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궁금하다. ‘삶이란 행복한 것 같아요? 행복하기 보다는 슬픈 것 같아요?’라고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대부분은 어떻게 대답할까?
돈이 많고 건강하고 권력도 있고 명예도 있고 이런 것들을 다 가진 사람이라면 사는 게 행복할까? 반대로 그렇지 못한 이라면 사는
게 늘 불행할까? 사람의 평생을 80년이라고 가정한다면 80년 내내 행복한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아주 어릴 적에
‘새옹지마’라는 고사 성어를 알고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정말 사람 사는 건 좋을 때도 있지만 결국엔 나쁠 때도 늘 뒤따라오는 것
같다고…. 그러니 지금 아무리 좋거나 행복하다 한들 언젠간 그 행복도 조금씩 사그라질 것이고 불행하다 한들 다시 행복의 기운이
찾아올 것이라는….
굳이 삶을 행복과 슬픔, 두 가지 중 하나로 정의하라 한다면 난 그런 것 같다. 산다는 건
기본적으로 슬픈 가운데 가끔 행복이 찾아오는 게 아닐까. 태어나자마자 죽어가니까 삶은 슬프다(하지만 죽음이 꼭 슬픔인가? 하고
묻는다면 또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어떤 의미로 죽음을 '해방'이라고 생각한다면 죽어가는 과정이 모두 슬픈 것만은 아닐
것이다). 아등바등 살아봐야 결국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삶은 슬프다. 내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한들 그
사람도 ‘지금’ 결국은 죽어가고 있는 것이며 나 또한 그렇다. 그러나 그 죽어가는 길 사이사이에 행복과 웃음이 찾아온다. 흐린
날이 있지만 반짝반짝 해가 비치는 날도 있는 것처럼. 삶은 그래서 그런 순간을 되도록 많이 간직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은 아닐까.
그래서 죽음이 임박한 순간 자기 삶을 되돌아 볼 때 햇빛이 비치던 때가 더 많았다고 기억한다면 그 삶은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물론 늘 그렇게 빛나는 때를 찾는 것도 어렵다. 하루 24시간 일년 열 두 달 환하게 빛나기만 한다면
그 빛의 소중함도 모를 뿐,더러 너무 눈부셔 그늘로 도망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평온한 삶이란 기본적으로는
슬프지만 찬 이슬 보다는 따뜻한 온기가 베어 나오는 쪽에 몸과 마음을 두고 있는 상태는 아닐까 싶다. 내게는 체호프의 작품이 딱
그런 느낌이다. 체호프의 단편을 읽다 보면 ‘삶이란 사실 무척 슬픈 거란다. 살기 힘들지? 힘든 게 당연한 거야. 산다는 건 정말
고달픈 일이거든. 하지만 늘 그렇게 힘들기만 한 건 아니야. 가끔 좋은 일도 생기지. 그렇다고 그 좋은 일만 목이 빠져라 기다릴
수는 없어. 언제 찾아올지도 모르고 찾아와도 정작 본인은 모르고 지나갈 때도 많거든. 그러니까 그저 담담한 상태로 살아가는 게
가장 좋은 거야. 그래야지 불행이 찾아왔을 때도 크게 좌절하지 않을 수 있고 반대로 행복이 찾아왔다가 사라질 때도 크게 낙담하지
않을 수 있어.’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에는 이 작품 외에 ‘굽은 거울’ ‘어느 관리의
죽음’ ‘마스크’ ‘애수’ ‘하찮은 것’ 등 17편 정도의 단편이 실려 있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은 맨 끝에 실려
있는데 나는 이 작품부터 읽었다. 예전에 본 영화 <더 리더>에서 마이클이 한나에게 이 작품을 읽어주는데 한나가 무척 좋아한
기억이 나서 먼저 읽어보고 싶어졌다. 읽고 나니 한나가 왜 그렇게 이 작품을 좋아했는지, 왜 이 작품에 몰입했는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무척 아름답고 슬프고 애잔한 작품이었다.
바닷가 휴양지에서 구로프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흥미롭게
바라본다. 점차 그 여인에게 빠져 휴양지에서 하룻밤 정도 상대를 하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고 개를 데리고 산책을 다니는 부인
‘안나’와 그런 사이가 된다. 구로프도 그렇지만 안나 역시 결혼한 사람이다. 휴양지에서의 하룻밤 정도로 생각한 사이였는데 현실로
돌아와 보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 둘 모두 깨닫는다. 환상, 꿈 혹은 신기루처럼 여겨졌던 휴양지에서의 생활이 현실 생활의
그것보다 더 값어치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들은 비밀스러운 둘만의 생활을 계속 위태롭게 유지한다. 남들이 보는 진짜 삶은
따로 있지만 구로프와 안나에게는 둘이 은밀히 만나는 작은 호텔방이, 그 호텔방에서의 짧은 시간이 진짜 삶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구로프도 안나도 알 수 없다. 누구도 알 수 없다. 그 둘의 만남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정말 의미
없는 매일 밤이고, 흥미도 가치도 없는 나날들이다! 미친 듯한 카드놀이, 폭식, 폭음, 끝없이 이어지는 시시한 이야기들.
쓸데없는 일과 시시한 대화로 좋은 시간과 정력을 빼앗기고 결국 남는 것은 꼬리도 날개도 잘린 삶. 실없는 농담뿐이다. 정신
병원이나 감옥에 갇힌 듯 벗어날 수도 도망칠 수도 없다!’고 외치던 구로프의 삶이 안나를 만나 그녀와 함께 있는 동안은 의미를
찾는다. 하지만 그들의 진짜 삶은 둘만 알 뿐이고 그 둘 모두 누군가에게 미친 듯이 자신들의 진짜 삶을 이야기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구로프는 ‘누구나 밤의 덮개 같은 비밀 아래서 자신만의 가장 흥미로운 진짜 생활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자신이
그런 것처럼.
구로프 자신의 진짜 삶은 호텔 방 안에 깊숙하게 숨겨둔 채 거짓된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그 진짜 삶
또한 언제 어떻게 부서질지 모른다. 그런 불안한 상태이기는 하지만 남들보다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실없는 농담
같았던 시시했던 그의 인생에 안나라는 볕이 들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언젠가는 사라질지 모르지만…. 이점은 안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 진짜 삶을 지켜가기 위한 안나와 구로프의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눈물겹기도 하다. 그늘진 방에 슬며시 들어온 햇볕을 붙잡아
두기 위한 노력…. 현실은 무겁고 고단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행복한 순간이 찾아왔다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비록 인생은 슬프고 우울함으로 가득 차 있지만 따뜻한 쪽에 몸을 많이 두고 있으면 행복하다 여길만한 그런 것이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체호프의 작품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우울한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지만 묘하게도 절망하거나
낙심하게 되지는 않는다. 비루한 현실 속에서 돈을 벌고자 한때는 농담처럼 가벼운 단편을 써댔던 체호프. 슬플 때도 웃음이 터지는
순간이 있음을 알고 있던 그였기에 이런 작품들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