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랜드 SF... F.. C.
샬럿 퍼킨스 길먼 지음, 권진아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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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알려진 작품임에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샬럿 퍼킨스 길먼의 <허랜드>를 최근에 읽었다. 읽기를 이제까지 미룬 까닭은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허랜드’는 말 그대로 여자들만 사는 나라를 뜻한다. 제목만으로도 상상이 간다. 남자들이 사라진 세상, 그래서 폭력도 착취도 없는, 여자들만 사는 이상적인 세계를 그린 작품이겠지. 남성의 지배도 받지 않고, 차별도 없는 여자들로만 이루어진 유토피아 같은 세상. 조금은 예상 가능한 세상이었다. 그래서 이 책이 지닌 의미와 가치를 알면서도 쉽사리 손이 가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책은 어떤 면에서는 급진적이고 놀랍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딱 길먼이 살았던 그 시대에 쓰였을 법한 작품이다. 그래서 명확한 한계가 보이기도 한다. 그 한계 때문에 나는 이 책에 별 다섯 개를 주지는 못했다. 작품이 쓰였을 무렵을 생각한다면 그 의의만으로도 별 다섯을 주고도 남을 책인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한계가 더 크게 마음에 걸렸다.

<허랜드>는 여자들만 사는 나라에서 무사히 살아(?) 돌아온 한 남자의 관점으로 그려진다. 그의 이름은 밴. 어느 날 그는 모험을 좋아하는 친구인 테리, 제프와 함께 미지의 땅을 탐험하기 위해 원정대를 꾸리고 여행길에 오른다. 이 세 남자의 성격은 뚜렷하게 다른데, 테리는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의 마초이고 그에 비해 제프는 세 사람 중 가장 섬세하고 이른바 여성스러운 면을 많이 지닌 의학도이다. 이야기의 화자인 사회학도 밴의 성향은 테리와 제프 그 중간쯤에 속한다.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나라가 존재한다는 이야기에, 세 남자는 호기심이 잔뜩 일어난다. 그런 나라가 존재할 수 없다고 부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궁금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한껏 기대에 부푼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노라면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예상 가능한 남자들의 반응이 그려진다. 테리는 오직 여자, 여자들만 가득한 이상화된 여름 리조트 같은 곳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려본다. 아름다운 여성들이 잔뜩 있고, 그 가운데서 마치 하렘의 술탄처럼 군림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자들만 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발전이나 진보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거라고 빈정대기도 한다. “여자들은 늘 그래. 질서나 조직 같은 건 절대 기대할 수 없어.” “발명이나 진보를 기대해서는 안 돼. 아마 끔찍하게 원시적일 거야.” 등등 성차별적 발언을 쏟아낸다. 누군가는 그곳이 수녀원장 휘하의 수녀원 같을 것이라고 상상하기도 한다. ‘평화롭고 정다운 자매애 공동체’ 같은 곳. 그러나 테리는 남자가 없을 리가 없다며 남자들은 산 위에 살면서 여자들만 한쪽에 두는 것일 거라고, 그곳은 ‘일종의 국립 하렘’일 거라고 말한다. 이 테리라는 놈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식인데, 솔직히 ‘여자들만 사는 나라’라는 말을 들었을 때, 대다수의 남자들이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드디어 도착한 미지의 땅, 허랜드. 이곳에서 자신들을 지켜보던 젊은 여성 셋과 마주친 그들은 속임수를 써서 붙잡아 보려고 하지만 웬걸, 여자들의 신체 능력이 대단해서 좀처럼 따라잡을 수가 없다. 그녀들을 뒤쫓다가 마침내 이 미지의 땅 깊숙한 곳까지 다다른 그들은, 한 무리의 여성들에게 둘러싸인다. 그런데 그들의 기대와 달리, 젊은 세 여성들은 온데간데없고 그들을 둘러싼 여성 무리는 젊다고 말할 수 없는 중장년 여성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여성성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고요하면서 진중하고 현명하고 두려움 없고 확신과 결의에 찬 얼굴’들을 하고 있다. 예쁜 여자들이 바글바글하고 그 안에서 하렘의 술탄처럼 군림하길 꿈꾸던 테리 및 밴과 제프는 당황하는데, 그들 앞에는 더 뜻밖의 일들이 기다린다.

이 작품은 세 남자가 허랜드에서 일정 기간 머물며 여자들만 이루어진 사회를 경험하면서 이 세계, 그러니까 그들이 떠나온 미국으로 대변되는 이 사회의 모순, 가부장제, 성차별, 교육 문제 등등을 꼬집는다. 테리는 놀랍도록 진보한 허랜드를 보면서 줄곧 어딘가에 남자가 존재할 거라는 믿음을 버리지 못한다. 여자들만 사는 나라가 이토록 질서 잡히고 문명이 발달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여성다운 면이 거의 없는 여자들을 보며 ‘혐오’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그러는 와중에도 처음에 만난 세 여성처럼 젊고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희망을 놓지 못하고 줄곧 그 예쁜 여자들, 머리가 길고 늘씬한, 여성스러운 여자를 찾아 ‘허랜드’를 뒤지고 다닌다. 밴과 제프는 테리에 비해 덜하기는 하지만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런 가운데 허랜드의 여성들은 이 남자들과 소통하기 위해 언어를 가르치고, 그들을 교육한다. 그들은 과연 교육이 될까? 서로 진정한 소통이 가능해질까?

이 작품에서 내가 가장 실망스러웠던 점은 ‘모성애’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었다. 테리가 허랜드를 일컬어 ‘모성성에 미친 나라’ ‘어머니가 되어 다음 세대를 가르치는 일에 미친 나라’라고 언급하는 부분이 있는데, 나도 얼마쯤은 이 의견에 동조한다. 시대를 앞선 길먼조차도 여성의 가치는 모성성에 있다고 본 것인가? 나는 여성의 으뜸 가치를 모성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성성 또한 하나의 만들어진 신화이며, 여성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고 이 사회가 강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허랜드의 가장 숭고한 덕목이자 가치로 ‘모성성’을 내세우는 것에는 반기를 들고 싶었다. 물론 허랜드의 ‘모성’은 전통적인 모성애와 조금 달라서 그저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지배하고 모든 기술과 산업에 영향을 미치며 모든 아이를 절대적으로 보호하고 가장 완벽하게 보살피고 교육하는 개념으로서의 모성’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왜 ‘모성성’에 머물러야만 했을까. 더욱이 좋은 어머니가 될 자격을 갖춘 사람을 선별하고, 뛰어난 아이들만을 낳아서 교육하다는 설정에서는 우생학적 편견과 선택도 엿보여서 불편하다.
 
게다가 이 허랜드에는 모성애를 바탕으로 한 숭고한 사랑이나 존중과 평등을 기반으로 한 동료애는 존재하지만, 그 밖의 ‘사랑’, 즉 에로스적 사랑은 그 사이에 낄 틈이 없다. 섹슈얼리티에서 출발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남자가 없어서 그런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너무 순진한 발상이 아닌가? 남자가 없으므로 성적 욕망에서 비롯한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설정은 오히려 여성의 욕망을 이성애에만 국한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길먼이 살았던 시대에는 동성애를 언급하기가 오늘날보다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또는 길먼 자체가 동성애에 관심이 없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나라이기에 섹슈얼리티한 관심이나 성적 기쁨을 누리는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런 가능성 자체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설정 또한 이 작품의 빛을 바라게 한다. 하다못해 더 오래전에 사포의 저 레스보스도 존재했는데, 길먼은 왜 여성들만 사는 이 나라에서 에로틱한 사랑과 섹스를 배제한 것일까? 그저 숭고한 모성애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미움도 질투와 시기도 없는 플라토닉한 사랑만이 존재하는 사회라니 나는 조금 끔찍할 것 같다. 과연 그런 사회가 유토피아일까. ‘고요한 평화, 넘치는 풍요, 한결같은 건강, 넉넉한 호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매끄러운 운영 덕분에 이제 더 이상 극복할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사회라 할지라도 나는 이런 사회를 유토피아라고 느끼지는 못할 것 같다.

결국 이 세 남자와 젊은 세 여성을 ‘결혼’이라는 그 낡은 제도 안에 귀착시키는 결론도 못마땅하기 그지없다. 물론 양성 사회가 다시 가능한지 실험하는 목적이 강하기는 했지만, 굳이 그런 방법 밖에는 없었을까? 결혼 후 테리가 결국 자기 아내라고 생각하는 이에게 하는 짓을 보라. 강간이 아닌가? 물론 이 서로 다른 사회의 남녀를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어냄으로써 이 제도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자 한 작가의 의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성애와 가부장제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결혼’ 밖에는 없었나 싶어서 씁쓸해진다. ‘여자들만 사는 나라’라는 전복적인 설정을 해놓고 정작 디테일한 면에서는 모성성이니, 결혼이니 구태의연한 것이다. 여자들만 사는 나라에도 욕망과 사랑, 섹스 그에 따른 질투나 미움도 있게, 그러나 그 모든 인간적 욕망을 극복하고 다스리면서 그들끼리 잘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내는 게 더 유토피아스럽지 않은가? 게다가 세 남성이 미지의 땅을 ‘정복’하려고 가는 설정이 아니라, 철저한 가부장제에서 태어나고 자란 세 여성이 허랜드를 찾아가서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는 설정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진하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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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6-24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올리신 허랜드의 목차를 살펴보니 단편 <누런 벽지>는 없네요. 제가 읽은 구판에는 단편 <누런 벽지>가 실려있었거든요. 이게 진짜 좋더라고요. 아마 이 책의 작가소개에도 나와있을테지만 결혼 후에 작가가 정신병 치료를 받게 되는데 닥터는 그녀에게 글을 쓰지 말라고 하잖아요. 작가가 그런 자기 자신의 삶을 소재로 삼아 <누런 벽지>를 써서 자신의 닥터에게 보냈다는 일화가 엄청 짜릿했어요.

이 책의 다음이야기도 있다고 하는데 그건 아직 국내에 번역된것 같진 않더라고요. 저는 이 책에서 소젖을 먹는 인간에 대해 의아해하는 허랜드의 여자들을 보는게 좋았습니다. 비단 여자들만 사는 나라를 그린것뿐만이 아니라 (결국 그렇게 되겠지만)폭력에 대한 것도 다뤘다고 생각했거든요.

잠자냥 2020-06-24 14:33   좋아요 0 | URL
넵 이 책에는 딱 <허랜드>만 있어요. 저는 <누런 벽지>는 창비 세계문학단편선 미국편에서 읽었어요. <누런 벽지> 정말 좋죠. 그 작품으로 이 사람 이름 각인했던 것 같아요.

아, 이 책의 다음 이야기도 있군요. 아마 미국으로 간 엘라도어가 미쳐버리는 이야기가 아닐지 ㅋㅋㅋㅋ
저도 그 소젖 먹는 이야기는 좋았습니다. 인간이란 참...

다락방 2020-06-24 14:46   좋아요 1 | URL
저도 <허랜드>읽으려고 사서 읽었다가 <누런 벽지>에 반했었어요. 그건 다 읽어갈 즈음 완전 소름돋더라고요!

저도 다음 이야기는 미국으로 간 부부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어요. 제 추측엔 여자가 처음엔 미쳐버릴것 같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에 길들여지는게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