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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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데라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보다는 <농담>이 훨씬 낫지 않나 싶다. 게다가 <농담>이 그의 첫 작품이라는데 놀라움은 더욱 크다. 첫 작품으로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니 부럽고 대단하다. 글쓰기는 노력하면 된다지만 작가적인 재능도 실은 타고 나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농담>은 농담이 전혀 용납되지 않던 시대의 이야기다. 공산주의 시절 체코에서 주인공 루드빅은 말 한마디 잘못해서 회색분자로 찍혀 심한 인생의 굴곡을 겪게 된다. 가벼운 말장난, 혹은 젊음의 치기어린 행동이 전혀 용납되지 않는 경직된 공산주의 시대의 체코, 어떤 강요된 주의(ism)에 희생당하는 개인의 인생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루드빅은 애초에 그런 농담을 하지 않았어도 그래서 당에서 축출되지 않았더라도 열렬한 공산주의자로 살지는 않았으리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살기에 그는 처음부터 너무나도 짙은 ‘회색형’ 인간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상에도 깊이 빠져들 만한 인간 유형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런 인간임에도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공산당원이 되었고 열렬하게 그 사상을 전파하던 시절도 있었다. 어디 루드빅만 그러할까, 사람들에겐 누구나 한번쯤은 그런 시기가 있다. 어떤 사상이나 사물, 현상, 사람에 빠져 버리는 시기. 이것은 우정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빠져버린 순간을 돌이켜보면 어이없을 정도로 별다른 계기가 아닐 때가 많다.

‘사랑이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결정적 계기들이 언제나 극적인 사건들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며, 처음에는 전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보이던 상황들이 그런 계기가 되는 수가 종종 있는 법이다. (129쪽)’처럼 어떤 사상, 사람에 빠져버리는 순간은 특별하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 빠져버린 뒤에 사람들은 그 사상이나 사람을 특별한 것처럼 만드는 작업을 하게 된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들을 잘 한다. 나는 사랑이 자기 자신의 전설을 만들어낸다거나 그 시작을 나중에 신비화시키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100쪽)’처럼-

루드빅이 공산주의에 매료 되었던 순간을 돌이켜 보자. 그는 아버지 없는 집안에서 자랐고 그의 재능을 탐냈던 친척의 지원을 받아 생활한다. 하지만 그 집안의 부르주아적인 분위기에 반발감을 느끼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공산주의에 매료된다. 커다란 계기가 있는 게 아니었다. 루드빅만 그렇지 않다. 이 작품 속 개개인들이 어떤 사람에게 반해서 그 또는 그녀와 사랑에 빠지거나 혹은 어떤 사상에 빠지는 순간은 모두 하나 같이 특별하지 않다.

그렇게 시작된 사랑이나 신념이 특별하다고 끊임없이 재포장하면서 이들의 인생은 굴곡을 겪게 된다. 나에게 좋으니까 상대에게도 좋다고 생각하는 신념(이념), 사랑(애정) 등이 상대에게는 그렇지 않기에 인생이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나 내게 좋은 것이 타인에게도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깨달았다고 여기더라도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농담>은 보여준다(루치에의 비밀을 알게 된 후에도 여전히 루치에의 상황을 자기 좋을대로 해석하는 루드빅의 모습을 보며 어쩌면 인간은 영원히 서로 소통 불가능한 존재가 아닐까 싶어진다). 사람과 주의(ism) 사이에서도 진정한 소통은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진정한 소통은 존재하지 않는다.

루드빅은 자신이 믿었던 신념에 배반당하고 야로슬라브는 전통적 가치를 지키려고 애쓰다 상처받는다(그리고 또 어떤 의미로든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그 전통적인 가치 때문에 상처를 준다). 코스트카는 기독교와 사회주의의 닮은꼴 때문에 사회주의에 경도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회색분자 취급을 받게 된다. 헬레나와 루치에는 사랑한다고 믿었거나 자신을 아낀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무참히 상처를 받는다.

‘이 지상에서 하느님께 속한 모든 것은 동시에 악마에게도 속할 수 있다. 사랑의 행위를 하고 있는 연인들의 동작까지도. (324쪽)’ 라는 구절처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유형의 신념이나 주의, 행동, 사랑, 애정 등등 인간이 만들어 내는 모든 문화적 산물과 감정의 씨앗들은 때로는 선(善)이 될 수도 있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악(惡)이 될 수도 있음을 <농담>은 보여준다.

그렇기에 ‘사랑하기 때문에’라고 강요된 행동이나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타인에게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사랑하고 따랐던 신념이, 사람이 우리를 배반하고 그래서 우리가 상처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 상처는 우리 내부에서 생겨났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소통능력은 인간이 자신이 우월하다고 여기는 것만큼 뛰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소통하는 법을 모르는 한 인간은 영원히 고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를 외롭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친구이므로. (227~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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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16-06-10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쿤데라 가운데 <불멸>을 제일 재미나게 읽었습지요.
원래 잡것이라 <농담>에서도 여배우 있잖아요. 그 여자가 약 먹고 벌어지는 광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군요. ㅋㅋㅋㅋㅋ

잠자냥 2016-06-10 16:18   좋아요 0 | URL
네~ <불멸>도 재미나고, 말씀하신 그 장면도 무척 생생, 흥미롭지요. 그렇게 생생하게 인상적으로 쓸 수 있다니 참 쿤데라는 쿤데라입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