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혼란 - 지성 세계를 향한 열망, 제어되지 않는 사랑의 감정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서정일 옮김 / 녹색광선 / 2019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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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믿고 읽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인 슈테판 츠바이크. 그의 신간 <감정의 혼란>이 매우 아름다운 자태로 출간되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장바구니에 담다가 나는 잠시 고민했다. 왠지 이 익숙한 제목..... 분명 내가 읽었을 거 같은데? 검색해 보니 1996년에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된 적이 있다. 으음, 그럼 그렇지, 이걸 내가 안 읽었을 리가 없어. 한때 츠바이크에 푹 빠져서 그의 소설 중 국내에 출판된 책은 거의 다 찾아서 읽은 적이 있다. 아마 이 책도 그랬으리라. 그런데 확신이 들지 않아 미리보기를 했는데, 왜 이토록 새롭지? 안 읽은 작품인가? 이상하다 싶어서 결국 주문했다. 책을 받아서 지난 일요일 늦은 밤에 펼쳤는데, 으음, 흥미진진하다. 그러는 한편으로 내가 왜 이 책을 안 읽었던 것일까? 궁금한 생각도 든다. 어쨌든, 정말 재미있네? 계속 책장을 넘긴다. 이미 밤 열두시가 넘었다. 내일은 월요일이야, 그만 자! 싶은데 어느덧 100쪽을 넘겼고 이제 한 100쪽만 읽으면 돼! 그러니까 그냥 다 읽자 싶어졌다. 결국 2시간 남짓해서 이 책을 끝냈다. 아마 <감정의 혼란>을 무심코 집어 들어서 조금이라도 읽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멈추지 않고, 아니 멈추지 못하고 한 번에 읽기를 마칠 것이다.

이 작품은 30년 넘는 세월 동안 교수로서 확고한 지위를 누려온 늙은 학자 롤란트가 은퇴를 앞두고 자신의 젊은 날의 기이한 경험을 고백하는데서 시작한다. 그는 대학생이 된 첫 무렵에는 방탕한 나날을 보냈다. 책과 학문을 매우 중요시하던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에서 그는 도리어 학문을 멀리하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느닷없이 롤란트를 찾아온다. 방탕한 아들의 생활을 목격하고 만 아버지.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을 크게 꾸짖지 않는다. 오히려 뭐라 말할 수 없는 경멸 어린 시선과 침묵만이 아들과 마주한 방 안에 감돌뿐이다. 아버지의 뜻하지 않은 방문으로 롤란트는 몇 개월 동안 방탕으로 점철된 시간들이 무의미하고 덧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모든 저속한 향락들을 포기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정신적인 것, 학업에 온 힘을 쏟아 보고자 마음먹는다. 롤란트에게 어느덧 ‘진지함, 냉철, 훈육, 엄격함’에 대한 갈망이 싹튼다. 그리고 그는 우연한 기회에 셰익스피어 강의를 듣고 문학과 시, 예술이라는 세계에 홀린 듯 빠져든다. 이때 그를 그토록 매료시킨 장본인은 셰익스피어가 아니라, 그 강의를 압도적으로 이끌던 한 사람. 사십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어느 영문학 교수였다. 롤란트는 그 교수의 강의에 반해 그를 따르게 되고, 교수 또한 롤란트를 기꺼이 받아들이고는 그와 함께 지적 교류를 해나간다.

그런데 이 교수에게는 좀 이상한 면이 있다. 어느 날은 강의가 굉장히 좋은데 또 어떤 날은 형편없기 짝이 없다. 어제 그토록 신들린 듯한 강의를 했던 사람이 오늘의 저 지루한 강의를 하고 있는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완전히 다르다. 교수에 대해 궁금해진 롤란트는 그가 쓴 책들을 찾아보기도 하는데, 저작 또한 평범하기 이를 데 없다. 학문적으로 딱히 주목받지 못할 그런 저작들이 고작 몇 권 존재할 뿐이며 그나마 어떤 저서는 여전히 미완성인 상태다. 학문적인 면만 그런 것이 아니다. 교수는 어느 땐 롤란트에게 한없이 다정다감하면서도 또 어떤 날은 차갑고 비정하기 짝이 없다. 롤란트가 언제나 그를 ‘언어의 전령이자 창조적인 정신으로 가득 찬 존재’로 생각하며 높이 받드는 것과 달리 교수에게 롤란트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평범한 학생인 것만 같다. 롤란트에게 교수는 ‘무의식중에 그를 뜨겁게 만들어 놓고 느닷없이 얼음을 쏟아붓는 사람’이며 ‘자신의 격정으로 스스로를 자극하더니 갑자기 반어적인 언어의 채찍을 움켜쥐는 사람’이기도 하며 ‘번갯불처럼 번쩍이고 뜨거움에서 차가움으로 돌변하는 사람’이다. 이런 교수에게 롤란트는 수없이 상처받으면서도 그에 대한 존경과 숭배로 그 곁을 쉽사리 떠나지 못한다.

교수와 아내의 관계 또한 기묘하다. 둘 사이는 얼음장처럼 차갑다. 교수는 아내가 있을 때는 자신의 학문적 계획이나 연구에 대해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다. 롤란트가 보기에 교수보다 한결 젊은 그의 아내는 책과 집안 형편 같은 것, 폐쇄적인 것, 조용한 것, 차분한 것에 대해서는 도통 감각이 없다. 그러나 그녀는 항상 흥얼거리고 미소를 잃지 않는다. 춤을 추거나 수영을 할 때, 달리기를 할 때처럼 육체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며 몸을 움직일 때 가장 기분 좋아 보인다. 즉 그녀는 남편의 정신적인 세계와 완전히 차단되어 있으며, 육체와 물질세계에 속한 사람이다. 싱그러운 에너지가 넘치고, 롤란트에게 친절한 그녀임에도, 남편 이야기가 나올 때면 자기도 모르게 날이 서서 비꼬곤 한다. 그러나 롤란트는 그런 그녀가 싫지는 않다. 한때 방탕하게 지내면서 육체적인 것, 자연의 세계가 주는 쾌락에 탐닉했던 그였기에, 여전히 몸을 움직이며 자연을 누리는 행복을 무시하기 어렵다. 곧 롤란트는 교수 못지않게 그의 아내에게도 호감을 느끼게 되고, 두 사람이 가까워질수록 교수의 아내는 롤란트에게 무언가, 교수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주려다가 멈칫하는 순간이 종종 일어난다. 롤란트는 이 두 사람의 삶에 조금씩 개입하게 되면서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자신의 인생을 몰아간다.

<감정의 혼란>은 츠바이크의 많은 작품이 그렇듯이 교수와 그 아내의 비밀스러운 삶, 그리고 그 두 사람으로부터 크게 영향받는 젊은 대학생 롤란트- 이 세 사람의 관계를 중심으로 정신세계와 육체적인 세계, 즉 이성과 감성으로 이루어진 세계에 대한 탐구와 그것이 조화를 이루지 못했을 때의 파장을 집요하고도 숨 가쁘게 그려 나간다.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교수의 정체(?)이다. 롤란트가 스탕달증후군을 느낄 지경으로 홀딱 반할만한 강의를 해놓고도 그다음 날은 거의 쓰레기와도 같은 무력한 강의를 하는 그. 젊은 학생들에 둘러싸여 강의할 때는 전지전능한 신과 같으면서도 홀로 작업한 저서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그. 롤란트를 매우 아끼는 듯하면서도 때로는 자신의 제자가 거의 모멸감을 느낄 정도로 차갑게 구는 그. 어느 날 훌쩍, 예고도 없이 집을 떠났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그. 아내와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토록 서로 차갑고도 먼 사이로 지내는 것일까? 롤란트가 교수에 대해 궁금한 것 못지않게 독자 또한 그의 비밀은 과연 무엇인지, 아니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서 책장은 멈추지 않고 넘어간다.

책을 읽다 보면 문득 이 교수는 혼자서는 타오를 수 없는 촛불과도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 공기든, 혹은 불꽃을 붙여줄 만한 작은 불씨든 그 무엇인가가 존재하지 않으면 타오를 수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 싶다. 그런 그에게 자신을 숭배하는, 자기의 학문적 열정과 거기서 비롯된 연구 결과를 높이 사는 한 젊은 청년, 그러니까 불꽃이 될 만한 존재가 나타나자 그는 다시 생기를 얻어 연구를 이어가게 되는 것은 아니었을까? 롤란트에게 교수가 정신과 영혼의 세계를 상징한다면 교수의 아내는 육체와 감성, 자연의 세계이다. 이 두 사람 사이에서 줄타기하듯 끊임없이 정신적 긴장 상태에 놓여 있는 롤란트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는 이 책을 읽을 이들을 위해 말을 아끼고자 한다. 그럼에도 이 책 마지막 부분에서는 안타까움과 함께 이 세 사람 모두에게 나름의 연민이 든다는 점만은 밝히고 싶다.



덧1) 아주 오래전 메모를 뒤져보니, 나는 2011년에 <감정의 혼란>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더라. 고작 8년 만에 이렇게 책 내용을 깡그리 잊고서 완전히 새로운 책처럼 읽다니..... 나란 인간의 기억이란 참.... 집에 책도 없고, 거기다가 리뷰도 남기지 않았으니 이 책에 대해 더 기억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러므로 책은 사서(응?) 읽고, 리뷰나 짧은 평이라도 꼭 남겨둬야 한다. 물론 이렇게 두 번, 세 번 읽어도 좋은 책이 이 세상엔 널리고 널렸지만 말이다.

덧2) <감정의 혼란>은 책 만듦새도 예쁘고 츠바이크 책이라 소장 가치도 충분히 있어, 이 책을 산 것은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은 띄어쓰기가 조금 엉망이다. ‘~처럼’을 띄어 쓰질 않나. ‘~커녕’을 띄어 쓴 부분도 보인다. ‘세 들다’ ‘세들다’처럼 어느 부분은 띄어 쓰고 다른 부분은 붙여서 쓰기도 했다. ‘때 마다’처럼 ‘마다’를 띄어 쓴 부분도 보인다. 나는 띄어쓰기 같은 부분은 예민하지 않게 넘어가는 편인데도 너무 많이 눈에 들어와서 조금 짜증 나더라. <감정의 혼란>이 아니라 <교정의 혼란>이라고나 할까……. 이 출판사의 발자크 <미지의 걸작>도 사둔 채 아직 읽지는 않았는데, 이 책도 그 모양이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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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19-06-07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덧1)은 절대 공감입니다. 어쩜 그렇게 완벽하게 새 책 읽는 느낌인지. 근데 이런 책 다시 읽을 때마다, 읽어가면서 생각이 날 거야, 라고 허튼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ㅋㅋㅋㅋ

잠자냥 2019-06-07 12:12   좋아요 0 | URL
ㅋㅋㅋ 그렇죠? 저도 읽으면 다시 생각날 거라고 생각하지만 절대 생각 안 나더라고요! 나참 ㅋㅋㅋㅋ 심지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몇 년 뒤에 또 빌리고 있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

2019-06-11 1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1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