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영과 젊은 그들 - 아나키스트가 된 조선 명문가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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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 이후 앞서 합방을 부르짖었거나 그것을 방조했던 76명의 관리들이 일본으로부터 귀족, 후작의 작위를 받아 염치를 모르고 뻔뻔하게 잘 살아가는 동안 “우리 형제는 나라와 안락과 근심을 같이할 위치에 있다. ... 당당한 명문 호족으로서 차라리 대의가 있는 곳에서 죽을지언정 왜적 치하에서 노예가 되어 생명을 구차히 도모한다면 이는 어찌 짐승과 다르겠는갚하며 험난한 망명의 길을 택했던 사람들. 우당 이회영 일가였다. 같은 사대부지만 어떻게 이렇게 다른 삶을 살았을까. 이회영 일가의 삶은 다큐나 책을 통해 많이 알려졌지만, 김대락, 이상룡, 김동삼과 같은 다른 사대부들의 집단 망명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많이 아쉽다. 이 책에서는 그 일차적 책임이 해방 이후 친일세력에 대한 청산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에 있다고 보는데, 아.. 너무 안타깝다.

이회영이 무장 항쟁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데에 헤이그 밀사사건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좀 놀라웠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개연성이 충분한데도 그동안 수업에서는 헤이그 밀사사건과 신민회의 활동을 같이 설명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회영은 적극적으로 고종 망명을 계획했는데, 고종 망명이 갖는 폭발성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고종 망명은 일제가 모든 것을 걸고 막아야 하는 식민지 통치의 제1대 원칙이었다. 고종이 국외로 망명해 망명정부를 수립하고 일본에 선전포고를 한다면 3.1운동 보다 훨씬 더 대규모의 조직적인 운동이 일어났을 것이고, 자발적으로 합병했다고 주장한 일본의 허위성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될 터였다. 하지만 자금이 마련되고 행궁까지 준비되어 구체화되어 가던 계획은 고종이 갑작스럽게 급서하면서, 실패로 돌아간다. 일본이 고종 사망을 하루 뒤에 발표하면서 갖다 붙인 병명은 뇌출혈, 사망 전날 숙직한 인물이 ‘개호로자식’ 이완용이었다는 사실은 고종 독살설에 확신을 갖게 했다.
어쨌든 고종 망명을 주도했던 인물이 바로 이회영이었다.

이회영을 존경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그가 권력욕으로부터 자유로웠다는 점이다. 독재하다가 비참한 말로를 보여준 누군가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
임정 임시의정원에서 헌법을 만들려고 할 때, 이회영은 정부가 아닌 독립운동총본부를 조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부를 조직하면 지위와 권력을 다투는 분규가 끊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정부 조직을 반대했던 것이다. 책에 따르면 이때까지는 이회영이 ‘아나키즘(자유연합주의)’에 대해 잘 몰랐다고 한다.

“목적이 수단과 방법을 규정짓는 것이지 수단과 방법이 목적을 규정할 수 없다는 확고한 견지에서 볼 때 한 민족의 독립운동이랑 그 민족의 해방과 자유의 탈환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확고한 자각과 목적의식이 투철한 사람들이 하는 독립운동은 운동 자체가 해방과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오직 운동가들의 자유합의가 있을 뿐이니 이것은 이론으로도 당연한 것이다”(p144)

라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듯, 이회영은 아나키즘을 알기 전에 이미 아나키스트였던 것 같다.

한편 이 책은, 당시의 독립운동가들이 일제라는 공동적과 싸웠지만, 그들 내부에서는 엄청나게 치열한 사상 갈등을 해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나키즘과 연합하여 새로운 전선을 만들 희망에 부풀어있었던 민족주의자 김좌진이 공산주의자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사실은.. 일제로서는 쾌재를 부를 일이지만,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윤봉길의 의거 역시, 임시정부보다 자유연합주의자들이 먼저 계획했던 것인데 임정이 선수친 것에 대해 무척 안타까워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어떤 경쟁관계에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해방 직전까지 특히, 10년대와 20년대의 주요 사건들과 사상의 흐름은 이회영을 빼놓고서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독립과 이상사회 건설을 위해 투쟁하다 거리에서 죽어간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사형당하면서도 꿋꿋했던 오동진, 김동삼 같은 젊은 동지들을 꼭 기억해야 할 것 같다.

아래는 1932년에 이회영이 만주로 떠나기 전에 동지들에게 남긴 말이다.
“인간으로 세상에 태어나서 누구나 자기가 바라는 목적이 있네. 이 목적을 달성한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을 것이네.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 자리에서 죽는다 하더라도 이 또한 행복 아닌가. 남의 눈에는 불행일 수도 있겠지만 죽을 곳을 찾는 것은 옛날부터 행복으로 여겨왔네. 같은 운동선상의 동지로서 장래가 만리 같은 귀중한 청년자제들의 죽음을 제 집에 돌아가는 것으로 여겨 두려움 없이 몇 번이고 사선을 넘고 사지에 뛰어드는데, 내 나이 이미 60을 넘어 70이 멀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대로 앉아 죽기를 기다린다면 청년동지들에게 부담을 주는 방해물이 될 뿐이니 이것은 내가 가장 부끄러워하는 바요, 동지들에게 면목이 없는 일이네.”(252)

책의 중간 중간에 이회영의 부인 이은숙 여사가 남긴 <서간도시종기>의 내용이 삽입되어 있는데 읽다 보면 눈물이 난다.


* 이인직에 대해.. “한글로는 ‘피눈물’, 한자로는 ‘血淚(혈루)’라고 써야 할 것을 일본식으로 ‘혈의 누’라고 쓴 것은 그의 친일 성향을 말해준다. ... 안중근을 ‘악한’이라고 지칭한 이 사내를 해방 후에도 ‘한국 현대 문학의 선구자’로, <혈의 누>를 ‘한국 최초의 신소설’로 가르쳐온 것은 단순한 우연인지, 거대한 힘이 작용한 기획의 결과인지 생각해볼 일이다.”(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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