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시간 동안의 남미 - 열정에 중독된 427일 동안의 남미 방랑기 시즌 one
박민우 지음 / 플럼북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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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시간. 427일 간의 남미 여행기 1편이다. 여행 가고 싶은 곳 중 하나이지만 갈 가능성이 가장 적은 곳이기도 한 남미.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됐다. 저자는 낯선 이방인으로서가 아니라 현지인들과 직접 소통하고 그들 생활의 한 부분인 것 처럼 살다오고자 스페인어를 공부했다. 그점이 가장 존경스러웠다. 난 일단 영어공부라도 해야겠다;; 아쉬웠던 점은 사진이 좀 별로라는 거. 엄청난 풍경을 자랑하는 세계적 명소라고 쭉쭉쭉 나와있는데 그에 맞는 사진이 거의 없다. 그래도 교통비를 절약하고자 납치의 위험을 무릅쓰고 히치하이킹을 했다는 에피소드는 좀 인상적이었다. 남미를 여행하려면 목숨.. 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리 한 짝 정도는 걸어야할 것 같다;;
 
"여행 중 가장 염려스러운 질병은 바로 '기대'다. 기대와 앙탈은 도통 절제를 모른다. 기대감은 날개를 달고 우주까지 내달릴 태세였다."
 
사람을 사귀는데 있어서 가장 염려스러운 것 역시 상대방에 대한 '기대'인 것 같다. 기대는 실망이라는 동전의 다른 면이다.
 
P118. 여행은 늘 외롭고 그리운 시간이다. 혼자여서 외롭고, 가족이 그립고, 집에 두고 온 것이 아쉽다. 그런 나그네들은 이런 한줌의 대화가 간절하다. 비슷한 처지, 비슷한 외로움을 마주보며 두런두런 시간을 응시하는 순간, 이 순간이 사실 여행이 클라이맥스라고, 그때 나는 생각했다.
 
P192. 사랑은 그렇게 일렬종대로 번호를 부르는 군인처럼 일방적으로 흘러간다. 2번은 3번을 향하고, 3번은 4번을 향한다. 그리고 2번과 3번은 곁에 있어도 절대 마주보지 않는다. 서로 마주보는 일은 기적처럼 힘들다. 그래서 우리는 운명적 사랑이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을 평행 한두번 밖에 간직할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
 
p202. 팔렝케에 있는 피라미드 앞에서..."언젠가 다같이 죽는다는 것. 그 순간이 억울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소수지만 반가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오는 최후의 순간이 억울하지 않으려면 지금 이순간이 극도로 행복해야 한다.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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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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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자의 책은 처음이다. 재밌다는 얘기, 80년 광주를 떠올리게 한다는 얘기 등을 들었던지라 기대가 많이 됐다. 화양이라고 하는 가상의 도시에서 전염병에 맞서 인간과 짐승이 벌이는 사투를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언뜻 공상과학소설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차피 닥치지 않을 비현실적인 일이라 치부해버리고 읽기엔 마음이 그리 편치 않았다. 광우병, 사스 등으로 소나 닭, 돼지 같은 짐승들이 살처분 됐던 적이 있고 올여름에는 살인진드기라는 게 출몰해 아주 살짝이지만 공포에 떨게 하기도 했다. 이런 전염병이 내 주변에서 파급된다면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도 소설 속 가상 도시 화양처럼 봉쇄, 고립되었다가 결국엔 사라지게 되는 걸까? 소설에서 화양 시민들은 탈출을 시도하다 군인들에 의해 학살되기도 했다. 그런 일이 충분히 닥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소설의 내용이 너무나 소름끼치고 무섭게 느껴졌다.

 생명을 위협받는다고 느낄때 나는 화양에 갇히 시민이 될 수도, 그들을 봉쇄시키는 군인이 될 수도, 화양의 공중분해를 주장하는 화양밖 시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살기 위해 못할 짓이 없는 존재인 것 같다. 갑자기 이 세상이 자연상태인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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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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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숙이가 적은 리뷰를 보고 읽게 됐다.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했다는 것 말고도 이책을 읽고 위화라는 작가에 푹 빠졌다길래, 어떤 매력과 재미가 있는 책인지 궁금해져서 출근하자마자 도서관을 뒤져 찾아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책의 내용을 "평등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또 "오래도록 버리지 못하고 간직해온 미련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가난했고 아팠고 힘들었던 지난 날에 대한 미련. 그래서 저자는 서문을 이렇게 끝맺고 있다.
"글쓰기와 독서는 기억의 문을 두드리는 일 혹은 이미 지나가버린 삶을 다시 한번 살아보려는 뜨거운 욕망과도 같은 것이다."

책은 문화대혁명을 전후한 시기, 허삼관이란 자가 우연히 피를 판 대가로 돈의 맛을 보고부터 자식을 위해, 딱한번 잠자리를 같이 한 외간 여자를 위해 피를 팔게 되고 나중엔 생존을 위해 피를 팔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는 내용이다. 살기위해 피를 팔아야한다니. 상황자체는 무지 역설적이고 참혹하나 소설은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만큼 무겁지 않다.
 
허심관이 이락이, 삼락이한테 허옥란의 첫남자(하소용)의 딸들을 나중에 꼭 강간하라고 하는 부분이나, 온가족이 국수 먹으러 가면서 일락이만 쏙 빼놓고 "피를 팔아 번 돈으로 먹는 것이니 내 핏줄이 아닌 너는 데려갈 수가 없다"라고 말하는 부분은 유치해서 왠지 희극적으로 느껴진다.

살기위해 자신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내몰고 있는 형국이라니. 그렇다고 허삼관 일가족이 하나같이 게으르거나 허삼관이 피를 팔아 돈 벌어오기만을 눈에 불을 켜고 기다리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내, 아들 셋 전부 생계전선에 뛰어들어 나름대로 제몸을 축내가며 성실히 살고 있다. 문혁을 전후한 시기 인민공사가 설립되고 대약진운동, 제강생산운동이 전개 될 때 중국 하층민들의 삶은 다 이렇게 비참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 허옥란이 자신을 겨냥한 대자보 때문에 마을에서 공개적으로 비난을 받고, 가족내에서 비판대회를 열도록 강요받는 상황은 좀 충격적이었다.

이토록 비인간적이길 강요당하는 시절이었지만, 주인공들은 인간적이고자 노력한다. 아니, 그것은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도록 애초부터 정해져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이런 부분이다.
191. "이 쪼그만 자식, 개 같은 자식, 밥통 같은 자식.. 오늘 완전히 날 미쳐 죽게 만들어놓고. 가고싶으면 가, 이자식아. 사람들이 보면 내가 널 업신여기고, 만날 욕하고, 두들겨 패고 그런 줄 알거 아니냐. 널 십일년이나 키워줬는데 난 고작 계부밖에 안되는 거 아니냐. 그 개 같은 놈의 하소용은 단돈 일 원도 안 들이고 네 친아비인데 말이다. 나만큼 재수 옴 붙은 놈도 없을 거다. 내세에는 죽어도 네 아비 노릇은 안
하련다. 나중에는 네가 내 계부 노릇 좀 해라. 너 꼭 기다려라. 내세에는 내가 널 죽을 때까지 고생시킬테니."
 
일락이를 업고 가며 허삼관이 하는 말이다. 인정받고 싶은, 생색내고 싶은 지극히 인간적인 마음을 여과없이 표출하는 허심관. 그는 결국 일락이에게 국수를 먹인다.

저주를 퍼부었던 일락의 친부, 하소용이 교통사고를 당하자 일락이를 보내며 "이게 인간의 도리다, 양심이다"라고 말하는 부분은 몰인정한 세상과 그래도 양심적이고자 애쓰는 인간성의 괴리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인 것 같다.
아. 무엇보다 이 소설, 나름 해피엔딩이라 좋다. 허삼관은 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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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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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듯 모를듯, 한마디로 어려웠다. 이야기가 나선형으로 빙빙 도는 느낌(목차부터 이상하다;). 제대로 이해는 못했지만 뭔가 와닿는 것은 있다. 마음이 여유로울때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P343.

"인간의 삶이란 오직 한 번뿐이며,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딱 한 번만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과연 어떤 것이 좋은 결정이고 어떤 것이 나쁜 결정인지 결코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여러 가지 결정을 비교할 수 있도록 두 번째, 세 번째, 혹은 네 번째 인생이 우리에게 주어지진 않는다.

역사도 개인의 삶과 마찬가지다. 체코인들에게 역사는 하나뿐이다. 토마시의 인생처럼 그 역시 두 번째 수정 기회 없이 어느 날 완료될 것이다.

...

Einimal ist keinmal. 한 번은 중요하지 않다. 한 번이면 그것으로 영원히 끝이다. 유럽 역사와 마찬가지로 보헤미아 역사도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보헤미아 역사와 유럽 역사는 인류의 치명적 체험 부재가 그려 낸 두 밑그림이다.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갑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앞부분인 것 같은데 이런 글귀도 있다.

 

"영원한 회귀라는 사상은, 세상사를 우리가 아는 그대로 보지 않게 해주는 시점을 일컫는 것이라고 해두자. 다시말해 세상사는, 세상사가 덧없는 것이라는 정상참작을 배제한 상태에서 우리에게 나타난다. 사실 이 정상참작 때문에 우리는 어떤 심판도 내릴 수 없다. 곧 사라지고 말 덧없는 것을 비난할 수 있을까? 석양으로 오렌지 빛을 띤 구름은 모든 것을 향수의 매력으로 빛나게 한다. 단두대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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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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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자습하는 동안 같이 옆에서 읽었는데 순간 순간 눈물이 고이고 순식간에 철철 흘러내린다. 소설 속에 딱히 클라이막스랄 것은 없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내내 가슴이 아프다. 아마 엄마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 것 같다. 엄마를, 아내를 잃어버리고 나서야 자식과 남편은 그녀가 남긴 공백이 얼마나 큰지, 행복인줄 모르고 흘려보낸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엄마를 잃어버리기 전부터 이미 엄마의 존재를 잊고 살아왔음을 알게 된다.   

 

엄마의 빈자리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기에 남은 자들의 후회와 슬픔은 더 처량하게 느껴진다. 고맙다고 말하지 못한,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그리고 엄마를 일생동안 외롭게 만든 것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후회는 언제나 깨우침보다 늦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다.

 

"저기,

내가 태어난 어두운 집 마루에 엄마가 앉아 있네. 엄마가 얼굴을 들고 나를 보네. ... 엄마가 파란 슬리퍼에 움푹 파인 내 발등을 들여다보네. 내 발들은 푹 파인 상처 속으로 뼈가 드러나 보이네. 엄마의 얼굴이 슬픔으로 일그러지네. 저 얼굴은 내가 죽은 아이를 낳았을 때 장롱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네. 내 새끼. 엄마가 양팔을 벌리네. 엄마가 방금 죽은 아이를 품에 안듯이 나의 겨드랑이에 팔을 집어넣네. 내 발에서 파란 슬리퍼를 벗기고 나의 두발을 엄마의 무릎으로 끌어올리네. 엄마는 웃지 않네. 울지도 않네. 엄마는 알고 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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