보다 우리 돈으로 천 원가량 더 비싼 거 같은데 될 수 있다면 이런 상품을 사는 것이 좋다.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식량 자급률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우리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행위도 중요하다.
우리가 계속 값싼 농산물을 외국에서 들여오려고 한다면, 저임금 플랜테이션 노동은 끊이지 않을 것이고, 그들은 결국 자신들이 먹을 수
있는 것 대신 먹을 수 없는 농작물을 재배해 선진국 소비자와 다국적 기업만 배부르게 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육식을
하지 않고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하는 것도 세계의 빈곤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소고기를 얻고자 사람이 아닌 소를 먹이기 위해
낭비되는 곡물의 양을 이 책에서는 지적한다).
구호물자를 제대로 알고 보내는 것도 중요하다. 헌 옷이나 담요 등을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 사실 물자는 남아도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면 그 물자를 받은 이들이 (선진국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질이 무척 좋다) 이 상품을 돈을 주고 싼
가격에 판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지역에서 옷이나 담요 등을 생산해서 판매하던 사람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이 책에서는 내가
쓰고 입던 헌 옷, 담요를 제3세계로 보내면서 남을 돕고 있다고 뿌듯해하기 보다는 차라리 돈을 보내는 것이 낫다고 지적한다.
재활용을 열심히 하면서 나는 환경을 생각하고 지구를 생각한다고 자기만족을 얻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선진국에서는
재활용품(폐지, 알루미늄 등)을 다시 제3세계로 싼 가격에 파는데 이것은 다시 그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종이나 알루미늄 산업
종사자들이 가격 경쟁에서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선진국에서 알루미늄 캔이 싸게 소비될 수 있는 것은 물론 동남아시아 같은 곳에서
댐과 같은 수자원을 이용, 값싼 전기료로 생산하기 때문이다. 알루미늄을 생산하면서 나오는 물질이 주변 환경을 오염시키기까지
한다. 차라리 이런 제품을 처음부터 사용하지 않는 것이 낫다.
우리가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닥칠, 혹은 우리 다음 세대에게 닥칠 위험 때문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 때문에 방글라데시와 같은 지역은 지금도 농사지을 땅이 계속 사라지고 있다. 우리가 무심코 타는 자동차와 무심코 켜는
에어컨이 누군가의 먹고살 땅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세계의 빈곤을 불러온 것은 선진국, 잘 사는 나라들의 이기심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는 그들을
돕겠다고 오히려 그들의 생활을 파괴하고 있다. 이런 악순환을 조금이라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올바르게
소비하는 법, 똑똑하게 소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내가 싸게 사는 물건 뒤에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눈물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