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힘 - 조선, 500년 문명의 역동성을 찾다
오항녕 지음 / 역사비평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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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이 책 이상하게 싸이월드 리뷰에서 검색이 안된다; ㅋ

어려웠다. <논쟁으로 읽는 한국사>, <한국근현대사 산책> 같은 책이랑은 다르게 저자의 입장과 저자만의 문체가 잘 드러나는.. 뭔가 논문 모음집인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다. 서문에 '역사교육'에 연재한 글을 엮은 것이라 언급하기는 했다. 

현정이가 추천해줘서 읽었는데, 정말 너무 어려웠다.
내 지식이 아직 엄청 얕은가보다..
대강만을 아는 사람이 읽기엔 불친절한 책. 

기억에 남는 건.. 언관, 사관, 경연관을 일컬어 '문치주의의 트로이카'라고 했던 것과, 연산군이 가장 좋아했던 진상품이 사슴의 꼬리와 혀라는 것 정도...;;

그리고 4장 '대동법, 혁신하는 시스템'에서

"대동법에 대해 집필을 시작할 당시, 이명박 당선자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정책 같지 않은 정책들을 던지고 있었다. 우리 사회의 앞날이 불안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누가 국정을 맡든지 간에, 한 나라의 정책을 수립할 때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국가 정책이란 것이 얼마나 신중하게 따져보고 결과를 예측하면서 수립, 시행되어야 하는가를 조선시대 200년의 개혁이었던 대동법을 통해 살펴보고자 했다. 설득하고, 공감을 얻으며 대안을 만들어가는 그 지루하면서도 헌신을 요구하는 과정을 조금이나마 소개하고 싶었다."(p132)

라고 언급한 것을 보고, 현정이가 추천한 또 다른 책 <대동법 조선 최고의 개혁>을 빨리 읽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성리학도 초기에는 기존 관료들로부터 엄청 배척받았다는 사실은, 크리스트교, 이슬람교 등 대부분의 새로운 종교 내지 새로운 사상 등이 토착 세력으로부터 박해받았듯 당연한 것이지만, '아, 성리학도?'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주자가 자신이 집대성한 새로운 사상이 꽃을 피우는 것을 보지 못하고 절망감 속에서 죽어갔다는 건 몰랐던 사실이다. 

또 하나, '윤휴' 하면 공식처럼 '사문난적으로 몰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라는 게 자동 떠오르는데, 이 책의 저자가 "윤휴는 송시열보다 퇴행적이고 과격하다.(그의 사고에서 중시되었던 것은 사회구성원 개개인이 아니라 왕정과 그를 대표하는 군주였다는 점에서) 그런데도 주자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윤휴는 좋은 사람이 되었다"라고 말한 부분은, 적어도 윤휴가 사문난적으로 몰려 사약을 받은 건 아니라는 사실 만큼은 확인시켜줬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6장 '부활하는 광해군'이다. 전후 복구 작업과 대동법 시행을 통해 민생을 안정시키고, 중립외교를 통해 실리를 챙긴 개혁군주로 부활하고 있는 광해군을, 그리고 그러한 평가를 완전히 비판하고 있다. "조선의 사회와 백성들은 광해군 15년 동안의 시간을 잃어버렸다. 정작 '잃어버린 시간'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민생회복, 사회통합, 재정확보, 군비확충, 문화발전 등 어느 하나 제대로 이룬 것이 없이 반대로 흘러갔다."라고 말하며 광해군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광해군의 '실리주의' 외교와 반정 세력의 '명분론'을 대립시키면서, 이 명분론을 사대주의로 규정하고 있는 식민사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암튼, 이 책을 읽으면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이 가장 행복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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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영과 젊은 그들 - 아나키스트가 된 조선 명문가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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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 이후 앞서 합방을 부르짖었거나 그것을 방조했던 76명의 관리들이 일본으로부터 귀족, 후작의 작위를 받아 염치를 모르고 뻔뻔하게 잘 살아가는 동안 “우리 형제는 나라와 안락과 근심을 같이할 위치에 있다. ... 당당한 명문 호족으로서 차라리 대의가 있는 곳에서 죽을지언정 왜적 치하에서 노예가 되어 생명을 구차히 도모한다면 이는 어찌 짐승과 다르겠는갚하며 험난한 망명의 길을 택했던 사람들. 우당 이회영 일가였다. 같은 사대부지만 어떻게 이렇게 다른 삶을 살았을까. 이회영 일가의 삶은 다큐나 책을 통해 많이 알려졌지만, 김대락, 이상룡, 김동삼과 같은 다른 사대부들의 집단 망명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많이 아쉽다. 이 책에서는 그 일차적 책임이 해방 이후 친일세력에 대한 청산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에 있다고 보는데, 아.. 너무 안타깝다.

이회영이 무장 항쟁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데에 헤이그 밀사사건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좀 놀라웠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개연성이 충분한데도 그동안 수업에서는 헤이그 밀사사건과 신민회의 활동을 같이 설명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회영은 적극적으로 고종 망명을 계획했는데, 고종 망명이 갖는 폭발성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고종 망명은 일제가 모든 것을 걸고 막아야 하는 식민지 통치의 제1대 원칙이었다. 고종이 국외로 망명해 망명정부를 수립하고 일본에 선전포고를 한다면 3.1운동 보다 훨씬 더 대규모의 조직적인 운동이 일어났을 것이고, 자발적으로 합병했다고 주장한 일본의 허위성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될 터였다. 하지만 자금이 마련되고 행궁까지 준비되어 구체화되어 가던 계획은 고종이 갑작스럽게 급서하면서, 실패로 돌아간다. 일본이 고종 사망을 하루 뒤에 발표하면서 갖다 붙인 병명은 뇌출혈, 사망 전날 숙직한 인물이 ‘개호로자식’ 이완용이었다는 사실은 고종 독살설에 확신을 갖게 했다.
어쨌든 고종 망명을 주도했던 인물이 바로 이회영이었다.

이회영을 존경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그가 권력욕으로부터 자유로웠다는 점이다. 독재하다가 비참한 말로를 보여준 누군가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
임정 임시의정원에서 헌법을 만들려고 할 때, 이회영은 정부가 아닌 독립운동총본부를 조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부를 조직하면 지위와 권력을 다투는 분규가 끊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정부 조직을 반대했던 것이다. 책에 따르면 이때까지는 이회영이 ‘아나키즘(자유연합주의)’에 대해 잘 몰랐다고 한다.

“목적이 수단과 방법을 규정짓는 것이지 수단과 방법이 목적을 규정할 수 없다는 확고한 견지에서 볼 때 한 민족의 독립운동이랑 그 민족의 해방과 자유의 탈환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확고한 자각과 목적의식이 투철한 사람들이 하는 독립운동은 운동 자체가 해방과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오직 운동가들의 자유합의가 있을 뿐이니 이것은 이론으로도 당연한 것이다”(p144)

라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듯, 이회영은 아나키즘을 알기 전에 이미 아나키스트였던 것 같다.

한편 이 책은, 당시의 독립운동가들이 일제라는 공동적과 싸웠지만, 그들 내부에서는 엄청나게 치열한 사상 갈등을 해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나키즘과 연합하여 새로운 전선을 만들 희망에 부풀어있었던 민족주의자 김좌진이 공산주의자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사실은.. 일제로서는 쾌재를 부를 일이지만,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윤봉길의 의거 역시, 임시정부보다 자유연합주의자들이 먼저 계획했던 것인데 임정이 선수친 것에 대해 무척 안타까워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어떤 경쟁관계에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해방 직전까지 특히, 10년대와 20년대의 주요 사건들과 사상의 흐름은 이회영을 빼놓고서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독립과 이상사회 건설을 위해 투쟁하다 거리에서 죽어간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사형당하면서도 꿋꿋했던 오동진, 김동삼 같은 젊은 동지들을 꼭 기억해야 할 것 같다.

아래는 1932년에 이회영이 만주로 떠나기 전에 동지들에게 남긴 말이다.
“인간으로 세상에 태어나서 누구나 자기가 바라는 목적이 있네. 이 목적을 달성한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을 것이네.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 자리에서 죽는다 하더라도 이 또한 행복 아닌가. 남의 눈에는 불행일 수도 있겠지만 죽을 곳을 찾는 것은 옛날부터 행복으로 여겨왔네. 같은 운동선상의 동지로서 장래가 만리 같은 귀중한 청년자제들의 죽음을 제 집에 돌아가는 것으로 여겨 두려움 없이 몇 번이고 사선을 넘고 사지에 뛰어드는데, 내 나이 이미 60을 넘어 70이 멀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대로 앉아 죽기를 기다린다면 청년동지들에게 부담을 주는 방해물이 될 뿐이니 이것은 내가 가장 부끄러워하는 바요, 동지들에게 면목이 없는 일이네.”(252)

책의 중간 중간에 이회영의 부인 이은숙 여사가 남긴 <서간도시종기>의 내용이 삽입되어 있는데 읽다 보면 눈물이 난다.


* 이인직에 대해.. “한글로는 ‘피눈물’, 한자로는 ‘血淚(혈루)’라고 써야 할 것을 일본식으로 ‘혈의 누’라고 쓴 것은 그의 친일 성향을 말해준다. ... 안중근을 ‘악한’이라고 지칭한 이 사내를 해방 후에도 ‘한국 현대 문학의 선구자’로, <혈의 누>를 ‘한국 최초의 신소설’로 가르쳐온 것은 단순한 우연인지, 거대한 힘이 작용한 기획의 결과인지 생각해볼 일이다.”(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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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숨은 왕 - 문제적 인물 송익필로 읽는 당쟁의 역사
이한우 지음 / 해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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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인물이며... ‘조선의 숨은 왕’이라는 것은 저자의 주관에 따른 것이라 해서 아무리 낮게 평가한다고 하더라도 어쨌거나 당대에 그의 역할과 권위가 왕을 능가했고 후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일 텐데, .. 나는 송익필에 대해 아는바가 하나도 없었다.

“각 주의 오탈자처럼 존재하는 그를 역사의 본문 속으로 옮겨 놓자는 차원에서 이 작업을 했다”라는 저자의 말에서 송익필이란 자가 지금까지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송익필은 재능이 뛰어났지만 서자라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심의겸(이조정랑 자리를 두고 김효원과 대립하는), 이이, 성혼, 정철과 가까지 지내 ‘파주의 5인방’이라 불릴 정도로 늘 정치의 중심에 있었다.

저자는 동서붕당의 역사가 선조 대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선조가 즉위하기 5년 정도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고 본다. 선조초 이준경이라는 자가 당쟁의 조짐을 경고했다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송익필은 사림의 대가로 꼽혔으며 정치적 감각이 탁월하여 서인세력을 막후에서 조종하는 역할을 했다. 자기를 대신해 이이와 성혼, 정철 등을 관직에 진출시켜 서인의 정치를 실현하고자 했다. 이이와 정철이 관직에서 물러나려고 하면 그것이 개인의 영예로움을 추구하다 대의를 그르치는 것이라 하여 못마땅하게 여기곤 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정철은 그렇다 쳐도 이이마저도 종종 ‘소인배’로 느껴지곤 한다. 
  

암튼 그러다 송익필의 부친 송사련이 일으킨 신사무옥 때문에 가문이 기울게 된 안처겸의 후손들이 송사련 가문에 대한 보복으로 그들이 안씨 가문의 사노비였음을 밝혀냄으로써 사노비 신세로 전락하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

성을 바꾸고 도피생활 하던 송익필이 다시 세를 모아 안씨 가문과 그들이 속해 있는 동인에 대한 정치적으로 보복하기 위해 이용한 것이 정여립의 모반사건이었다.

정여립은 서인이었으나 이이가 죽은 뒤 동인으로 옮겼다가 조정이 다시 서인 중심으로 돌아가는 분위기가 되자 서인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한 처신에 대해 서인이 정여립을 비판하자 선조는 정여립을 귀향 보냈다. 귀향 간 정여립이 대동계를 조직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바로 여기, 송익필이 정여립의 움직임으로 반역으로 몰아가는 부분이었다. 황해도에서 유배 중이던 송익필 형제는 정여립의 근거지인 전라도 김제로 수많은 사람을 보냈다. 그들로 하여금 정여립에게 새로운 왕조의 개창자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게 한 거이다. ‘목자망 전읍흥’이라고 했나... 정여립의 세를 불려주는 동시에 이씨는 망하고 정씨는 흥한다는 설을 퍼뜨린 것이다. 책에서는 이 부분을 “황해도에서 전라도 상공을 향해 연놀이를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고 쓰고 있는데 정여립이 제대로 낚였다는 인상을 심어줬다...z

정여립 사건으로 서인이 우위를 점하는 것 같다가 직후 발생한 정철의 건저의 사건으로 다시 위기를 겪게 된다.

송익필은 성혼, 정철, 이이보다 오래 살았다. 그리고 송익필의 학풍은 김장생으로 계승되었고 김장생은 그것을 고스란히 송시열에게 넘겨주었다. 인조반정으로 서인이 삼백년 가까이 권력을 잡게 되고.. 송익필은 영조 때인가 양반 신분을 회복하게 된다.

음.. 송익필이 붕당정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제적 인물인건 확실한 것 같다. 상대적으로 이이와 이황이 너무 주변적 인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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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세계사 - 이오니아 반란에서 이집트 혁명까지
오준호 지음 / 미지북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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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관심있는 친구에게, 같이 공부하는 친구에게, 학생들에게 추천하기 좋은 책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유럽, 미국, 아시아 그리고 한국에서 일어난 아래로부터의 변혁 운동을 다루고 있다. 그 중에는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는 동학농민운동, 황건적의 난, 프랑스대혁명 등이 있고.. 잘 모르는 켈트반란, 아이티혁명, 소웨토항쟁 같은 것들도 있다.  

추천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이 거의 완벽하게 민중의 입장에서 쓰여졌다는 점 때문이다. 웬만한 방송, 신문에서는 접할 수 없는.. 특히 교과서에서라면 눈을 씻고 찾을래야 찾아 볼 수 없는 민중들의 삶, 그들의 입장, 그리고 거기에 마르크스적 해석이 더해져서 마치 내가 이 사건에 대해 하나도 모르고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해 자꾸자꾸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아, 그리고 무지 무지 이해하기 쉽게 쓰여졌다는 것!! 

예를들어, 파리코뮌을 분쇄하기 위해 프로이센 정부와 프랑스군이 연합한 것을 일컬어, "노동자 계급의 반란 앞에 부르주아들의 이해는 일치했던 것이다"라고 해석하는 것. 또 레닌이 1917년 2월 혁명 이후 러시아 민중들의 의식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에 주목했던 것에 대해 "대중의 혁명적 기운이 불출될 때 혁명가는 그 잠재력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라고 평가하는 것. 

아니면 동학농민운동 부분 말미를 다음과 같이 장식하는 것.

" 무엇이 그 농민군을 들판의 이름 없는 백골로 묻힐지 모르는 길을 떠나게 한 것일까? 봉건 사회의 컴컴한 먹구름 아래 평생을 살아온 그들은 갑오년에 그 구름이 잠시 걷혔을 때 비로소 찬란한 푸른 하늘을 보았다. 푸른 하늘을 한 번 가슴에 품은 사람은 더 이상 암흑 속의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푸른 하늘에 대한 기억은 역사의 올바른 길을 찾아가게 하는 힘이다. 우리 근현대사에 아로 새겨진 민중의 투쟁에는 분명히 동학 농민 혁명의 집단적 기억이 면면히 흐르고 있을 것이다."

저자가 궁금해져서 앞장 약력이 있는 부분을 펼쳐보니, 아니나 다를까, 사회당에서 일했고 대변인도 맡았던 사람이다. 

가장 흥미있었던 부분은 '중세 유럽의 반란'이다. 흔히 '암흑의 시대' 혹은 '신 중심의 시대'라고 해서 정체되어 있거나, 신에 종속되어 있던 시대라 인간 역사에 있어 어떤 발전도 없었던 것 처럼 느껴지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훤씬 더 변화무쌍하고 스팩타클한 시대였던 것 같다. 농업 기술의 혁신적 발전, 도시의 발달, 대학 설립 등..  당연한 얘기지만, 과연 중세 없이 근대가 있을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특히 중세의 위기로 인해 일어난 자크리의 난, 치옴피의 난, 와트 타일러의 난은 중세를 넘어 근대로 가는 다리 역할을 했다. 

"이전의 중세 반란이 대부분 억압에 대해 즉자적인 저항을 한 것에 비해 와트 타일러의 난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농노 해방과 토지 재분배를 전면에 내거는 등 사회 전반에 대한 강령까지 제시했다."

 
기억하고 싶은 몇 가지.

1) 밀레토스 원형극장


이오니아 지방의 고대 도시 유적. 터키의 유명한 관광 명소.
밀레토스를 시작으로 하여 이오니아 지방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페르시아 전쟁이 벌어지게 됨. 페르시아 전쟁 이후 밀레토스의 모든 성인 남자들은 처형되었고 여자와 아이들은 노예로 팔렸으며, 미소년들은 거세되어 환관이 되었다고 한다. 

2) 토마스 뮌처가 그려진 구동독 지폐


뮌처는 루터의 열렬한 지지자였으나 루터처럼 단순히 종교 내부의 혁신에 그치치 않고 재산을 모든 사람이 공동 소유하는 사회 건설을 꿈꿨다. 뮌처가 봉건 체제를 근복적으로 타도하려 한 혁명가였기 때문에 사회주의 국가의 지폐에 그려진 것이다. 

3) 투생 루베르튀르
아이티의 독립운동가. 아이티는 세계 최초로 흑인들이 자신의 힘으로 노예해방을 쟁취한 뒤 세운 독립공화국이다. 프랑스혁명 수업하면서 혁명주도세력이 식민지에서는 얼마나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줬는지 소개하면 좋을 것 같다. 

4) 인디언 전쟁
"문명이란 무엇인가? 문명의 표시는 고상한 종교와 철학, 독창적인 예술, 마음을 흔드는 음악, 풍부한 이야기와 전설이다. 우리는 이것을 소유했다. 따라서 우리는 야만인이 아니라 문명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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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으로 읽는 한국사 1 - 전근대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엮음 / 역사비평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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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임용준비 할때 공부했던 내용들인 것 같은데.. 다 까먹었나보다..ㅋ
역시 올해는 준비가 덜 된 게 확실해..

임나일본부 문제는 최근에 여기저기서 많이 접했었는데, 이 책만큼 다양한 설을 소개하는 책은 없는 것 같다.
고려사회에 대한 귀족제설과 관료제설, 문벌사회론과 다원사회론은 '섣불리 고려는 귀족사회였다고 말하면 안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것도 언젠가 들어봤던 내용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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