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의 빨간 책방 팟캐스트를 통해 알게 된 책이다. 편집자가 책표지와 제목을 뽑아내느라 하도 고생을 해서 이책을 끝으로 사표를 낼 생각까지 했었다고. 그런 수고끝에 만들어진 책이라 그런지(물론 어느책이나 다 그렇겠지만) 표지와 제목 모두 정말 탁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물자체로서의 마르크스뿐만 아니라 이런류의 사회과학 서적이 지극히 따뜻하고 말랑말랑하게 느껴지는 건 물론 8할 정도는 내용과 구성의 힘이겠지만, 나머지 2할과 +알파는 책이 지닌 외양의 힘인 것 같다.
 
책을 읽기 전 가졌던 이미지때문에 사회과학이란 말을 쓰긴 했지만 이 책은 사회과학 서적도 아니고 마르크스의 저작을 철저하게 비판, 분석한 책도 아니고 고전의 해석을 돕기 위한 해설서 같은 책도 아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공산당선언>, <독일이데올로기> 등에 언급된 내용들을 인용하고 있지만 그것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 책의 목적이었다면 이책은 지금까지 마르크스에 관해 쏟어져 나온 셀 수 없이 많은 책들 중 한 권이라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마르크스의 저작 뿐 아니라 알래드 보통, 가라타니 고진, 김훈, 홍상수 등의 작품을 인용하기도 하는데, 어렴풋이 알고 있던, 혹은 전혀 낯설기도한 이들의 저작이나 영화도 다시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학부 시절, <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 <공산당선언>을 비롯해 마르크스, 엥겔스, 심지어 알튀세르까지 그 사람들의 책 일부를 복사해 한데 모은 다음 두꺼운 책으로 제본해서 읽었었는데, 그러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을 수 있었다면 좋아겠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읽는 내내.
 
부끄럽지만 그때는. 그러니까 십년 전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혹은 알튀세르의 책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읽었다기 보다는 그 두꺼운 제본 꾸러기를 들고 다닌데에 오히려 더 큰 만족을 느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그게 전부이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때 내 생각이 더 유연하고 좀 더 깊었더라면.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때의 나는 정확히 'beside oneself' 즉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던 것 같다. 미쳤거나 정신이 나갔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내 안에 있지 못하고 옆에 서 있는 듯한 상태였다는 것.
 
생산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윤이 발생하는지,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착취가 어떤식으로 이루어지는지, 혹은 '전 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 우리가 잃을 것은 억압의 쇠사슬 밖에 없다' 같은 과학적이고 선언적인, 선동적인 어떤 표현들에 흥분하고 끌려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혁명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시작하는 법" 이와 같은 말에 좀 더 무게를 두고 고민하고, 그 의미를 새겼더라면, 그동안 더 잘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더 잘 살았을 것이라는 말은, 내가 좀 더 주변 사람을 알뜰히 챙기고, 고마움을 느끼고 표현하며 살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물론 지금에라도 그렇게 살아야하지만;;;
 
"공산주의는 단지 사적 소유(자유 재산)를 철폐하고 국가계획을 도입함으로써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적 본질이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지는 상태, 인간과 인간의 충돌이 진정으로 해결되는 상태여야 하는 것입니다."(264)
 
마르크스가 정말이지 내게 아프냐고 물어오는 것 같다. 인간이 끊임없이 아플 수밖에 없는 이유인 '자기 소외'. 그 소외의 원인은 사회로부터 주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으로부터 기인하기도 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치유를 위한 구체적이고 정확한 처방을 내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왜 아픈지 뭐때문에 아픈지, 진단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그리고 위로가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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