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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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정말 감명 깊게 읽었다. 얼마 전에 읽었던 <강남몽> 보다 훨씬 흡입력 있고 여운도 짙게 남는다.  내가 지금까지 접했던 그간의 어떤 영화나 다큐, 소설 보다도 반전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전쟁 60주년이라고 올 여름, <전우>나 <로드넘버원>과 같은 드라마와 특집 다큐가 무지 많이 방송됐는데.. 기억에 남는 다큐는 별로 없고.. <로드넘버원>은 본 적이 없고.. 1, 2회만 챙겨봤던 <전우>에서의 특정 장면만이 기억에 남는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평양이 국군에게 점령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국군이 민가를 수색하던 중이었는데, 한 허름한 집에서 노인 한 명이 뛰어나오더니 태극기를 꺼내 흔들며 "국군 만세, 국군 만세!"를 외치다가, 군인들의 눈치를 살피고는 인공기를 든 다른 한 손을 치켜들고 "인민군 만세, 인민군 만세!"를 외치는 거다.

전세에 따라 하루 사이에 점령군이 뒤바뀌는 혼란 속에서 노인은 생존을 위해 태극기와 인공기를 번갈아가며 흔들었던 것이다.

그 장면을 보면서 이념이라든가, 이데올로기라고 하는 것은 거대하고 무겁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깃발의 무게 만큼, 혹은 깃발을 누르고 있는 공기의 무게 만큼이나 가벼운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1950년 황해도 신천을 시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황해도라고 하니까 '신천'이 북한 어디쯤인 것은 알지, 그밖의 것은 아무 것도 모른다.

소설을 읽는 내내 '손님'은 주인공 요섭을 찾아오는 죽은 영혼들을 가리키는 것이라 생각했다. 정말 단순하고, 직접적이고, 단세포적이지만,...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다, '작가의 말'을 읽고 '손님'이 의미하는 것이 기독교와 맑스주의였다는 것을 알았다. '앗!'하는 충격을 받았다. 정말이지, 기독교나 맑스주의는 가족이나, 이웃 같이 친근한 느낌의 것이 아닌, 생경하고 외부로부터 전해왔다는 이질적 느낌을 가져다주는 '손님'이라는 말이 아니고서는 달리 표현할 수가 없을 것 같다. 

해방 직후 열린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의 결정사항이 국내에 전해진 후, 좌익과 우익이 친탁 대 반탁 노선으로 나뉘어 대립하였을 때, '이제까지 한국 역사에서 국내 세력끼리 그렇게까지 다퉜던 적은 없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 갈등의 정도가 심했다고 하는데... <손님>은 그 부분을 사실적으로 전달해준다. 사실적이기 때문에 더 충격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방금 네이버에서 검색해보니,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1950년, 황해도 신천 사건'을 방영했던 적이 있다고 한다. 한번 꼭 찾아봐야 겠다. 

암튼, 책 속의 "누가 가해자가 아니라는 거야? 가해자 아닌 사람이 어딨어!"라는 말처럼 가해자가 없다고 하는거나.. 모두가 가해자라고 하는거나...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점에서는 똑같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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