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무법자
크리스 휘타커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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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반전의 이야기
<나의 작은 무법자>, 나에겐 반전의 책이었다. 그것도 아주 예상 밖의 반전. 물론 작품 자체로도 반전은 있다. 그런데 나는 정말 뜻밖으로 이 작품을 읽다가 막판에 울컥해서 눈물을 흘렸다. 내가 장르소설을 읽다가 울다니!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말 울컥해져서는 두 눈이 벌겋게 되고 눈물도 맺힌 작품. 여름이니까 가벼운 책 좀 읽어볼까 싶어서 선택했던 책. 처음에는 심드렁했다. 몇 페이지 읽으면서 역시 나는 장르소설에선 큰 재미를 못 느끼는구나, 책장은 슬렁슬렁 넘어갔다. 

<나의 작은 무법자>라는 제목부터 뭐랄까 예상 가능하다. 아니나 다를까 초반에는 조금 그렇게 흐른다. 어린 소녀가 사라지고 그 실종된 소녀를 죽음으로 몰아간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지는 선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실종 소녀의 이름은 “시시 래들리”- 이윽고 실종된 소녀는 주검으로 나타나고 소녀를 잃어버린 가족의 아픔과 고통이 그려진다. 그런데 이 고통은 아주 깊고 오래도록 이어진다, “나의 작은 무법자”에서 스스로 무법자라 칭하는 소녀 ‘더치스’는 오래전 죽은 그 소녀의 조카이다. 더치스의 엄마 ‘스타 래들리’는 죽은 ‘시시’의 언니. 래들리 집안에는 이 죽음의 그림자가 너무나 짙어서 현재의 가족도 붕괴 직전이다. 술과 약에 빠져서 자신을 방치하듯 사는 엄마 스타. 그런 집에서 엄마뿐만 아니라 동생 로빈까지 돌봐야 하는 더치스, 그리고 이 작은 무법자 곁에는 과거 사건의 목격자이자 스타의 소꿉친구이기도 한 ‘워크’가 있다. 그는 현재 이 마을의 경찰 서장으로 이 무법자 꼬마 집안을 계속 돌봐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등식이 자연스레 성립하게 된다. 작은 무법자는 더치스이고, 이 무법자를 돌봐주는 사람은 워크이겠구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에 스스로 그 기억에 갇혀 줄곧 이 집안을 돌봐주는 워크와 더치스의 이야기려니 싶어진다. 

실제로 그런 면도 없잖아 있다. 저마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안고 사는 스타와 워크. 한 사람은 완전히 망가진 삶을 살고 있고 한 사람은 경찰 서장이 되어 마을의 정의를 지키는 일에 자기 생을 갈아 넣고 있다. 거의 집착적으로…. 둘 다 피해자이면서도 고통에 대응하는 방식은 이토록 다르다. 한 사건에 연루된 이 두 사람의 삶이 어쩌면 이렇게 극명하게 다를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삶을 방기하다시피 한 스타와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여전히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트라우마를 감추고자 약에 의존하는 남자 워크. 30년 전의 일이라면 이제 벗어날 만도 한데 이 두 사람은 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까지 잃어버린 채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거기에는 ‘빈센트 킹’이라는 이름의 한 남자, 그 시절 소년이었던 남자가 끼어 있다. 그러니까 스타와 시시, 워크와 빈센트는 모두 한 동네 사는, 어린 시절부터 잘 알고 지내는 가까운 사이였다. 그런데 우연한 사고로 빈센트가 시시를 죽음으로 몰아갔고, 이 실수 때문에 죽은 시시를 비롯해 워크, 스타, 워크와 헤어진 마사까지 자신의 인생을 자기 의지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그 고통은 그들 대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열세 살의 어린 소녀 더치스와 소녀의 동생 ‘로빈’에게까지 이어진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일까. 워크는 정의감 때문에 절친 빈센트를 신고했다는 죄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빈센트는 살인자이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큰 피해자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단 한 번의 실수가 그토록 많은 것을 앗아가게 될 줄은 그 자신도 몰랐으리라. 

그 빈센트가 30년이 흐른 지금 풀려나 살인이 일어났던 이 마을로 돌아온다. 무법자 더치스는 술과 약물에 빠진 엄마도, 동생 로빈도 지켜야 한다. 엄마를 이렇게 만든 세상, 가족을 이토록 절망에 빠뜨린 세상과 사람들을 향한 증오 때문에 미움으로 똘똘 뭉친 이 꼬마 무법자가 과연  그 깡과 독기만으로 엄마와 로빈을 지킬 수 있을까? 어린 소녀 혼자 맞서기에는 이 나약한 가족을 노리는 검은 그림자의 손길은 예상 밖으로 많다. 미모의 스타에게 추근거리는 남자들마다 왠지 다 이 가족을 위협할 것만 같다. 실제로 이런저런 불길한 사건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끝끝내 또 한 번의 살인이 일어난다. 이 참혹한 세상에서 더치스와 로빈은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위태위태한 워크의 보살핌도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결국에는 사랑인 이야기
내가 울컥 눈물을 흘린 부분은 결국에는 그 엄청난 사랑 때문이었다. 이십 년이 넘도록, 도저히 불가능해 보일 것 같은 상황에서도 지켜나갈 수 있었던 사랑.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싶어져서 지금도 숙연해진다. 이 작품을 잘 들여다보면 결국 그 사랑에 견줄만한 또 다른 사랑들이 곳곳에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린 시절 친구인 빈센트를 향해 가진 죄책감과 그 죄책감에서 비롯되어 래들리 일가를 내내 돌보아준 워크의 사랑도, 그런 워크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지만 끝내 놓을 수 없었던 마사의 사랑도, 시시의 죽음으로 인해 멀어졌지만 마침내는 더치스와 로빈을 돌보면서 애틋함을 느낀 핼의 사랑도, 나쁜 놈으로만 그려지는 다크의 그 사랑조차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이 애처롭기만 하다. 

무엇보다도 열세 살 어린 나이에 일찌감치 세상의 참혹함을 알아버린 더치스, 동생만큼은 이 세상의 비정함에서 떼어놓고자 스스로 강해져야만 한다고 다그치던 더치스, 또래 소녀들처럼 좋아하는 소년과 무도회에 가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마땅했을 이 소녀, 더치스의 로빈을 향한 사랑은 가장 안타깝고도 처연하다. 그러나 결국 이 절절한 사랑들, 자신의 생(生) 어느 틈엔가 비뚤어져 버린 그 인생에서도 다른 사람 생각하기를 놓지 못한 이 사랑들에서 죄에 대한  용서와 구원, 그리고 결국 스스로를 향한 구원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말한다. “희망은 세속적인 것”이라고 “삶은 쉽게 깨지고, 우리는 이따금 너무 꽉 매달린다”고 “부서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p.220). 그 희망은 바로 사랑이었으리라. 어린 로빈은 삶의 의미를 “자기를 보호해줄 만큼 아까는 사람이 있는 거”(p.363)라고 말하기도 한다. 더치스와 로빈, 스타, 워크, 빈센트, 마사, 핼… 그들은 모두 스스로는 잘 몰랐을 테지만 어떤 의미로든 그 한 사람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의 작은, 그렇지만 커다란 구원자를 지녔던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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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5-07-15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것은... ##리뷰 글입니까? +_+
간만에 긴 글 반가워요!

잠자냥 2025-07-15 16:13   좋아요 1 | URL
제가 요즘 ㅋㅋㅋㅋ 어디선가 밝힌 적이 있지만...(다락방 서재에 댓글이었나??) 한 달에 한 개만 써도 이달의 당선작으로 뽑아주더라고요....? 그래서 한 달에 한 개만 쓰기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5-07-15 16:25   좋아요 1 | URL
와 이 자신감... 100%의 당선율이군요 ㅋㅋㅋ
알라딘은 조금 덜 뽑아서 잠자냥님이 글을 많이 쓰게 해달라!!

잠자냥 2025-07-16 15:41   좋아요 1 | URL
긴 글 또 써써........

건수하 2025-07-16 19:05   좋아요 0 | URL
잘해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