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행복하게 보내는 법 중 하나는, 금요일 오전에 책을 주문하는 것이다. 그러면, 퇴근하고 집에 갔을 때 책이 나를 기다리거나, 운이 좋다면 내가 집에 먼저 도착해서 책이 오는 순간을 직접 맞이할 수 있다. 한 달에 두세 번 금요일마다 이렇게 책을 사지 않고는 못 배긴다. 생각해 보니 나는 책을 읽는 순간만큼이나, 책을 기다리는 순간, 그리고 책을 받아들고 처음 그 책과 서로 인사를 나누는, 그 순간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것 같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 새 책과의 만남은 언제나 행복 그 자체이다. 물론, 그 덕분에 미처 다 읽지 못한 책들이 나날이 책장에 쌓여가기는 한다.

지난주 금요일에는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를 주문했다. 사 둔 책이 많아서 이번 달은 책을 사지 말아야지, 굳게 결심했지만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퇴근하니 책이 나보다 먼저 집에 와 있었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알라딘 상자를 열었다. 다섯 권을 주문했는데, 그중에 레싱의 단편집을 가장 먼저 펼쳐들었다. 그때 나는 이탈로 스베보의 <제노의 의식>을 읽던 중이었는데, 제노 그 양반을 잠시 쉬게 하고 레싱의 단편집에서 첫 번째 작품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를 읽어 나갔다. 그리고 잠시 뒤 나는 여러 차례 감탄을 하기 시작했다.

하, 도리스 레싱, 이 사람 대체……. 어쩜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지? 첫 번째 단편을 몇 장 읽다 보니 문득, 레싱 주변에 찌질한 남자가 많았거나, 아니면 그런 이들을 관찰할 기회가 많았거나, 레싱이 그런 남자들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대단한 눈을 지녔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이 세상에 찌질한 남자들이 너무도 많아서 그녀가 살면서 느낀 것을 글로 적으면 이렇게 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찌질하기 짝이 없는 남자가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그레이엄 스펜스’. 한때는 글도 좀 끼적거린, 작가라고 불리기도 한 그 남자는 이제는 자신의 작품을 쓰기보다는 라디오와 텔레비전과 관련된 일을 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책에 대한 서평을 쓰면서 살아간다. ‘다른 사람들의 재능으로 돈을 버는 사람’(18쪽)이 된 것이다(레싱의 이런 표현에 감탄했다).

그런데 그레이엄은 어느 파티에서 우연히 바버라 콜스를 보게 되고 그녀를 욕망하게 된다. 그런데 그 욕망은 사실 사랑도 뭣도 아니다. 단지 호기심 또는 자신의 남자로서의 능력이랄까 이런 것을 시험해 보고자 하는 비뚤어진 욕망일 뿐이다. 그가 애초에 그녀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순전히 누군가가 "저 여자가 존슨의 새 여자야"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존슨이 바버라에게서 과연 무엇을 보았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또는 권태로운 결혼생활에서 잠시 일탈해보고 싶은 하나의 탈출구 같은 대상이랄까. 도리스 레싱은 그레이엄 스펜서의 결혼생활을 짧게 묘사하면서도 ‘결혼’이라는 제도의 맹점을 통렬하게 까발린다.



그는 결혼생활 20년째였다. 처음에는 폭풍처럼 고통스럽고 비극적이었다. 헤어짐, 배신, 그리고 달콤한 화해로 가득했다. 적어도 10년이 흐른 뒤에야 그는 마음과 오감으로 그토록 많은 놀라운 일들을 겪으며 살아낸 이 결혼생활이 전혀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아는 사람들 대부분의 결혼생활이, 그것이 초혼이든 재혼이든 세 번째 결혼이든 상관없이, 그의 결혼생활과 똑같았다. 젊은 여자와의 진지한 연애조차 전형적이었다. (<19호실로 가다>,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 17쪽)


바버라 콜스에게 접근할 기회만을 엿보던 그는 마침내 그녀를 인터뷰하게 되고, 그때부터 이 남자의 뻔뻔하기 짝이 없는 진상 짓은 놀랍도록 생생하게 펼쳐진다. 그의 참을 수 없는 찌질함에 욕과 웃음이 여러 차례 터져 나온다. 그레이엄은 인터뷰 대상자인 바버라를 육체적으로 소유할 생각에 불타서 어떻게 하면 그녀를 자기 권력 아래 마음대로 부릴 것인가에만 몰두한다. 바버라가 제안하는 레스토랑도 무시하고, 멋대로 자기가 원하는 장소로 그녀를 끌고 가며, 그녀가 원하지도 않는데, 술을 마시면서 인터뷰를 어떤 식으로 할 것이라는 둥 시종일관 자신이 ‘주도권’을 잡으려고 애쓴다. 혹시라도 바버라가 주도권을 잡는 듯하거나 자신의 뜻과는 달리 그녀가 지적이고 차분한 모습을 보이면 속으로 온갖 욕을 하면서 그녀를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이다. 그렇게 해야만 자신이 둘 사이의 권력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방송국에서 인터뷰도 마치고 볼일을 다 봤으면 이제 헤어져서 가야 할 텐데, 이 집요한 남자는 자신의 목적(!)을 이룰 때까지(그러니까 바버라를 침대로 끌고 가기 전까지)는 떨어지지 않을 기세다. 그리하여 마침내 ‘차 한 잔 대접’하라는 부탁을 가장한 강요 끝에 그레이엄은 바버라의 집까지 가는데 성공한다. 그 다음부터 벌어지는 일들은 정말 처절한 블랙 코미디 한 편을 보는 듯하다. 그레이엄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바버라는 줄곧 차분하다. 일로 만난 상대를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대하고자 인내하면서 노력한다. 그리고 그런 차가운, 철벽을 두른 태도에 그레이엄은 혼자 신났다가, 화를 냈다가, 증오하다가 등등 북 치고 장구 치고 난리도 아니다. 그 꼬락서니가 어찌나 가관인지 혀를 내두르게 된다.

결국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듯 보이는 그레이엄- 그러나 사실 이 작품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느끼겠지만 그는 완벽하게 바버라에게 패배하고 만다. 그 까닭은 바버라의 태도에서 기인한다. 철저한 무시. 일을 위해 만난 상대로서 배려는 해주지만, 그 이상은 허락지 않는, 감정적으로 그와 전혀 얽히지 않는 태도. 한 치의 마음속 공간도 허락하지 않는 냉담한 무시로서 상대에게 씻을 수 없는 굴욕감을 안겨주는 것이다. 바버라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그레이엄은 ‘헤픈 년, 멍청한 암소, 건방진 년, 매춘부’ 등등 온갖 욕을 하면서 그녀를 증오한다. 이토록 찌질할 수가! 그럼에도 바버라는 꿈쩍하지 않는다. 그저 피곤하기 짝이 없는 이 진드기를 떼어버리고 싶은 생각뿐이다.

두 번째 작품인 「옥상 위의 여자」는 예전에 ‘창비세계문학단편선 영국 편’에서 ‘지붕 위의 여자’라는 제목으로 읽은 적이 있다. 이번에 한 번 더 읽었는데, 이 작품 또한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처럼 여자에게 시선을 보내는 남자들과 그 시선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여자)가 등장한다. 뜨거운 한 여름, 지붕을 고치던 세 남자- 해리, 스탠리, 톰은 대단한 눈요깃거리를 발견한다. 건너편 건물 옥상 위에서 한 여자가 비키니 차림으로 일광욕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흥분한다. 그들이 있는 곳보다 조금 낮은 건너편 건물은 옥상 위에서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 낱낱이 엿볼 수 있다.

여자는 자그마한 빨간 팬티 하나만 아슬아슬하게 걸쳤을 뿐이다. 그들에게 다분히 도발적으로 보였으리라. 남자들은 휘파람을 불고 난리가 났다. 그런데 여자는 철저히 무반응이다. 이들은 여자의 그런 태도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화들짝 놀라면서 그들의 시선을 피하는 것도 아니고, 남자들의 휘파람에 그들이 기대했을 반응-그러니까 어떤 식으로든 성적으로 여지를 주는 응답-은 더더욱 없다. 그저 철저히 남자들을 보이지 않는 사람 취급을 한다. 여자의 태도에 그들은 당황하더니 마침내 크게 분노한다. 자신들의 뜻대로 되지 않자 여자를 향해 나쁜 년 운운하면서 욕을 한다. 그 모습은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빼기」의 그레이엄과 매우 닮았다. 그레이엄이 성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바버라와 권력 싸움을 하듯이, 옥상 위의 남자들과 여자는 바라보는 남자와 대상으로서의 여자, 즉 시선의 권력 싸움을 벌인다.

아무렇지도 않게 지켜보는 남자와 남자의 시선에는 마땅히 어떤 식으로든 반응해야 하는 것처럼 존재하는 여자. 여자는 남자의 시선에 언제나 ‘대상’일 뿐이다. 그렇기에 남자가 시선을 주면 어떤 식으로든 반응해야 하는 존재이다. 부끄러워하거나 놀라거나 당황하거나 수줍어하거나 아니면 그들이 바라는 대로 무엇인 성적으로 질펀한 반응을 하거나. 그런데 마음대로 시선을 굴릴 권리가 있으신, 그 '대단하신' 남자들의 시선을 여자는 단칼에 무시한다. 아예 없는 사람, 존재하지 않는 취급을 한다. 이렇게 도리스 레싱의 「옥상 위의 여자」는 여성의 몸과 남성의 시선을 전면에 놓으면서 젠더와 권력 문제를 짧지만 강렬하게 표현한다.

<19호실로 가다>에는 도리스 레싱이 직접 쓴 서문이 있다. 레싱은 ‘성적인 관계는 대부분 상대보다 한발 앞서서 상대를 지배하려는 권력 게임이다. 매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사랑, 다정한 사랑은 말할 것도 없다.’ 말한다.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와 「옥상 위의 여자」 이 두 작품은 바로 그런 권력 관계를 다룬다. 남자들은 자신이 권력의 위에 있다고 여기고, 마음대로 행동하지만 어느 순간 그 권력은 여자들의 태도에 따라서 뒤집어진다. 이 두 작품은 바로 그 순간을 예리하게 포착함으로써 자신들의 욕망이 어그러지고, 권력을 여자에게 빼앗긴 그들이 어떻게 분노하며 여자들을 괴롭히는지를 낱낱이 보여준다. 그녀들의 무심함과 그 남자들의 참을 수 없는 찌질함. 단 두 작품만으로도 짜릿한 통쾌함을 느낀다. <19호실로 가다>는 다 읽고 나서도 리뷰를 쓸 예정인데, 일단 두 작품만으로도 할 말이 많아서 이렇게 끼적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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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2018-07-13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소설을 읽지도 않았는데 위에 말씀하신 소설 속 그레이엄 이라는 남자 정말 극.혐이네요. 그런데... 저 그레이엄이라는 남자처럼 생각하는 남자가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게 슬픈 현실.
여자가 당연히 자기에게 뭘 해줘야 한다는 (그게 반응이든 성관계든 연애든 집안일이든) 사고방식의 남자들 너무 많죠. 은연 중에 그런 태도를 보이는 남자들도 많고... 그런 찰나의 태도를 예리하게 포착해 내는 사람들이 또 소설가들인 것 같습니다.

평론 쓰는 사람들보고 ‘남의 재능으로 먹고 사는 사람‘ 진짜 일리 있네요. ㅋㅋㅋㅋ 정작 창작자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면서 가끔 자기들이 갑인양 구는 거 보면 엄청 웃겼는데. 그런 평론가들의 모습을 정말 잘 표현한 말이란 생각 듭니다.

잠자냥 2018-07-13 12:11   좋아요 1 | URL
ㅋㅋㅋ 읽다 보면 정말 욕이 막 튀어나와요. 너어어-무 찌질해서 ˝어머어머... 어쩜 좋아˝ 이런 말도 저도 모르게 막 튀어나온달까요. ㅋㅋㅋ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에는 그것 말고도 감탄할 만한 표현이 여러 번 나오는데요, 그중 하나 지금 기억나는 게 어떤 남자를 설명하면서 ‘어둠이 녹아내린 듯한 미남‘이라고 했던가... 그 비슷한 표현이 있었는데, 거기서 또 한번 캬... 했더랍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