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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 선사 삼국 발해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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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전까지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일대를 두루 답사했고, 경주만 세 번을 다녀왔지만 기억에 남는 건 별로 없다. 누군가 강진 가봤어?, 공주 가봤어? 하고 물으면 자신있게 "어~ 나 거기 가봤어"라고 대답하지만, "거기 어때?, "거기 가면 뭐 뭐 봐야돼?"와 같이 조금만 구체적으로 물어볼라 치면, 어디론가 숨고 싶어진다. 게다가 역사교육과를 졸업했기 때문에 누구나 교양 수준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기대하지만, 난 아직도 그런 순간이 두렵다ㅠ    탑 앞에서 작아지고, 불상 앞에서 초라해지고, 박물관 안에서 뒷걸음질 치게 되고.. 천마총, 무령왕릉 속에서 죽고싶어 진다..ㅠ  

수업시간에도 문화사 내용을 다룰때면 두리뭉술 설명하고 아이들이 질문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구렁이 담 넘어가듯 훒고 지나갔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책 한 권 읽는다고 문화사 소양이 훌쩍 쌓이지는 않겠지만서도, 당당해지기 위한 첫걸음으로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권을 샀다.  

생소하고 어려운 내용은 그냥 지나쳤으며, 어디선가 한 번 봐서 낯 익지만 자세히는 몰랐던 것들 중 새롭게 알게 된 내용만 정리해가며 읽었다.  

 

선사시대 

-1909년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에서 발견된 '비너스'. 여성의 유방, 배, 엉덩이, 성기를 과장되게 표현한 여인상으로 열굴의 이목구비는 전혀 표현하지 않고 오직 여체에서 출생과 관계되는 부위만 강조하였다. 교과서나 문제에서 수도 없이 봤지만, 비너스 상에 눈, 코, 입이 없다는 건 처음 알았다. 
 
-신석기시대의 덧띠무늬토기는 한반도에서 뿌리 내리지 못하고 기원전 4,000년 무렵 빗살무늬 토기의 등장과 함께 소멸하게 된다. 그래서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토기하면 '빗살무늬 토기'를 떠올리게 된다. 토기라는 것이 인간이 처음으로 응용한 화학변화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그것이 지닌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빗살무늬 토기의 '빗살무늬'는 토기의 허전한 벽면을 꾸며주는 기능을 하는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빗살무늬'는 사람 손바닥의 지문과 같은 구실을 하여 미끄러지지 않고 잡기 편하게 한다. 또 빗살무늬의 상징성은 대체로 생선뼈무늬로 이해되는데, 본래 선사시대 미술에서 통째로 벗긴 동물 가죽이나 살을 발라낸 생선 뼈는 정복을 의미한다고 한다.  
기원전 1,500년 무렵부터 기형에 납작바닥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약 2,500년 동안 신석기인들의 삶에 어떤 변화도 없었다는 걸 보여준다.  
 
-울산 울주 반구대 암각화.
 발견 당시에는 청동기시대의 풍요를 기원하는 제의가 행해진 유적으로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울산만의 지형이 신석기시대에 고래사냥에 적합한 곳이었음에 주목하면서 신석기시대인들의 유적이라는 학설이 제시되었다. 또 청동기시대는 본격적으로 농경이 이루어진 시기인데, 암각화의 내용은 모두 어로와 수렵에 관련된 것들이가 신석기시대의 유물이라는 사실을 뒤받침해준다.
 
 청동기시대
 -밭을 가는 남자의 발기된 남근이 정확히 표현되어 있는데 머리에는 깃털 같은 것을 꽂고 있어 생산과 풍요의 상징으로서 성관념이 나타났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김광언의 <쟁기연구>에 의하면 평양지방에서는 얼마전까지도 농한기가 끝나고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봄에는 남자가 남근을 내놓고 밭을 가는 풍습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동북아 고인돌의 분포를 보면, 한반도에서는 전역에 퍼져있음에 반해 중국에서는 요동반도와 황해안 주변, 일본에서는 규슈 지방에 일부 남아 있어 단연코 우리나라가 중심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원삼국시대 
삼한시대이면서 삼국이 태동하는 시기였고 낙랑이 있었다. 이 복잡한 고대국가 태동기를 고고학에서는 '원삼국시대'라고 부른다. 삼국으로 정립되어가는 기원의 단계라는 뜻으로 문헌사학에서는 삼국시대 초기라고도 하지만 아직 부여, 삼한 등이 공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원삼국시대라는 시대개념으로 부르는 것이다.  
  
도기의 등장 
도기의 등장은 획기적인 기술혁명이었다. 밀폐된 가마를 사용함으로써 화도를 더 올려 좀 더 견고하게 구워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삼국시대에는 원삼국시대의 회색 연질 도기에서 흑색 경질 도기로 전환하게 되는데  삼국시대의 도기는 우리나라 도자사에서 고려 청자, 조선 분청사기, 조선 백자와 함께 당당히 한 장을 차지하는 뛰어난 분야라고 한다. 국내외 미술사가들과 박물관 관계자들이 한국미술사에서 재평가될 대상 중 첫번째로 꼽는다.  
 고구려 도기의 특징은 과묵한 정서를 담고 있으며 듬직하고 튼튼하다는 것이며, 백제 도기의 특징은 간결하면서도 부드럽고 우아한 고전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신라 도기는 화려하고 장식성이 많다는 것이 특징인데, 특히 세계 문명사에서 1500년 전에 산라, 가야 처럼 질그릇으로 다양한 손잡이잔을 만들어 사용한 나라는 없다고 한다.
                          
신라와 가야의 영향을 받기 이전의 일본 토기는 붉은색을 띠고 있는 연질의 하지키였다. 이것이 5세기 전반부터는 흑색 경질 도기로 바뀌는데 일본에서는 이를 스에키라고 부른다.  
스에키는 도기의 질과 기형 모두가 가야도기와 거의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비슷하다. 이는 391년 광개토대왕의 공격으로 쇠망의 길로 들어선 금관가야인이 집단으로 일본에 건너가면서 일으킨 변화였다.  
 
고구려 고분벽화 
1) 초기(350~450) 초상화 벽화 무덤 : 안악3호무덤, 덕흥리무덤 
2) 중기(450~550) 생활 풍속화 벽화 무덤 : 약수리무덤, 수산리무덤, 춤무덤, 씨름무덤 
3) 후기(550~668) 장식무늬와 사신도 벽화 무덤 : 강서큰무덤, 퉁구사신무덤 
-안악3호분 : 발견된 고구려 고분 벽화 중 가장 규모가 크고 벽화의 내용도 다양할 뿐만 아니라 벽화의 조성연대와 피장자를 알 수 있는 문서가 쓰여있어 고분 벽화의 편년을 세우는데 가장 중요한 고분이 되었다. 중국에서 귀화한 동수의 무덤이라는 설과 미천왕릉 또는 고국원왕릉이라는 설이 있다.
 
  
 
 
 
 
  
 
 
 
 
 
 
 
-수산리 고분 벽화 : 남녀 주인공의 행차에 따른 여러 수행원의 모습을 인물의 비중에 따라 크기를 달리하면서 일직선상에 그렸는데 맨 앞에는 높은 죽마를 타고 재간을 부리는 길눈이가 있고, 맨 뒤에는 수행하는 두 여인이 있다. 뒤이어 발견된 일본의 다카마쓰 고분 벽화의 여인상 옷차림이 이와 비슷하여 주목을 받았다.   
 
 
 
 
 
 
 
 
 
-춤무덤 벽화 : 팔을 뒤로 젖힌 춤 사위를 나타낸다는 것이 한쪽 팔을 머리 위로 올려놓았고, 음식을 나르는 사람들의 옷자락은 진행방향에 맞추어 앞으로 빠져나와 있다. 이러한 묘사는 그릠의 경험이 적은 아동화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냥하는 모습 : 화면 왼쪽 끝에는 말을 타고 뒤따라 가는 한 젊은이가 있는데 그는 마지못해 사냥에 따라온 듯 게으른 표정이다. 말도 가기 싫은 듯 뒷걸음하는 모습이다.  
 사신도 벽화 : 사신도만으로 이루어진 벽화무덤이 나타남. 이는 동시대 중국의 고분 벽화가 인물과 신선으로 채워진 것과는 사뭇 다르다. 사신의 개념을 만든 것은 중국이지만 그것을 죽음의 공간에서 영혼을 지켜누는 완벽한 도상체제로 구현한 것은 오히려 고구려였다.  
 
 
백제고분 
신라는 돌무지덧널무덤이라는 이중삼중의 지하매장 구조여서 비교적 도굴의 피해가 적었지만 백제의 벽돌무덤과 굴식돌방무덤은 지상구조여서 쉽게 도굴되었다. 무덤 축조 이후 아무도 손을 댄 일이 없는 무령왕릉이 발견되면서 백제 고분미술의 아름다움에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무령왕릉 출토 유물 중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관을 만든 목재가 금송이라는 사실이다. 금송 식생지의 중심지는 일본 남부 시코쿠와 규슈 남부지방, 그리고 나라 근처 고야산이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461년 개로왕은 임신한 후궁을 동생 곤지와 찍지어 주고 일본으로 가게 했는데, 가는 길에 이 후궁이 나은 아들이 바로 무령왕이라고 한다. 이런 기록으로 인해 일본의 26대 천황인 게이타이가 무령왕의 동생이라는 설도 나오고 있는데 이는 당시 백제와 일본의 관계가 매우 밀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본 도다이지의 쇼소인(정창원)은 왕실의 유물창고이다. 1946년부터 해마다 가을철에 일부씩을 주로 나라국립박물관에서 특별전 형식으로 공개해오고 있는데, 1993년과 2008년 전시회에서 백제 의자왕이 보내준 자단목 바둑판, 상아바둑알, 바둑알 통인 은형탈합이라는 유물이 공개되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바둑판이고 바둑알이다. 백제인이 바둑을 좋아했다는 것은 개로왕이 바둑을 좋아해서 한강유역을 빼앗기고 포로로 끌려가 죽게 된 사실만으로도 알 수 있다.  
 
신라의 고분 
마립간 시기 서라벌에는 거대한 봉분의 고분이 축조되었다. 황남대총, 천마총, 금관총, 금령총, 서봉총 등은 모두 마립간 시기의 고분이다. 이 대형 고분은 돌무지덧널무덤 구조를 하고 있다. 마립간 시기의 대형 고분은 왕경의 지배층이 장례의식을 성대히 하고 무덤을 거대하게 만들어 주변지역 사람들에게 힘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고, 부장품들은 일종의 위세품이었다.  
신라왕 시기 고분의 형태와 장례풍습은 마립간 시기와는 사뭇 달랐다. 대형 고분은 자취를 감추고, 껴묻거리도 전처럼 많지 않고 화려하지도 않았다. 고분의 형태는 기본적으로 돌방무덤이었다. ...이와 같이 묘제가 간소화되었다는 것은 죽음에 대한 신라인의 의식이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불교의 영향으로 사후의 세계에 대한 정신적 보상을 받을 수 있어 죽음의 의미가 전보다 약해진 것이다. 종래에 고분 조성에 보여주었던 열정을 사찰 건립과 불상에 바치게 된다.  
 
- 신라 금관 :  신라 금관의 세움장식인 나무와 사슴뿔은 오래전부터 시베리아 일대에 널리 퍼져있던 샤먼신앙이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신라 금관에 반영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설이 없다. ... 또 신라 금관은 일반적으로 왕이 머리에 쓰던 관이라는 생각도 사실과 다르다. 지금까지 6개의 신라 금관이 발견되었는데, 금관이 만들어진 시기로 추정되는 5~6세기의 왕은 눌지마립간, 자비마립간, 소지마립간, 지증왕 이 네 명에 불과하다. 또 남자무덤에서 금동관이 출토되고 여자와 15세 전후 아이 무덤에서 금관이 나온 것으로 보아 신라 금관은 왕이 아니라 시조와 하늘에 제사 지내는 제관이 착용했던 것으로 왕관과는 별개라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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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구의 우리 눈으로 보는 세계사 1
강철구 지음 / 용의숲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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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책이다. <프레시안>에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글들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고 한다.

책은, 유럽이 인류에게 자유와 평등, 인권, 민주주의, 근대 과학, 자본주의, 산업화 등 온갖 좋은 것들을 가져다 주었다는 인식이 19세기에 서양 역사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책을 읽는 동안 여러번 낯이 뜨거워졌다. 민주주의, 자연법 사상, 과학 기술 등 인간의 삶을 질적으로 풍요롭게 해준다고 여겨지는 가치와 기술들이 모두 유럽에서부터 싹트고 자라났다고 가르쳐온 순간들이 떠오르면서... 너무 부끄러워졌다.

"모든 사람에게는 두 개의 조국이 있는데, 하나는 태어난 나라이고 다른 하나는 프랑스이다"라고 하면서 프랑스 혁명은 보편적 가치로서 자유평등박애의 이념을 세계에 전파한 위대한 시민혁명이라고 가르쳤다.

프랑스가 전 세계에 자유와 평등을 가져오기는 커녕 1960년대까지도 저질의 식민주의를 통해 알제리, 베트남 등 광대한 식민지의 자유를 빼앗았다는 사실은 제국주의 시대에는 어떤 나라나 다  그러했다는 듯이 대강 가르쳤다.

 

아 진짜..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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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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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정말 감명 깊게 읽었다. 얼마 전에 읽었던 <강남몽> 보다 훨씬 흡입력 있고 여운도 짙게 남는다.  내가 지금까지 접했던 그간의 어떤 영화나 다큐, 소설 보다도 반전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전쟁 60주년이라고 올 여름, <전우>나 <로드넘버원>과 같은 드라마와 특집 다큐가 무지 많이 방송됐는데.. 기억에 남는 다큐는 별로 없고.. <로드넘버원>은 본 적이 없고.. 1, 2회만 챙겨봤던 <전우>에서의 특정 장면만이 기억에 남는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평양이 국군에게 점령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국군이 민가를 수색하던 중이었는데, 한 허름한 집에서 노인 한 명이 뛰어나오더니 태극기를 꺼내 흔들며 "국군 만세, 국군 만세!"를 외치다가, 군인들의 눈치를 살피고는 인공기를 든 다른 한 손을 치켜들고 "인민군 만세, 인민군 만세!"를 외치는 거다.

전세에 따라 하루 사이에 점령군이 뒤바뀌는 혼란 속에서 노인은 생존을 위해 태극기와 인공기를 번갈아가며 흔들었던 것이다.

그 장면을 보면서 이념이라든가, 이데올로기라고 하는 것은 거대하고 무겁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깃발의 무게 만큼, 혹은 깃발을 누르고 있는 공기의 무게 만큼이나 가벼운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1950년 황해도 신천을 시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황해도라고 하니까 '신천'이 북한 어디쯤인 것은 알지, 그밖의 것은 아무 것도 모른다.

소설을 읽는 내내 '손님'은 주인공 요섭을 찾아오는 죽은 영혼들을 가리키는 것이라 생각했다. 정말 단순하고, 직접적이고, 단세포적이지만,...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다, '작가의 말'을 읽고 '손님'이 의미하는 것이 기독교와 맑스주의였다는 것을 알았다. '앗!'하는 충격을 받았다. 정말이지, 기독교나 맑스주의는 가족이나, 이웃 같이 친근한 느낌의 것이 아닌, 생경하고 외부로부터 전해왔다는 이질적 느낌을 가져다주는 '손님'이라는 말이 아니고서는 달리 표현할 수가 없을 것 같다. 

해방 직후 열린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의 결정사항이 국내에 전해진 후, 좌익과 우익이 친탁 대 반탁 노선으로 나뉘어 대립하였을 때, '이제까지 한국 역사에서 국내 세력끼리 그렇게까지 다퉜던 적은 없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 갈등의 정도가 심했다고 하는데... <손님>은 그 부분을 사실적으로 전달해준다. 사실적이기 때문에 더 충격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방금 네이버에서 검색해보니,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1950년, 황해도 신천 사건'을 방영했던 적이 있다고 한다. 한번 꼭 찾아봐야 겠다. 

암튼, 책 속의 "누가 가해자가 아니라는 거야? 가해자 아닌 사람이 어딨어!"라는 말처럼 가해자가 없다고 하는거나.. 모두가 가해자라고 하는거나...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점에서는 똑같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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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외인종 잔혹사 - 제14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주원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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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신선한 소재를 바탕으로 한 영화나 소설 작품에 '발칙한 상상력' 또는 '상상을 뛰어넘는'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을 보았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비카스 스와루프) 처럼 엄청 기대를 했지만 발랄하거나 발칙한 정도의 상상력이 아니어서 조금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있고, <열외인종 잔혹사>(주원규. 한겨레출판) 처럼 상상을 초월한다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경우도 있다.

누구나 새로 개봉된 영화나 신간 소설을 읽을 때마다 전에 본 특정 작품들과 비교하기 마련이다. 나에게도 비교 기준으로 삼는 작품 몇 가지가 있다. 영화로는 '지구를 지켜라', '식스티나인', 소설로는 <남쪽으로 튀어> 정도. 하지만 벌렁거리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하며 단숨에 읽어내려간 작품은 <열외인종 잔혹사>가 처음이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나서 긴 숨을 몰아쉬며 아쉬움에 책을 스윽스윽 쓰다듬어 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앗. 한 가지 더! 만화책과 소설, 수필 등을 통털어 책을 읽으며 키득키득 소리내어 웃어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네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나이 80 가까이 된 '박통의 남자' 극우수구파 노인 장영달, 최저임금노동자로 살다 해고되어 무료급식으로 연명하는 노숙자 김중혁, 콜라 없이 햄버거만 먹더라도 진짜 같은 짝퉁을 고집하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윤마리아, 인터넷 게임머니 2만 포인트를 차지하기 위해 목숨 거는 17살 기무. 낯설지 않은 케릭터다. 매일 언론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심지어 내 친구이기도 하고, 내 친구의 친구이기도 하다.

1부에서는 네 명의 각자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2부에서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물론 서로를 알지는 못한다. 어디선가 한 두번씩 부딪힌 사이지만 그때 그 사람이 지금 이 사람인지는 깨닫지 못한다. 그들이 모인 곳은 서울 강남의 코엑스몰. 작가 서문이나 작품평들을 읽어보면, '코엑스몰'이 자본주의의 상징이라고들 하는데 서울에서 지내면서도 한번도 가본적이 없기 때문에 잘 알 수는 없다.

'그' 코엑스몰에서 양의 탈을 쓰고, 연미복을 입은 무장 집단에 의한 쿠데타가 발생했을 때, 주인공 네 명은 각자 다른 시선으로 사건에 대처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웃음을 준 주인공 장영달은 빨갱이들이 주도한 테러로, 김중혁은 예언자가 말했던 노숙자들의 혁명으로, 윤마리아는 자신이 믿는 데이비드종교(?)가 마련한 '십헤드 카니발'로, 기무는 2만 포인트가 걸린 온라인게임 행사로.

1부가 현실 속의 이야기들이 전개되는 공간이라면 2부는 그야말로 스펙타클한 상상의 스릴러가 전개되는 공간이다. '아이리스'에서 보다 더한 총격전과 전투신이 내 머릿 속에 펼쳐진다.

"설마.."
"이거 진짜야?"
"우와. 진짜로?!"

이런 긴장감이 유지되다가도, 극우파 노인 장영달이 "이런 씨발새끼들이... 감히 어른을 가지고 놀아?"라고 한번씩 뱉어낼 때 마다 웃음이 연실 터진다. 특히 장영달이라는 캐릭터에 정이 가는 이유는 그가 비록 반공, 멸공을 부르짖는 과거형 인간이어도 가식없고, 솔직하며 자기 삶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점(ㅋㅋㅋ)에 끌렸던 것 같다. 열외인간. 나도 어쩔 수 없는 열외인간이기 때문에 느낀 동병상련, 연민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충격적인 것은, 열외인간들이 자기들 내부에서 끊임없이 또 다른 열외인간들을 만들어낸다는 점이었다. 무장집단의 여성지도자는 여성 인질 중 몸무게 70kg이 넘는 사람을 분류해 총살시키고, 남성들 중에서는 나이 60이 넘은 사람을 분류해 잔인하게 제거해버린다.

얼마 전 논란이 되었던 '루저 발언'이 떠올랐다. 사람을 나이, 몸무게, 키, 연봉 등 숫자화된 잣대로 분류하는 것. 말도 안되는 이러한 일들이 현실에서, 소설 속에서 일어난다. 내가 순간 계급을 성골과 진골, 6두품으로 철저하게 구분해 놓았던 신라시대의 골품제도를 떠올렸다고 한다면 지나친 오바일까?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르겠다. 직업병이라고.

영화나 소설이 아무리 자극적이고, 충격적이고 신선한 스토리를 내놓아도 그것이 현실과 동떨어진 경우에는 깊은 여운을 남기지 못한다. 때로 허망함만을 남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개연성있게 전개되어 나에게도 일어날 법한 일이라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경우, 그 여운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열외인종 잔혹사>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교묘하게 오간다. 허구인 줄 알면서도 "뭐야, 이거 진짜야?"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한다.

양들이 목자를 따라서만 이동하듯, 열외인간들은 자신들을 이끌어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열외인간들이 일으키는 혁명. 그게 꼭 상상속에서만 벌어질 수 있는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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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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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다 말았으므로, 이것이 내가 읽은 그의 첫 작품이다.

작가의 인지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책 뒤에 부록처럼 붙어있는 CD와 엽서가 더 읽고싶게, 사고싶게 만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데, 아무래도 난 수필과 소설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다.

예전에 이문구의 <관촌수필>을 선물로 받은 적이 있는데, 책을 선물해 준 선배는 읽고 나서 반드시 블로그에 서평을 남기라고 했었다.

그 글이 기사로 채택이 되는지 안 되는지 한 번 보겠다는 거였다. 암튼, 난 책을 읽으면서 내내 <관촌수필>이 소설인지 수필인지 헛갈렸던 것 같다. 제목때문에 더 그랬다. 결국 서평이 기사로 채택이 되기는 했는데, 소설인지 수필인지 구분못하는 나의 무지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글이었던 것 같다. 그 기사를 본 선배가 "야, 너 아직도 확실하게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라고 물었을 때, 솔직히 난 자신이 없었다.

판타지적인 <열외인종 잔혹사>같은 책은 명명백백 소설이지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소설인지 수필인지는 잘 모르겠다. 표지에서 '박민규 장편소설'이라니까 소설이겠거니 한다.

쭈욱 독백을 늘어놓은 듯한 이 책이 소설이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배경과 인물의 심정을 어떻게 그리 섬세하게 묘사할 수 있는지... 존재하지만 자각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작가의 언어로 자근자근 나열될 때, 생기없던 인물이 꿈틀꿈틀 춤을 추며 살아나는 것 같다. 누구나 경험한 것 만큼만 이야기할 수 있다면, 작가는 얼마나 많은 경험을 한 것이며.. 사람에 따라 상상력만으로 못 할 이야기가 없다고 한다면, 작가는 대체 어느만큼의 상상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나, 그녀, 요한선배가 등장한다. 세 사람 모두 불행하다. 그것도 불행하기로 세상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막상막하 불행하다. 가정이 화목하지 못해서, 못생겨서, 버림받은 존재라서.. 거기에다 세상은 부, 명예, 외모에 있어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기까지 해서 그들은 더없이 불행하다. 불행하다 여긴다.

책의 초반부에서 '타인의 고통은 타인의 고통일 뿐'이라고 말하던 '나'가 사랑하는 이의 고통을 '나'의 것으로 흡수해가며, 1등이 아닌 자들이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깨달아 가는 것이 이 책의 흐름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사랑을 원하면서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까닭은, 서로가 서로의 불 꺼진 모습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무시하는 거야. 불을 밝혔을 때의 서로를... 또 서로를 밝히는 것이 서로서로임을 모르기 때문이지."(P185)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래서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시시한 그 인간을, 곧 시시해질 한 인간을... 시간이 지나도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 상상해주는 거야. 그리고 서로의 상상이 새로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희생해가는 거야.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은 그래서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 시시해질 자신의 삶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지. 신은 완전한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어, 대신 완전해질 수 있는 상상력을 인간에게 주었지."(P228)

소설은 13페이지를 남겨두고 반전된다. "writer's cut 그와 그녀, 그리고 요한의 또 다른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시작되는 13페이지는 완전히 다른 또 하나의 결말을 제시한다. 그와 그녀의 사랑이 그녀와 요한을 통해 지속되는 또 하나의 결말. 없었어도 된다고 여겨지는 이야기가 덧붙여짐으로써 그리도 '사랑'에 집착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삶의 이유이기 때문이라는 걸 느끼게 해준다.

스무살에, 나는 왜 이런 뜨거운 사랑을 해보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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