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뒷골목 풍경
중세의 뒷골목 풍경 - 유랑악사에서 사형집행인까지 중세 유럽 비주류 인생의 풍속 기행
양태자 지음 / 이랑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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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유랑악사에서 사형집행인까지, 중세 유럽 비주류 인생의 풍속 기행’이라는 소제목을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읽게 된 책이다. 학부 때 유희수 교수님의 서양 중세사 수업을 들었었는데, 그땐 왜 지금의 절반만큼도 흥미가 없었는지.. 라이시움 대형 강의실에서 수업을 했었는데 수강생이 많다는 걸 노리고 대리출석과 결석을 밥 먹듯이 했었던 것 같다. 지금 들으라고 한다면 정말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역시 공부에도 때가 있는 법이다.

 

책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저자는 20여 년간 독일에서 비교종교학과 비교문화학을 공부한 한국인 여성이다. 자료를 찾고 정리하는데 적지 않은 수고를 했을 것이라는 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 자료들을 맥락 없이 흩뿌려 놓은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기승전결에서 기와 승만 있고 전, 결이 없는 느낌. 차라리 중세 하층민들의 삶, 성직자들의 부패, 마녀사냥 등으로 주제를 조금 추리고 그것들에 대해 좀 더 상세하게 이야기를 풀어갔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럼에도 새롭게 알게 되었거나 흥미로웠던 것들이 있어 몇 가지 옮겨 적었다.

 

-15세기 이후 도시는 그들에게 대처할 새로운 방안을 내놓았다. 거지들에게 ‘거지 증서’를 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행정당국의 강력한 방어책인 ‘거지 증서’는 즉시 위력을 발휘했다. 증서를 가진 거지들만이 허락된 시 안에서 구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1550년 독일 뮌스터에서는 거지가 늘어나자 구걸하는 시간을 법으로 정했다. 거지들은 오전에만 구걸하고, 점심과 저녁은 구걸해서는 안 된다고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일반인들의 고요와 평안을 위해서였다. (32)

 

-중세의 해석이 재미있다. 부자들은 거지들이 있기에 자선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논리이다. 거지 덕분에 천국에 갈 사후세계를 준비할 수 있으니 부자가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받아먹는 쪽 역시 기부를 한 이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유대인과 함께 사는 것이 금지된 시기는 1179년부터이다. 14세기부터 유럽에서는 유대인을 강제적으로 어떤 특정 장소에 모여 살게 법으로 정했다. 이 장소가 바로 유대인들의 군집 지역인 게토(Ghetto)이다.

 

-독일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집에서 키울 것인지 아니면 갖다 버릴 것인지 가장이 결정했다. 낳은 아이를 갖다 버리지 않고 키운다 해도 결과는 비슷했다. 생활이 빈곤해지면 아이들을 종으로 팔고, 여자아이는 매춘부로 보내는 일이 빈번했다. .. 부모에게 버림받은 어린이들이 무더기로 거리로 나돌자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고 근절할 방안을 찾게 되었다. 그 하나가 마녀사냥이다.(58)

 

-장애아나 기형아는 마녀의 자식이나 악마의 자식으로 간주하면서 더욱 배척했다. 그들의 진짜 부모는 사람이 아니라 마귀나 사탄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쌍둥이가 태어나면 가문의 수치로 여기며 버리는 사람도 많았다. 쌍둥이가 태어난 것은 여자가 여러 명의 남자와 잠을 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59)

 

-역사 속에 족적을 남긴 사람 중에는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 알렉산드로스 대왕,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교황 식스토 4세가 동성애자로 알려져 있다. .. 1418년 한 해 동안 베네치아에서 동성애와 수간으로 인해 재판에 회부된 사건이 무려 500건이 넘었다고 한다. (66) .. 동성애자는 발각되면 대부분 불에 태워지는 중형을 받았다. .. 마녀와 동일한 죄목으로 다루어졌다. .. 동성애를 지진이나 페스트 같은 재난의 원인으로 규정하면서부터는 그들을 불에 태워죽여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중세 초기는 엄격하고 보수적인 성윤리가 전제된 사회였다. 반면에 후기로 갈수록 제약이 느슨해졌다. .. 중세 후기 유럽의 성관념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곳이 ‘여성의 집’이다. 이 집은 14세기 말에 생긴 공식 매춘장소이다. 시에서 직접 매춘부를 고용하여 돈을 받고 성을 제공했다. .. 미혼 남성뿐만 아니라 수도자, 관리들도 그곳을 즐겨 찾았다. .. 이 제도를 받쳐주었던 막강한 또 하나의 윤리적 근거는 거물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교리이다. 아퀴나스는 미혼 남자의 욕구를 이런 여자를 통해 채울 수 있다고 교리적으로 승인해주었다. .. 당시에는 장인 밑에서 일을 배우던 도제들이 스승 마이스터가 죽는 경우, 과부가 된 마이스터의 아내와 결혼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도제들이 빨리 마이스터가 되어 신분을 상승할 수 있는 길이었다. 이렇게 맺어진 부부는 대개 여자의 나이가 많았기에 성생활이 원활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갑자기 마이스터의 위치에 올라 재력이 풍부해진 것도 한 원인이었는지 나중에는 젊은 도제들이 ‘여성의 집’에 단골로 등장했다.

 

-중세 유럽의 목욕탕은 오늘날의 공중목욕탕과는 매우 다른 곳이었다. 향락과 매춘의 장소로 쓰였고, 이발이나 이빨 치료, 외과수술이 자행되는 다문화 공간이었다.

 

-중세인은 잘 씻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 옷 갈아입는 것이 다반사였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 모이면 자연히 악취가 진동했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 교회에서는 미사 중에 향훈을 흩뿌렸다고 한다. 5~6월을 택해서 결혼하는 이유도 이 시기가 평상시 잘 씻지 않던 몸을 씻기 좋은 계절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메디치 가문이 딸을 공작 가문에 시집보내는 과정에서 사위될 자의 남성성을 확인하기 위해 처녀를 임신시키게 했다는 사실이 기록에 전한다고 한다.

 

-여교황 요한나(9세기 중엽) : 실존 인물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음. 교황 행렬 하는 동안 조산아를 낳고 그 자리에서 죽었음. 이 사건 이후 바티칸에 새로운 제도가 생겼다. 교황에 당선된 이는 무조건 아래 속옷을 벗은 채 중간에 구멍이 난 의자에 앉아 심사를 받아야 했다.

 

-9세기부터 11세기 중반까지 약 45명의 교황이 즉위했는데 그 중 3분의 1 가량이 교황 자리를 박탈당했고, 나머지 3분의 1은 감옥에 가거나 추방당하거나 살해당했다. 이 시기 중 8년(896~904)은 자연사한 교황이 단 한명도 없었다.

관청에서 마녀인지 아닌지 테스트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눈물 시험, 바늘 시험, 불 시험, 물 시험 등이 그것이다. 몸에 있는 사마귀나 반점 같은 것을 바늘로 찔렀을 때 아프다는 소리를 내지 않으면 마녀로 간주했다. 고문 받으면서 눈물을 덜 흘릴 경우도 마녀로 찍혔다. 그 외에도 주기도문을 줄줄 외우지 못하거나, 혐의를 받은 자가 말을 더듬어도 마녀로 몰렸다. .. 물 시험은 일종의 신의 심판으로 알려져 있다. 마녀 혐의자를 꽁꽁 묶어 물에 넣고는 세 차례 시험을 한다. 이때 몸이 물에 둥둥 뜨면 영락없이 마녀로 몰았다. 마귀가 마녀를 물에 가라앉지 못하게 도왔다는 것이다. .. 결국 물에 떠오르건 가라앉건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루터는 종교 개혁의 근원을 성서해석에 두었다. 루터를 추종하던 제자들은 성서에서 사회혁명의 근원을 찾자고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루터는 정치와 성서를 연결하지 않겠다는 것을 전제로 개혁을 시도했다. 그러나 루터가 농민전쟁을 외면했던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귀족의 힘을 업고 종교개혁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농민의 편을 들어줄 수 없는 입장이었다. (루터는 수도원을 탈출한 수녀 카타리나와 결혼해 6명의 아이를 두었다. .. 이렇게 출발한 독일의 신교는 성직자에게 결혼을 허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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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세의 뒷골목 풍경
    from 자네님의 서재 2014-12-18 13:12 
    제목과 ‘유랑악사에서 사형집행인까지, 중세 유럽 비주류 인생의 풍속 기행’이라는 소제목을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읽게 된 책이다. 학부 때 유희수 교수님의 서양 중세사 수업을 들었었는데, 그땐 왜 지금의 절반만큼도 흥미가 없었는지.. 라이시움 대형 강의실에서 수업을 했었는데 수강생이 많다는 걸 노리고 대리출석과 결석을 밥 먹듯이 했었던 것 같다. 지금 들으라고 한다면 정말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역시 공부에도 때가 있는 법이다. 책은 기대에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 사랑과 희망의 인문학 강의
류동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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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의 빨간 책방 팟캐스트를 통해 알게 된 책이다. 편집자가 책표지와 제목을 뽑아내느라 하도 고생을 해서 이책을 끝으로 사표를 낼 생각까지 했었다고. 그런 수고끝에 만들어진 책이라 그런지(물론 어느책이나 다 그렇겠지만) 표지와 제목 모두 정말 탁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물자체로서의 마르크스뿐만 아니라 이런류의 사회과학 서적이 지극히 따뜻하고 말랑말랑하게 느껴지는 건 물론 8할 정도는 내용과 구성의 힘이겠지만, 나머지 2할과 +알파는 책이 지닌 외양의 힘인 것 같다.

 

책을 읽기 전 가졌던 이미지때문에 사회과학이란 말을 쓰긴 했지만 이 책은 사회과학 서적도 아니고 마르크스의 저작을 철저하게 비판, 분석한 책도 아니고 고전의 해석을 돕기 위한 해설서 같은 책도 아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공산당선언>, <독일이데올로기> 등에 언급된 내용들을 인용하고 있지만 그것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 책의 목적이었다면 이책은 지금까지 마르크스에 관해 쏟어져 나온 셀 수 없이 많은 책들 중 한 권이라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마르크스의 저작 뿐 아니라 알래드 보통, 가라타니 고진, 김훈, 홍상수 등의 작품을 인용하기도 하는데, 어렴풋이 알고 있던, 혹은 전혀 낯설기도한 이들의 저작이나 영화도 다시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학부 시절, <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 <공산당선언>을 비롯해 마르크스, 엥겔스, 심지어 알튀세르까지 그 사람들의 책 일부를 복사해 한데 모은 다음 두꺼운 책으로 제본해서 읽었었는데, 그러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을 수 있었다면 좋아겠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읽는 내내.

 

부끄럽지만 그때는. 그러니까 십년 전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혹은 알튀세르의 책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읽었다기 보다는 그 두꺼운 제본 꾸러기를 들고 다닌데에 오히려 더 큰 만족을 느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그게 전부이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때 내 생각이 더 유연하고 좀 더 깊었더라면.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때의 나는 정확히 'beside oneself' 즉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던 것 같다. 미쳤거나 정신이 나갔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내 안에 있지 못하고 옆에 서 있는 듯한 상태였다는 것.

 

생산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윤이 발생하는지,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착취가 어떤식으로 이루어지는지, 혹은 '전 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 우리가 잃을 것은 억압의 쇠사슬 밖에 없다' 같은 과학적이고 선언적인, 선동적인 어떤 표현들에 흥분하고 끌려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혁명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시작하는 법" 이와 같은 말에 좀 더 무게를 두고 고민하고, 그 의미를 새겼더라면, 그동안 더 잘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더 잘 살았을 것이라는 말은, 내가 좀 더 주변 사람을 알뜰히 챙기고, 고마움을 느끼고 표현하며 살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물론 지금에라도 그렇게 살아야하지만;;;

 

"공산주의는 단지 사적 소유(자유 재산)를 철폐하고 국가계획을 도입함으로써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적 본질이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지는 상태, 인간과 인간의 충돌이 진정으로 해결되는 상태여야 하는 것입니다."(264)

 

마르크스가 정말이지 내게 아프냐고 물어오는 것 같다. 인간이 끊임없이 아플 수밖에 없는 이유인 '자기 소외'. 그 소외의 원인은 사회로부터 주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으로부터 기인하기도 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치유를 위한 구체적이고 정확한 처방을 내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왜 아픈지 뭐때문에 아픈지, 진단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그리고 위로가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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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의 빨간 책방 팟캐스트를 통해 알게 된 책이다. 편집자가 책표지와 제목을 뽑아내느라 하도 고생을 해서 이책을 끝으로 사표를 낼 생각까지 했었다고. 그런 수고끝에 만들어진 책이라 그런지(물론 어느책이나 다 그렇겠지만) 표지와 제목 모두 정말 탁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물자체로서의 마르크스뿐만 아니라 이런류의 사회과학 서적이 지극히 따뜻하고 말랑말랑하게 느껴지는 건 물론 8할 정도는 내용과 구성의 힘이겠지만, 나머지 2할과 +알파는 책이 지닌 외양의 힘인 것 같다.
 
책을 읽기 전 가졌던 이미지때문에 사회과학이란 말을 쓰긴 했지만 이 책은 사회과학 서적도 아니고 마르크스의 저작을 철저하게 비판, 분석한 책도 아니고 고전의 해석을 돕기 위한 해설서 같은 책도 아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공산당선언>, <독일이데올로기> 등에 언급된 내용들을 인용하고 있지만 그것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 책의 목적이었다면 이책은 지금까지 마르크스에 관해 쏟어져 나온 셀 수 없이 많은 책들 중 한 권이라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마르크스의 저작 뿐 아니라 알래드 보통, 가라타니 고진, 김훈, 홍상수 등의 작품을 인용하기도 하는데, 어렴풋이 알고 있던, 혹은 전혀 낯설기도한 이들의 저작이나 영화도 다시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학부 시절, <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 <공산당선언>을 비롯해 마르크스, 엥겔스, 심지어 알튀세르까지 그 사람들의 책 일부를 복사해 한데 모은 다음 두꺼운 책으로 제본해서 읽었었는데, 그러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을 수 있었다면 좋아겠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읽는 내내.
 
부끄럽지만 그때는. 그러니까 십년 전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혹은 알튀세르의 책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읽었다기 보다는 그 두꺼운 제본 꾸러기를 들고 다닌데에 오히려 더 큰 만족을 느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그게 전부이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때 내 생각이 더 유연하고 좀 더 깊었더라면.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때의 나는 정확히 'beside oneself' 즉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던 것 같다. 미쳤거나 정신이 나갔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내 안에 있지 못하고 옆에 서 있는 듯한 상태였다는 것.
 
생산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윤이 발생하는지,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착취가 어떤식으로 이루어지는지, 혹은 '전 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 우리가 잃을 것은 억압의 쇠사슬 밖에 없다' 같은 과학적이고 선언적인, 선동적인 어떤 표현들에 흥분하고 끌려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혁명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시작하는 법" 이와 같은 말에 좀 더 무게를 두고 고민하고, 그 의미를 새겼더라면, 그동안 더 잘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더 잘 살았을 것이라는 말은, 내가 좀 더 주변 사람을 알뜰히 챙기고, 고마움을 느끼고 표현하며 살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물론 지금에라도 그렇게 살아야하지만;;;
 
"공산주의는 단지 사적 소유(자유 재산)를 철폐하고 국가계획을 도입함으로써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적 본질이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지는 상태, 인간과 인간의 충돌이 진정으로 해결되는 상태여야 하는 것입니다."(264)
 
마르크스가 정말이지 내게 아프냐고 물어오는 것 같다. 인간이 끊임없이 아플 수밖에 없는 이유인 '자기 소외'. 그 소외의 원인은 사회로부터 주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으로부터 기인하기도 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치유를 위한 구체적이고 정확한 처방을 내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왜 아픈지 뭐때문에 아픈지, 진단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그리고 위로가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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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4
윤흥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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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흥길의 단편집이다. 한국 현대사 관련된 어떤 책에서 1970년대에 있었던 광주대단지 사건을 설명하며 관련된 소설로 이 책을 소개했었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다.

 

1. <하루는 이런 일이>

 

송교수는 어느 날 고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낯선 남자로부터 자신이 알고 있는 송교수의 비밀을 덮어줄테니 그 대가로 현금 십만원을 준비해놓으라는 협박 전화를 받게 된다. 처음에는 장난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전화가 두 번, 세 번 반복되면서 자신이 남에게 책 잡힐 만한 일을 한적이 있는 것은 아닌지, 만나기로 한 날을 기다리며 하루 하루 불안에 떤다. 불안은 전염병처럼 번져 송교수의 가족 전부를 신경 쇠약 상태로 몰어넣는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한 적이 없다고 자부하던 송교수는 자신을 찾아온 고학생의 당당한 모습에 기가 눌려 서서히 자신감을 잃어 간다. 결국 길에 떨어진 돈을 주우려고 했던 일, 불량학생들이 노인을 괴롭히는 현장을 목격하고 그냥 지나쳤던 일, 미망인이 된 친구 아내를 도와주려다 남의 시선이 두려워 그만두었던 일 등 스스로 떳떳하지 못했던 행동들을 고해성사하듯 털어놓는다. 그리고 고학생에게 현금 5만원을 준다. 5만원과 맞바꾼 고학생이 넘기고 간 서류 봉투에는 짧은 메모지 한장만이 들어있었다.

p34. 이미 말씀드린 대로 저는 사회심리학을 전공하는 고학생입니다. 사회적 배경이 현대 지식인의 양심에 미치는 제영향을 가지고 논문을 작성중에 있습니다. 자료를 하나씩 수집할 때마다 자기 양심에 자신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재확인하곤 합니다. 그러나 검진해본 결과 선생님은 역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양심적인 인사들 가운데 한 분이십니다. 부디 자신을 가지고 세상을 사시기 바랍니다. 

 팽팽하게 유지되던 긴장의 끈이 마지막 페이지에서 끊어지는 느낌. 나 자신은 송교수와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됐을 때 당당할 수 있는 삶을 살아왔는지 자문하게 하는 소설이다.

 

2. 양

 

녀석은 누구로부터 칭찬받고 싶은 욕구가 동할 때마다 때와 곳을 가리지 않고 인민군가를 기운차게 부르는 것이었다. 그걸 들을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것은 피를 부르는 소리였다. 뺨 한 대 얻어맞은 과거를 찌르면 등쪽까지 꿰뚫리는 죽창으로 앙갚음하는 세상이었다.

인민군 병사는 인민군가와 연설을 흉내내는 네살 된 아기 윤봉이를 이뻐했다. 윤봉이와 윤봉이를 업어 키운 형이자 화자인 '나'는 마을사람들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인민군이 떠나고 곧 국군이 들어오자 상황은 뒤바뀌었다. 아버지가 양민증을 빼앗겼고 얼마 뒤 헌병에게 끌려갔다. 식구들은 불행의 원인이 윤봉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홍역에 걸려 앓고 있는 윤봉이가 하루 빨리 죽어 없어지기를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날 윤봉이가 죽는다. 하늘이 무너진 듯 거친 울음을 토해내는 엄마를 보며 주인공 '나'는 의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산너머에서 연기가 되어 솟아오르는 동생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엄마처럼 울음을 토해낸다. 방에 들어서면서 반사적으로 뱉었던 "저 작것 아직도 안 뒈졌냐"는 엄마의 물음이 정말 자식이 죽었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오늘 하루 무사했냐'라는 안부 인사였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3. 엄동

 

얼마전까지 광주대단지라 불리던 곳, 성남에서 서울까지 출퇴근을 하는 박과 미스 정이 퇴근길에 버스정류장에서 우연히 만나 폭설 때문에 운행이 중단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겪게 되는 하룻밤 동안의 일을 다룬 소설이다. 자신 역시 성남 사람이면서 또 다른 성남 사람 미스 정, 그녀의 존재를 부정하고, 관계성을 부인했던 못난 모습을 부끄러워하면서 끝이 나는데 거기엔 1970년대 개발 논리에 밀려 삶의 뿌리를 송두리째 위협 받았던 사람들을 방관했던 것에 대한 죄책감, 죄의식 같은 게 담겨 있는 것 같다.

 

미스 정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가지 박은 길가 수은등 아래 외돌토리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서울보다도 많이 내린 듯한 눈이 성남 시가지 전체를 순백의 갑주처럼 두툼하게 덮고 있었다. 오물과 폐수가 뒤섞여 흐르던 탄천의 지류도, 굴곡이 심한 언덕바지에 염병 후에 돋은 발진처럼 덕지덕지 엉겨붙은 무수한 가옥들도, 그리고 그 속에서 한창 세상 모르게 곯어떨어져 있을 모든 지아비와 지어미와 그들의 새끼들도 두루두루 다 하얗게 백야를 이룬 한 차례의 혹심한 눈사태 속에서 순결한 피로 다시금 새롭게 태어나는 것 같은 밤이었다. 세상을 온통 휘덮은 그 순백의 색채를 마주하고 있는 동안 박은 이렇다 할 대상도 없으면서 그저 주위의 모든 것에 부끄럽고 또 부끄러워 더 이상 고개를 바루고 꼿꼿이 서 있기가 마차 무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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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책이다 - 시간과 연민, 사랑에 대하여 이동진과 함께 읽는 책들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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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을 바꾼 직후였으니까, 정확히 일 년전쯤 이동진의 빨간책방 팟캐스트 어플을 설치했다. 어쩌다가 엄지손가락이 어플 이미지를 스쳐서 작동이라도 될 때면 재빨리 취소버튼을 눌러 종료시키기를 여러 번. 운전하면서 들어야지, 자기 전에 누워서 들어야지.. 그랬던 결심은 최신곡 무한 반복 듣기, 자기 전까지 TV보기 등에 밀려 결국 일 년이 되도록 한 회분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자칭 서른 기념 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최근 집중할 뭔가를 다시 찾게 되면서 서서히 예전의 싸이클을 되찾아 가는 것 같다. 집중할 뭔가는 바로 책. 그래서 얼마 전 이동진의 빨간책방 팟캐스트를 듣기 시작했다. 그래봐야 지금까지 첫 회분 딱 하나 봤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동진이라는 사람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가끔 주말에 영화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고(그때마다 빨간색 안경테가 눈에 띄긴 했다. 이 책 <밤은 책이다>를 읽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빨간색 안경테 하나가 저자에게는 일탈이자 모험이었다고.) 친구가 가끔 영화 얘기를 해주면서 언급하는 걸 들어본 적 있다는 게 전부였다.

 

암튼 딱 한번 들은 팟캐스트 때문에 이동진씨의 팬이 되어버렸다. 누군가 책을 읽어준다는 것이 이렇게 위로받는 느낌을 갖게 해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팟캐스트를 들었던 그날 서점에서 바로 이 책을 구입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책을 산 건 정말 오랜만이다.

 

당분간 집착할 무언가가 생겨서 안심이 된다. 벗어나고 싶다. 서른 살 앓이.

 

p77. 두 가지 중 하나를 취해야 하는 사람과 열 가지 중 하나를 골라도 되는 사람에게 선택이 의미하는 바는 완전히 다릅니다. 제한된 시간 내에 반드시 결정해야 하는 사람과 시간적 여유를 갖고 있는 동시에 때에 따라서는 굳이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선택의 자유를 똑같이 누리고 있다고 할 수도 없겠지요. 바람직한 사회라면 선택의 폭이 좁은 사람에게 혜택이 집중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p120. 상기하는 것이 아니라 상기되기 마련인 기억의 존재 형식은 능동태가 아니라 수동태일 겁니다. 그렇게 기억은 무시로 우리를 급습하고, 일상의 사소한 접점에서 예기치 않게 격발당한 우리는 추억 속으로 침잠됩니다. 그렇기에 추억은 두렵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하죠.

 

p134. 프랙털은 작은 나뭇가지가 나무 전체의 모습과 흡사한 것처럼, 부분이 전체와 같은 모양을 하면서 끝없이 되풀이 되는 기하학적 구조를 뜻하는 말이지요. 삶 전체와 그 삶을 구성하는 나날들의 관계는 말하자면 프랙털과도 같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삶의 하루하루는 그 자체로 삶 전체를 함축하고 있다고 할까요. .. 오늘이 비록 먼 여정위의 작은 점 하나 같은 짧은 시간이라고 할지라도, 그 하루만의 행복과 보람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까요. 미래는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고, 목표라는 것은 변할 수도 있으며, 결국 하루하루가 없는 삶 전체란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니까요.

 

p.286. 정말로 중요한 것은 가치의 순도나 강도가 아닙니다. 서로 다른 가치들 사이의 균형과 평화로운 공존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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