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의 상징세계 - 上 - 100개의 문답으로 풀어낸
자현 스님 지음 / 불광출판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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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이 위치하는 방식, 즉 가람배치의 밑그림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이 바로 불교의 수미산 우주론이다. 절은 수미산 우주론을 설계도로 해서 수미산정인 도리천에 붓다를 모신다. 이것이 우리 사찰, 더 나아가 동아시아의 사철을 이해하기 위해서 수미산 우주론에 대한 선행 지식이 요청되는 이유이다. .. 수미산 우주론에 조금 익숙해진다면, 우리는 앙코르와트와 같은 힌두교 사원은 물론 동남아시아의 불교 건축 및 탱화나 만다라까지도 모두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종교 미술은 의궤성에 기반을 두며 이는 끊임없이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냇물과 다리 : 수미산 우주론에서 을 분기하는 향수해를 상징함.

-일주문 : 수미산의 최하단으로 성역의 시작임을 상징함.

-천왕문 : 수미산의 중턱으로 지국천왕(), 증장천왕(), 광목천왕(), 다문천왕()을 남향의 일향성 관점으로 재편하여 상징화함.

-해탈문 : 수미산 정상의 방형공간에 대한 공간분할을 상징함.

-대웅전 : 수민산정인 도리천 안의 선견성을 상징함.

 

일반적인 삼문 구조에서는 일주문 다음에 천왕문을 세운다. 그러나 일부 사찰은 일주문과 천왕문 사이에 금강문을 배치하기도 한다. 금강문은 금산사나 직지사 또는 법주사 등에서 확인되는데, 이런 경우 삼문 구조가 아닌 사문 구조가 된다. .. 금강역사의 역할을 수문신이다. 즉 일주문이 출입문이라면 금강역사는 수문장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 금강역사는 바위를 밟는 암좌 위에 표현. 이는 금강역사의 단단하고 강력한 이미지를 상징하는 것. 우측의 역사는 입을 벌리고 있는 반면 좌측 역사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시작과 끝을 아우른다는 의미를 상징. 전체를 빠짐없이 잘 지키고 수호하겠다는 의미.

금강역사가 수문신의 역할을 하면서 의궤적인 정착을 이루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방위신인 사천왕이 점차 수문신의 역할을 대신함. 금강문이 점차 사라지고 금강역사는 일부 사천왕문의 정면 좌우에 회화로 그려지는 정도로만 남게 된다.

천왕문은 수미산 중턱에 상응. 이곳부터 실질적인 신들의 세계이다. (지국-비파), (증장-보검), (광목-용과 여의주), (다문-보탑). 사천왕이 밟고 있는 악귀는 북쪽지방에서는 청나라 만주족으로 표현되고, 남쪽에서는 일본인으로 묘사. 어떤 경우에는 탐관오리가 새겨져 있기도.

해탈문. 불이문(不二)이라고도 함. 수미산의 산정인 도리천의 입구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음. 해탈문은 문의 형태 자체를 갖추지 않는 경우가 많다. .. 누각 아래를 통해서 대웅적 영역으로 들어가는 그 자체가 바로 해탈문이 된다.

우리의 전통 건축은 낮고 넓음을 추구한다. .. 자칫 경외감이 떨어질 수.. 그래서 사찰건축에서는 의도적으로 누하진입을 배치한다. .. 사찰로 들어가는 쪽에서 보면 해탈문이 되는 누각은 안쪽에서 볼 때는 만세루가 된다. , 동일한 건물이 내외의 인식 판단 차이에 따라서 해탈문이 되기도 하고, 만세루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 만세루의 용도는 주불전인 대웅전과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대웅전과의 연결 관계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 만세루에서 예불이나 법회가 가능.

불전사물 : 범종, 법고, 목어, 운판

범종 : 지옥의 중생들을 제도하는 힘으로 상징. 사찰 대중들의 운집을 알리는 신호.

법고 : 길짐승들의 무지에 대한 자각의 도구로 사용.

목어 : 어족들의 각성을 상징.

운판 : 조류의 구제를 상징. 운판에 새겨진 해와 달은 구름을 떨친 밝음을 상징. 불교와 관련해서는 번뇌를 떨친 수행의 완성을 의미.

배례석 : 절을 올리는 곳이라는 건 잘못된 생각. 원래는 향로 받침대.

석등 : 불전 앞의 공간을 밝히는 역할. 상징의 관점에서 보자면 중앙에 하나만 있는 것이 옳고 좌우에 쌍으로 있는 것은 틀린 것. 석등의 팔각형 양식은 불을 비추는 용도로 제한이 많음. 팔정도를 상징하는 면이 크다.

대웅전 : 석가모니를 모신 전각을 의미. 불교는 깨달으면 누구나 붓다가 될 수 있다고 천명. 비로자나불, 아미타불 같은 분들도 여기에 해당. 그러나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신 분은 다른붓다가 아닌 석가모니불.

항마촉지인 : 대지를 짚어 마왕을 항복받는 수인이라 하는 것.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는 붓다는 정각의 붓다를 상징. 정각 이후 최초의 21일간 설해졌다고 전해지는 것이 바로 화엄경. 그러므로 대웅전 안에 모셔진 항마촉지인의 붓다가 설하는 가르침은 화엄경일 수밖에 없다.

법화사상이 말하는 것은 극락이나 천상세계와 같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을 통한 채널의 문제이다. 즉 법화경을 믿을 때 영취산정은 곧 그 자체로 극락정토와도 같은 영산정토가 된다. 화엄사상이 깨달음의 장엄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법화사상은 믿음의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법화사상에 대한 믿음의 실천, 이것을 통해서 중생은 석가모니를 언제라도 볼 수 있게 된다. .. 석가모니의 위치는 법화에 입각한 대웅전이라는 전각 속에, 법화경의 설법을 상징하는 <영산회상도>의 탱화 앞에 모셔지는 것이다.

수미단 : 수미산을 모사한 단.

닫집 : 본래 불전은 붓다만의 고유영역으로서 성역 중의 성역인데 승려와 신도들이 점차 들어오는 과정에서 성역에 대한 인식이 약화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불전 안에서도 수미단 위를 다시금 분리하여 성역화하는 것이 바로 닫집의 설치라고 할 수 있다.

 

전각 명칭

주존상

협시 존상

불교그림과 탱화

관련 내용

대웅전

석가모니불

문수보살, 보현보살

영산회상도

법화경 중심

대웅보전

석가모니불

약사여래, 아미타불

삼계불탱화

삼존이 모두 부처

영산전(팔상전)

석가모니불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

삼세불탱화, 팔상탱화

부처님의 일대기 중심

응진전(나한전)

석가모니불

대가섭, 아난,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

삼세불탱화, 나한도

부처님 제자들의 수행 중심

대적광전(극락전, 대광명전, 화엄전, 비로전)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

삼신불탱화

화엄경 중심

무량수전(극락전, 수광전, 미타전)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극락회상도

서방의 극락세계를 형상화함

유리보전(유리전, 약사전)

약사여래

일광보살, 월광보살

약사회상도

동방의 정유리세계를 형상화함

용화전(미륵전)

미륵불

볍화림보살, 대묘상보살

용화회상도

미륵의 하생과 성불 중심

원통보전(원통전, 관음전)

관세음보살

남순동자, 해상용왕

관세음보살도

관세음보살의 자비 중심

지장전(명부전)

지장보살

도명존자, 무독귀왕

지장보살도, 지장시왕도

지장보살의 구제 중심

삼성각

치성광여래

산신, 독성, 용왕

치성광여래도

도교 및 토속신앙의 신들과 불교적인 결합

붓다가 깨달은 존재를 지칭하는 대명사라는 것은 석가모니 이외에도 시간적으로 과거와 미래에 다양한 붓다들이 다수 더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공간적으로도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다른 붓다들이 더 존재한다. 시간적으로 가장 유명한 붓다는 미래불이 미륵. 공간적으로는 서방의 아미타불과 동방의 약사여래를 들 수 있다. 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을 지칭. 비로자나불은 광명편조라고 하여 태양과 같이 두루 밝은 부처님을 의미. 이는 또한 깨달음의 본질적인 속성과도 통하는 것이므로 비로자나는 법신, 즉 진리의 당체라도고 한다. 적광전은 또 대광명전이라고도 함. 적광전은 화엄전이라고도 칭해진다. 이는 적광전이라는 의궤적인 구조가 <화엄경>에 입각한 가치이기 때문.

비로자나불은 <화엄경>의 중심불. <화엄경>은 석가모니가 부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은 직후 21일 동안 설하신 경전. 석가모니는 깨달음이라는 본질적인 측면을 통해 진리의 당체인 비로자나불과 합일한다. 이때 설해지는 것이 바로 <화엄경>이다. 그러므로 석가모니와 비로자나불은 개별적이지만 하나다.

무량수전은 우리가 사는 세계의 서쪽에 있는 극락의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모시는 전각. 아미타불에는 한량없는 수명과 한량없는 광명이라는 두 가지 특질이 있다. 무량수전은 수광전(월정사), 미타전, 극락전이라고도 한다.

원통전은 관세음보살이 독자적으로 주존이 되는 전각. 관세음과 관련해서는 관음이라는 축약적 표현을 쓰기도. (당 태종의 이름 이세민가 겹치는 것을 피하려고)

붓다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노력을 통해서 진리를 확보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르므로 석가모니 이전의 과거와 미래에도 많은 붓다들이 존재하게 된다. 석가모니불 이전의 붓다는 가섭불이며, 석가모니불의 뒤를 잇는 붓다는 미륵이다. 즉 미륵은 메시아와도 같은 미래불인 것이다. 미륵 하생을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구조로 이해하는 면들이 있어 미륵불은 대체로 서 있는 모습으로 표현.

미륵을 모신 전각을 미륵전이라고도 하지만, 존칭해서는 용화전이라고도 한다. 용화는 미륵이 그 밑에서 깨달아 가르침을 설하게 된다는 용화수를 가리킨다. 미륵은 미래불이기 때문에 지금 현재 붓다인 것은 아니다. 그래서 보살로 표현되고는 한다. 그러나 미륵을 신앙하는 쪽에서는 이를 올려 붓다로 만들려고 한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가 열반하시고 미륵이 올 때까지의 공백기를 책임지도록 위임받은 보살. 지옥구제 이미지 때문에 지장전은 명부전과 동일시되고는 한다. 명부전은 지옥의 판관들과 죄인을 심판하는, 요즘으로 치면 법원 같은 곳. 그러므로 지장전과는 다르지만, 이곳에서 지장보살이 주로 활약하기 때문에 양자는 혼재되어 있는 실정. 일반적인 보살들이 장엄한 보관과 여러 가지 장신구를 하고 있는 것에 반해서, 지장보살은 승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영산전은 석가모니의 사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대웅전과는 달리 영산전은 붓다의 인생역정을 나타내고 있다. 팔상전이라고도 불린다. 팔상도란 붓다의 일생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총 여덟 단계로 나누어 도시한 것. 법주사 팔상전이 대표적.

붓다 당시 제자들 중 최종 깨달음을 얻어 번뇌가 다한 분들을 아라한이라 한다. 나한전, 응진전이라고도 한다.

연꽃 : 붓다가 연꽃을 상징으로 삼으라고 하는 대목은 경전 어디에도 없다. 청정함의 의미보다는 구제의 대상에 대한 비유.(수면쪽에까지만 올라온다는 점)

사자 :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의 비유를 들면서 모범적인 수행자를 사자로 표현. 또 사자의 단체 사냥을 사자가 영리한 동물이라는 인식을 제공. 그 결과 사자는 대승불교에서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이 타는 동물로 수용된다. 사자후가 외쳐지면 뭇 짐승들이 두려워하며 위축되듯이 붓다의 가르침은 최상이라는 가치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소카 석주 중 바라나시와 산치에 있는 사사자 석주이다. 사자를 상징으로 하는 것은 인도의 전통문화를 배경으로 한 것.

코끼리 : 지혜를 통한 실천을 의미. 코끼리를 타고 다니는 보살은 보현보살.

목탁 : 물고기 모양으로 생김. 우리의 목탁은 중국의 목어에 상응하는 것으로 목탁은 우리나라에만 존재한다. 중국불교에서의 물고기의 수용은 단순히 물고기가 잠을 안 잔다는 의미 때문이 아니라 잠룡에서 비룡이 되기를 기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불교에서 수행을 통해서 붓다가 되는 구조와 일치. 중국불교의 물고기 수용은 바로 이것을 상징.

: 학은 도교적인 이상향을 상징.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되어 정착되는 과정에서 도교적인 가치를 빌린 부분들이 다소 있는데 학도 이런 경우도 생각. 붓다는 신선으로 대웅전을 선계로 판단하는 가치.

: 인더스문명에서부터 발견. 우만과 좌만이 있다. 불교에서 사용하는 것은 좌만, 나치에서 사용하는 것은 우만. 만자는 정방형의 십자가와도 통하는 것으로 이는 태양숭배와 직결. 즉 태양의 빛이 뻗쳐서 광휘를 뿜는 것을 상징하는 것인데 전 세계적으로 발견되는 대표적인 고대문양이다. 만자는 붓다의 표현과 관련해서는 붓다의 가슴에 있는 털의 형상이라고 되도 있다. 고려불화 등에서도 살펴진다. 힌두교 비시누 신의 가슴에도 만자가 있다. 이는 두 존상의 이해가 상호 영향을 미친 결과하고 하겠다.

인도의 아리안 족은 본래 유목민. 그 결과 육식을 주로 하며, 기쁜 일이 있으면 신에게 희생으로 수백 마리의 소를 죽여서 바치곤 하였다. 그러나 이는 아리안 족이 인도에 정착하여 농경으로 문화를 바꾸면서 점차 심각한 문제가 됨. 그 결과 특단의 조치가 취해지는데, 그것은 소를 시바 신이 타는 동물로 묶어서 신성화시키는 것. 이로 인해 인도 문화에서 소는 보호받게 된다.

: 인도문화에서는 일반인도 탑을 세울 수가 있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탑의 건립에 신성한 의미를 부여해서 건립 주체를 기릴만한 대상으로 제한한다. 인도불교의 탑은 대접을 뒤집어 놓은 것과 같은 복발형으로 우리 나라의 무덤과 비슷. 바발형 위에 일산을 꽂아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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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 김훈 장편소설
김훈 지음 / 학고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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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지 않다. 자는 흐리고 어둡고 깊다는 뜻이다 흑은 너무 캄캄하다. 자는 또, 지금, 이제, 여기라는 뜻도 있으니 좋지 않으냐. 너와 내와 지금 여기에서 사는 섬이 자산이다. .. 흑은 무섭다. 흑산은 여기가 유배지라는 걸 끊임없이 깨우친다. 玆 속에는 희미하지만 빛이 있다. 여기를 향해서 다가오는 빛이다 그렇게 느껴진다. 이 바다의 물고기는 모두 자산의 물고기다. 나는 그렇게 여긴다."(337)

* 절두산 아래를 퉁과해서 귀가하는 날들이 오래 계속되었다. 나는 흑산도나 남양 성모산지, 배론성지 같은 사학죄인들의 유배지나 피 흘린 자리를 답사했고 기록들을 찾아서 읽었다. 나는 흑산에 유배되어서 물고기를 들여다보다가 죽은 유자의 삶과 끝, 희망과 좌절을 생각했다. 그 바다의 넓이와 거리가 내 생각을 가로막았고 나는 그 격절의 벽에 내 말들을 쏘아댔다. 새로운 삶을 증언하면서 죽임을 당한 자들이나 돌아서서 현세의 자리로 돌아온 자들이나, 누구도 삶을 단념할 수는 없다."(에필로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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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역사 - 삼국편
임용한 지음 / 혜안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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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에는 등자가 8세기 경에나 보편화. 그래서 알렉산더나 유럽 기병은 등자없이 말을 탔다. 반동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 그래서 돌격해서 창으로 직접 찌르기보다는 3m정도 근접하면 말위에서 창을 적에게 집어던졌다. 길이는 보통 2m~3.5m. 3kg. 동양의 중장기병은 4~5.4m, 9kg.

* 중장갑을 하고 훈련이 잘된 보병대열은 제 아무리 중장기병대라도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 말은 장애물을 싫어하고 겁이 많은 동물이라 아무리 기수가 명령해도 무모하게 돌격하지 않는다. 카이사르의 2천 중장보병이 폼페이우스의 7천 기병대의 돌격을 가로막게 했다.

* 중장보병 밀집대형 전술은 그리스 로마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후한서>에 예족들이 보병 전술에 능하여 9m나 되는 창을 여러 사람이 들고 다닌다는 기록이 있다.

* 고국원왕. 평양성 전투. 고구려군 탈영병 하나가 백제로 넘어가 고구려 군대 숫자 허세라고, 붉은 기 사용하는 부대가 정예부대라고 알려주었음.

* 고구려 군대가 모용황과 근초고왕에게 패배한 이유. 당시 사회가 부족연맹체를 극복해가는 과정이었다고 하지만 아직 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 광개토대왕 장수왕은 과거의 부족연합군이나 귀족군대의 한계를 넘어선 체계화되고 표준화된 군대를 인솔하고 대정복전에 나섰다.

* 고구려군 공격이 시작되자 개로왕은 신라에 구원병 요청. 당연히 남부 귀족들에게도 구원 요청 했겠지만 정작 구원병은 신라쪽에서 먼저 왔다.

* 무령왕때 한번은 한성 탈환에 성공. 그러나 다시 고구려에게 빼앗김.

* 한성이 백제에게 점령되자 한강 이남에 진출한 고구려군 처지가 위험. 고구려군이 물러나자 곧바로 신라군이 소백산맥을 넘어 싸우지도 않고 죽령 이북의 10개군을 차지. 신라의 공격이 사전에 백제와 합의가 된 것인지, 백제의 공격 정보를 알아차리고 신라가 단독으로 행동에 나선 것인지 분명치 않다.

* 수 양제. 형 폐위시키고 병든 아버지 살해한 뒤 즉위. 제2츼 진시황이라 불린다.

* 현무문의 변 : 궁성 북문 현무문에서 고조 둘째 이세민이 형인 태자와 동생을 살해. 정변 후 이세민은 부친 고조를 감금했다가 퇴위시키고 황제로 즉위. 인륜을 중시하는 동양사회에서 형과 동생을 죽이고 동생의 첩을 강탈하고, 부친 쫓아내는 패륜을 저지르고도 그처럼 존경받는 사람은 당태종 이외에는 없다.

* 고구려와 당, 처음에는 평화관계. 당에 고구려지도를 보내고 1만 포로를 송환하기도. 수와의 전쟁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경관;(해골 무덤)도 해체.

* 성화봉송은 히틀러 정권이 개최한 베를린 올림픽때 창안한 작품. 그리스에 채취한 성화가 유럽 대륙을 달려 베를린까지 가는 동안 독일의 올림픽 기록 영화 촬영팀은 유럽 국각의 주요 도로망을 샅샅이 적어 군사령부에 바쳤다.

* 과거 안시성주가 연개소문에게 반기를 들었기 때문에 이성에는 중앙군이나 연개소문파 군대를 파견하거나 군대를 섞어서 재편하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것은 안시성 수비군이 이 지역의 토착병으로 구성되었으며, 그만큼 군의 단결력과 병사와 성 주민과의 유대감이 높다는 뜻이 된다.

* 안시성 전투 당시 고구려군이 3개월 동안 버티자 당이 맞은편에 토성을 쌓아. 토성이 비에 허물어지면서 토산과 성이 연결. 위기의 순간에 고구려 군 수백명이 역습을 가해 거꾸로 토산을 점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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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의 후예 - 황순원 작품선 한국현대문학전집 (현대문학) 11
황순원 지음, 김수이 엮음 / 현대문학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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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탄 혼자서 박완서 읽기
2탄 혼자서 김원일 읽기
3탄 혼자서 황순원 읽기 시작ㅋ

이 책에서 장편 카인의 후예와 함께 단편 목넘이 마을의 개, 독짓는 늙은이를 읽었는데 세가지 작품의 공통점이랄까, 아님 황순원 작품의 특징인 걸까, 결말에 대미를 장식하는 뭔가가 있다. 동물적이고 이기적이고 사나운 인간성이 결국엔 사랑과 자기희생으로 극복되어지는 결말.

카인의 후예 결말에서 나약한 존재로만 여겨지던 주인공 박훈이 사촌동생을 대신해 도섭영감을 죽이기로 결심하는 부분과 오작녀의 동생이 사실은 박훈을 살피기위해 곁을 맴돌았던 것이고, 박훈에게 누이와 떠날 것을 부탁하며 아비와 죽어가는 부분.

목넘이 마을의 개 결말에서 신둥이의 새끼들, 그 새끼의 새끼들이 대를 이어가며 마을에 남게 되었다는 부분.

독짓는 늙은이 결말에서 송영감이 아들을 남의 집에 보내고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깨어진 독과 함께 가마속에서 죽어가는 모습.

사는 게 참 궁상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보잘 것 없고 부질없는 것들에 신경쇠약 걸릴 정도로 집착하면서, 왜 살아야하나 그런 생각이 든다. 궁상스러움 속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하면 사는 게 참 지루하고 힘들겠다는 생각이. 그래서 하루하루는 가볍고 즐거워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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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 개정증보판
서중석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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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자료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사서 읽었는데 역시 꽤나 유익했던 책. 대학 1학년때 '청한사'로 세미나 했던 게 계속 생각났고, 대학 때 한국현대사 만큼이라도 제대로 깊이 있게 공부할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여순사건 때부터 지리산은 빨치산의 무대가 됨. 국군은 여순사건 계기로 군내부에 있는 남조선노동당 프락치 처단하는 대규모 숙청사업 진행. 관동군 지배하의 만주군 장교로 항일세력을 '토벌'하던 박정희는 남로당 프락치로 활동하다가 육사동기생 등 동료 프락치에 관한 정보를 군 정보당국에 넘겨주어 살아남음. 여순사건 계기로 이승만 정부는 국가보안법 제정. 한 연구자는 국가보안법 제정을 분단의 법제화로 평가.

 

-49년 6월. 이른바 6월 공세. 국민보도연맹 결성, 반민특위습격사건, 국회프락치 사건, 김구 암살 사건.

 

-안두희는 아버지가 토지개혁으로 땅을 몰수당한 뒤에 월남하여 서북청년회 간부, 미군 방첩대인 CIC 요원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두희는 사건현장에서 체포되었으나 재판 이후 정부와 군의 비호 아래 특별대우를 받으며 생활했다. 1996년 한 시민의 몽둥이에 맞아 사망했다.

 

-처음 휴전협정은 휴전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가를 둘러싸고 4개월을 끌었다. 그것이 해결되자 포로문제가 18개월이나 휴전을 지연시켰다.

 

-신익희가 선거도중 사망하자 야당 단일후보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조봉암보다 이승만을 선호했다. 그래서 조봉암에게 표가 가지 못하도록 신익희 추모표를 던지라는 전대미문의 희한한 투표를 권장했다. 조봉암은 2011년이 되어서야 대법원 재심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학생들의 분노는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부터 폭발했다. 일요일인 28일 민주당 유세에 가지 못하도록 학생들을 강제 등교시키자, 맨 먼저 경북고 학생들이 "학원을 정치도구화 하지 말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에 나섰다.

 

-1960년 12월 장면내각은 역사상 처음으로 네 차례에 걸쳐 면의원과 면장에서부터 서울특별시장과 도지사를 뽑는 지방자치선거를 실시했다. 그런데 지방자치가 시작될 무렵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난 그 이후 30년 동안 지방자치선거가 없어짐으로써 풀뿌리 민주주의는 결정적인 위기를 맞았다.

 

-민주당 간부들은 자유당 간부처럼 극우반공적이라는 점에서 별 차이가 없었고, 친일파도 똑같이 많았다.

 

-1960년 10.8. 서울지방법원이 3.15무정선거 주범들의 형을 감형하거나 무죄를 선고하자, 이에 격분한 4월 혁명 부상자들이 목발을 짚고 국회본회의 의장석을 점거한 후 "혁명입법"의 조속한 제정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임.

 

-4대 대통령 선거는 허정후보와 옥중의 송요찬 후보가 사퇴해 박후보와 윤후보의 양자대결이 되었다. 선거 결과 박정희 후보가 윤보선 후보를 불과 15만 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역사상 가장 근소한 차이로 당선이 결정된 것이다. 박정희는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많은 표를 얻었고, 윤보선을 서울 경기 지역과 충청도 강원도에서 많은 표를 얻어 표의 남북현상을 보여주었다. 대체로 해방 직후 좌익세가 강했던 지역에서 박정희의 표가 많이 나왔다.

 

-한국은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타이, 필리핀, 대만, 스페인이 베트남에 보낸 총병력의 약 세배인 5만 여명을 파견했다. 미국을 제외하고 베트남에 가장 많은 군대를 보내. 5000여 명이 전사.

 

-1971년 대통령 선거. 김영삼 40대 기수론. YS(43), DJ(45), 이철승(48) 세사람은 한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당내 자유 경선. 2차에서 DJ가 역전승. YS가 패배 인정.

 

-1973 김대중 납치. 중앙정보부가 저지른 일. 반유신투쟁에 불을 지핌.

 

-국제법학자협회에서는 인혁당 관련자들이 사형 확정 선고를 받은 1975년 4월 8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 일곱명이 사형선고(인혁당 재건위 사건).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들도 사형과 무기, 20년형을 무더기로 선고받았다.

 

-박동선 로비사건 : 주한 미군 감축 막기 위해 재미실업가 박동선이 현금으로 미의원 70여명을 매수하려고 했다는 사실이 미국 현지 신문에 크게 보도됨으로써 촉발. 이를 계기로 한미관계가 크게 악화.

 

-1978년 10대 국회의원 선거. 여당이 야당에 뒤져. 박정희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99.99%의 지지를 받고 당선. 미국, 일본, 대만 등 축하사절 보내지 않은 쓸쓸한 취임식.

 

-박정희 정권이 중화확 공업의 과잉중복투자로 몰락을 자초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심한 불황속에 1979년 8월 YH 여자노동자들의 신민당사 농성사건이 있었고 10월 부마항쟁이 일어났다.

 

-수출증가와 관련해서 잊어서는 안될 것이 양적 증가 수치가 가지는 문제점이다. 1950년대에는 미국의 군사지원위주의 원조경제에 크게 의존했기 때문에 수출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 수출액이 매우 적었다. 이때문에 1960년대에는 약간만 수출을 해도 증가율이 매우 높게 나왔다.

 

-심각한 농촌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1971년부터 새마을 운동이 펼쳐졌다. 새마을운동은 남아도는 시멘트 생산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북과의 경쟁관계에서도 필요했다.

 

-와우아파트 붕괴 사건 직후 가수 조영남은 시민회관(세종문화회관 전신)에서 자신도 모르게 '신고산타령'을 '신고산이 와르르르 와우아파트 무너지는 소리에'로 불렀다가 체포되어 도피하다 결국 군대에 끌려갔다.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 사건, 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

 

-국민교육헌장 암송에 이어 박정권은 일제 말기의 전시 총동원 체제기에 성행했던 여러가지 국가주의 의례도 부활시켰다. 모든 국민은 거리를 걸어가다가도 오후 6시가 되면 반드시 부동자세로 국기에 대해 경례를 해야 했고, 극장에서는 영화 시작 전에 기립해서 애국가를 불러야했다.

 

-전두환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2525표 가운데 2524표를 얻어 박정희, 최규하에 이어 세번째 체육관 대통령이 되었다. 위컴 주한 미군사령관은 전두환을 공공연히 지지했다.

 

-김대중은 사면 복권 이주일만에 대통령 불출마 선언을 번복했고, 김영삼 김대중의 후보 단일화 담판도 결렬되었다. 이와 맞물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네명이 모두 출마하면 반드시 김대중이 대통령이 된다는 4자 필승론이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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