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날들
성석제 지음 / 강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성석제. 이름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의 소설을 읽은 건 처음이다.

자기다움을 가지고 있는 작가인 것 같다.

내가 아는 작가 중 언어유희 능력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 아닐런지.

 

시종일관 피식피식 웃음이 나는데, 원두의 눈에 말더듬이 진용이가 염소귀신으로 비춰지는 부분에서는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긴장감이 넘치기도 했다. 또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기도 한데, 진용이가 난생 처음으로 도시락을 싸갔던 날, 쌀과 보리의 비율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 아이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고 도시락까지 압수당하는 수모를 겪는 부분을 읽을 때에는 진용이가 너무 가엾고 안쓰러워서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옛날 옛날에, 장원두라는 착한 소년이 살았습니다. 소년이 사는 곳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은척읍 변두리 마을이었는데요, 동쪽으로 가면 동곡이 있고요, 서쪽으로 가면 서곡이, 남쪽으로 가면 남천이, 북쪽으로 가면 까마득한 절벽을 따라 북천이 흘렀습니다. 그게 소년이 살던 세상의 울타리였습니다.

중간 중간 감탄하며 읽었던 문장들이 많이 있는데, 이런식이다.

 

"원두는 고민과 고민의 새끼와 손자와 증손자를 데리고 결국은 기타 리를 찾아갔습니다."

"조그만 우산이 가슴 속에 퍼지는 느낌. 그 우산 아래 들어가 빗소리를 듣는 듯한 편안함. 좋은 노래는 그런 역할을 하는 건가 봅니다."

"정말 눈물이 나려고 했습니다. 서쪽 하늘에 반짝이는 샛별처럼 자꾸만 눈물이 원두의 눈가에 맺혔습니다. 진용이는 잠자코 원두를 바라보고 서 있었습니다. 눈물 흘리는 사람 처음 본다는 듯이 말이지요.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자, 아, 내가 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그게 서러워 다시 눈물이 나고, 아 눈물이 났구나, 하니 또 울음이 더 거세지고 울음이 거세지니 아, 박자를 맞춰야겠구나 하고 눈물이 홍수라도 일으킬 듯이 더 흘러내렸습니다. 원두는 자리에 주저앉아 꺼이꺼이 소리내며 울었습니다."

 

콧물 땟물 꼬질꼬질하게 묻은 어린시절 일기장을 꺼내 읽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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