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자살을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자살은 아니더라도 죽음에 관한 생각은 누구나 한 번쯤 해보았으리라. 닉 혼비의
<딱 90일만 더 살아볼까>는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자살'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 오히려 '삶'에 관한 이야기가
되는...
닉 혼비의 작품은 종종 영화화되었고 그만큼 영국에서는 잘 나가는 작가 중 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의 작품은 <하이 피델리티>를 읽은 게 처음이다. <하이
피델리티>는 영화로 먼저 만났는데, 이 영화는 영화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대단히 괜찮은 작품'으로 불리는 작품이다. 그때도 그래서
소문에 휩쓸려 한번 봤는데, 사실 나는 그다지 좋은 걸 모르겠더라. 영화를 본 다음에 읽은 <하이 피델리티> 또한 사람들은 좋다
좋다 하는데, 나는 역시 그다지 좋은 걸 모르겠고...
이유를 곰곰 생각해보니, <하이 피델리티>는 어른으로의
성장을 거부한 찌질한 남자들의 이야기였다. 물론 보편적으로 어른이 되기를 거부한 모든 키덜트들의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찌질한 남자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읽는 내내 조금 짜증이 났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랄까. '아! 진짜 뭐 이딴 놈이 다
있냐. 이런 놈하고 연애하는 여자는 진짜 불쌍하다' 이런 식의 감정 이입때문이었다.
그런데 닉 혼비의 장점은 바로 이런 것
같다. 소설 속 인물 하나하나를 완전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캐릭터로 창조해낸다. 그러니까 소설 속 인물임에도 막 욕을 하게
되고 미워하게 된다고나 할까. 찌질한 인간들을 어쩌면 그렇게도 찌질하게 묘사할 수 있는지! 놀랍다. <어바 웃 어 보이>는 소설을 읽지 않았기에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영화 속의 휴 그랜트나 그 꼬마 소년의 짜증 나던 부분이 책에서는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 같다.
<딱 90일만 더 살아볼까>에서도 그런 캐릭터의 생생함은 살아 있다. 더는 살고 싶지 않아서
'토퍼스 하우스'라는 어느 아파트 옥상 위에 모인 4명의 예비 자살자들- 마틴, 제이제이, 모린, 제스- 이들의 생생한 캐릭터가
장장 400여 페이지를 이끌어간다. 사실 자살 하기 위해 모이기는 했지만 그 밖에는 이렇다 할 사건이 등장하지 않는 이야기를
400페이지나 이끌어 간다는 게 어디 쉽나?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게 가능하다. 캐릭터들이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소설은
'90일만 더 살아볼까'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자살을 하려던 곳에서 만난 그들이지만, 삶이 갖는 어떤 의미를 깨닫고, 다시
살아가게 된다는 식의 결론을 맺는다. 이 책에서 얻은 한 가지가 있다면 '소통'이 있고 타인의 '관심'이 있다면 사람들이 죽고
싶어할 이유는 없을 거라는 것.
"저게 정말로 돌아가고 있는 거요? 잘 모르겠는데." 마틴이 말했다.
우리는 그걸 확인하기 위해 런던 아이를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마틴 말이 옳았다. 움직이고 있지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움직이고 있을 것 같았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처럼 아무리 후져 보이는 삶이라도, 어떤 나아짐조차 없어 보이는 삶이라도 사실은 어딘가를 향해 계속 움직이고 있다는
것. 죽기를 결심했던 그들의 90일 전 모습과 죽지 않고 살아보기로 다시 마음을 고쳐먹은 90일 뒤의 모습은 겉보기에는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나빠 보이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움직였다. 어디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사람들은 스타벅스 같은 곳이 인간미가 없다느니 하는 말을 하지만, 그게 내가 원하는 거라면 어쩔 건가? 제이제이나 그런 사람들이 자기 식대로 사는 것을 말릴 수 없지만, 세상에 인간미 있는 것은 없다. 나는
아무도 서로에게 신경 쓰지 않는 널따란 곳이 있다는 게 좋다. 단골 손님이 다니는 작은 곳, 작은 서점이나 작은 음반 가게,
작은 레스토랑이나 카페에 가려면 믿음이 필요하다. 나는 아무도 누가 오는지 상관하지 않고, 내가 누군지 아무도 모르는 버진 메가
스토어랑 보더스, 스타벅스, 피자 익스프레스에 갔을 때 가장 편하다. 엄마 아빠는 늘 그런 곳에 영혼이 없다느니 하지만 나는 이런다. 누가 그걸 모른대? 바로 그래서 좋아하는 거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