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를 장식한 사진에서 알 수 있듯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은 원작소설보다 영화가 더 유명하다. 저 소녀의
얼굴은 내가 영화를 본지 십 년 이상 지났는데도 여전히 생생하다.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쓰고 배 위에서 강 어딘가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소녀의 모습. 이제 생각해보니 영화 속 그 이미지는 이 소설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고등학생 때 영화 <연인>을 봤다. 영화는 당시 파격적인(?) 섹스신이 많다는 이유로 당연히 미성년자관람불가였다. 그런
영화를 미성년의 신분으로 볼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비디오’가 존재했기 때문. 어른들이 집을 비운 친구네 집에 삼삼오오 모여 이
영화를 봤다. 같이 보던 아이들은 중간 중간 하나둘씩 쓰러져 잠들어버렸다. 우리가 그때 기대했던(?) 그런 영화가 아니었으리라.
‘야하긴 뭐가 야해! 지루하기만 하다!’며 볼멘소리를 하며 쓰러져 잠이 들어버린 아이들. 하지만 그때 우리는 알고 있었다.
‘하나도 안 야하다’는 그 투덜거림은 실은 ‘너무 야한 영화’를 봐버린 아이들의 방어기제였다는 것을. 아니면 왠지 어른인 척 하고
싶던 치기 어림이었다는 것을.
그즈음 나는 영화 속 중국인과 백인 소녀의 관계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저게
사랑인가?’ ‘단순한 육체적 호기심인 걸까?’ ‘사랑이 저런 것이라면 차라리 하지 않을게 낫겠다.’ 등등. 세월이 흘러 원작
소설을 읽고 나니 얼핏 중국인 남자와 백인 소녀의 그 마음이 헤아려지기도 한다. 15세 소녀를 처음 보자마자 반해버린 중국인
남자, 그 소녀 앞에서는 한없이 비굴해지는 그 남자, 그 남자의 마음은 물론 ‘사랑이 아니’라고 부인하던 소녀의 마음까지도 결국은
‘사랑’이었음을.
이 소설에는 이른바 ‘정상’적인 인물이 한 명도 없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분신인 ‘소녀’는
15세라는 어린 나이에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중국인 남자와의 섹스에 탐닉한다. 중국인 남자 또한 이 어린 소녀를 잃을까
전전긍긍하며 지나치게 집착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비정상’적인 것은 소녀의 가족이다. 특히 ‘엄마’와 ‘큰오빠’- 엄마는
‘소녀’를 비롯하여 세 명의 자식 중 오로지 ‘큰아들’에게만 기형적인 사랑을 베풀며 나머지 자식들에게는 ‘억압’만이 있을 뿐이다.
왜곡된 사랑 때문에 점점 망나니가 되어가는 ‘큰 오빠’와 그 틈에서 질식사할 것 같은 나약한 ‘작은 오빠’- 소녀는 작은 오빠에
대한 한없는 연민과 큰 오빠를 죽이고 싶은 증오감으로 삶을 버티는 듯하다. 정신병이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엄마는 한 술 더 떠
소녀가 중국인 남자와 비정상적인 관계라는 것을 알면서도 부유한 중국인 남자의 돈이 탐이나 그 관계를 묵인한다.
가족에 대한 증오와 혐오가 극에 달해 있을 때 소녀는 중국인 남자를 만났고 그와의 관계에 탐닉한다. 일종의 도피처이자 탈출구로 그를
찾는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에 대해 깊은 대화도 나누지 않고 오로지 섹스만 할 뿐이다. ‘이건 절대 사랑’이 아니라며 소녀는
때때로 중국인 남자를 가학적으로 대하기도 한다. 가족 앞에서 그를 경멸하는 듯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억압을 받던 사람이 다른
이에게 가해자가 된다. 그렇게 가해자로 굴던 소녀는 남자에게 자기를 괴롭혀 달라고 애원하기도 한다. 마치 곪을 대로 곪은 상처를
그렇게 터뜨려 버리기라도 할 기세로. 그런데도 남자는 그저 소녀를 잃을까 두려울 뿐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포기할 수
없었던 중국인 남자와 프랑스 본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던 소녀가 결국 이별하는 장면은 퍽 쓸쓸하다. 피난처를 잃어버린 아이,
안식처를 빼앗긴 아이, 일생의 단 하나의 사랑을 그저 황망하게 떠나보내는 남자. 그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살아도
살아가지 않는 것처럼 살지도 모르는 삶.
‘슬픔이 내 연인’이라고 말하던 소녀는 남자와 헤어진 뒤 ‘사랑은
아니’라고 말했던 그 감정이 얼핏 사랑과 닮았음을 깨닫는다. 배 위에서 허망한 눈으로 강 너머를 응시하던 소녀. 소녀가 그토록
바라보던 것은 강 너머에 있을지도 모르는 다른 세상이었고, 그 세상은 결국 중국인 남자와 함께 했던 그 짧은 순간은 아니었을까.
벗어나고 싶은 현실, 도망치고 싶던 가족의 굴레에서 잠시라도 그 피난처가 되어주었던 중국인 남자는 뒤라스에게 그래서 ‘첫사랑’의
모습으로 영원히 기억되고 있으리라.
나는 항상 얼마나 슬펐던가. 내가 아주 꼬마였을 때 찍은 사진에서도 나는 그런 슬픔을 알아볼 수 있다.
오늘의 이 슬픔도 내가 항상 지니고 있던 것과 같은 것임을 느꼈기 때문에, 너무나도 나와 닮아 있기 때문에 나는 슬픔이 바로 내
이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나는 그에게 말한다. 이 슬픔이 내 연인이라고, 어머니가 사막과도 같은 그녀의 삶 속에서 울부짖을
때부터 그녀가 항상 나에게 예고해 준 그 불행 속에 떨어지고 마는 내 연인이라고. (56~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