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도어 슈토름의 작품은 처음 읽는다. 독일 문학은 지루하고 관념적이라는 생각에 쉽사리 손이 가지 않는다. 이 책도 언젠가는 읽어보겠다고 보관함에 담아두기만 했다. 도서관 신간 도서 코너에서 깨끗하고 산뜻한 모양새로 나를 반기지 않았다면 이렇게나 빨리 읽어보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 책을 빌릴 때 모두 다섯 권을 대출했는데, 이 작품을 가장 나중에 읽었다. 도서 반납 기간이 다 되어가서 읽을까 말까? 그냥 가져다줄까? 고민하다가 부랴부랴 읽었는데, 웬걸. 이번에 빌려온 다섯 권 가운데 가장 좋았다.
'임멘 호수', '백마의 기사', '프시케' 세 작품이 실려 있다. 첫 번째 작품인 '임멘 호수'를 몇 장 읽지 않고도, 이야기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때 이미 ‘아, 이 책을 그냥 반납해했다면 정말 아까울 뻔 했구나.’ 생각했다. 어느 노인의 회상으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액자식 구성 때문에 실화 같은 느낌을 준다. 한편으로는 낭만적이고도 한없이 서정적인 분위기 때문에, 마치 할아버지가 아름다운 동화 한 편을 들려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 동화는 시작부터 조금은 쓸쓸하다. 행복하게 끝날 것 같지는 않은 느낌이 든다.
소꿉친구인 라인하르트와 엘리자베트. 어린 라인하르트에게 세계는 온통 엘리자베트이다. 엘리자베트는 그가 보호해야 할 존재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피어나는 그의 인생에서 모든 사랑스러움과 경이로움을 의미했다’('임멘 호수', 22쪽). 라인하르트는 직접 쓴 동화나 시를 엘리자베트에게 들려주며 언젠가는 그녀와 함께 인생을 꿈꾼다. 그렇지만 그 어린 아이 눈에도 어쩐지 그 꿈은 이루어지지 못할 것만 같다. 산딸기를 찾아 숲속을 온통 헤맸지만 끝내 찾지 못했듯이, 자신이 바라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없을 것 같다. 조금씩 성장하고 공부 때문에 고향을 떠나게 된 라인하르트는 엘리자베트와 줄곧 편지를 주고받으며 남다른 관계를 이어나간다. 그러나, 그럼에도 둘의 관계는 변하고 만다. 라인하르트가 선물했던 홍방울새가 죽고 그 자리를 에리히가 선물한 카나리아가 차지하고 있듯이.
“집에 오래된 노트가 있어. 거기에 온갖 노래와 시를 써넣곤 했지. 하지만 그만둔 지 오래야. 책갈피에 에리카 꽃 하나가 꽂혀 있어. 하지만 시든 거지. 그걸 누가 나한테 줬는지 알아?” 그녀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눈을 내리깔고 그가 손에 쥐고 있는 풀잎만 쳐다볼 뿐이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오랫동안 서 있었다. 눈을 들어 그를 쳐다보는 그녀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임멘 호수', 52쪽)
시든 에리카 꽃. 붙잡으려고 해도 도저히 잡히지 않는 호수 위의 수련. 세월의 변화와 함께 달라진 두 사람의 관계는 이렇듯 온갖 자연 속 사물로 상징되면서 안타깝고도 애상적인 분위기를 전한다. “엘리자베트, 저 푸른 산 뒤에 우리의 청춘이 있었어. 그 청춘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라인하르트의 이 말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순수했던 시절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거의 예외 없이 사라져간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기 때문이 아닐까. '임멘 호수'는 순진무구한 첫사랑이 이런저런 현실 앞에서 무너지고, 결국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전형적인 이야기임에도 읽는 내내 그 서정적인 분위기 때문에 남다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백마의 기사'는 슈토름의 대표작으로 꼽히는데,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덮고도 한동안 어디선가 백마를 탄 하우케의 고독하고도 쓸쓸한 모습이 눈앞에 나타날 듯하다. 이 작품 또한 액자 구성으로 이루어지기에 백마를 탄 기사가 실제로 존재했을 것만 같다. ‘백마의 기사’는 제방을 지키는 유령 기사의 이야기다. 안개 자욱한 바닷가를 유령처럼 돌아다니는 백마를 탄 기사 이미지 때문에 작품 초반 분위기는 몽환적이면서도 조금 으스스하다. 그런데 이윽고 펼쳐지는 이야기는 조금 뜻밖이다. 어릴 때부터 바닷가 제방에만 온통 관심을 쏟은 하우케 하이엔- 그는 집이 가난하여 제방감독관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본인의 노력과 주변의 도움, 뜻하지 않은 기회 등으로 그 자리에 오르고 만다.
그러나 미신과 전통을 굳게 믿는 마을 사람들에게 하우케의 이성적이고 냉철한 태도는 반감을 불러오고, 마침내 그는 자신의 가족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이 되고 만다. 그런데도 하우케는 이성과 기술로 자연을 다스릴 수 있다고 믿으며 주위 사람들의 반감에는 아랑곳도 하지 않는다. 그가 그렇게 앞만 보고 나아간 데는 열등감을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이나, 자기 능력을 과시하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 또한 컸으리라. 그러나 바로 그런 태도, 오만하며 누구와도 섞이지 못하는 태도는 그에 대한 불신을 강화하며 그 불신에 기묘한 소문이 덧붙여지면서 그와 그의 가족은 더욱 고립되고 만다. 스산한 분위기 때문에 하우케에게 불행이 덮칠 것 같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책을 읽었는데, 마침내 그 일이 일어나고 말 때는 안타까움과 함께 깊은 연민이 솟구친다.
'임멘 호수'가 서정적 낭만으로 가득한 작품이라면 '백마의 기사'는 전설과 미신이 많은 바닷가 마을 사람들과 이성과 기술을 상징하는 인물인 하우케의 대립에서 빚어지는 갈등을 담담한 어조로 전한다. 이 작품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자신들과 다른 존재인 하우케를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성적이고 계몽적이기에 자신들과는 이질적인 존재, 이제까지 보기 어려웠던 새로운 존재, 그래서 낯선 존재를 향해 사람들은 흉흉한 소문을 만들어내고 그 이야기를 조금씩 믿어간다. ‘난폭한 사람이나 악독하고 고집불통인 성직자를 성인으로 만들거나, 단지 우리보다 더 뛰어나다는 이유로 능력 있는 사람을 유령이나 귀신으로 만들어버리는 일은 언제나 일어나고 있다’('백마의 기사', 212쪽) 했는데, 바로 그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슈토름은 어릴 때부터 고향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나 동화에 심취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에 실린 작품 모두 전설이나 동화를 읽는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여느 전설이나 동화에서는 좀처럼 찾기 어려운, 서정미가 넘친다. 자연을 무척 사랑했고, 그 아름다운 자연을 묘사하는 슈토름의 빼어난 솜씨에서 한편의 서정시와도 같은 작품이 탄생한 것은 아닐까? 테오도어 슈토름- 이제야 처음 만났지만 다른 작품도 더 궁금해지는 그런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