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타밈 안사리 지음, 류한원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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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저자는 아프가니스탄 카불, 무슬림 가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이 책은 히즈라부터 2001년 9.11까지의 이슬람 역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슬람사'이면서 동시에 '세계사'이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 얻게 된 가장 큰 수확이라면, 진정한 세계사가 무엇일까, 하는 문제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세계사란 그와 같다. 특정 관점에서 보면 인류 전체의 이야기이고, 각 역사는 모든 다른 역사를 포함하며, 실제의 모든 사건은 중심 내러티브와 관련되어 어딘가에 자리한다. 그 '어딘가'가 그저 의미 있는 줄거리를 두드러져 보이게 하는 잡음의 일부로 배경에 놓이는 것이라 해도. 그것들 모두가 세계의 진짜 역사다."(554)

 

또 이슬람이 수학, 의학, 화학을 포함한 과학 전반에 미친 영향을 정리해보고 과학쌤과 팀티칭을 해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과학쌤한테 물어봐야지..!)

 

1. 시아파 : 아랍어에서 단순히 '일당'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2. 무함마드 : 570년에 태어나. 뱃속에 있을 때 부 사망, 모는 여섯 살 때 사망. 친척들 손에 자라. 과부와 고아가 겪는 아픔에 크게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가 됨. 스물다섯 살 때 부유한 미망인 만나. 일부다처사회였지만 무함마드는 아내가 죽기 전까지 오직 그녀만을 사랑. 다툼의 중재 수완이 뛰어나 명성을 얻게 됨. 마흔 살이 될 무렵 인생의 의미를 고민하기 시작. 명상하는 습관을 기르려고 산에 들어갔다가 동굴 안에서 중요한 체험 하게 됨. 그 이후 주위에 설교하기 시작. 그의 부인 카디자가 첫 번째 추종자이자 첫 번째 무슬림이 됨.

 

3. 1대 칼리프 아부 바쿠르, 2대 칼리프 우마르, 3대 칼리프 우스만(이집트 폭도들에게 살해), 4대 칼리프 알리(무함마드의 사위). 알 리가 4대 칼리프 자리에 오르자 다마스쿠스 총독으로 있던 무아위야가 새 칼리프가 우스만을 살해한 자들을 체포해 벌하든지 아니면 스스로 칼리프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촉구. 우스만을 살해한 자들은 원래 부정과 압제의 희생자들. 알리는 부패로 썩어 들어가는 제국을 공격하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결정. 무슬림의 상류계층은 알리보다 그들의 재산과 안전을 지켜줄, 현재 상태를 유지해줄 수호자인 무아위야를 지지.

 

4. 무슬림은 새로운 정복지에서 지즈야를 부과한 대신 그들의 전통을 존중해주었다.

“세금은 낮아지고 종교적인 자유는 커졌으니 그리스도교도들에게는 이것이 꽤 괜찮은 거래처럼 보였고, 그래서 이전 비잔티움 영토 안에서 새로운 정복자인 무슬림에 대한 지역민들의 저항은 미미하거나 아예 없었다. 사실 유대인과 그리스도교도는 무슬림이 비잔티움에 맞어 싸우는 데에 때로 힘을 합하기도 했다.”(102)

 

5. 교과서에는 ‘아바스 왕조는 비아랍인을 우대하였다’고 서술되어 있는 부분을 책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시아파의 위협은 우마이야 시대에 생겨난 불길한 동시성에서 힘을 얻어 세력을 옮겨갔는데 그 동시성이란 이런 것이었다.

시아는 이슬람의 억압받은 종교적 희생자들이다.

페르시아인은 이슬람의 억압받은 민족적 희생자들이다.

시아는 정통파 종교 기득권층에 대항한다.

페르시아인은 아랍의 정치 기득권층에 대항한다.

그러니 시아파와 페르시아 민족이 서로 연결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페르시아인은 시아파의 교의를 받아들였으며 시아파는 페르시아 동부에서 새로운 구성원들을 찾았다.“(153)

 

6. 알렉산드리아. “이곳에서 무슬림들은 플로티노스의 저작을 발견했다. 그 철학자는 우주 만물이 단일 유기체의 여러 부분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모든 것이 합해져 하나의 신비로운 존재가 되는데, 바로 그 존재에서 만물이 발산해 나왔으며 결국에는 그곳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무슬림들은 예언자 무함마드의 계시가 다른 무엇보다도 강조했던 알라의 유일성이 플로티노스의 단일 존재 개념에서 짜릿한 반향을 이루는 것을 발견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플로티노스가 세운 체계는 몇 개 안 되는 자명한 원칙들에서 출발해 엄격한 논리로 도출되었다는 것도 발견할 수 있었다... 게다가 더 연구해보니 플로티노스와 그의 동료들은 플라톤이라는 훨씬 더 위대한 아테네의 철학자까지 천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사상의 계보 중 마지막 해설자일 뿐이었다. 그리하여 무슬림들은 플라톤에서 가닥을 잡아서 소크라테스 이전부터 아리스토텔레스와 후대까지 이르는 그리스 사상이라는 보물 전체를 발견했다. 아바스 왕조의 귀족들은 그리스 사상 전체에 아주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그리스어, 산스크리트어, 중국어, 페르시아어로 된 책을 아랍어로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보수가 좋은 일을 얻을 수 있었다.”(176~177)

 

7. “그 당시 대격변 속에서(아바스 왕조) 새로운 통치자들은 우마이야 집안사람들을 꾀어내어 방 하나에 모두 모아놓고 때려죽였다. 하지만 사실 그들 모두를 죽인 것은 아니었으니, 그 잔치에 가지 않은 우마이야 집안사람 한 명이 있었다. 마지막 남은 우마이야 씨족인 그 자는 압둘 라흐만이라는 젊은이였는데, 변장을 하고 다마스쿠스를 빠져나와 북아프리카를 가로질러 멈추지 않고 도망쳐서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먼 변방인 스페인 안달루시아에 도착했다.”(201)

 

8. 전인고 온 첫해, 세계사 수업을 할 때 아바스 왕조는 시아파의 주도로 세워졌다고 설명했는데, 어떤 아이가 밤 아홉시에 전화해서, 네이버에 찾아봤더니 아바스 왕조는 수니파에 의해 통치되었던 시대로 설명되어 있다고 하여, “이상하네;;”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왜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었지;;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가 수니파로서 제국을 다스리기로 하자 시아파는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 이슬람력 347년 튀니지에서 온 시아파 전사들이 이집트의 통치권을 차지했고, 그들이 예언자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의 후손이므로(그들 말로는) 진정한 이슬람의 칼리프라고 선포하면서 파티마 왕조라고 이름 붙였다. 파티마 왕조의 통치자들은 새로운 수도를 세우고 아랍어로 ‘승리’를 의미하는 카히라라는 이름을 붙였다. 서구에서는 그 이름을 카이로라고 쓴다. ... 파티마 왕조는 카이로에 세계 최초의 대학교인 알 아즈하르를 세웠으며 그 대학은 지금까지도 건재하다. ... 이집트 역시 이상으로만 존재하는 단일 보편 공동체의 한 조각이었다."(205)

 

9. “십자군이 사람을 먹었다는 보고는 아랍 출처에서만이 아니라 프랑크쪽 출처에서도 나왔다. 당시를 목격한 프랑크인의 예를 들자면, 캉 출신의 라둘프가 이처럼 무슬림을 끓이고 구워 먹은 사건을 보고했고, 마라를 정복할 때 그 자리에 있었던 엑스 출신의 알베르도 이렇게 썼다. ‘우리 군대는 죽은 튀르크인과 사라센인을 먹기를 겁내지 않은 것만이 아니다. 그들은 개도 먹었다!’”(233)

이 뉘앙스는 뭐지..? 사람을 먹는 것 보다 개를 잡아먹는 것이 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듯 느껴진다.

 

10. “로마제국의 쇠망을 연대기로 기록한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십자군이 예루살렘에서 이틀 동안 7만 명을 죽였다고 썼다. 예루살렘의 무슬림은 사실상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다. ... 예루살렘의 유대인 공동체 거의 모두를 단번에 불태워버렸다. 심지어 그 지역 태생 그리스도교도 조차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로마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 아르메니아, 콥트, 네스토리우스 같은 정교회에 속해 있었다. 십자군에 참여한 프랑코는 그들을 이단에 가까운 분리주의자라고 여겼고, 이단은 이교도만큼 나쁘다면서 동방의 그리스도교도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그들을 추방했다.”(235)

 

11. "오늘날 이슬람주의자의 급진파 중 몇몇은(그리고 서구의 전문가 중 아주 적은 층은) 십자군이 현재 일어나는 문제들을 예고한 문명 간의 중대한 충돌이라고 묘사한다. 그들은 현재 무슬림들의 분노가 그 시대와 사건에서 기인했다고 역사를 되짚는다. 하지만 아랍 출처의 자료를 살펴보면 그 시대의 무슬림들이 그렇게 생각했다는 증거가 적어도 초반에는 전혀 없다. 아무도 당시의 전쟁을 이슬람과 그리스도교 사이의 장대한 싸움이라고 묘사하지 않았으니, 그런 이야기는 단지 십자군의 시각에서 본 줄거리일 뿐이었다. 무슬림들은 그 일을 두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그저 ‘문명’ 위에 드리워진 참사라고 봤다. 한 가지 예로, 무슬림들은 프랑코에게서 문명의 증거를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아랍 왕자인 우사마 이븐 문키드는 프랑코를 ‘동물이 완력이나 공격성에서 우월하듯이, 용기와 싸우려는 열정에서는 우월하지만 다른 무엇에서도 앞서지 못하는 짐승들 같다’고 묘사했다. 무슬림들은 십자군을 정말 혐오해서 심지어 십자군에 비교해 비잔티움 사람들을 높이 평가하기에 이르렀다. .. 그들은 그 폭력의 시기를 ‘십자군 전쟁’이 아니라 프랑코 전쟁이라고 불렀다. 공격을 당하는 지역에서는 물론 프랑코를 두려워했지만, 그렇다해도 이런 공격이 그들의 생각이나 믿음에 대한 지적인 도전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또한 십자군은 지중해 동부 해안에 사는 무슬림들에게 분명히 심각한 사안이었지만 무슬림 세계로 깊이 침투하지는 않았다.“(247)

 

12. “티무르는.. 유혈 자체를 즐기는 것 같았다. 약탈한 도시의 성문 밖에 사람 머리로 피라미드를 쌓은 칸은(칭기즈 칸이 아니라) 티무르였다. ... 델리로 가는 길에 버려진 수많은 시체가 썩으면서 그 지역에서는 여러 달 동안 사람이 살 수 없었다. 티무르가 벌인 광란은 너무 끔찍해서 어느 세계사에서든 전혀 언급하지 않고 지나갈 수가 없다. 그는 왔고, 봤고, 죽였다. 하지만 티무르가 이룬 광대한 제국은 그의 사후에 즉시 허물어져서, 그가 무서웠다는 이야기만 빼면 이제는 아무도 그에 대해 별로 기억하지 못한다.”(263)

 

13. 무굴왕조를 세운 바부르. ‘호랑이’라는 뜻.

 

14. 아크바르 대제.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엘리자베스 여왕에 필적.

“아크바르는 모든 정부 관직을 무슬림과 동등한 조건으로 힌두교도에게도 열어줬다. 그는 이 지역 무슬림 통치자들이 힌두 사원으로 가는 순례자들에게 부과하던 징벌적 세금과 비무슬림에게 부과하던 특별 인두세 지즈야를 폐지했다. 이 두 가지 세금 대신 아크바르는 지위가 높건 낮건 모든 시민에게 동등하게 적용하는 토지세를 시행했다. 사실상 그 당시 세상 어느 나라에서도 귀족 계층한테는 세금을 거두지 않았지만 아크바르는 그 틀을 깼다. 또한 병력을 파견해 이슬람 사원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의 사원과 성지를 보호했다”(312)

 

15. “유럽인들이 거기까지 이르기 훨씬 전에 무슬림 과학자들은 여기서 언급한 사실상 거의 모든 발견의 문턱까지 도달했었다. ...중요한 것은 각각의 발견 자체가 아니었다. 그러한 발견이 서양에서는 계속 잔존하고 축적되어 서로를 보강하면서, 세상을 관찰하고 이해하기 위해 완전하며 일관성 있는 새로운 방법, 즉 과학적인 시각을 이끌어내서 그것으로 후대에 폭발적인 기술 진보를 이뤄냈다는 것이 중요하다. 어째서 이런 일이 서양에서만 일어나고 동양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던 것일까? 아마 그렇게 된 원인이라면, 무슬림들은 사회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할 때 중요한 과학적인 발견을 이룬 반면, 유럽인들은 종교개혁이 인간의 사유를 틀어쥐고 있던 교회의 교조주의를 깨뜨리고 자유롭게 사색하도록 풀어준 뒤 오랜 세월 무너져 있던 사회질서가 회복되기 시작할 때 중요한 과학적 발견을 해냈기 때문일 것이다.”(341)

 

16. 영국와 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

 

17. “사실 증기기관은 서양에서 나타나기 3세기 전에 이미 무슬림 세계에서 발명되었지만 이슬람 세계에서는 별다른 변화를 일으키지 않았다. .. 고대 중국인에게는 이미 10세기 무렵에 생산을 기계화하고 물건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기술이 있었지만 중국인들은 그 기술을 대량 생산에 쓰지 않았다. ... 왜 이러한 발명들이 서양에서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까? 여기에 대한 답은 발명품 자체보다 그 발명이 탄생했던 사회적 맥락과 관계가 있다. ... 세계를 바꿀 잠재력을 지닌 기술에 무관심했던 것은 그 사회의 기능 장애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으니, (역사가 마크 엘빈의 구절을 인용하자면) 그 사회는 너무 잘 굴러가서 ‘높은 수준의 평형 상태라는 덫’에 빠진 것이다.”(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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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홀로 죽는다
한스 팔라다 지음, 이수연 옮김 / 씨네21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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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주간지를 통해 알게 된 책이다. 1940년대, 엽서에 반나치 구호를 적어 뿌리는 방식으로 시대와 싸웠던 한 노부부의 실제 이야기라는 사실에 관심이 생겼고, 기대만큼 재밌었다.

 

전체주의로 인해 서로가 어떤 식으로 적대하게 되었는지, 불신하게 되었는지 잘 알 수 있었고, 그로인해 아무 짓을 저지르지 않았어도 인생이 통째로 파멸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토 크방벨이 뿌린 276통의 엽서 중 18통을 제외한 나머지가 전부 게슈타포의 손에 들어갔고, 언제나 크방벨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보이지 않는 적'(실수)에 의해 부부는 체포, 투옥되었다. 2년여에 걸친 부부의 작업이 전향시킨 유일한 사람은 경감 에셰리히 한 사람 뿐이었지만, 후회하지 않느냐는 수사관의 질문에 오토 크방벨은, "적어도 나는 저들의 미친 짓에 가담하지 않았다.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켰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어쩌면, 그 시대를 살았던, 미치지 않은 사람들은 바로 크방벨 부부와 같이 철창에 갇혔던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우리의 저항이 누구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 겁니까?"

 

"우리 자신에게요. 죽을 때까지 우리는 의로운 인간이었다고 느끼게 될 거니까요. 크방엘 씨는 최소한 악에 저항했습니다. 같이 악해지지 않았단 말입니다. 야만적인 폭력에 맞서 정의를 위해 싸우기 있기 때문에 결국에는 우리가 승자가 될 것입니다."

 

 

 

오토 크방벨이 전향시킨 유일한 사람은 에셰리히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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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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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드디어 읽었다. 러시아혁명 이후의 소련에 대한 정치적 풍자 소설인데, 작품 해설 중 "우화로 읽었을 때의 <동물농장>은 특정의 풍자문맥과 연결된 <동물농장>과는 다른 의미론적 확장을 가능하게 한다. 우화로서의 <동물농장>은 소비에트 체제라는, 한 시대의 권력형식만을 재현대상으로 하는 역사적 정치풍자의 수준을 넘어 '독재 일반'에 대한 우의적 정치풍자로 넓어지는 것이다. ... 부패한 독재자는 어느 시대에나 있을 수 있고 권력형 돼지들도 어느 시대에나 있다."라는 말 처럼,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있을 수 있는 독재 일반에 대한 풍자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치만 등장하는 동물과 현실 속 인물을 1:1로 연결시켜서 읽은 내용을 다시 곱씹어 볼 때, 책의 재미가 증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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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4
존 스타인벡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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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독서모임, 두번째 도서로 선정된 책이다. 첫번째 책,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을 내가 추천했었던지라 다음 차 책 선정시 잠자코 있었는데, 국어쌤이 "분노의 포도 어때요?"라고 하셔서 말 떨어지기 무섭게 "좋아요!"라고 했다.

 

직전에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는데, <위대한 개츠비>가 1920년대 미국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책이라면, 1930년대의 미국 사회를 잘 묘사하고 있는 책이 존 스타인벡의 <본노의 포도>라고 했었다. 그래서 꼭 읽어보리라, 수첩에 적어 놓았었는데, 국어쌤이 딱! 이 책을 불러준거다ㅋㅋ 1, 2권 합해서 900페이지 정도 되는데 엄청 재밌어서 이틀만에 다 읽었다.

 

미국의 경제대공황을 이야기 할때,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을 자동 연상하면서 마치 적어도 미국 내에서 만큼은 위기가 대수롭지 않았던 것 같은 느낌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단어로, 문장으로 표현되는 실제의 삶은 실로 얼마나 거대한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책이다. 과거를 기록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에 이미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까지 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하는 소설이다.

 

심지어 로저샨이 마지막에 아이를 낳는다는 설정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새로운 희망이 싹튼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말은 예상을 뒤엎었다. 아, 이 책 정말 강렬하다. 책을 덮자마다 리뷰를 적으려니 흥분이 가시지 않아 감탄사만 연발. 가족공동체가 파괴되는 모습을 보면서 자본의 위력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1권에는 대공황이 몰아닥친 미국의 농촌, 오클라마호에서 소작농으로 살아가던 톰 가족이 '트렉터'에 의해 집과 토지를 잃고 일자리를 찾아 반강제적으로 캘리포니아로 이주하게 되는 과정과 그들의 여정이 담겨져 있다.

 

2권은 캘리포니아에 도착한 톰 일가가 풍요로울 줄 알았던 그 땅이 오클라마호 이상의 지옥임을 깨달아 가면서 더 비참한 현실에 내몰리게 되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트렉터가 농민들의 토지를 갈아엎는 장면을 "기어의 움직임에 따라 오르가슴을 느끼며 기계적으로 땅을 강간했다"라고 묘사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또,

 

"사람이 땅뙈기라도 조금 갖고 있으면, 그 땅이 바로 그 사람이고, 그 사람의 일부고, 그 사람을 닮아가는 법인데. 사라이 자기 땅을 걸으면서 땅을 관리하고, 흉작이 들면 슬퍼하고, 비가 내리면 기뻐하고, 그러면 그 땅이 바로 그 사람이 되는데. 그 땅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사람이 더 커지는 법인데. 농사가 잘 안 되더라도 땅이 있어서 사람이 크게 느껴지는 법인데. 원래 그런 건데."(78)

 

이 부분은 부모님을 생각나게 하는 구절이었다.

 

"그놈들이 트랙터로 사람들을 쫓아내면서 우리한테서 뭘 빼앗아 갔는지 봐. 그놈들이 자기들 '이윤'을 지키려고 우리한테서 뭘 빼앗아 갔는지 보라고. 그놈들은 땅바닥에서 죽어 간 우리 아버지, 꽥꽥 소리를 질러가며 첫울음을 터뜨린 조, 밤에 덤불 속에서 숫염소처럼 날뛴 나를 빼앗아 버렸어. 그러고서 그놈들이 손에 넣은 게 뭐야? 여기 땅이 나쁘다는 건 하느님도 아셔. 몇 년 전부터 아무도 수확을 하지 못했다고. 그런데 그 개자식들이 책상에 앉아서 자기들 이윤을 지키겠다고 마을 사람들을 두 동강 내 버렸어."(107)

 

인상깊었던 구절을 옮겨 적으려니 끝이 없을 것 같다.

 

"산처럼 쌓은 오렌지가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지켜본다. 사람들의 눈 속에 패배감이 있다. 굶주린 사람들의 눈 속에 점점 커져 가는 분노가 있다. 분노의 포도가 사람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점점 익어 간다. 수확기를 향해 점점 익어 간다."(2권 255)

 

이 부분은 언젠가 농민들의 분노가 폭발해 그들 스스로 자기 땅의 주인으로 서는 날이 오게 될 거라는 희망을 갖게 하지만, 이 소설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상황을 비극으로 몰고 간다.  

 

무엇보다 강렬하고, 충격적이며 말 못할 여운을 남기는 부분은 마지막 장면이다. 로저샨이 사산아를 낳음으로써 톰 일가는 마지막 희망까지 잃어버린다. 이 이상 더 절망적일 수 있을까, 하는 순간 더 깊은 절망이 찾아온다는 게 이 소설의 특징이다.

 

"아직 파국은 오지 않았다. 두려움이 분노로 변할 수 있는 한, 파국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432) 고작 이 정도가 이 소설이 보여주는 절망에 대한 유일한 위안이다.

 

그래서, 이 책의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이라는 것은, 사산아를 낳은 로저샨이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중년의 한 남성에게 젖을 물리는 모습이다. 사형수인 아버지에게 젖은 물리는 여성을 그린 '노인과 여인'이라는 그림이 떠올랐다. 

 

이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소설의 제목인 '분노의 포도'.

분노는 분노 그 자체만으로는 어떤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한다. 소설은 농민들의 본노가 쌓여만 가는 모습을 보여준 채 끝을 맺는다. 답답하다. 그래서 이 마지막 장면이 계속 의문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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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시절 열린책들 세계문학 103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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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오웰의 소설을 차례 차례 읽을 예정이다. 첫번째 소설 <버마시절>(1935)을 먼저 읽었고, 앞으로 <카탈로니아 찬가>((1938), <동물농장>(1945), <1984>(1949)를 차례대로 읽어 볼 생각이다.

 

<버마시절>은 1920년대, 영국의 식민지였던 버마를 배경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조지오웰은 영국에서 대학을 마친 뒤 버마로 건너가 '인도 제국주의 경찰'이 되었는데 영국의 식민주의 정책에 환멸과 회의를 느껴 사직서를 제출하고 귀국했다고 한다. 본인이 버마에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것들을 이 소설의 주인공 플로리의 입을 빌려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플로리는 버마에서 활동하는 영국인 관리인데 다른 영국인들과는 달리 버마인에게 온건적인 태도를 취하지만 비난이 두려워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 못해 갈등하는 인물이다. 버마에 머무는 영국인들이 조직한 '클럽'에서 고립감과 외로움을 느끼는 고독한 존재이다.(플로리의 얼굴 한쪽 뺨에 큰 모반이 있는데, 이러한 설정은 플로리가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 같다. 사랑하는 연인 엘리자베스에게 결국 자신의 모반을 온전히 보여주며 청혼할 즈음 클럽 내에서 플로리의 발언 역시 자신감을 얻어 간다.)

 

반면 엘리스, 래커스틴, 베럴, 엘리자베스는 백인 우월주의에 빠져 버마 원주민들을 멸시하고 그들만의 세계에 접근하지 못도록 철저히 경계한다.

 

"물론 우리가 약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검은 형제들을 계몽시키러 왔다는 거짓말이죠. 아주 자연스럽지요. 하지만 그 거짓말이 우리를 타락시키고 있소. 당신이 상상도 하지 못할 방법으로 말이오. 우리에게는 천성적으로 협잡꾼과 거짓말쟁이가 되어 밤낮으로 우리 스스로를 정당화하라며 끊임없이 충동질하고 괴롭히는 기질이 있소. 이것이 우리가 원주민들에게 가하는 야만적 행태의 원인 중 하나죠. 영국인들이 스스로를 도둑으로 선언하고 합법적으로 도적질하고 있다고 인정하기만 해도, 그럭저럭 참아 줄 수 있을 거요."(54)

 

플로리가 가깝게 지내는 원주민 의사 베라스와미에게 하는 말이다. 영국인은 反영국적인데 반해, 인도인은 親영국적이라는 것이 아이러니다. 영국 정부는 저들의 식민통치를 포장하기 위해 클럽에 지위 높은 원주민을 한 명 이상 포함시키라는 결정을 내렸다. 클럽 내의 모든 영국인의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플로리는 내심 베라스와미를 클럽의 의원으로 선출하고 싶어 했다. 원주민에게 온건적인 플로리를 동성애자로 몰아 클럽에서 추방하려고 하는 엘리스의 음모와, 베라스와미가 클럽 의원으로 선출되는 것을 막으려는 야심 많은 원주민 우 포 킨의 계략으로 플로리, 베라스와미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만약 그가 전적으로 의사의 편에 선다면 엄청난 희생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편지를 못 받았다고 하는 편이 훨씬 좋은 방법이다. 의사는 좋은 친구였지만 백인 나리 계급의 분노를 사면서까지 그를 옹호한다는 것은... 오, 아니, 안되는 일이지! 자신의 영혼을 구원받는 대신 전 세계를 잃는다면 그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플로리는 편지를 가로로 한번 찢었다.'(108)

 

아직은 자신의 모반을 떳떳하게 드러내기 부끄러워하는, 백인의 반발이 두려워 원주민을 편들이 주저하는 플로리의 모습이 인간적이라 느껴졌다. 그렇지만 플로리가 원주민을 대하는 태도는 엘리자베스의 말에서 잘 나타난다.

 

'그가 말하는 내용이나 방식은 그녀에게 모호하지만 깊은 불쾌감을 자아냈다. 왜냐하면 그녀는 플로리가 <원주민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항상 그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말하고, 또 버마의 관습과 버마인들의 특성을 끊임없이 찬양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는 원주민들을 영국인들과 비슷한 품격을 지닌 존재로 표현하기까지 했다. 바로 이것이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플로리의 사랑은 결국 이뤄지지 못한다. 플로리와 버마에서의 영국의 식민통치 역시 화해하지 못한다. <버마시절>은 플로리의 자살로 끝을 맺는다. 제국주의는 지배하는 자, 지배받는 자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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