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레사와 함께한 마지막 오후들 창비세계문학 47
후안 마르세 지음, 한은경 옮김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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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그 대상을 얼마나 제대로 알고 사랑에 빠지는 것일까? 상대와 관련해서 자기가 만들어낸 어떤 환상을 좋아하고 그 모습에 반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그 환상이 서서히 부서지고 자신이 생각지 못했던 현실과 맞닥뜨리게 됐을 때, 이른바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사랑의 실체를 마주하고는 당황해하고 그 상대로부터 멀어진다. 그렇게 인간의 사랑은 환상에서 시작되어 불꽃처럼 타오르다가 서서히 식어가서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다 타버린 뒤의 재만 남는다.

<떼레사와 함께한 마지막 오후>에도 그런 사랑이 있다. ‘마지막 오후’라는 제목에서 우리는 이 사랑이 결국 지나가 버릴 것임을. 찬란한 해가 저물기 시작한 오후 다섯 시쯤의 그 빛바랜 시간의 사랑이 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떼레사’와 ‘마놀로’ 또한 대부분의 연인들이 그러하듯이 애초부터 서로의 ‘실체’가 아닌 그 두 사람 각자가 만들어낸 환상을 사랑하게 된다. 그렇다한들 그 누가 이 두 사람이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스물 그즈음, 인생에서 가장 눈부신 그 젊은 날에 두 사람은 불꽃처럼 한 여름을 함께 보낸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두 사람은 저마다 기억 속에 그 여름의 한때를 추억하지 않을까. 오후 다섯 시 석양이 질 무렵이면 언제나.

가진 것이라고는 눈부신 외모와 젊음 그 하나뿐인 ‘마놀로 레예스’는 1956년 6월 성 요한 축제의 전날 밤 새로 마련한 진갈색 여름 정장을 입고 동네 어둠 속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그날 그의 목표는 정확하다. 어느 부잣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초대받은 사람인 냥 거리낌 없이 들어가 그들과 어울리면서 부잣집 아가씨 하나를 낚아 올리는 것이다. 그의 별명은 ‘삐호아빠르떼’ 우리말로 옮기자면 ‘신분 상승을 노리는 속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목이 마르다. 이 변두리 촌구석 가난뱅이들만 사는 동네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부잣집 여자를 낚는 수밖에는 없다. 이렇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것으로는 결국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뻔하니까. 친구 베르나르도는 이미 글러먹은 놈이다. 어리석게도 여자친구를 임신시키고 결혼하고 일자리를 구해 정비소나 공장에서 썩는 삶, 대다수의 이 변두리 하층민들이 사는 인생을 그 또한 따르겠다는 게 아닌가. 임금노동자로 살아가면서 서로의 등골을 빼먹으며 평생 살아가는 그런 삶은 절대로 살고 싶지 않다.

부르주아들이 벌이고 있는 파티 장소에 진입하는 데 성공한 마놀로는 한순간에 목표물을 포착한다. 두 여자애가 눈에 들어온다. 그가 가까이 다가가자 처음부터 눈에 들어왔던 여자애는 자리를 뜬다. 아쉬운 대로 두 번째 여자애에게 다가간다. 일은 그가 바람대로 척척 진행되어 키스까지 성공. 왠지 쉽게 풀린다. 얼마 뒤 이 여자애가 부모님과 함께 와 있는 여름 별장을 알게 되고 어느 으슥한 밤, 여자애의 침실에 몰래 잠입하는 데 성공한다. 여자애 또한 마놀로를 기다리고 있었던 게 틀림없어 일은 일사천리로 풀려간다. 열정이라는 이름 아래 부끄러움을 벗어버린 두 젊은 육체가 부딪치고 밤은 그렇게 깊어간다.

여기까지 정말 정신없이 읽었다. 이 책을 손에 집어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그런데 조마조마하게 마음속에서 뭔가 저항감이 밀려온다. 떼레사! 그러면 안 돼. 그놈은 말이지, 마놀로 그놈은 다 꿍꿍이가 있어서 너에게 접근한 거야. 이 아가씨야 정신 차려! 이 부잣집 아가씨 정말 숙맥이네.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몰라. 이 나쁜 놈, 그러니까 오토바이 도둑질로 근근이 먹고 살아가면서 잘 생긴 외모 하나 믿고서는 여자애들 보기를 아주 뭣같이 여기는 이 나쁜 놈은 떼레사 너를 사랑한다고 꾀어서 목적을 이루고는 뻥 차버릴 거야! 조심해 정신 차려! 이렇게 줄곧 마음속으로 떼레사에게 경고를 보낸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그 뜨거운 밤이 지나고 어스름하게 새벽하늘이 밝아올 무렵 깊은 잠에서 깬 마놀로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온다. 아니, 저것은 하녀의 옷이 아닌가? 떼레사가 메이드놀이를 했을 리도 없고........ 그렇다, 마놀로가 부잣집 아가씨라고 생각했던 그 여자애는 부잣집 아가씨 곁에서 시중을 드는 하녀 ‘마루하’였던 것이다. 마놀로만큼이나 나도 충격을 받는다.   

잠든 마루하를 깨워 길길이 날뛰며 왜 자신을 속였느냐고 분노하는 마놀로. 너 같은 하녀가 어떻게 파티에서, 부잣집 귀한 자제들만 노는 파티에서 함께 어울릴 수 있었느냐고 다그친다. 여기서 일단 떼레사 아가씨의 성격이 한 번 드러난다. 우리 아가씨는 원래 그래. 떼레사는 계급? 그런 거에 얽매이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보다 낮은 계급에 속한 이들에게 아량을 보일 줄 아는 너그러운 부잣집 아가씨인 것이다. 달뜬 밤이 지나고 무너진 꿈 앞에서 그저 허망한 마놀로. 그는 눈물 맺힌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마루하의 눈빛에서 ‘심오하고 추접한 무엇인가’를 발견한다. 이대로 연인으로 지내자는, ‘가난을 받아들이자는’ 제안이다. 그 눈빛은 ‘불행을 눈물로 호소하는 따스한 우애와, 동병상련에 처한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위안이 담긴 그런 눈빛’이다.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삐호아빠르떼를 두렵게 만든, 그래서 평생 그것을 떨쳐내기 위해 싸워야 했던 포기와 체념’이라는 감정이 담긴 눈빛이었다.

여기까지가 이 작품의 1부이다. 2부와 3부는 어떻게 그려질지 독자들도 얼마쯤 예상가능하다. 마루하와 그녀가 모시는 아가씨 떼레사. 마루하가 아닌, ‘떼레사와 함께한 마지막 오후’라는 제목을 보면 이 ‘삐호아빠르떼’ 마놀로가 떼레사를 유혹해서 사랑에 빠지고 보기 좋게 이용해먹다가 차버리는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예상할 수 있겠지만, 이 작품은 그런 공식으로 흐르지 않는다. 물론 마놀로와 떼레사가 서로 사랑하게 되기는 한다. 그러나 떼레사 이 아가씨도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신분상승을 위해 물불 안 가리고 여자들을 유혹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고 마는 <적과 흑>의 ‘쥘리엥 소렐’이나 <벨아미>의 ‘조르주 뒤루아’ 같은 속물 바람둥이들의 희생양이 되는 그런 마나님들하고는 많이 다르다. 한편 마놀로는 ‘쥘리엥 소렐’이나 ‘조르주 뒤루아’하고는 닮은 듯하면서도 조금 다르다. 아마도 그것은 이 두 사람 사이의 놓인 계급 차이가 과거 ‘쥘리엥 소렐’이나 ‘조르주 뒤루아’와 그들의 연인들 사이의 그것보다도 더 좁힐 수 없을 만큼 공고화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귀족이니 평민이니 하는 신분제도는 사라졌지만 '부(富)'로 더 건너기 어려운 계급이 생겼다. 1950년대 스페인도 마찬가지이다. 마놀로가 자기 계급을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마놀로 레예스는 가난한 동네에서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로 태어난다. 마놀로의 신분 상승 욕구는 어릴 때부터 대단했는데, 그의 엄마는 어느 후작의 대저택에서 하녀로 일했다. 그녀는 과부 상태에서 임신했고, 청소를 하는 와중에 마놀로를 낳은 바람에 후작집에서 아이를 막 낳은 이 여인을 돌봐줄 수밖에 없었다. 마놀로는 자연스레 그때부터 자신이 후작이 숨겨진 사생아라는 환상을 품고 자란다. 유아기에 마놀로는 자신의 오두막집과 후작의 대저택에 딸린 호화건물을 오가며 자랐다. 후작의 대저택에서 그는 엄마의 치맛자락을 잡고 졸졸 따라 다니며 그녀가 닦는 바닥의 반짝거리는 타일 위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곤 했다. 자신은 쌀바띠에라 후작의 아들임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조금 더 자란 마놀로가 관광 가이드 일을 할 때 그는 외모와 품행에 유달리 신경을 쓰고 다닌 덕에 동료들로부터 ‘후작’이라는 별명을 얻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그 별명을 만든 이가 마놀로 그 자신이며, 또 그 별명을 퍼뜨리기 위해 그가 꼼수를 부린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제아무리 별명이 후작이고, 후작의 아들일 것이라는 망상에 가까운 상상의 나래를 펼쳐도 그의 현실은 오토바이 좀도둑이며 그런 도둑질로는 가난한 동네를 벗어날 길이 없다. 그런 와중에 잡힐 듯 말 듯 환영과도 같은 아름다운 여대생을 향한 그의 커져가는 관심은 막을 수가 없다. 떼레사의 동작 하나하나에 배어 있는 무심함은 돈에 대한 여유와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자신감, 강렬하고 열정적이면서 유망한 내적 삶의 표시이다. 응석받이로 태어난 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매력이었다. 마루하는 물론 자기 동네의 가난한 여자애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매력이다. 어느덧 원래 목적은 잊고 진심으로 떼레사를 사랑하게 되는 마놀로. 하지만 부잣집 아가씨와 사랑에 빠져도 그 거리는 좀처럼 좁힐 수가 없다. 흙탕물이 고인 웅덩이가 그 앞에 놓였을 때 떼레사는 살짝 돌아서 갈 ‘여유’가 있지만 그는 그저 발을 첨벙첨벙 담그고 건널 수밖에 없다. 인생 자체가 시궁창인데, 그까짓 흙탕물이 눈에 무슨 대수이랴.

그런데 떼레사는 대체 왜 이런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남자에게 반하게 된 것일까? 오직 그 잘생긴 외모 때문일까? 모든 것을 다 가진 남부러울 것 없는 이 아가씨에게도 부족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가난’이다. 그녀는 가난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가난을 동경한다. 책으로만 프롤레타리아 계급, 노동자와 민중의 삶을 ‘공부’한 이 부르주아 아가씨는 민중의 삶을 몸소 경험하고 싶어서 가난을 동경한다. 가난마저 경험으로 삼는 부잣집 아들딸들이 지금도 있지 않은가. 떼레사는 우리나라 말로 하면 이른바 ‘캐비어좌파’ 아니, ‘강남좌파’라고 해야 할까. 그 시절 대학생들이 다들 그러듯이 떼레사 또한 학생운동에 투신하고 노동자의 삶을 동경해 공장 노동자들이 자주 모이는 곳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그런 그녀에게 마놀로는 “눈빛도 그렇고. 생각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다. “그러니까 자기 계급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난 절대 가질 수 없는 그런 거”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떼레사가 마놀로와 사랑에 빠진 것은 그를 혁명적 이상을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의 리더’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 환상은 결국 깨질 수밖에 없다.


“어쨌든 너희 동네에 사는 민중의 삶은 멋지고 재미있을 거야. 여름밤이면 카페에서 동료들과 논쟁을 벌이고…….”
“무슨 놈의 얼어 죽을 민중이야. 여름밤이 뭐 어째? 우리 동네에는 따분함과 가난만 있을 뿐이야.”
“그래 너희 동네는 정말 환상적이야.” (248쪽)


사람들이 행사하는 권력의 속성은 바로 우리가 처한 상황의 속성만큼이나 모호하다. 그 속성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곤 단지 그것이 모순된 생각들에서 비롯된다는 것뿐이다. 초창기 학생운동에는 뭔가 자위행위 같은 면이 있었다. (359쪽)


<떼레사와 함께한 마지막 오후>는 이렇게 신분은 사라졌지만 계급은 더 선명해진 1950년대 스페인을 배경으로 서로 다른 두 계급에 속한 두 남녀의 사랑을 그리면서 진보적인 부르주아 대학생들의 위선과 가난한 하층계급의 도덕적 파탄을 모두 비판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을 읽다 보면 후자보다는 전자에 대한 비판이 더 크게 느껴지기는 한다. ‘부유한 어머니에게 응석을 부리거나 커스터드를 곁들인 아침식사를 하면서 아주 모순되게도 부유한 부친에 대한 씁쓰레한 악감정과 기업가인 형이나 사촌 또는 헌신적인 숙모에 대한 경멸감을 표출’하는 쁘띠부르주아 좌파 운동권 대학생들. 그들에게 시위는 위험하기에 스릴을 느낄 수 있는 하나의 놀이는 아니었을까. 그 시위로 말미암아 감옥에 갔다온다한들 그들의 미래는 찬란하기만 하다. 부자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거나 감옥에 다녀온 것을 훈장처럼 달고 정치계에 뛰어들거나 등등. 이 쁘띠부르주아들에게 문제될 것은 하나도 없다. 결국 마놀로와 그가 속한 세계의 실체를 깨닫게 되는 떼레사, 그들로부터 ‘민중의 춤에서 볼 수 있는 직선적이고 건전한 흥겨움’ 대신 ‘겨드랑이 암내와 남몰래 숨어서 하는 의기소침한 발정’(405쪽)만을 발견한 떼레사. 그래서 떼레사는 어느 날 마놀로의 소식을 듣고 그토록 덧없이 웃고 말았을 것이다. 떼레사는 다시 그 부의 길, 안락함의 길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그러나 후작의 아들이기를 꿈꾸던, 삐호아빠르떼가 앞으로 살아갈 인생은 그리 녹록치 않아 보인다. ‘부자들은 돈과 지성과 건강한 피부색 영속적인 미소까지 상속받는’ 것에 비해 ‘가난한 이들은 썩은 치아와 납작한 이마와 휘어진 다리를 상속’받고(377쪽) 떼레사와 같은 부잣집 아이들이 지닌 ‘기품 있고 교양 있고 우아하고 명예를 중시하는 그 세계’를 가지는 것은 쉽지 않을 거란 깨달음을 얻은, 아니 애초부터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떼레사에게 마루하를 대하듯이 쉽게 육체적으로 다가서지 못했던 마놀로. 그저 스포츠카를 타고 시속150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리는 자유, 오직 그것만을 바랐던 삐호아빠르떼의 꿈은 그 옛날의 ‘쥘리엥 소렐’이나 ‘조르주 뒤루아’의 꿈처럼 쉽게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들이 그토록 쉽게 건넜던 육체의 경계를 마놀로가 결국 넘어서지 못했다는 것은, 사랑과 섹스마저도 ‘계급’의 뒤로 밀리고 마는 씁쓸한 풍경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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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4-29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대학다닐 때 책대여점에서 이 책 빌려 읽었거든요. 지난번 말씀드렸듯이 [여대생과 좀도둑]이란 제목이었어요. 제목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고민없이 빌려 읽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 당시에 편의점 알바 같이 하던 친구에게 재미없다고 말한 기억이 나는데, 잠자냥 님 리뷰 읽어보니 아니, 이거 왜 재미없어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벌써 20년도 더 전의 일이니 지금 읽으면 확실히 다른 감상을 갖게 되겠죠. 저도 꼭 읽어봐야겠어요. 잠자냥 님처럼 좋아하게될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착각‘과 ‘환상‘ 이야기 하시며 예로든 인용문이요, 특히 248쪽 참 재미있네요. 상대의 말을 안듣잖아요. 내 환상만 고집하잖아요. 따분함과 가난만 있다고 하는데도, ‘정말 환상적이야‘라는 응대라니.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사실 대부분의 인간 관계란게 이렇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그러다 환상이 깨지면 상대에게 화를 내죠. 실상 그 환상에 빠져산건 ‘내가‘ 한 일인데 말입니다.


아무튼 저도 조만간 꼭 읽어볼게요. 아니, 이렇게 얘기하고 산 책이 몇 권인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냥 집에 있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잠자냥 2020-04-29 14:16   좋아요 0 | URL
네, 안 그래도 제 서재 이웃분이 이 책 추천해서 저도 읽었는데, 그분이 이 작가 작품은 <떼레사와 함께한 오후> 이 책 제외하고는 <여대생과 좀도둑> 한 권만 번역되어 있는데, 그마저도 절판이라고 하셔서 찾아보니 원제가 같더라고요. 암튼 이 작가의 문체나 이야기 풀어나가는 방식이 아주 흥미로웠어요. 제가 20년 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아마 그냥 대중 연애소설이려니 했을 거 같기도 해요. ㅎㅎ

248쪽 인용문은 중간에 좀 생략된 내용이 있기는 하지만 아무튼 계속 저래요. ㅋㅋㅋㅋ 가난한 동네가 멋지다고 하고...(전 저 대화에서는 마놀로의 말이 더 공감이 갔습니다.ㅎㅎㅎ)

2020-05-06 14: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06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07 1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07 1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07 1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