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자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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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시작은 언제부터일까?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가 아닐까? 공항에는 설렘이 있다. 만남이 있고 이별도 있다. 그러나 어디론가 떠나는 이들의 얼굴에는 그 무엇보다 설렘이 가득하다. 비행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바삐 움직이는 걸음에도, 검색대 통과를 기다리느라 길게 늘어선 줄에도, 특별히 살 게 없어도 괜히 둘러보는 면세점에서도 많은 이들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다. 어딘가로 향하는 것일까? 가까운 곳이든 아주 먼 곳이든 그들은 곧 낯선 세계에 도착하리라.

많은 이들이 여행을, 그러니까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행위를 그토록 좋아하는 이유로는 낯섦과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가장 클 것이다. 한곳에 오래 머무는 행위는 권태를 불러일으킨다. 고인 물은 썩는다고, 어딘가 늘 한곳에만 머무르면 일상이 지리멸렬해진다. 그럴 때 인간은 떠난다. 물론, 인파가 몰리는 장소로 이동하는 것을 극히 꺼려해 여행을 싫어하는 이도 분명 있다. 그러나 그들조차도 자신의 하루를 돌아보면 어디론가 이동했다가 돌아왔음을 알 수 있다. 일터로 출퇴근 했거나 학교에 가거나 산책을 다녀오거나 등등. 몇날 며칠 방안에만 콕 박힌 채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창문을 열어 환기라도 한다. 공기의 순환, 그 이동을 통해 신선한 기운을 만난다. 이 또한 하나의 이동이고 움직임이다.

인간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흔히 ‘머무르는 상태’를 뜻하는 ‘안주한다’라는 말을 좋은 의미로는 쓰지 않는다. 현실에 안주하고, 현재에 안주하는 삶은 정체되었고, 더는 발전하거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상태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움직여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만나고, 받아들여서 변화를 꾀하고자 한다. <방랑자들>에는 그런 수많은 이들의 삶이 그려진다. 떠나고 돌아오고 여행지에서 길을 잃기도 하는 그런 사람들. 이 책은 여행자들을 위한 성경과도 같다. 아니 21세기의 베데커 여행서라고나 할까?

올가 토카르추크는 이 작품을 통해 모든 움직이는 것들, 어딘가로 향하고, 무엇인가를 향하고 때로는 자기 자신을 향해서라도 이동하는 존재들, ‘방랑자들’의 삶을 찬양한다. ‘몸을 흔들어, 움직여, 움직이라고, 그래야만 그에게서 도망칠 수 있어. 이 세상을 다스리는 존재에겐 움직임을 지배할 능력이 없어. 우리의 몸은 움직일 때 비로소 신성하다’고 말한다. ‘멈추는 자는 화석이 될 거야. 정지하는 자는 곤충처럼 박제될 거야. 심장은 나무 바늘에 찔리고, 손과 발은 핀으로 뚫려서 문지방과 천장에 고정될 거야.’(391쪽)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는 왜 ‘방랑’을 ‘떠남’을 ‘이동’을 ‘여행’을 찬양할까? <방랑자들>에서는 죽어서 더는 움직이지 못하는 것, 유리병 속에 방부처리된 육체도 등장한다. 육체가 죽으면 우리는 종종 ‘영혼’은 어딘가에서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 그러나 실체가 모호한 이 대상은 당혹스럽다. 이 작품에서 말하듯이 ‘인간의 진정한 권력은 인간의 육신에만 작용하고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육체를 다스리는 것은 삶과 죽음의 왕’(397쪽)이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닐까? 인간은 움직여야만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 여기서 ‘그’는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는 모든 것, 심지어 죽음까지도 포함한다. ‘그는 정지 상태에 놓여 있는 것, 꼼짝도 하지 않는 것,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모든 것을 지배’(389쪽)한다. 그러므로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움직여야 한다. ‘떠나는 자에게 축복이 있으리니’(392쪽).

 한 장소에 오래 머물면 그곳은 일상이 되어 매력은 점차 빛이 바랜다. 모든 ‘집과 대로, 공원, 정원 그리고 도로에는 누군가의 죽음이 스며’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동함으로써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사람들은 ‘모든 것이 새롭고 깨끗하고 순수하다고, 어떤 면에서는 불멸이라고까지 느끼게 된다’(460쪽) 이런 이동을 끊임없이 하다보면 언젠가는 여행의 가장 최상의 단계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경지에 이르게 된다. “내가 어디에 있든 중요치 않다.”(590쪽)고 말하게 되는 그런 단계. 그래서 다시 사람들은 방랑길에 오를 것이다. 죽음을 벗어나 새로 태어나기를 꿈꾸며. 그렇게 영원한 삶을 꿈꾸며……. <방랑자>들은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떠남과 돌아옴을 반복, 변화를 꿈꾸는 인간의 삶을 예찬한다. 떠났다 돌아올 때 그는 조금은 새로 태어나 있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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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11-27 0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여행자들을 위한 성경과도 같다니, 안읽어볼 수가 없겠네요.
주말에도 김포공항 갔다가 ‘아, 나는 공항이 진짜 너무 좋아 ㅠㅠ‘ 했는데, 저는 공항이 좋아서 여행이 좋은건지 여행이 좋아서 공항이 좋은건지 모르겠어요. 공항이 ‘왜‘좋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답할지 모르겠는데, 저는 공항에 취직하고 싶어요 ㅠㅠ 그러나 일터가 되면 싫어질까요?

잠자냥 2019-11-27 09:37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작가 자전적 이야기도 섞여 있는데, 작가가 여행을 꽤 좋아하는 사람 같아요. 공항 같은 곳에서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어도 좋을 것 같은 그런 책입니다. ㅎㅎ 물론 어떤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는 내용이기도 해서 앞에서부터 읽으면 좋겠지만.... 음 아무 쪽이나 읽다 보면, 왠지 여행지에서 지도 보며 목적지 찾아가는 그런 느낌이 들 것 같기도 해요. ㅎㅎ

공항 좋죠? 저도 공항 좋아해요. ㅋㅋㅋㅋ 인천 공항 가면 이미 거기 진입한 순간부터 여행지 온 것처럼 막 설레고 ㅋㅋㅋㅋㅋ 김포 공항도 요즘 리뉴얼 많이 해서 더 설레고 ㅋㅋㅋㅋㅋ 근데 전 공항에 취직하고 싶진 않아요. 일터 노노 ㅋㅋㅋㅋㅋㅋㅋㅋ 내 소중한 공항은 남겨둘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