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과 이바나의 경이롭고 슬픈 운명
마리즈 콩데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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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다른 이의 마음을 헤아리게 해줄 뿐만 아니라 낯선 장소와 사건, 잘 알지 못했던 장소로 이끌어주기도 한다. <이반과 이바나의 경이롭고 슬픈 운명>을 읽으며 나는 스마트폰으로 ‘과들루프’를 검색해 그 나라의 위치와 역사 등을 짧게나마 살펴보고 책 속으로 돌아갔다. 과들루프는 카리브해에 위치한 프랑스의 해외 영토이다. 지도를 넓게 펼쳐서 대서양, 카리브해 연안의 과들루프에 이어 아프리카의 말리를 건너 프랑스까지 한눈에 살펴보니 얼핏 삼각형을 이룬다. 말리 또한 한때 프랑스의 지배를 받던 곳이다. 그리고 이 삼각형은 쌍둥이 남매 ‘이반’과 ‘이바나’가 태어나 성장하고 성인이 되어 각자의 삶을 살아간 여정이기도 하다.

이반과 이바나, 두 남매는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이다. 엄마인 시몬의 자궁 속에서 열 달 동안 꼭 붙어 지내다가 울음소리와 함께 각자의 삶으로 던져지지만, 아직은 그 세상이 낯설기만 해 여전히 서로를 껴안고 잠든다. 아버지는 없다. 시몬도 이반과 이바나가 태어남으로써 그녀 주변의 많은 여자들처럼 미혼모가 된 것이다. ‘왜 어떤 땅은 유독 다른 땅보다 미혼모들로 넘쳐날까? 그곳 여자들이 더 예쁘고 더 유혹적이어서? 그곳 남자들의 피가 더 뜨거워서? 그 반대다. 오히려 극심한 곤궁에 처한 곳이어서다. 성행위만이 유일한 기쁨인 곳. 그곳에서는 성행위를 통해 남자들은 위업을 달성한 듯한 느낌을 받고, 여자들은 사랑받는다는 환상을 얻는다.’(56쪽)

시몬은 남매에게 이반과 이바나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이반, 온 러시아를 다스린 차르의 이름이며 이바나는 그 이름의 여성형이다. 아이들이 그렇게 세상에서 중요한 존재가 되어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과 달리 현실은 척박하기만 하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남매의 어린 시절은 나름 행복하다. 어머니의 무한한 애정과 카리브해 지역의 찬란한 햇살, 눈부신 바다 등 세상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 행복은 그들이 자라남에 따라 서서히 균열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은 미혼모의 자식인 데다가 피부색이 검다. 게다가 이 과들루프는 한때 프랑스의 식민지였고, 이제는 해외 주(州)가 되었지만 본토에 비해 극심하게 소외되고 궁핍한 땅이다.

이곳에서 힘 있는 자들은 모두가 본토에서 온 사람들이고, 이반과 이바나처럼 피부색이 짙은 이들은 허드렛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두 아이는 자신들의 피부가 검고 곱슬머리라는 것을, 어머니가 형편없는 보수를 받으며 밭에서 지치도록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걸 단번에 깨닫는다. 그리고 이 사실은 남매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긴다. 그들은 저마다 결심한다. 그러나 제아무리 사이좋은 쌍둥이라도 같은 상황을 보고 느끼는 것과 다짐은 꽤 다르다. 이바나가 사회에 순응해 그 안에서 자기 삶을 좀 더 낫게 꾸려가고자 애쓴다면 이반은 자신을 가난뱅이에 검은 피부로 태어나게 한 운명을 저주하고, 분노에 사로잡혀 반항한다. 물론 거기에는 이반을 향한 뜻하지 않은 일련의 사건들이 크게 영향을 준다.


거짓과 신화, 가식은 무너졌다. 그는 부당하고 독단적인 제국주의적 지배력 아래 보낸 세월로 인해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기는 폐해들이 초래됐다는 걸 깨달았다. (67쪽)

이 나라를 떠나야 해. 여긴 독창적인 것이라곤 창조된 적이 없고, 좋은 건 아무것도 나올 수 없는 유럽의 한 속국일 뿐이야. 유럽으로 가서 거기서 자본주의의 심장부를 쳐야 해. 이반은 완전히 납득하지 못한 채 그의 말을 들었다. 유럽으로 가기를 바랐지만 자본주의를 파괴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더 나은 삶, 그가 과들루프와 말리에서 경험한 것보다 나은 삶의 조건들을 찾기 위해서였다. (123쪽)


이반과 이바나는 더 나은 삶을 찾아 과들루프를 떠나 아프리카의 말리, 그리고 마침내 수많은 역경을 거쳐 본토인 프랑스에 도착한다. 이 두 남매는 정말로 가난을 벗어나고 자기들이 각자 결심했던 것처럼 엄마를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게 해줄 만큼 성공할 수 있을까? 사실 이 책의 제목에서 그럴 수 없음을 독자는 알아차릴 수 있다. ‘슬픈 운명’이라는 단어가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반과 이바나 남매의 남다른 애정은 삶의 매고비마다 힘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각자에게 독이 되기도 한다. 서로를 향한 자신들의 애정이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바나가 이반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할수록 이반은 뜻하지 않은 사건에 계속 휘말리고, 그럼으로써 이 둘의 운명은 엄마의 자궁 속에 있었을 때와는 전혀 상반된 길을 걸어가게 된다.


“두 아이는 서로 너무 좋아해서 해치지 못해요.” 그녀는 사랑이 반反-사랑만큼이나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어느 위대한 아일랜드 작가가 이렇게 노래했다는 걸, “누구나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죽이지.”(57쪽)


사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반과 이바나의 비정상적인 관계에 당혹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리 쌍둥이로 태어난 사이좋은 남매라지만 근친상간에 가까운 애정을 느끼는 그들의 모습에서 사뭇 불쾌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반과 이바나 뿐만이 아니라 이 작품에서는 또 다른 인물들이 그런 관계로 등장하기도 해서 작가 마리즈 콩데는 이런 독특한 관계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계속 질문하게 된다, 마리즈 콩데는 샤를리 에브도 테러 발생 전후로 일어난 산발적인 테러 사건 중 한 사건에 특히 주목했다. ‘아메디 쿨리발리’라는 말리 출신 테러리스트가 갓 임용된 마르티니크 출신의 스물여섯 살 여성 경찰관 ‘클라리사 장필립’을 파리 근교 몽루주에서 총으로 저격해 사망에 이르게 한 극단주의 테러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검은 피부를 가진 테러리스트에게 희생당한 검은 피부의 여성 경찰관-한 사람은 한때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말리 출신이고 나머지 한 사람도 여전히 프랑스의 해외 레지옹의 하나인 마르티니크 출신이다. 그리고 그 사고를 접한 마리즈 콩데 그 자신도 프랑스령 과들루프에서 태어났다. 작가는  이 테러 사건에 얽힌 인물을 중심으로 상상을 더해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똑같이 검은 피부를 지닌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이슬람 극단주의자 테러리스트로, 한 사람은 그런 테러리스트에 맞서는 경찰관으로 대치하다 프랑스 땅에서 목숨을 잃었다. 같은 아프리카 땅에 뿌리를 두고 있을 그들이 그렇게 대치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이반과 이바나처럼 한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서로 다정히 지내다 한날 한시에 태어났어도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그들에게 주어진 환경에 따라서 얼마나 삶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반이 깨뜨려버리고 싶던 그 사회에 나날이 더 순종적으로 변해간 이바나의 선택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세상을 향한 분노만을 품은 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로 변모해간 이반의 삶이 잘못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이 부조리한 삶을 잉태하게 한 세계 자체가 잘못된 것인지 판단은 이 책을 읽는 이들 저마다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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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2-01-21 2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페이퍼 누워서 폰으로 읽다가 제대로 읽으려고 맥북 켰다. 페이퍼만으로도 압도되는 어떤 지점이 있네요. 굉장히 강렬한 소설일 것 같고. 소설의 세계는 참 멋진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들에 접속하는 거 좀 두렵지만 언젠가는 꼭 ___++

잠자냥 2022-01-22 13:06   좋아요 1 | URL
누워서 맥북으로 읽지 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01-22 13:48   좋아요 1 | URL
맥북을 눕히는 게 더 일이여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