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페션 - 두 개의 고백 하나의 진실
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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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내 나이에 벌써 자식이 있었다. 나는 아직도 내 몸 하나 건사하는 일도 벅차고 가끔 고양이가 조금 아프기라도 하면 녀석 걱정에 삶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정신력이 약한데, 내 나이에 인간을 키운다는 것, 한 아이, 아니 여러 아이의 엄마가 되어 살아간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때때로 상상해 보지만, 나로서는 쉬이 짐작할 수 없는 삶이다. 엄마에게도 엄마이기 이전의 삶이 분명 있었겠지, 결혼 전에 나름대로 하고 싶던 일도 있었을 테고, 그 일로 무언가를 성취하는 꿈을 꾸기도 했고,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고 그런 삶이 있었겠지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어쩐지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을 것만 같다. 그럴 정도로 엄마의 엄마가 되기 전의 삶은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제시 버튼의 <컨페션>을 읽는 내내 참 이상하게도 언젠가 보았던 엄마의 스무 살 시절, 그 앳된 사진이 떠오른다.

 

세세한 내용을 모른 채 읽기 시작한 <컨페션>. ‘엘리스가 한 남자를 소개 받아 그를 기다리다가 만나지 못하는 장면이 그려지기에, ,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는 그런 평범한 이야기인가보다 했다. 그런데 몇 쪽 읽지 않았는데 그 예상치 못한 전개에 깜짝 놀랐다. 엘리스가 만나기로 했던 남자는 결국 오지 않았고, 그 대신 웬 여자가 그녀를 따라오기 시작한다. 외모가 출중해 누군가가 그렇게 따라오는 게 익숙한 엘리스이지만 여자라니 뜻밖이다. 여자는 엘리스에게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계속 따라오고, 엘리스도 그런 관심이 싫지는 않다. 엘리스와 그녀는 결국 첫 데이트를 하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엘리스를 따라온 그녀의 이름은 코니’, 콘스턴스 홀든으로 <밀랍 심장>이라는 작품을 쓴 꽤 잘 나가는 소설가이다. 이제 스물인 엘리스보다 열다섯 가까이 많은 코니는 성공한 작가답게 자기만의 세계가 확고한,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멋진 여자다. 엘리스와 코니는 그렇게 사랑하게 되고 함께 삶을 가꾸어 나간다. 1980년 영국의 한 풍경이다.

 

그런데 이야기는 훌쩍 시간을 건너뛰어 2017, 갑자기 어머니를 죽였을 때 나는 열네 살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게 어찌된 일이지 싶은데, 엘리스의 딸 로즈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흐른다. 이제 서른다섯인 로즈가 열네 살 때 어머니를 죽였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 로즈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엘리스는 남편과 딸을 두고 떠나버렸고, 현재까지도 실종 상태이다. 때문에 로즈는 엄마의 얼굴도 모르는 채 자랐고 늘 가슴속에는 엄마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살아간다. 아이들 틈에서 엄마 없는 아이로 놀림 받고 소외당하는 데 지친 나머지 엄마를 죽여버린다. 죽은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럼에도 엄마에 대한 궁금증은 지울 길이 없어서 아버지에게 엄마 이야기를 물어보지만, 아버지는 늘 어두운 얼굴로 별말이 없다. 그러다가 어느 날, <초록 토끼>라는 책 한 권을 건네준다. 아버지가 도무지 읽을 것 같지 않은 책이라 의아한 로즈에게 놀라운 이야기가 들려온다. 책을 쓴 작가가 엄마의 연인이었다고. 초록 토끼의 지은이는 콘스턴스 홀든’ <밀랍 심장>을 쓴 바로 그녀이다. 엄마에게 아버지 이전에 연인이, 그것도 동성 연인이 있었다니, 그것도 유명한 작가였다니 로즈는 모든 게 놀랍기만 하다. 그리고 책을 허겁지겁 읽는다. 어디선가 엄마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책을 아무리 다 읽어도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엄마에 대한 정보는 찾을 수가 없다. 그저 <초록 토끼>는 삶의 고독과 잘못된 사랑이 일으키는 파괴를 말하고 있을 뿐. 콘스턴스 홀든도 <초록 토끼>를 끝으로 더는 작품을 더 발표하지 않았다. ‘레싱이나 애트우드 같은 작가는 아니지만 숱하게 많은 여성 작가가 그렇듯이 그녀 역시 다른 이름에 가려진 채 사라져갔다.’ 하나뿐인 에세이집이 있어, 그 책도 구해 읽어보지만, 사적인 내용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콘스턴스 홀든, 한때 엄마가 너무나도 사랑했다던 그 여자의 얼굴과 기사를 찾아보지만 그마저도 꽤 오래 전 기사들이다. 그런 로즈에게 우연히 기회가 찾아온다. 콘스턴스를 만나겠다는 마음에 무작정 출판사로 전화를 건 로즈는 구직자로 오해받은 끝에 신분을 속인 채 그의 비서로 일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엄마의 옛 여인을 맞닥뜨리게 되는 로즈. <컨페션>은 이렇게 엄마와 딸 관계인 엘리스로즈가 삼십 년의 세월을 훌쩍 건너 콘스턴스 홀든, 그러니까 코니라는 한 사람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면서 엘리스와 코니가 어떻게 파국을 맞이했는지, 또 엘리스는 어떻게 로즈를 낳게 되었는지 그리고 엘리스는 지금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지가 한편의 미스터리를 풀어가듯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엘리스와 코니의 사랑이 파국을 맞이했으리라는 것은 로즈의 존재만으로도 알 수 있다. 그 두 사람이 로즈를 생물학적으로 낳을 수는 없었을 테고(게다가 1980년대 그 보수적인 영국에서), ‘코니는 아이를 싫어해 입양을 할 사람도 아니다. 게다가 로즈에게는 엄연히 아버지가 존재하며 아버지는 엘리스 이야기만 나오면 아직도 얼굴이 어두워진다. 엘리스와 코니 둘 사이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사실 독자는 두 사람의 관계가 잘 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초반부터 알 수 있다. 엘리스는 코니에게 완벽하게 반한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코니는 엘리스에게 세상 모든 것이 된다. ‘강력하고 재능 있는 사람, 다른 사람인 것처럼 전화해 엘리스가 출근하지 않아도 되도록 도와주고, 쌀쌀한 11월 아침에 집에서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게 해주고, 목욕물을 받아주고, 상쾌하고 깨끗한 잠자리를 마련해주는 사람의 품에서 보호받는 어린 소녀가 되고 싶었고 코니와의 사랑으로 이렇게 육체와 하나 되는 정신을 경험해본 적 없었다고 생각한다. 로즈에게 엘리스가 부재중인 것처럼 엘리스 또한 엄마의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엘리스는 열여섯에 아버지의 집을 나왔고, 어머니는 그보다 한참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엘리스는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코니의 보살핌 속에서 엄마이자 아빠에게 받지 못한 사랑과 보살핌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코니는 사랑은 할 줄 알아도 자기 일, 커리어도 그 못지않게 중요한 사람이라, 엘리스만을 바라볼 수는 없다.

 

두 사람이 코니의 일 때문에 미국으로 함께 건너가면서 갈등의 싹은 더 커지는데, 자기 일로 승승장구하는 코니에 비해 엘리스는 그저 코니의 어리고 아름다운 여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엘리스에게는 자기의 일도, 자기만의 친구도, 자기만의 공간도 없이 모든 것이 코니의 삶과 연관되어 있다. 코니의 집, 코니가 아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점점 자기 자신을 잃어간다. 심지어 코니도, 일로 바쁜 나머지 엘리스에 대한 애정이 차츰 희미해진다. 이럴 때 스무 살을 조금 넘은 이 어린 여성이 할 수 있는 선택을 얼마나 될까. 그것도 오직 연인 한 사람만 보고 떠난 그 낯선 미국 땅에서. 엘리스도 차츰 자기의 삶이 기이하다고 생각한다. 코니에게 그렇게 꽉 붙잡혀 있는 것에 비이성적인 증오심이 솟구친다. 엘리스도 미국인 친구에게서 그림을 선물 받는 서른여덟 살의 사람이 되고 싶다. 차를 몰고 웨스트 할리우드로 달려가고 싶다. 말리부 해변에서 살고 싶다. 그러나 대신 그녀는 그 모든 일을 그저 지켜보기만한다. 이 가운데 그 무엇도 엘리스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코니는 엘리스가 가진 얼마 안 되는 것을 순식간에 앗아갈 수도 있다.

 

2017, 서른다섯 살인 로즈의 삶도 엘리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9년이나 사귄 연인 가 있지만 이 두 사람의 사이는 사랑하는 관계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지켜보고 있자면 지리멸렬하다. 로즈 또한 그 사실을 잘 알지만, 딱히 있을 만한 자기만의 공간도, 확실하게 내세울만한 커리어도 없기에 자기를 심정적으로 괴롭히는 남자친구와 헤어지지도 못하고 답답한 관계를 줄곧 유지한다. 게다가 의 가족들을 만나고 오면 그 역겨운 마음은 더 금할 길이 없다. 그런데 로즈는 코니의 비서 일을 하면서 조금씩 삶을 돌보는 방법을 자기도 모르게 깨달아 가게 된다. 늙어서 몸이 불편해졌으면서도 은둔하면서 사생활을 철저히 지키고, 마지막 작품을 쓰고자 노력하는 그 꼿꼿한 노인 코니의 모습을 보면서 삶을 어떻게 가꿔나가야 하는지 은연중 깨닫고, 코니와 주고받는 이야기들을 통해 자기 삶에서 지금 무엇이 빠져 있는지 서서히 깨달아 간다. 로즈는 처음부터 코니에게는 신분을 숨긴 채 로라라는 가상의 인물로 행세하는데, 자기가 만들어낸 이 로라라는 인물은 로즈보다 대담하고 능률적이며 재미있는 사람이다. 사실 로즈는 자신감도 적고 두려움은 크고 멀리 여행을 떠난 적도 없으며 자기 삶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로라는 그와 완벽하게 상반되는 인물로, 로즈 그 자신이 되고 싶은 자기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데 로즈는 실제로 그 로라와 조금씩 닮아간다. 코니는 로즈에게 그 몇 달 동안 당당하고 자각으로 가득한 삶의 본보기를 보여준 한편, 어떤 이름을 사용하든 자기의 목소리를 찾으라고 격려해준다. 로라는 코니 옆에서 자신을 탐색하면서 어디에서 어떻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자문하기 시작한다.


 

자신을 돌보듯이 사랑도 돌봐야 해. 사랑이 혼자서 유지되며 자라기를 바랄 순 없어. 우린 사랑을 돌보지 않았어. , 그리고 우리 중 누구도 그러길 원하지 않았고.” (324)

 

<컨페션>에서 그려지는 사랑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엘리스와 코니, 엘리스와 맷, 맷과 샤라, 로즈와 조 등등 커플은 많지만 한때 엘리스와 코니가 서로만으로도 행복했던 그 짧은 순간을 제외하고는 어떤 커플도 사랑으로 행복하지 않다. 로즈와 조도 처음 어떤 순간들은 서로만으로도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9년 가까이 이어지는 지리멸렬함만이 남았다. 사랑은 누군가에게 구원이 되기도 하지만, 무덤이 되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그려지는 대부분의 사랑은 무덤과도 같은 사랑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엘리스도 로즈도, 자기 자신을 찾지 못한 채 사랑 안에서 그저 허우적대기만 했기 때문이다. 삶도, 사랑도 결국은 자기가 제대로 서 있을 때 그 의미를 찾고 삶에서 제 역할을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엔 사랑은 무덤이 되고 자기 파멸을 부른다. 엘리스는 스물에서 스물셋, 그 어린 나이였기에 자기를 찾는 일에 서툴렀고, 로즈는 자기 자신을 찾는 일보다는 엄마를 찾는 일에 몰두하는 바람에 진짜 자신이 바라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그러나 코니와 함께 하며 엄마의 그림자를 찾는 동안 자기가 진정 원하는 삶을, 자기 자신을 찾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코니는 그 오래 전에는 엘리스에게 해주지 못했던 것을 그의 딸인 로즈를 통해 이루게 해준 것은 아닐까. 엘리스는 언젠가 하염없이 물을 바라보며 인어가 되고 싶지 않다고, ‘육지의 존재가 되고 싶다’(163)고 생각하는데, 지금 틀림없이 어디선가 육지의 존재로 잘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달라진 로즈가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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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1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21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목련 2021-04-29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급한 문장, 참 좋았어요 사랑뿐 아니라 관계에 있어서 적용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로즈의 선택이 멋졌고요!

잠자냥 2021-04-29 17:23   좋아요 0 | URL
맞아요. 로즈가 그 남자랑 헤어져서 얼마나 후련하던지..;; ㅋㅋㅋㅋ 사랑도 사랑이지만, 자기 자신부터 돌보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