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는 침묵했다 창비세계문학 69
하인리히 뵐 지음, 임홍배 옮김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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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축 처지는 날들이 있다. 아니, 생각해보면 이유는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면 더 막막해지는 그런 때. 그래서 이 힘겨운 인생을 왜 이렇게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는지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 그런 때. 요즘 내가 그렇다. ‘그랬다’라고 쓰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도 그 생각을 완전히 떨쳐버리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럴 때 하인리히 뵐의 책을 읽는다.

폐허 문학. 전쟁 뒤의 참혹한, 폐허와도 같은 그런 시기를 그린 문학. 요즘처럼 우울할 때 이런 책을 읽어도 될까? 조금 걱정스러웠지만,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 반납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어쨌든 읽는다. 책장을 펼치자마자 그려지는 세계는 말 그대로 황폐함 그 자체다.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탈영병으로 가까스로 살아남은 ‘한스 슈니츨러’. 그런데 그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니 어쩐지 마음에 잔잔한 위로가 밀려온다.

이 작품 14장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14장은 하인리히 뵐이 이 장만 따로 단편으로 발표한 적이 있다고 한다. <천사는 침묵했다>는 뵐이 죽고 난 뒤인 1993년에야 세상에 선보였다. 1949년 이전에 집필되었지만, 작품이 쓰였을 무렵 독일 사회는 이 작품을 받아들일 만한 정신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만큼 이 작품은 전후 독일의 무너질 대로 무너진 사회상을 세밀하게 담고 있다. 가난한 이들은 도둑질과 매혈, 구걸 등으로 목숨을 부지한다. 그런데 전쟁 때 나치에 부역했던 권력자들은, 전쟁이 끝난 뒤로도 사회 곳곳에 숨어서 여전히 잘 먹고 잘 살아간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독일 사회가 이 작품을 쉽사리 받아들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런 폐허와도 같은 작품에서 위로를 받는가. 그것은 폐허 속의 꽃 때문이다. 그 꽃은 뵐의 문장에서 피어난다.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문장이 빚어내는 따스한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14장만 따로 떼어 이야기하자면, 이 장은 두 남녀가 다 쓰러져 가는 낡은 집, 무엇하나 제대로 갖춰진 것이 없는 작은 공간, 폐허와도 같은 공간에서 서로 마음을 아주 조금 확인하고 체온과 입김을 나눠가지면서 잠드는 장면이 그려질 뿐이다. 그들은 어떻게 만났고 어떤 과정을 거쳐 드디어 조금씩 마음을 열면서 의지하게 됐을까? 14장만으로는 유추가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모든 것을 잃어버린 가난한 두 남녀, ‘한스’와 ‘레기나’가 그저 서로 체온을 나누며 의지하는 이 장면은 어쩐지 눈물겹다.

한스는 탈영병이다. 번번이 다른 사람의 신분증을 위조해가면서 목숨을 부지했기에 이제는 자기 자신의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그는 징집되기 전에 사랑했던 여인과 결혼한 전력이 있다. 그런데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갔다. 아내라고 잠시, 아주 잠시 불렀던 여인과도 어쩌다 하룻밤을 보낸 게 전부다. 그리고 그 아내마저 전쟁 때문에 잃어버렸다. 레기나는 또 어떤가. 그녀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갓난아이를 잃었다. 이 두 사람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자기 목숨뿐이다. 그마저도 제대로 부지해 나가기가 쉽지 않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너무나도 힘겨워, 전쟁 때 그냥 목숨을 잃어버린 편이 낫지 않았을까 싶어지기도 한다.

탈영병 검거를 피하기 위해 의사의 도움으로 가짜 신분증을 손에 넣은 한스는 추위 때문에 병원에서 무심코 걸쳤던 외투를 돌려주기 위해 외투 주인을 찾아간다. 외투 주인은 아기를 잃고 빈집에서 홀로 살아가던 레기나. 그녀의 집에서 한스가 주춤거리면서 묻는다. “당신 집에 있어도 될까? 내 말은 당분간…… 좀 오래…… 아니면 영영?” 레기나의 대답은 무뚝뚝하기 그지없다. “그래. 이 집에 있어도 돼.” 그 뒤로 한스는 레기나의 집에서 시체처럼 몇날 며칠 잠을 자며 그녀가 가져다주는 빵이나 커피를 받아먹는다. 별다른 말도 서로 나누지 않는다. 다정한 말도, 따스한 위로도, 강렬한 열정 같은 것도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서서히 서로 의지하게 된다. 레기나는 한스에게 배급표를 얻어다주고, 한스는 거리로 나가 신부로부터 얻게 된 미사용 와인이나 빵 한 덩이를 볼 때마다 레기나를 떠올린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들에게는 어떤 말이 없어도, 모든 상황을 다 안다는 듯이 품어주는 한 사람의 공감과 이해가 그 어떤 열정적인 사랑보다도 더 깊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마침내 사랑을 이야기하며 그런 가운데서도 슬프다고 말하는 장면은 애잔하기 그지없다. 그 참혹한 상황 속에서 발견한 한줄기 작은 빛의 소중함을 알기에 어쩐지 눈물이 난다.

하인리히 뵐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서 전쟁 뒤 비참하게 살아가는 중년 부부 ‘프레드’와 ‘캐테’의 삶을 그린 적도 있다. 가난한 부부의 어느 주말을 그린 이야기 속에서 전후 독일의 피폐한 상황, 가난에 찌든 하층민의 삶,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의 위선적인 면모를 폭로했다. 이 작품 또한 삶의 비애가 절로 느껴진다. 삶에 지치고 꿈이 부서진 중년 남자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생의 씁쓸한 단면에 깊은 공감이 간다. <천사는 침묵했다>의 한스와 레기나가 함께 늙어간다면 프레드와 케테가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금세라도 부서질 듯한 삶 속에서 그들의 사랑만큼은 단단해 보인다. 폐허를 함께 겪었기에 그 어떤 설명도 필요하지 않다. 그들 사이에는 이해와 공감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런 상대방으로 인해 어떻게든 살아나가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게 된다. 하인리히 뵐은 전쟁은 사람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지만 그럼에도 사람 때문에 다시 살아갈 수 있다고 희망을 말한다.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을 향한 연민을 잃지 않는다. 그 시선이 나를 위로한다.

이 책을 읽느라 눈가가 젖었는데 곁에 있던 고양이가 나를 보며 뭔가 다 안다는 듯한 얼굴로 나를 보며 눈을 지그시 감아준다. 애정이 담뿍 담긴 눈이다. 고양이들이 요물이라고 하는 까닭은 함께 사는 존재에 대해, 그 존재의 감정에 무척 예민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기쁜지, 슬픈지, 우울한지, 화가 났는지 너무나도 잘 안다. 내가 눈물 흘리면 옆에서 그냥 동그란 두 눈을 끔뻑끔뻑 감아줄 뿐이다. 아무 말도 필요 없다. 공감과 이해. 세상 그 어떤 사랑보다 더 깊은 애정이다. 살아가야지, 살아야 한다. 한스와 레기나처럼 전쟁 뒤의 폐허를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하루 살아가기 벅찬 인생이다. 생이 폐허와도 같다. 그러나 그 황폐한 터 위에도 꽃은 피어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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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19-08-29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고 위로를 받는 경험 흔치않죠. 작가로서도 자신의 작품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면 큰 보람을 느끼지 않을까 싶어요. 하인리히 뵐의 작품 리뷰를 몇 번 읽고 꼭 읽어봐야지 했었는데 잠자냥님의 글이 따뜻하게 느껴져서 저 또한 위로 받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잠자냥 2019-08-29 14:31   좋아요 1 | URL
네, 아마도 그런 경험들 때문에 책 읽기를 멈추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인리히 뵐 작품은 꼭 추천합니다.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요즘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카타리나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고요. 이 책을 비롯해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도 괜찮고요. 국내에 번역되어 출판된 작품은 그 어떤 것을 읽어도 마음에 드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