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또츠까 네즈바노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124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박재만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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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는 참 신기한 작가이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나는 그가 위대하다고는 생각하지만 딱히 그의 작품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그의 수다스러운, 끊임없이 지껄이는 서술 방법은 때때로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점은 시간이 좀 지나면- 즉 그의 작품을 읽은 지가 좀 되면- 그 미친 듯한 지껄임, 수다가 그리워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마도 언젠가는 그의 모든 작품을 다 읽을 것 같다. 늘 느끼는 점이지만, 읽고 나면 정말 아, 이런 미치광이 같은 작자를 봤나, 아, 이런 도스토예프스키! 하고는 감탄해마지 않는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마치 내가 체호프 작품을 사랑하듯이 아끼지는 않지만 그의 재능, 그의 작품이 뿜어내는 아우라에는 고개를 수그릴 수밖에 없다.

이번에 읽은 <네또츠까 네즈바노바> 또한 그랬다. 이 작품은 사실 잘 몰랐다면 아주 나중에 읽었을 법하다.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가운데 크게 알려진 것은 아니고, 더욱이 미완성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함께 사두었던 <악령>이나 <백치>보다도 먼저 읽게 된 이유는 순전히 알라딘 이웃의 책 소개 때문이었다. 요즘 나는 그분 블로그에서 좋은 책을 많이 소개받는다. 엄청나게 책을 읽는(그것도 내 취향 세계문학) 분이라서 요즘 책을 선택할 때 그분 포스팅을 많이 참고한다. 암튼 그분이 소개하기를,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가운데 유일하게 여성을 1인칭 화자로 삼았다는 점, 그리고 미완성이라는 점 등등. 나는 여기에 솔깃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1인칭 소녀 시점으로 빙의하면 어떤 작품이 나올까 무척 궁금했다. 다자이 오사무의 <여학생>처럼 도스토예프스키도 여학생, 소녀에 완전히 빙의할 수 있을까? 궁금했던 것이다.

책장을 몇 장 넘기지 않고도 나는 이미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의 수다, 그의 지껄임,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 미치광이 같은 이들의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예민함, 신경증에 시달리는 듯한 이 나약하고 가련한 병적인 인물들. 아, 역시 내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에 들어왔구나 단박에 알 수 있는 별것 아닌 것 같은 일들의 나열일 뿐인데 다음 장이 너무나도 궁금해지는 이 흥미진진함! 그러다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미쳤어.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서 허, 웃어버렸다. 도스토예프스키 이 인간, 천재야 정말. 소녀 빙의 제대로 하네!

책을 덮을 즈음에는 그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매우 궁금해서, 이 작품을 그냥 이대로 미완성으로 끝내버린 도스토예프스키를 저주할 지경에 이르렀다. 마치, 다음 편이 몹시 궁금한데 더 이상 업데이트를 하지 않는 웹툰에 악플을 달고 싶은 심정이랄까. 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네또츠까 네즈바노바>의 다음 이야기가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해서, 뒤늦게라도 발견되어 세상에 짠! 나타나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간절히 바라보지만 그럴 일은 없겠지.....

<네또츠까 네즈바노바>는 크게 3부로 나뉜다. 첫 번째 이야기는 화자인 나, 즉 '네또츠까'가 부모와 함께 살던 시절 이야기로, 그녀가 이야기를 이끌어나가지만 사실 이 첫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네또츠까의 계부인 음악가 ‘예피모프’라고 볼 수 있다. 이 인물은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의 인물들이 거의 그러하듯이 어딘가 비뚤어졌고 일그러졌다. 재능은 좀 있는 음악가이지만 자기 재능을 지나치게 믿는지 오만방자하고 턱없이 게으르다. 그러면서도 누군가가 자신의 재능을 의심한다 싶으면 자존심이 뒤틀려 어쩔 줄을 몰라한다. 네또츠까의 엄마와 결혼하게 된 이유도 그녀가 갖고 있던 얼마간의 돈을 노렸기 때문이었고, 그 돈을 탕진하자 그는 아내를 구박하고 못살게 군다. 자기 재능을 세상이 알아주지 못하는 것도 아내 탓이며, 아내와 함께 하는 구질구질한 삶이 자신의 재능을 갉아먹고 있다고 모든 것을 아내 탓으로 돌린다. 네또츠까는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를 바라보며 때로는 단순한 관찰자로, 때로는 그 자신도 그런 분위기 속의 피해자로, 또 때로는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가해자가 되기도 하면서 함께 지낸다. 그러면서 서서히 계부를 향한 사랑이 싹트는데 이 애정은 어딘가 병적이다. 금세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풍선을 꽉 끌어안고 있는 아이처럼 불안하고 조마조마하다.

2부에서는 드디어 네또츠까가 주인공으로서 전면으로 등장한다. 어느 공작의 집에서 생활하게 된 그녀는 이번에는 공작의 딸 '까쨔'와 기이한 애정을 나누게 된다. 수줍음 많고 조용하며 어딘가 억압된 듯한(그럴 수밖에 없는) 네또츠까에 비해 까쨔는 도도함과 오만함, 철없는 아름다움으로 똘똘 무장한 소녀이다. 네또츠까는 이 작은 악마 같은 까쟈를 보는 순간 더없이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에 무장해제 되어버리고 까쨔의 포로와도 같은 신세가 되고 만다. 완전히 빠져버린 것이다. 그런데 까쨔는 그런 네또츠까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완전히 ‘밀당’의 선수가 아닌가! 짝사랑에 빠진 소녀의 애달픔, 그것을 즐기듯 무관심과 냉대로 일관하는 또 다른 한 소녀. 2부에서는 이 두 소녀에 완전히 빙의한 도스토예프스키를 만날 수 있다. 사춘기 소녀들의 불안한 심리와 격정 어린 애정 또는 우정이 무척 실감 나게 그려진다. 그런데 2부에서도 네또츠까의 애정은 어딘가 지나치다 싶을 만큼 기묘하다.

그 기이한 애정은 3부에서 또 다른 대상으로 옮아간다. 까쨔의 언니이자, 공작 부인의 큰 딸인 '알렉산드라 미하일로브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공작 부인이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다. 까쨔와는 아버지가 다른 셈이다. 또한 까쨔와는 정반대 성격으로 조용하고 세심하며 온화하다. 네또츠까는 알렉산드라의 보호 아래 8년을 지내면서 10대 후반의 나이에 이르도록 성장한다. 알렉산드라와의 관계도 조금은 병적이지만 그럼에도 까쨔와의 관계처럼 광적이지는 않다. 알렉산드라의 따뜻한 애정 아래 엄마로부터 채우지 못한 애정을 섭취하듯 네또츠까는 조금씩 자기만의 세계를 형성해간다. 그런데 이 3부의 큰 사건은 알렉산드라의 비밀을 네또츠까가 우연히 알게 되면서부터이다. 1849년에 나온 판본에는 1, 2, 3부에 저마다 <유년 시절>, <새로운 인생>, <비밀>이라는 부제가 붙어있었다고 하니, 3부에서 그 ‘비밀’은 매우 중요한 소재임이 틀림없다. 실제로 네또츠까가 이 비밀을 알고부터 그녀의 병적인 증상은 한층 심화된다. 이 ‘비밀’이 조금씩 수면으로 올라오면서 <네또츠까 네즈바노바>는 끝난다. 때문에 그 다음이 몹시 궁금하지만, 궁금증은 영원히 해결될 수 없을 것 같다. 도스토예프스키를 다시 살리지 않는 한 말이다.

책을 덮고 나서도 모든 인물이 살아있는 듯 생생하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으뜸인 인물은 네또츠까와 그녀의 계부 예피모프이다. 사실 이 두 사람은 음악적으로 어느 정도 재능이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 재능을 망쳐버릴 만큼 병적이고 예민하다. 특히 우울하고 조용한 소녀로만 보이는 네또츠까가 어느 상대에게 애정이 꽂혀버리면 그 열정에는 누구라도 뜨겁게 데여서 다쳐버릴 것만 같다. 그럴 정도로 위태해 보인다. 이 소녀는 어쩌다 이런 상태가 되어버린 것일까? 책을 읽노라면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든다.

네또츠까의 인생을 돌아보면 ‘결핍’과 ‘공허’가 주를 이뤘음을 알 수 있다. 가난한 집에서 자기를 낳아준 아버지도 없이, 엄마로부터 전폭적인 애정을 받는 것도 아닌 그런 상태에서 예피모프를 만난다. 그리고 사소한 일로 그의 인정을 받는 순간 네또츠까는 새로운 애정에 눈을 뜨고 거의 집착적으로 그 사랑에 매달린다. 이 과정은 2부와 3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라진 상태에서(결핍) 까쨔를 만나고, 그 새로운 애정의 대상에 광적으로 집착하며, 그런 까쨔가 사라진 상태(또 다시 결핍)에서 이번에는 또 다른 애정의 대상 알렉산드라를 만나는 것이다. 공허함이 그 불쌍한 소녀를 그토록 광기어린 열정의 상태로 몰아간 것은 아닐까? 네또츠까가 이런 결핌과 채움의 반복 과정에서 어떻게 자라났을지 끝을 보지 못해 무척 아쉽지만, 도스예프스키는 인간에게 결핍이나 열등감 또는 자기기만이 어떤 광적인 상태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탁월하게 그려나간다. 그렇기에 미완성일지라도 이 작품은 이 자체로도 대단하다. 그리고 네또츠까는 문학 작품 속 어떤 여성 인물보다도 강렬하게 뇌리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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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또츠까 네즈바노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124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박재만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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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작인줄 알면서도 여성화자로 썼다는 점에 끌려서 읽었다. 이 흥미로운 작품이 미완성이라 안타깝고 소녀에서 십대로 넘어가서까지 어쩜 그리 심리 묘사가 빼어난지 혀를 내두른다. 인간의 이상심리를 이토록 잘 그리는 작가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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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3-31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완성이라서 아쉬운 작품입니다. 작품의 소재와 전개가 독특했어요.

잠자냥 2017-03-31 10:26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너무나 궁금한 순간에 끝나버려서 ㅠㅠ 안타깝습니다. 흑.
 
고 녀석 맛있겠다 - 별하나 그림책 4 고 녀석 맛있겠다 시리즈 1
미야니시 타츠야 글 그림, 백승인 옮김 / 달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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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선물해주려고 샀다가 내가 읽고 눈물 찔끔. 그림도 귀엽고 이야기는 따뜻하다. 어른이 아이와 함께 읽어도 좋을 동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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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도서관 - 세계 오지에 16,000개의 도서관 1,500만 권의 희망을 전한 한 사나이 이야기, 개정판
존 우드 지음, 이명혜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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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우드의 <히말라야 도서관 : Leaving Microsoft to Change the World>를 읽고 그의 희망과 열정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세계 오지에 16,000개의 도서관 1,500만 권의 희망을 전한 한 사나이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네팔, 캄보디아, 베트남, 인도 등 개발도상국의 어린이들을 위해 도서관과 학교를 지은 한 남자의 이야기다.

‘Leaving Microsoft to Change the World’라는 원제에서 보여지 듯 존 우드,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잘나가는 임원이었다. 연봉도 빵빵하고, 호주 시드니를 거쳐 중국지사의 넘버 2이자 그의 앞날은 더욱 창창했다. 하지만 언제나 시간에 쫓겨 쉴 틈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결단을 내리고 네팔로 휴가를 떠난다. 그 휴가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는다.

네팔에서 그는 우연히 너무나도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게 된다. 그나마 시설이 나은 학교라는데 도서관에 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캐비닛에 꼭꼭 숨겨진 책을 들춰보니 히말라야에 왔다간 등산객들이 버리고 간 소설책이 전부였다. 어린이들에게는 부적절한 책뿐. 학교의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위해 책을 좀 가져다주면 좋겠다.’라고 간곡한 부탁을 하고 그는 몇 달 뒤에 반드시 책을 갖고 오겠다며 약속을 한다. 물론 그의 이런 약속에 회의적인 선생님들도 많았다. '그런 약속을 하고 간 사람들은 한 둘이 아니'라며.

그는 약속을 지키고자 휴가에서 돌아오자마자 지인들에게 이메일을 써서 책을 보내달라고 부탁을 한다. 결과는 놀라웠다. 그의 집 차고가 꽉 찰 정도로 책이 곳곳에서 배달됐다. 그의 아버지는 후원금까지 내놓는다. 이렇게 해서 그는 그 이듬해 그 학교를 다시 방문하게 된다. 책을 보고 기뻐 날뛰는 네팔 어린이들을 보며 그는 남은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다르게 설정한다. ‘이게 바로 나의 갈 길이다.’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는 법이다.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고, 마이너스로 치닫는 통장잔고를 바라보는 삶이 시작되었다. 게다가 가치관이 다른 여자 친구와도 헤어져야만 했다. 여자 친구는 그의 그런 삶을 지지해줄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에게 그나마 힘이 되어준 것은 부모님 정도. 이렇게 해서 1999년 네팔에서 시작한 도서관과 학교를 짓는 일은 급속도로 성장해갔다. 2001년은 베트남, 2003년은 인도, 그 뒤 라오스, 스리랑카 등 개발도상국에 4천여 개 이상의 룸투리드(Room to Read) 학교와 도서관, 컴퓨터 교실을 세웠다.

어떻게 한 사람이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무척 놀라웠다. 그는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할 것을 알고 인적 네트워크와 온라인 네트워크 등을 최대한 활용한다.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배운 실무 경험도 후원금을 모으고 자원봉사자를 구성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다. 주먹구구식으로 무기력하게 그저 사람들의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게 아니었다. 열정에 찬 자원봉사자를 뽑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지사를 설립하고 후원금을 모금했다. 그의 이런 방식은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NGO 단체들도 참고할 만하다.

책을 좋아하고, 책이 주는 좋은 영향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어린이들에게 당장 먹을 빵 한 조각이 아닌 왜! 하필이면 책을 전해주려고 그토록 노력했는지 공감할 것이다. 특히 그는 소녀들에게 더 많은 교육의 기회를 주고자 애를 썼다. 장학금도 소녀들 위주로 준다. 이유는 이렇다. “당신이 한 소년을 교육하면 이는 어린이 한 명을 교육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한 소녀에게 공부할 기회를 준다면 그녀는 가족 전체의 다음 세대까지 교육을 전달할 것이다.” (존 우드, ‘히말라야 도서관’)

물론 어려움도 겪는다. 스리랑카에 쓰나미가 덮쳐 세웠던 학교와 도서관이 맥없이 사라져버렸다. 9. 11 테러로 후원금을 모으는 일에도 차질이 생기리라 생각했다. 후원금을 모금하는 자리에서 이른바 많이 배웠다는, 그러나 한없이 냉소적인 사람들에게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레종 데르뜨(존재의 이유)’는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보다 건강하게 살고 다음 세대에 지식을 전달하도록 말이지요.”라며 그 모든 어려움을 희망과 열정으로 극복한다. 한 사람의 열정과 끝없는 희망, 낙관이 세상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이 책은 증명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는 내내 기분 좋은,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은 ‘변화된 세상’ ‘아름다운 세상’을 계속 보여준다는 점이다. 보통 후원금을 모금하고 자원봉사자를 찾는 일을 한다면 우리는 세계의 비참한 장면을 고발하는 식으로 접근한다(가난에 찌들어 울고 있는 아이, 학대받는 아이의 사진 등등). 그러나 나는 그런 사진들이 늘 불편했다. 불편해서 피하고만 싶었다. 존 우드는 그렇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보통 가난한 마을이나 에이즈에 걸린 아이에 관한 방송을 보면 마음 아파한다. 파리가 온 몸에 붙어 있는 어린이나 먼지 속에 누워있는 굶주린 가족의 사진을 보여주는 것이 기금을 모으는 데는 효과적일 것이다. 이런 방송을 볼 때마다 나 역시 마음이 너무 아프지만 후원금을 조성할 때 가난을 이용하는 것은 되도록 피한다. 이런 영상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물론 내 생각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죄책감을 마케팅도구로 이용할 생각은 전혀 없다. 후원자들은 희망을 보고 싶어 한다. 나는 가난에 찌든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신 졸업장을 받은 화사한 어린이들의 모습, 언청이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활짝 웃는 소녀, 새로운 우물을 이용하게 된 농부들의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나는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주고 싶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은 새로 연 도서관을 본, 장학금을 받은 소녀들을 소개하는 기쁨의 눈물이고 싶다.’


실제로 이 책은 행복한 표정의 아이들로 가득하다. 이런 사람들이 있다면 세상이 정말로 조금씩 달라지겠구나, 하고 나도 행복해진다. 게다가 그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떻게 사는 삶이 정말로 행복한 삶인지 조용히 깨닫게 된다.


“우리가 물질적인 부자인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진정한 문제는 그것으로 무엇을 할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젊은 나이에 성공했다. 어떤 경우는 운이 좋아서였다. 하지만 내가 물질적으로 부유해졌다는 것이 훌륭한 사람이 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진정한 문제는 그걸로 무엇을 하는가이다….”





예를 들면 이런 사진 말이다. 왠지 당신도 그 희망에 동참하고 싶어지지 않는가?

(출처 : Room to Read Annual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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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빈곤을 없애는 30가지 방법
다나카 유.가시다 히데키.마에키타 미야코 엮음, 이상술 옮김 / 알마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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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와 같은 책을 읽으면 오히려 무기력함을 느끼는 이들도 많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비참한 현실을 인식하게 되니 마음은 참담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오히려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사실을 알고 나면,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렇게 작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다지 많지 않구나 하고 실망에 빠지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 이들에게 <세계에서 빈곤을 없애는 30가지 방법>은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유익한 책이다.


이 책은 일본 NGO 활동가 16인이 눈으로 보고 겪은 세계의 빈곤 현실과 함께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인이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 알려주는 가장 놀라운 점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소비하는 행위가 사실은 제3세계(이 단어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편의상 사용하겠다) 어린이나 여성,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심지어 별생각 없이 구호물자를 보내는 행위가 오히려 그들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우리는 초콜릿을 무척 싼 가격에 아무 생각 없이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착취에 가까운 저임금 노동이 없다면 그렇게 싼 가격에 초콜릿을 마음껏 먹을 수는 없다. 새우만 해도 그렇다. 이 책에서는 일본의 예를 들고 있지만, 우리나라 대형 마트에 가보면 태국산 새우들이 무척 싼 가격에 팔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태국이나 필리핀 같은 곳에서 싸게 들어오는 것이다. 텔레비전에서 태국의 새우 양식업이 왜 문제인지 방영을 한 적도 있는데, 어린이와 여성을 상대로 한 저임금 노동과 환경을 생각하지 않은 양식업이 주원인이었다. 어린이들이 새우공장에서 종일 손이 부르트도록 새우를 까고 있던 모습은 잊혀지지 않는다. 게다가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는 맹그로브 숲을 베고 새우 양식장을 만드는데, 새우를 빨리 키우기 위해 항생제를 무차별적으로 투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 때문에 수질오염으로 양식장이 오래가지 않을뿐더러 환경오염으로 맹그로브 숲에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얻었던 주민의 생계가 위협을 받게 된다.


팜유도 문제다. 팜유는 콩기름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식물성 기름이 되었는데 컵라면, 마가린,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 가공식품과 화장품, 세제, 비누 등을 만드는 데 쓰인다. 팜유 생산량이 급증하는 이유는 물론 싼 가격 때문이다. 전 세계 팜유의 80%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되는데, 두 나라는 물론 저임금 노동을 담보로 한 플랜테이션 농업을 한다.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일할 수 있으니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주민들이 경제적으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열대림에서 먹을 것을 얻고, 다양한 작물을 심어 생활하던 주민들은 저임금 플랜테이션 노동자로 전락하게 될 뿐이다. 식량 자급자족을 할 수 있었던 사람들마저 기아상태에 빠진 채 선진국에 수출하기 위한 작물을 재배한다. 그런 이득은 지역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플랜테이션을 운영하는 다국적 기업에 돌아간다. 값싼 식품을 제공받는 선진국의 소비자들에게 돌아간다.


나는 그저 단순히 싼 제품을 소비한다고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누군가의 저임금 노동력 때문에 그렇게 값싼 제품을 소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이 책에서는 한 가지 방법으로 무턱대고 싸다는 이유만으로 소비하지 않기를 권유한다. 소비자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방식도 한 가지 방식이 될 수 있다. 될 수 있는 한 생산·유통 과정에서 환경과 인권을 생각하는 기업의 제품을 소비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며 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기업에 압력을 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공정무역상품'을 소비하자는 의견도 제시한다. 일본에서는 이런 마크를 달고 나오는 상품들이 꽤 있는 듯하다. '공정무역상품' 마크를 달고 나온 초콜릿은 그렇지 않은 상품보다 우리 돈으로 천 원가량 더 비싼 거 같은데 될 수 있다면 이런 상품을 사는 것이 좋다.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식량 자급률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우리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행위도 중요하다. 우리가 계속 값싼 농산물을 외국에서 들여오려고 한다면, 저임금 플랜테이션 노동은 끊이지 않을 것이고, 그들은 결국 자신들이 먹을 수 있는 것 대신 먹을 수 없는 농작물을 재배해 선진국 소비자와 다국적 기업만 배부르게 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육식을 하지 않고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하는 것도 세계의 빈곤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소고기를 얻고자 사람이 아닌 소를 먹이기 위해 낭비되는 곡물의 양을 이 책에서는 지적한다).


구호물자를 제대로 알고 보내는 것도 중요하다. 헌 옷이나 담요 등을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 사실 물자는 남아도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면 그 물자를 받은 이들이 (선진국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질이 무척 좋다) 이 상품을 돈을 주고 싼 가격에 판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지역에서 옷이나 담요 등을 생산해서 판매하던 사람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이 책에서는 내가 쓰고 입던 헌 옷, 담요를 제3세계로 보내면서 남을 돕고 있다고 뿌듯해하기 보다는 차라리 돈을 보내는 것이 낫다고 지적한다. 


재활용을 열심히 하면서 나는 환경을 생각하고 지구를 생각한다고 자기만족을 얻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선진국에서는 재활용품(폐지, 알루미늄 등)을 다시 제3세계로 싼 가격에 파는데 이것은 다시 그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종이나 알루미늄 산업 종사자들이 가격 경쟁에서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선진국에서 알루미늄 캔이 싸게 소비될 수 있는 것은 물론 동남아시아 같은 곳에서 댐과 같은 수자원을 이용, 값싼 전기료로 생산하기 때문이다. 알루미늄을 생산하면서 나오는 물질이 주변 환경을 오염시키기까지 한다. 차라리 이런 제품을 처음부터 사용하지 않는 것이 낫다.


우리가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닥칠, 혹은 우리 다음 세대에게 닥칠 위험 때문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 때문에 방글라데시와 같은 지역은 지금도 농사지을 땅이 계속 사라지고 있다. 우리가 무심코 타는 자동차와 무심코 켜는 에어컨이 누군가의 먹고살 땅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세계의 빈곤을 불러온 것은 선진국, 잘 사는 나라들의 이기심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는 그들을 돕겠다고 오히려 그들의 생활을 파괴하고 있다. 이런 악순환을 조금이라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올바르게 소비하는 법, 똑똑하게 소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내가 싸게 사는 물건 뒤에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눈물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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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1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17-03-21 11:55   좋아요 0 | URL
네~그렇습니다. 결국 공정한 소비, 착한 소비를 하고 싶어도 늘 현실적으로는 가격에서 또 다른 문제에 부딪히더라고요. 아마 많은 소비자들이 그럴 거예요.

cyrus 2017-03-21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빈곤 포르노’ 문제가 많이 언급되더군요. 현실을 왜곡해서 빈곤을 최대한 부각하는 소수의 구호 단체 때문에 정작 해결해야 할 빈곤 국가 문제마저 무시될까 봐 염려스럽습니다.

잠자냥 2017-03-21 12:20   좋아요 0 | URL
네, 말씀하신 ‘빈곤 포르노‘를 생각하다보니 수잔 손택의 <사진에 관하여>에서 ‘사진은 연민을 자아내는 것만큼 연민을 없애고 감정을 떼어낸다‘라는 구절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단순한 동정이 아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는 도움이 절실한 것 같습니다.

세실 2017-03-23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정무역 상품....자꾸 잊어버리네요.
알루미늄의 오염도 심각하군요. 자판기는 대부분 알루미늄이니....
현명한 소비를 해야겠습니다.

잠자냥 2017-03-23 15:01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이런 책 읽는 바로 그 순간에는 머릿속으로 온갖 결심을 다 하는데, 정작 시간이 흐르면 무뎌지고, 그러다 책 읽으면 다시 마음 다잡고 그러다 또 무뎌지고를 반복합니다. 하하.. 습관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