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그렇지만 이 박물관에서 가장 좋은 건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제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자기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10만 번을 보더라도 에스키모는 여전히 물고기 두 마리를 낚은 채 계속 낚시를 하고 있을 것이고, 새는 여전히 남쪽으로 날아가고 있을 것이다. 사슴은 여전히 멋진 뿔과 날씬한 다리를 보여주며 물을 마시고 있을 것이고, 젖가슴이 드러난 인디언 여자는 계속 담요를 짜고 있을 것이다.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유일하게 달라지는 게 있다면 우리들일 것이다. 나이를 더 먹는다거나 그래서는 아니다. 정확하게 그건 아니다. 그저 우리는 늘 변해간다. 이번에는 코트를 입고 왔다든지, 지난번에 왔을 때 짝꿍이었던 아이가 홍역에 걸려 다른 여자아이와 짝이 되어 있다든지 하는 것처럼. 아니면, 에이글팅거 선생님 대신 다른 선생님이 아이들을 인솔하고 있다든지, 엄마하고 아빠가 욕실에서 심하게 싸우는 소리를 들은 다음이라든지, 아니면 길가의 웅덩이에 떠 있는 기름 무지개를 보고 왔다든지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늘 뭔가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 (중략)……
어떤 것들은 계속 그 자리에 두어야만 한다. 저렇게 유리 진열장 속에 가만히 넣어두어야만 한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잘 알고는 있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J.D.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164~ 165쪽)



며칠 전 늦은 밤 <호밀밭의 파수꾼>의 위 구절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흘렸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분명 10대였다.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처음 손에 들고 읽기 시작했던 그때는- 홀든과 비슷한 나이였을까? 아니면 더 어렸던 것 같기도 하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처음 읽던 그때, 비슷한 또래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이 작품이 그때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 크게 와 닿은 게 없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지금 이 나이에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며 밤에 운다. 홀든이 툭툭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 하나 하나가 가슴에 콕콕 박힌다. 나이를 거꾸로 먹나? 아니면 홀든이 느끼는 세상에 대한 분노나 낭패감, 절망감 같은 것을 이제 내가 너무도 잘 알아서 더 깊이 공감하게 된 것일까? 어쩌면 성인 샐린저가 쓴 작품이라 10대의 시점보다는 어른의 관점이 녹아 있기에 성인에게 더 와 닿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해간다. 홀든이 찾아간 박물관 유리 진열장 속 모형들만이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킨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그것들은 그대로다. 그러나 세상의 다른 것들은 그와 다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간다. 절대로 변하지 말아야 할 것조차 쉬이 변한다. 그것들을 모두 붙잡아 유리 진열장 속에 보관할 수도 없다. 그저 변해감을 지켜봐야만 한다. 이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그 안타까움과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마음이 시리다.

호밀밭에서 노는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까봐 그들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는 홀든- 홀든이 지키고 싶은 것은 단지 그냥 아이들만은 아니리라. 아이들이 지닌 상징성- 순수함일 수도 있고 위선과 가식이 없는 세상일 수도 있다. 홀든 콜필드는 그런 세계를 꿈꾸고 그런 세계를 지키고 싶어 하지만 이 세상은 그렇지 않다. 그렇기에 이 못난 소년은 쉽게 상처받고 부적응자로 낙인 찍혀 이 학교, 저 학교 전전하는 인생이 된다.

언젠가는 학교가 아닌 사회로 나가야만 하는 홀든의 삶은 그래서 더 만만치 않아 보인다. 그리고 그런 홀든의 모습에서 나,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이도 아닌, 그렇다고 어른은 더더욱 아닌 것만 같은 어정쩡한, 영원히 어정쩡할 것 같은 ‘어른아이들’의 모습이….. 이 ‘어른아이들’에게 <호밀밭의 파수꾼>은 눈이 아닌 마음으로 읽히는 굉장한 작품이다.

“지금 네가 떨어지고 있는 타락은, 일반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좀 특별한 것처럼 보인다. 그건 정말 무서운 거라고 할 수 있어. 사람이 타락할 때는 본인이 느끼지도 못할 수도 있고, 자신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거야. 끝도 없이 계속해서 타락하게 되는 거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인생의 어느 순간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환경이 줄 수 없는 어떤 것을 찾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네가 그런 경우에 속하는 거지.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이 속한 환경에서 찾을 수 없다고 그냥 생각해 버리는 거야. 그러고는 단념하지. 실제로 찾으려는 노력도 해보지 않고, 그냥 단념해 버리는 거야.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니? (같은 책, 247~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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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9-07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소설이 열린 결말이라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어요. ^^

잠자냥 2016-09-07 17:16   좋아요 0 | URL
어릴 때 읽었을 땐 왜 이 책을 그렇게 칭찬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던데(아마 그때 읽었던 판본의 번역 문제도 있었으리라 생각해요. ㅎㅎ) 어른이 되고 나서 읽으니 아아... 이래서... 싶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