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이야기 창비세계문학 53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석영중 옮김 / 창비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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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의 신간 소식 알림을 신청해놓고 그 알림이 이따금 올 때마다 두근두근한 심정으로 도서 정보를 살펴본다. 체호프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에 이번에는 어떤 책이 소개된 것일까 궁금하여 알라딘 사이트를 클릭한다. <지루한 이야기>라는 처음 듣는 제목의 작품이다. 장편은 아닌, 그렇다고 단편이라고 하기엔 좀 긴 분량. 중편이다. 반갑다. 국내 초역 작품이라 하니 더욱 기대가 된다. 그런데 함께 실려 있는 작품은 ‘검은 옷의 수도사’와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이다. 나머지 작품들도 모두 국내 초역 작품이라면 좋으련만, 아쉬움이 든다.

‘검은 옷의 수도사’와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내가 갖고 있는 다른 체호프의 책에 실려 있다. 심지어 나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기억나는 것만으로도 세 가지 출판사 버전을 갖고 있다(열린책들/펭귄클래식/범우사). 이번에 새로 창비에서 나온 <지루한 이야기>는 살까 말까 처음에는 꽤 고민했다. ‘지루한 이야기’ 정도만 읽어보고 싶은데, 그렇다면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아무리 체호프를 좋아한다 하더라도, 같은 작품을 여럿 갖고 있는 것은 좀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결국 나는 이 책을 사고야 말았다. 왜냐하면, 체호프니까…….

체호프와 함께 여러 권의 다른 책도 주문했다. 책이 배달되고 나서 경건한 마음으로 체호프의 책부터 읽기 시작한다. 몇 페이지 읽지 않고서 나는 책을 사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가 ‘지루한 이야기’를 거의 다 읽어갈 때쯤은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슬픔, 가슴의 통증 같은 것을 느낀다. 급기야 ‘지루한 이야기’의 맨 끝 구절 ‘안녕, 나의 보석이여!’를 읽는 순간 눈물방울이 맺힌다. ‘지루한 이야기’는 아마도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과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체호프의 작품 중 하나가 될 것이다.

“ ………… 나의 내면에서는 노예에게나 걸맞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어. 머릿속에서는 밤이고 낮이고 사악한 생각들이 요동을 치고 영혼 안에는 이전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감정들이 둥지를 틀고 있지. 요컨대 나는 증오하고, 경멸하고, 짜증내고, 분노하고, 두려워하고 있어. 나는 극도로 엄격하고 까다롭고 짜증스럽고 야비하고 의심 많은 인간이 되었어. ………….” ( 체호프, <지루한 이야기>, 60쪽)



나(니꼴라이 스쩨빠노비치 아무개)는 명예교수이자 3등 문관으로 그 이름이 꽤 알려졌다. 그러나 오로지 연구에만 매달린 덕분에 명성은 드높지만 부유한 생활을 누리지는 못한다. 그런데 그에게는 늙음과 함께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 ‘어느 노인의 수기’라는 부제가 달려있듯이 ‘지루한 이야기’는 이 노교수가 바라보는 삶의 비루함, 쓸쓸함, 고독함, 애잔함이 그 주를 이룬다.

많은 이들의 삶이 그렇듯이 그에게도 한때는 아름답고 눈부셨던 삶이 있었다. 사랑스러운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딸. 진짜 가족이라 여겨졌던 그들과의 단란하고도 행복한 한때. 그런데 지금의 그 앞에 있는 아내와 딸은 한없이 속물스러울 뿐이다. 아내가 하는 이야기는 오직 돈, 돈, 돈에 관한 것뿐이며 그토록 영특하고 예쁘기만 하던 딸은 어느 사기꾼 같은 녀석한테 홀딱 빠져서는 한없이 그를 실망시키고 있다. 이 노교수가 아내와 딸을 바라보는 시선은 체호프의 빼어난 묘사로 읽은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밥줄과 기타 사소한 걱정거리로 생기를 잃은 표정과 빚더미와 궁핍에 관한 끊임없는 생각으로 어두워진 눈빛, 오로지 지출에 관해서만 말할 수 있고 오로지 물가 하락에만 미소 지을 수 있는 이 여자. 이 늙고 뚱뚱하고 굼뜬 여자가 언젠가 그토록 날씬했던 바랴.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바랴란 말인가? (15쪽)

어렸을 때 그녀는 아이스크림을 몹시 좋아해서 나는 종종 제과점에 그녀를 데리고 갔다. 그녀에게 아이스크림은 모든 아름다운 것들의 척도였다. 나를 칭찬하고 싶으면 이렇게 말했다. “아빠는 바닐라 맛이야.” 그녀의 손가락에는 이름이 붙어 있었는데 하나는 피스타치오, 다른 하나는 바닐라, 세 번째는 산딸기. 이런 식이었다. (17쪽)

아직도 어린애처럼 보이기만 하는 딸애가 저 넥타이와 저 눈깔과 저 흐물거리는 뺨따귀를 사랑한다는 것이 사뭇 이상하기만 하다……………… (51쪽)

한때 나는 진짜 가족과 함께 집에서 살았었지만 지금은 내 진짜 아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손님으로 와서 식사를 하고 있으며 진짜 리자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다. (53쪽)


아내 ‘바랴’에 대해 묘사하는 부분부터 ‘아, 체호프!’ 하게 된다. 게다가 어린 시절 딸에 대한 묘사도 그렇다. “아빠는 바닐라 맛이야.” 이 문장 하나에 그토록 귀엽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그리고 그러한 딸과의 아름답기만 한 추억이 절로 떠오른다. 더불어 이제는 그렇지 않으리란 것도 이 대사 하나에서 알아차릴 수 있다. 무척이나 아름답던 시절이 어느덧 저 멀리 사라져버린 것만 같은 심정. 그 안타까움이 이 한 문장에 모두 담겨있다. 그래서 왠지 딸에 대한 그의 묘사를 읽노라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한 순간이 모두 흩어져버린 듯해 마음 한쪽이 무척 아파온다.

가족에 대한 불만은 주변 사람들과 그를 둘러싼 생활환경 모든 것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진다. 그는 명성과 고위 문관의 직함 또는 금전적으로 넉넉한 생활, 명사들과의 알음알이 등을 바라는 사람들의 속물스러움과 저속함에 넌더리를 낸다. 그 모든 것들이 거대한 눈덩이처럼 몰려왔으며, 아내 바랴와 딸 리자를 포함한 그들 모두는 그 ‘눈덩이’에 깔려버린 것이다. 사람들에게 일상사가 되어버린 ‘무지와 무례한 행동거지’ 이 모든 것들 때문에 짜증이 날 뿐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자신을 또 책망한다. 증오하고 경멸하고 짜증내고 분노하고 두려워하는 모든 것들, 야비하고 의심 많은 자신의 성격을 바라보며 ‘노예에게나 걸맞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자괴감에 빠진다. 그런 그에게도 단 하나의 위안이 있으며 숨 쉴 곳이 있다. 바로 ‘까쨔’이다. 18년 전 그의 동료가 6만 루블과 함께 가짜를 남겨놓고 죽었다. 동료는 그를 까쨔의 후견인으로 지정해놓았고, 까쨔는 열 살 때까지 그의 집에서 함께 생활했다. 말하자면 그에게는 또 다른 딸과도 같은 존재이다.

까쨔는 그의 친딸과는 달리 이제는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그의 건강을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그의 친딸과 아내가 그에게서 경제적인 대가만 바란다고 분노하기도 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까쨔는 자신을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그런 존재이다. 그러나 호기심 많고 천진난만하던 까쨔에게도 이상 징후가 엿보인다.

까쨔는 사랑하고 있었고 자기 일을 믿었고 행복했다. 하지만 그 후로는 몰락의 분명한 징후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몰락은 우선 자기 동료들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 것으로 시작되었는데, 이는 몰락의 첫 번째이자 가장 사악한 전조였다. 만일 젊은 학자나 문필가가 자신의 업을 시작하는 마당에 다른 학자나 문필가를 신랄하게 비판한다면, 이는 그가 이미 탈진해 있으며 그 업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43쪽)

지금 까쨔는 우리 집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 방 다섯 개짜리 아파트를 빌려 자신의 취향에 따라 안락하게 꾸미고 살고 있다. 만일 누군가 그녀의 인테리어를 그림으로 그린다면 그림의 주된 기조는 나태가 될 것이다. 나태한 몸뚱이를 위한 부드러운 소파와 의자들, 나태한 발을 위한 양탄자, 나태한 시각을 위한 바래고 침침하고 광택 없는 색상들, 나태한 영혼을 위해 벽에 빼곡하게 걸린 싸구려 부채들, 기법의 독창성이 내용을 압도하는 자질구레한 그림들, 전적으로 불필요하고 무가치한 물건들이 들어찬 잉여의 선반과 작은 탁자들, 커튼 대신 사용된 형태 없는 천 쪼가리들……. 이 모든 것은 선명한 색상과 균형과 공간에 대한 두려움과 영혼의 게으름뿐 아니라 자연스러운 취향의 왜곡을 입증해준다. (46쪽)

현재 그녀의 표정은 오랫동안 기차를 기다려야 하는 승객의 표정처럼 차갑고 무심하고 산만하다. (47쪽)

아아, 인생이란 왜 이토록 아름답고 고귀하고 찬란했던 것들이 하나둘씩 부셔져만 가는 것일까? 인생이란 그런 과정을 아프고 고통스러워도 지켜봐야만 하는 것일까?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도 서서히 망가져 가고, 그 과정을 고스란히 감내해야만 하는 것. 그것이 인생이란 말인가? 그는 그래서 잠자리에 들어서는 뜬금없이 울기도 한다. 눈물을 흘리며 베개 속에 얼굴을 파묻는다.

나는 뜬금없이 눈물을 흘리며 얼굴을 베개 속에 파묻는다. 이 시간이면 누군가 방에 들어올까봐 두렵고 갑자기 죽을까봐 두렵고 내 눈물이 부끄럽다. 전반적으로 내 영혼 속에 무언가 견딜 수 없는 게 있다는 느낌이 든다. 더 이상 램프도 책들도 마룻바닥 위의 그림자도 거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도 참을 수가 없다. (57쪽)



<지루한 이야기>는 체호프의 단편치고는 꽤 길다. 중편에 속한다고 할까. ‘어느 노인의 수기’라는 부제와 제목처럼 어찌 보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노교수의 불평불만이 정말 지루하지나 않을까 염려되기도 한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체호프가 자신의 문학 10년을 결산하고 원숙기로 접어들면서 쓴 작품이니만큼 그 깊이와 울림은 남다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삶이, 인생이 어린 시절에 꿈꾸던 것만큼 아름답지도 찬란하지도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오히려 삶은 너무나도 가혹하고 비루하다. 눈부시게 빛나던 순간도, 그런 사람도 점차 퇴색해 간다. 그건 그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 자신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그렇다. 곱게 늙어가기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돌아보면 이 가혹하고도 시련으로만 이어진 듯한, 도무지 살아가기 어려운 것만 같은 인생에서도 분명히 한때는 빛나던 순간과 사랑하거나 아끼던 사람들이 있었다.

“아빠는 바닐라 맛이야” 라고 말하며 꺄르르 웃는 사랑하는 딸과의 행복한 추억. 이런 추억들이 누구에게나 하나씩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죽음을 앞두고 니꼴라이가 하는  ‘안녕, 나의 보석이여!’라는 말에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것이다. 우리 인생에는 보석 같은 순간이 분명히 있고, 언젠가는 그 보석을 보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옴을 모두가 알기에……. 체호프의 <지루한 이야기>에는 그 모든 것이 담겨있다. 안녕, 나의 보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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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2-10 1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개인적으로 서양문학사를 통틀어 최고의 단편소설 작가가 체호프, 오 헨리, 레이먼드 커버라고 생각합니다. 세 사람의 단편을 읽어보면, 여운이 남거나 생각거리가 생깁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읽게 만드는 매력이 있어요. ^^

잠자냥 2017-02-10 11:08   좋아요 0 | URL
체호프의 위대함은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 같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