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면서 돈 때문에 걱정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크든 작든 다들 한번쯤은 돈 걱정, 돈 생각을 한다. 이렇게 일하며 사는 것도 모두가 그 ‘돈’ 때문이다. 돈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벌어서 안락한 삶을 누리기를 바란다. 아니 돈이 많은 사람, 부를 쌓은 사람을 부러워하며 자기도 그 무리에 속하기를 바라며, 언젠가는 그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도 정신없이 살아간다. 그러나 정말 돈이 많으면 그저 안락하고 편안하며 행복할까? 돈은 인간에게 과연 무엇일까? 발자크의 <곱세크>는 그 ‘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곱세크>에는 샤일록처럼 냉혈한 고리대금업자인 ‘장에스테르 반 곱세크’가 등장한다. 화자인 ‘데르빌’이 그를 처음 알고 지내게 된 무렵 그는 벌써 76세의 노인으로 고리로 돈 놀이를 하면서 많은 돈을 벌지만 지독한 구두쇠이다. 가족도 없이 혼자 살아가는 그는 친족은 물론 부모 대부터 손자 대까지 그 어느 누구도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신의 상속자들을 증오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자신이 죽은 후에라도 본인 이외의 사람이 자기 재산을 소유할 거라는 생각조차하지 않고 살아간다. 데르빌은 그런 곱세크를 보며 이렇게 생각한다. ‘도대체 이 인간은 무엇을 생각하는 걸까? 신이라든가 감정이라든가 여자라든가 행복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이 사람을 알기나 할까?’

데르빌은 잘못 짚었다. 곱세크에게는 신이라든가 감정이라든가 여자, 또는 행복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는 오직 황금만이 생의 즐거움이다. 스스로 자신의 삶만큼 빛나는 인생은 없다고 생각한다. 데르빌과 같은 젊은이들은 벽난로 불씨 속에서도 여자의 얼굴을 보지만 곱세크에게는 그저 재가 보일 뿐이다. 그 그것이 그저 환상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자기만큼 오래 살다 보면 인간이 관여할 만한 확실한 가치를 지닌 것은 오직 하나, 바로 ‘금’밖에 없음을 깨달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곱세크가 보기에 금은 모든 인간의 힘을 대행한다.

그렇다고 이 수전노 곱세크가 샤일록처럼 단순한 구두쇠에 냉혈한 고리대금업자인가하면 그렇다고는 볼 수 없다. 이 부분에서 발자크의 위대함이 드러난다. 곱세크의 외모를 묘사하는 부분을 읽노라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그의 누런색 이마의 주름살들은 무서운 시련, 무한한 기쁨, 견뎌야 했던 배고픔의 나날, 짓밟힌 사랑, 위험에 연루된 후 파산 그리고 도로 찾은 재산, 수없이 위험에 빠진 목숨과 위급한 순간에 불가피하다고 변명할 수 있는 무자비한 순간적인 행동으로써 위기’(22쪽)들이다. 주름살 하나를 묘사하면서도 이런 표현을 쓸 수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이 작품에는 이런 묘사가 종종 등장해서 전율을 일으키게 하는데, 곱세크가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해 찾아간 ‘드 레스토’ 백작 부인의 침실, 방탕한 향락의 밤이 지나간 뒤의 아침 침대를 묘사하는 장면에서도 그 기막힌 솜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이 ‘드 레스토’ 백작 부인은 우리가 익히 아는 ‘고리오 영감’의 큰딸이다. <고리오 영감>에서 아버지의 아낌없는 사랑과 후한 재산 분배 덕택으로 백작 부인이 된 큰딸. 그런데 이 딸은 애인과 함께 사치와 향락과 방탕에 젖어 돈을 물 쓰듯이 쓰면서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는 마침내 곱세크에게 손을 벌리게 되는 궁지에 몰린다. 데르빌은 젊은 시절, 자신의 이웃이자 어떤 면에서는 정신적 스승과도 같았던 곱세크와 이 백작 부인 사이에 있었던 일화를 현재, 그러니까 1829년에서 1830년으로 넘어가는, 새해를 앞둔 어느 겨울 밤 ‘드 그랑르외 자작’ 집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자작 부인의 딸이 고리오 영감 큰딸의 아들, 그러니까 고리오 영감에게는 외손자가 되는 ‘에르네스트 드 레스토’ 백작에게 호감이 있음을 알고 그들 집안 이야기를 들려준다. 때문에 이 작품은 ‘곱세크’의 이야기이면서도 고리오 영감의 큰딸, 그 집안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본 줄거리는 고리대금업자 곱세크의 기이한 물욕과 그가 어떻게 자본을 쌓아 가는지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그를 지켜보는 법률가 ‘데르빌’의 이야기이자,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사치와 향락에 빠져 궁지에 몰린 고리오 영감의 큰딸 ‘아나스타지 드 레스토 백작 부인’의 이야기이다. 이렇게 발자크 <인간희극>의 한편을 <곱세크>가 담당하는 것이다.

데르빌은 곱세크의 몸 안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구두쇠와 철학자, 왜소한 인간과 위대한 인간’이 그것이다. 데르빌의 말처럼 곱세크를 수전노 고리대금업자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가 하는 말, 주로 돈과 관련한 인간의 속성을 꼬집는 말들은 통찰력이 매우 깊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곱세크는 스스로 자신의 눈이 하느님의 눈과 같아서 사람들 마음속을 읽을 수 있다고 장담한다. 그의 앞에서는 ‘사소한 말투 때문에 당장 화를 내거나 어떤 사소한 한마디 때문에 결투를 요구할 것 같은, 애인에게 미친 혈기 왕성한 남자가 두 손을 모은 채 간청’한다. 그의 앞에서는 ‘가장 오만한 상인, 자신의 아름다움에 가장 우쭐해 있는 여자’도 ‘가장 의기양양한 군인’도 모두 극도의 증오 또는 비관의 눈물을 흘리면서 간청한다. 그의 앞에서는 ‘가장 유명한 예술가와 자기 이름을 대대로 남길 작가’도 간청한다. 모두가 곱세크에게 돈을 빌리기 위해 무릎 꿇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곱세크의 ‘책상 앞까지 내딛는 그 첫발자국은 일종의 절망과 곧 닥칠 파산 그리고 특히 모든 은행에서 당한 대부금 거절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곱세크를 찾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그들을 곱세크, 아니 그가 가진 돈 앞으로 이끄는 것은 대부분 그들의 허영이다. 허영심은 오직 금으로만 채울 수 있다.


‘저 사람들을 내 집으로 오게 하는 것이 바로 이거였군. 저 사람들에게 수백만의 돈을 모른 척 도적질하고, 자기 조국을 배신하게 부추기는 것이 바로 이거였어. 대귀족이니 혹은 그 흉내를 내는 자들은, 제 발로 걷다가 흙투성이가 되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오히려 진흙탕 물을 온몸에 뒤집어쓰게 되는 거야.’ (<곱세크>, 41쪽)


내 눈 앞에서는 아무것도 숨겨지지 않지. 사람들은 돈 가방의 끈을 묶었다 풀었다 하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거절할 수 없다네. 나는 많은 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관청 사환을 비롯해서 애인에 이르기까지 대신들을 좌지우지하게 하는 사람들의 양심을 매수할 수 있네. 이것이 ‘권력’이 아니란 말인가? 나는 가장 아름다운 여자도 소유할 수 있고 그녀들의 가장 달콤한 애무를 손에 넣는 것이 가능하지. 이게 ‘쾌락’이 아니란 말인가? 자네들의 사회질서 전체도 단적으로 말하면 ‘권력’과 ‘쾌락’으로 환원 가능한 것이 아니겠나? 그러니까 우리는 파리에 열 명쯤 되네. 모두 조용하고 알려지지 않는 왕들로 자네들 운명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자들이지. 인생이란 돈이 움직이게 하는 하나의 기계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46쪽)



여기서 말하는 ‘모두 조용하고 알려지지 않는 왕들, 자네들의 운명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자들’이란 곱세크와 같은 고리대금업자들을 의미한다. 그들은 곱세크처럼 인생의 모든 향락을 싫증이 날 만큼 누린 끝에 이제는 오직 권력과 돈을 그 자체를 위해서만 사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발자크는 <인간희극>에서 이렇게 사회 안에서 새로운 사회를 형성한 고리대금업자들을 다루면서 금융가나 자본가가 쥐락펴락하는 사회를 폭로한다. 거기에 덧붙여 돈이 인간의 성격과 삶에 미치는 영향을 집요하게 추적했는데, 그런 작품들 가운데 <외제니 그랑데>나 <고리오 영감>, <사촌 퐁스> 그리고 이 <곱세크>가 있다. 발자크의 <인간희극>에서 곱세크는 14편에 등장하면서 악인으로 분류된다고 하는데, 이 책을 읽다 보면 곱세크가 과연 악인일까 하는 질문이 남는다.

사치와 향락에 젖어 방탕을 일삼다 끝내 파산 지경에 몰리고, 그런 자기 때문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가는 남편을 보면서도 어떻게 하면 유산을 받을까만 궁리하는 드 레스토 백작 부인의 모습을 보면 인간의 마음에 깃든 허영, 그리고 그 허영을 채우기 위한 끊임없는 욕망이 결국 악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레스토 백작 부인의 행실을 문제 삼았던 자작 부인 집에서도 이제 레스토 백작 부인의 아들이 큰 재산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알자 자신의 가문에 어울릴 만한 자격을 갖췄다고 생각하고 그 모든 도덕적 해이를 묵인하지 않는가. 그들 또한 돈의 위력에 굴복하고 마는 것이 아닌가. 곱세크는 결국 그런 인간의 폭주하는 욕망을 이용해 엄청난 부를 쌓는 자본가의 표상이다. “금은 자네들이 사는 현 사회의 정신이라네.” 곱세크의 이 말은 100여 년 전이 아닌 오늘날, 그래서 더 날카롭게 다가온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oren 2020-08-23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자크의 작품들에 대한 유익한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고리오 영감>을 두 번씩이나 읽고 난 뒤에 재미있는 추억들을 많이 떠올렸더랬습니다.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시골에서 상경한 뒤 ‘서울 생활‘에서 겪었던 에피소드들이
소설 속 주인공인 라스티냐크의 몇몇 경험들과 겹쳐 떠오르기도 했고요.
영화로 만들어진 『고리오 영감』을 바탕으로 유튜브 동영상도 만들어 봤답니다.^^
시간 나시면 한번 구경해 보세요~
https://youtu.be/N3yl7lCoqDY

잠자냥 2020-08-23 09:19   좋아요 1 | URL
와 oren 님 유튜브 동영상 지난번에 보고 그 정성에 깜짝 놀랐습니다. 고리오영감 편도 잘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