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날들
성석제 지음 / 강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성석제. 이름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의 소설을 읽은 건 처음이다.

자기다움을 가지고 있는 작가인 것 같다.

내가 아는 작가 중 언어유희 능력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 아닐런지.

 

시종일관 피식피식 웃음이 나는데, 원두의 눈에 말더듬이 진용이가 염소귀신으로 비춰지는 부분에서는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긴장감이 넘치기도 했다. 또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기도 한데, 진용이가 난생 처음으로 도시락을 싸갔던 날, 쌀과 보리의 비율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 아이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고 도시락까지 압수당하는 수모를 겪는 부분을 읽을 때에는 진용이가 너무 가엾고 안쓰러워서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옛날 옛날에, 장원두라는 착한 소년이 살았습니다. 소년이 사는 곳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은척읍 변두리 마을이었는데요, 동쪽으로 가면 동곡이 있고요, 서쪽으로 가면 서곡이, 남쪽으로 가면 남천이, 북쪽으로 가면 까마득한 절벽을 따라 북천이 흘렀습니다. 그게 소년이 살던 세상의 울타리였습니다.

중간 중간 감탄하며 읽었던 문장들이 많이 있는데, 이런식이다.

 

"원두는 고민과 고민의 새끼와 손자와 증손자를 데리고 결국은 기타 리를 찾아갔습니다."

"조그만 우산이 가슴 속에 퍼지는 느낌. 그 우산 아래 들어가 빗소리를 듣는 듯한 편안함. 좋은 노래는 그런 역할을 하는 건가 봅니다."

"정말 눈물이 나려고 했습니다. 서쪽 하늘에 반짝이는 샛별처럼 자꾸만 눈물이 원두의 눈가에 맺혔습니다. 진용이는 잠자코 원두를 바라보고 서 있었습니다. 눈물 흘리는 사람 처음 본다는 듯이 말이지요.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자, 아, 내가 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그게 서러워 다시 눈물이 나고, 아 눈물이 났구나, 하니 또 울음이 더 거세지고 울음이 거세지니 아, 박자를 맞춰야겠구나 하고 눈물이 홍수라도 일으킬 듯이 더 흘러내렸습니다. 원두는 자리에 주저앉아 꺼이꺼이 소리내며 울었습니다."

 

콧물 땟물 꼬질꼬질하게 묻은 어린시절 일기장을 꺼내 읽은 느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편의 스릴러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선택지가 몇개 인지, 선택하기까지 주어진 시간이 얼마인지에 상관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니 적어도 나는 동일하거나 혹은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고민할 시간적 여유가 없이 즉흥적으로 내린 결정이라고 해도(어쩌면, 빠르게 내린 결정일수록) 과거의 내 체험이나 나의 행동패턴, 습관 같은 것들이 작용한 결과일 수 있다.

그래서 순간에 내린 선택일수록 그 사람의 진심이 담겨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주위에 정말 착하고 선행을 일상적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을 보면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손과 발이 먼저 움직인다. 나는 그렇게 되려면 멀었다.;

따라서 어떤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그 사람의 생을 치명적인 파국으로 몰고 갔을 지라도 동일한 상황이 연출되었을 때 그는 같은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크다. 주인공 최현수 역시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사고 직후 소녀를 호수에 던지지만 않았더라면'이라는 후회와 가정은 불필요하다.

 

 

책상 앞으로 돌아와 앉았다. 보이지 않는 저 창밖에 무엇이 있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손이었다. 내 삶을 흔들어온 오영제의 손. 나는그의 손가락에 낀 요요였다. 던졌다가 당기고 말아 쥐었다가 멀리 날려 보내면서 그는 7년을 기다린 것이다. 내가 어딘가에 정착하는 걸 막는 게 첫 번째 목적이었겠지. 떠돌이로 만들어야 영원히 사라져도 궁금해할 사람이 없을 테니까. 덤으로 사소한 보복행위라는 즐거움도 누리고. 자기 딸을 죽인 자의 아들을 맘 편히 살게 놔두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설령, 때가 오면 자기 손으로 거둘 놈이라 할지라도. 나는 죽어라, 도망쳤으나 실은 한 번도 그를 벗어난 적이 없는 셈이다.(47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세의 뒷골목 풍경
중세의 뒷골목 풍경 - 유랑악사에서 사형집행인까지 중세 유럽 비주류 인생의 풍속 기행
양태자 지음 / 이랑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과 ‘유랑악사에서 사형집행인까지, 중세 유럽 비주류 인생의 풍속 기행’이라는 소제목을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읽게 된 책이다. 학부 때 유희수 교수님의 서양 중세사 수업을 들었었는데, 그땐 왜 지금의 절반만큼도 흥미가 없었는지.. 라이시움 대형 강의실에서 수업을 했었는데 수강생이 많다는 걸 노리고 대리출석과 결석을 밥 먹듯이 했었던 것 같다. 지금 들으라고 한다면 정말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역시 공부에도 때가 있는 법이다.

 

책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저자는 20여 년간 독일에서 비교종교학과 비교문화학을 공부한 한국인 여성이다. 자료를 찾고 정리하는데 적지 않은 수고를 했을 것이라는 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 자료들을 맥락 없이 흩뿌려 놓은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기승전결에서 기와 승만 있고 전, 결이 없는 느낌. 차라리 중세 하층민들의 삶, 성직자들의 부패, 마녀사냥 등으로 주제를 조금 추리고 그것들에 대해 좀 더 상세하게 이야기를 풀어갔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럼에도 새롭게 알게 되었거나 흥미로웠던 것들이 있어 몇 가지 옮겨 적었다.

 

-15세기 이후 도시는 그들에게 대처할 새로운 방안을 내놓았다. 거지들에게 ‘거지 증서’를 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행정당국의 강력한 방어책인 ‘거지 증서’는 즉시 위력을 발휘했다. 증서를 가진 거지들만이 허락된 시 안에서 구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1550년 독일 뮌스터에서는 거지가 늘어나자 구걸하는 시간을 법으로 정했다. 거지들은 오전에만 구걸하고, 점심과 저녁은 구걸해서는 안 된다고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일반인들의 고요와 평안을 위해서였다. (32)

 

-중세의 해석이 재미있다. 부자들은 거지들이 있기에 자선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논리이다. 거지 덕분에 천국에 갈 사후세계를 준비할 수 있으니 부자가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받아먹는 쪽 역시 기부를 한 이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유대인과 함께 사는 것이 금지된 시기는 1179년부터이다. 14세기부터 유럽에서는 유대인을 강제적으로 어떤 특정 장소에 모여 살게 법으로 정했다. 이 장소가 바로 유대인들의 군집 지역인 게토(Ghetto)이다.

 

-독일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집에서 키울 것인지 아니면 갖다 버릴 것인지 가장이 결정했다. 낳은 아이를 갖다 버리지 않고 키운다 해도 결과는 비슷했다. 생활이 빈곤해지면 아이들을 종으로 팔고, 여자아이는 매춘부로 보내는 일이 빈번했다. .. 부모에게 버림받은 어린이들이 무더기로 거리로 나돌자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고 근절할 방안을 찾게 되었다. 그 하나가 마녀사냥이다.(58)

 

-장애아나 기형아는 마녀의 자식이나 악마의 자식으로 간주하면서 더욱 배척했다. 그들의 진짜 부모는 사람이 아니라 마귀나 사탄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쌍둥이가 태어나면 가문의 수치로 여기며 버리는 사람도 많았다. 쌍둥이가 태어난 것은 여자가 여러 명의 남자와 잠을 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59)

 

-역사 속에 족적을 남긴 사람 중에는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 알렉산드로스 대왕,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교황 식스토 4세가 동성애자로 알려져 있다. .. 1418년 한 해 동안 베네치아에서 동성애와 수간으로 인해 재판에 회부된 사건이 무려 500건이 넘었다고 한다. (66) .. 동성애자는 발각되면 대부분 불에 태워지는 중형을 받았다. .. 마녀와 동일한 죄목으로 다루어졌다. .. 동성애를 지진이나 페스트 같은 재난의 원인으로 규정하면서부터는 그들을 불에 태워죽여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중세 초기는 엄격하고 보수적인 성윤리가 전제된 사회였다. 반면에 후기로 갈수록 제약이 느슨해졌다. .. 중세 후기 유럽의 성관념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곳이 ‘여성의 집’이다. 이 집은 14세기 말에 생긴 공식 매춘장소이다. 시에서 직접 매춘부를 고용하여 돈을 받고 성을 제공했다. .. 미혼 남성뿐만 아니라 수도자, 관리들도 그곳을 즐겨 찾았다. .. 이 제도를 받쳐주었던 막강한 또 하나의 윤리적 근거는 거물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교리이다. 아퀴나스는 미혼 남자의 욕구를 이런 여자를 통해 채울 수 있다고 교리적으로 승인해주었다. .. 당시에는 장인 밑에서 일을 배우던 도제들이 스승 마이스터가 죽는 경우, 과부가 된 마이스터의 아내와 결혼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도제들이 빨리 마이스터가 되어 신분을 상승할 수 있는 길이었다. 이렇게 맺어진 부부는 대개 여자의 나이가 많았기에 성생활이 원활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갑자기 마이스터의 위치에 올라 재력이 풍부해진 것도 한 원인이었는지 나중에는 젊은 도제들이 ‘여성의 집’에 단골로 등장했다.

 

-중세 유럽의 목욕탕은 오늘날의 공중목욕탕과는 매우 다른 곳이었다. 향락과 매춘의 장소로 쓰였고, 이발이나 이빨 치료, 외과수술이 자행되는 다문화 공간이었다.

 

-중세인은 잘 씻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 옷 갈아입는 것이 다반사였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 모이면 자연히 악취가 진동했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 교회에서는 미사 중에 향훈을 흩뿌렸다고 한다. 5~6월을 택해서 결혼하는 이유도 이 시기가 평상시 잘 씻지 않던 몸을 씻기 좋은 계절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메디치 가문이 딸을 공작 가문에 시집보내는 과정에서 사위될 자의 남성성을 확인하기 위해 처녀를 임신시키게 했다는 사실이 기록에 전한다고 한다.

 

-여교황 요한나(9세기 중엽) : 실존 인물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음. 교황 행렬 하는 동안 조산아를 낳고 그 자리에서 죽었음. 이 사건 이후 바티칸에 새로운 제도가 생겼다. 교황에 당선된 이는 무조건 아래 속옷을 벗은 채 중간에 구멍이 난 의자에 앉아 심사를 받아야 했다.

 

-9세기부터 11세기 중반까지 약 45명의 교황이 즉위했는데 그 중 3분의 1 가량이 교황 자리를 박탈당했고, 나머지 3분의 1은 감옥에 가거나 추방당하거나 살해당했다. 이 시기 중 8년(896~904)은 자연사한 교황이 단 한명도 없었다.

관청에서 마녀인지 아닌지 테스트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눈물 시험, 바늘 시험, 불 시험, 물 시험 등이 그것이다. 몸에 있는 사마귀나 반점 같은 것을 바늘로 찔렀을 때 아프다는 소리를 내지 않으면 마녀로 간주했다. 고문 받으면서 눈물을 덜 흘릴 경우도 마녀로 찍혔다. 그 외에도 주기도문을 줄줄 외우지 못하거나, 혐의를 받은 자가 말을 더듬어도 마녀로 몰렸다. .. 물 시험은 일종의 신의 심판으로 알려져 있다. 마녀 혐의자를 꽁꽁 묶어 물에 넣고는 세 차례 시험을 한다. 이때 몸이 물에 둥둥 뜨면 영락없이 마녀로 몰았다. 마귀가 마녀를 물에 가라앉지 못하게 도왔다는 것이다. .. 결국 물에 떠오르건 가라앉건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루터는 종교 개혁의 근원을 성서해석에 두었다. 루터를 추종하던 제자들은 성서에서 사회혁명의 근원을 찾자고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루터는 정치와 성서를 연결하지 않겠다는 것을 전제로 개혁을 시도했다. 그러나 루터가 농민전쟁을 외면했던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귀족의 힘을 업고 종교개혁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농민의 편을 들어줄 수 없는 입장이었다. (루터는 수도원을 탈출한 수녀 카타리나와 결혼해 6명의 아이를 두었다. .. 이렇게 출발한 독일의 신교는 성직자에게 결혼을 허용하였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중세의 뒷골목 풍경
    from 자네님의 서재 2014-12-18 13:12 
    제목과 ‘유랑악사에서 사형집행인까지, 중세 유럽 비주류 인생의 풍속 기행’이라는 소제목을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읽게 된 책이다. 학부 때 유희수 교수님의 서양 중세사 수업을 들었었는데, 그땐 왜 지금의 절반만큼도 흥미가 없었는지.. 라이시움 대형 강의실에서 수업을 했었는데 수강생이 많다는 걸 노리고 대리출석과 결석을 밥 먹듯이 했었던 것 같다. 지금 들으라고 한다면 정말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역시 공부에도 때가 있는 법이다. 책은 기대에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 사랑과 희망의 인문학 강의
류동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이동진의 빨간 책방 팟캐스트를 통해 알게 된 책이다. 편집자가 책표지와 제목을 뽑아내느라 하도 고생을 해서 이책을 끝으로 사표를 낼 생각까지 했었다고. 그런 수고끝에 만들어진 책이라 그런지(물론 어느책이나 다 그렇겠지만) 표지와 제목 모두 정말 탁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물자체로서의 마르크스뿐만 아니라 이런류의 사회과학 서적이 지극히 따뜻하고 말랑말랑하게 느껴지는 건 물론 8할 정도는 내용과 구성의 힘이겠지만, 나머지 2할과 +알파는 책이 지닌 외양의 힘인 것 같다.

 

책을 읽기 전 가졌던 이미지때문에 사회과학이란 말을 쓰긴 했지만 이 책은 사회과학 서적도 아니고 마르크스의 저작을 철저하게 비판, 분석한 책도 아니고 고전의 해석을 돕기 위한 해설서 같은 책도 아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공산당선언>, <독일이데올로기> 등에 언급된 내용들을 인용하고 있지만 그것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 책의 목적이었다면 이책은 지금까지 마르크스에 관해 쏟어져 나온 셀 수 없이 많은 책들 중 한 권이라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마르크스의 저작 뿐 아니라 알래드 보통, 가라타니 고진, 김훈, 홍상수 등의 작품을 인용하기도 하는데, 어렴풋이 알고 있던, 혹은 전혀 낯설기도한 이들의 저작이나 영화도 다시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학부 시절, <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 <공산당선언>을 비롯해 마르크스, 엥겔스, 심지어 알튀세르까지 그 사람들의 책 일부를 복사해 한데 모은 다음 두꺼운 책으로 제본해서 읽었었는데, 그러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을 수 있었다면 좋아겠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읽는 내내.

 

부끄럽지만 그때는. 그러니까 십년 전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혹은 알튀세르의 책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읽었다기 보다는 그 두꺼운 제본 꾸러기를 들고 다닌데에 오히려 더 큰 만족을 느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그게 전부이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때 내 생각이 더 유연하고 좀 더 깊었더라면.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때의 나는 정확히 'beside oneself' 즉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던 것 같다. 미쳤거나 정신이 나갔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내 안에 있지 못하고 옆에 서 있는 듯한 상태였다는 것.

 

생산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윤이 발생하는지,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착취가 어떤식으로 이루어지는지, 혹은 '전 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 우리가 잃을 것은 억압의 쇠사슬 밖에 없다' 같은 과학적이고 선언적인, 선동적인 어떤 표현들에 흥분하고 끌려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혁명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시작하는 법" 이와 같은 말에 좀 더 무게를 두고 고민하고, 그 의미를 새겼더라면, 그동안 더 잘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더 잘 살았을 것이라는 말은, 내가 좀 더 주변 사람을 알뜰히 챙기고, 고마움을 느끼고 표현하며 살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물론 지금에라도 그렇게 살아야하지만;;;

 

"공산주의는 단지 사적 소유(자유 재산)를 철폐하고 국가계획을 도입함으로써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적 본질이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지는 상태, 인간과 인간의 충돌이 진정으로 해결되는 상태여야 하는 것입니다."(264)

 

마르크스가 정말이지 내게 아프냐고 물어오는 것 같다. 인간이 끊임없이 아플 수밖에 없는 이유인 '자기 소외'. 그 소외의 원인은 사회로부터 주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으로부터 기인하기도 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치유를 위한 구체적이고 정확한 처방을 내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왜 아픈지 뭐때문에 아픈지, 진단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그리고 위로가 되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동진의 빨간 책방 팟캐스트를 통해 알게 된 책이다. 편집자가 책표지와 제목을 뽑아내느라 하도 고생을 해서 이책을 끝으로 사표를 낼 생각까지 했었다고. 그런 수고끝에 만들어진 책이라 그런지(물론 어느책이나 다 그렇겠지만) 표지와 제목 모두 정말 탁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물자체로서의 마르크스뿐만 아니라 이런류의 사회과학 서적이 지극히 따뜻하고 말랑말랑하게 느껴지는 건 물론 8할 정도는 내용과 구성의 힘이겠지만, 나머지 2할과 +알파는 책이 지닌 외양의 힘인 것 같다.
 
책을 읽기 전 가졌던 이미지때문에 사회과학이란 말을 쓰긴 했지만 이 책은 사회과학 서적도 아니고 마르크스의 저작을 철저하게 비판, 분석한 책도 아니고 고전의 해석을 돕기 위한 해설서 같은 책도 아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공산당선언>, <독일이데올로기> 등에 언급된 내용들을 인용하고 있지만 그것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 책의 목적이었다면 이책은 지금까지 마르크스에 관해 쏟어져 나온 셀 수 없이 많은 책들 중 한 권이라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마르크스의 저작 뿐 아니라 알래드 보통, 가라타니 고진, 김훈, 홍상수 등의 작품을 인용하기도 하는데, 어렴풋이 알고 있던, 혹은 전혀 낯설기도한 이들의 저작이나 영화도 다시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학부 시절, <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 <공산당선언>을 비롯해 마르크스, 엥겔스, 심지어 알튀세르까지 그 사람들의 책 일부를 복사해 한데 모은 다음 두꺼운 책으로 제본해서 읽었었는데, 그러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을 수 있었다면 좋아겠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읽는 내내.
 
부끄럽지만 그때는. 그러니까 십년 전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혹은 알튀세르의 책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읽었다기 보다는 그 두꺼운 제본 꾸러기를 들고 다닌데에 오히려 더 큰 만족을 느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그게 전부이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때 내 생각이 더 유연하고 좀 더 깊었더라면.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때의 나는 정확히 'beside oneself' 즉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던 것 같다. 미쳤거나 정신이 나갔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내 안에 있지 못하고 옆에 서 있는 듯한 상태였다는 것.
 
생산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윤이 발생하는지,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착취가 어떤식으로 이루어지는지, 혹은 '전 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 우리가 잃을 것은 억압의 쇠사슬 밖에 없다' 같은 과학적이고 선언적인, 선동적인 어떤 표현들에 흥분하고 끌려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혁명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시작하는 법" 이와 같은 말에 좀 더 무게를 두고 고민하고, 그 의미를 새겼더라면, 그동안 더 잘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더 잘 살았을 것이라는 말은, 내가 좀 더 주변 사람을 알뜰히 챙기고, 고마움을 느끼고 표현하며 살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물론 지금에라도 그렇게 살아야하지만;;;
 
"공산주의는 단지 사적 소유(자유 재산)를 철폐하고 국가계획을 도입함으로써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적 본질이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지는 상태, 인간과 인간의 충돌이 진정으로 해결되는 상태여야 하는 것입니다."(264)
 
마르크스가 정말이지 내게 아프냐고 물어오는 것 같다. 인간이 끊임없이 아플 수밖에 없는 이유인 '자기 소외'. 그 소외의 원인은 사회로부터 주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으로부터 기인하기도 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치유를 위한 구체적이고 정확한 처방을 내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왜 아픈지 뭐때문에 아픈지, 진단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그리고 위로가 되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