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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 - 개국 ㅣ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형덕이가 세트 전권을 샀다고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좋길래 나도 큰 맘 먹고 사게 됐다.
만화책이라 반신반의 했는데, 1권을 읽고 보니 사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케이스도 이렇게 뽀대나는 모습.
실록을 읽어보지는 않아서 어디까지가 실록의 내용인지, 아닌지 비판적으로 읽는 능력은 부족하지만 생각보다 내용도 풍부한 것 같고 그렇다보니 익히 알고 있던 인물의 새로운 면모를 많이 알게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 이해하기 쉽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인데 만화로 그려진 인물의 생김새, 표정이 성향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이해를 돕는데 크게 한몫 한다고 본다.
다부져 보이는 이성계의 모습과 브레인 답게 똘똘해 보이는 정도전.
그리고 온화한 듯 하면서 고집있어 보이는 정몽주와 울면서 보위에 올라 울면서 내려갔다는 고려의 마지막 군주 공양왕.
공민왕은 턱으로 내려올수록 얼굴이 좁아지는 것이 왠지 철저하지 않을 것 같은, 시작은 하지만 마무리를 제대로 못할 것 같은 인상인데 실제로도 그러했고, 신돈은 욕심 많게 생겼다ㅋㅋ 제멋대로 갖다 붙이기식 해석;;
가장 압권이었던 건 바로 이사람의 모습. 명 태조 주원장이다. 네이버캐스트에 보면 워싱턴 대학교의 중국사학자가 "중국 역사상 한 개인이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예로 명태조 주원장보다 더 두드러진 예는 거의 없다"하고, 청나라 학자는 "명태조는 성현의 면모, 호걸의 기풍, 도적의 성품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다"라고 했다는데, 이 책에 따르면 주원장은 변덕스럽고 저돌적인 인물이었던 것 같다. 성현, 호걸, 도적 중에서 도적의 모습만 두드러졌다고 해야 할까.
곳곳에서 이런 삽화를 발견하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이다.
이안사는 이성계의 고조부인데, 전주에 살다가 관기를 사랑하게 된 일로 수령의 미움을 받아 일가를 이끌고 삼척으로 이주하게 된다. 하필 수령이 삼척으로 부임하는 바람에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 동북면으로 이주하는데 이때 이안사를 따르는 무리가 꽤 많았다고 한다. 170여 가구 정도. 동북면에 정착한 이안사는 인근의 고려인을 규합해 그곳의 실력자로 성장했고 그 힘을 인정받아 몽고에 항복하고 벼슬을 받는다.
원나라의 세가 약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안사의 증손인 이자춘은 이성계를 데리고 개경으로 돌아와 고려 국적을 회복한다. 때를 기다리라는 공민왕의 명에 따라 다시 동북면으로 이주했고, 쌍성총관부를 무력으로 탈환할때 힘을 보탰다. 그 공로가 인정되어 개경에서 벼슬을 하게 된다.
공민왕의 몽고식 이름은 빠이엔티무르 였다고. 홍건적의 2차 침입으로 개경이 함락되는데 이때 이성계가 기병하여 화려한 데뷔전을 치렀다. 저자는 이성계를 일컬어 탁월한 전략가 히팅크와 야전사령관 홍명보, 해결사 안정환의 면모를 고루 갖춘 울트라 슈퍼 멀티플레이어라고 했다.
한편 공민왕의 전권을 위임받아 개혁을 진두지휘하던 신돈이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제거되는데, 이 신돈 역모사건은 공민왕의 작품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반신돈 세력의 반발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데다가 지나치게 커진 신돈의 힘과 백성들의 열광적인 지지에 두려움과 질투를 느껴서 역모사건을 조작해 제거했을 수도 있다고.
공민왕마저 내시 최만생과 공모한 자제위 소속 소년들에 의해 시해당하고 정국 주도권은 이인임에게 넘어갔다. 공민왕은 정비와 후궁으로부터 아들을 얻지 못했는데, 나중에 신돈이 바친 몸종이 공민왕의 자식이라고 아들을 내놓으니 그가 바로 모니노, 우왕이다.
명나라와 북원 사이에서 당시 권문세족들이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는데, 이때 정도전은 북원 사신을 접대하라는 명을 거부한 죄로 유배를 가게 된다. 2년쯤 뒤 풀려나지만 개경 출입을 금지당했다. 정치에 개입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북한산 자락에 학원을 차려 후학을 기르던 정도전은 함주에 주둔하고 있는 이성계의 막사를 찾아갔다. 당시 이성계를 만나 "이 군대로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라고 했다고 한다.
한편 최영은 우왕의 명에 따라 이성계와 손을 잡고 이인임, 임견미, 염흥방, 도길부 일당을 제거했다. 최영은 이성계와 조민수만 요동 정벌에 파견하고 자신은 개경에 남아 우왕 곁을 지키다가 위화도 회군으로 유배되었다가 참수당하는데, 한결같이 이성계를 옹호하고 아꼈다고 한다. 우왕은 내시 80명을 무장시켜 이성계와 조민수를 급습했지만 허무한 실패로 끝났다. 곧 왕은 폐위되어 강화로 유배되었다.
이성계 반대파는 도미노가 쓰러지듯 거침없이 제거되었다. 창왕을 옹립했던 조민수는 땅 욕심을 부리다가 조준의 상소로 한방에 탄핵되었고 최영의 친척인 김저, 정득후는 우왕을 만나 이성계 암살 계획을 세우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우왕, 창왕, 구세력이 일거에 몰락하게 되었다. 폐가입진을 명분으로 공양왕의 즉위한다.
가장 새롭게 보였던 인물은 정몽주이다. 정몽주는 세번의 시험에서 세번 모두 장원을 할 정도로 인재였다. 정몽주는 이성계, 정도전과 모두 사이가 좋았다. 이성계의 회군을 지지했을 뿐만 아니라 개혁을 추진한 흥국사 9공신 중 한 사람이기도 했다. 교조적인 명분보다 현실의 개혁 요구를 앞세우는 개혁 정치가였다는 점이 새롭게 다가왔다. 조선 개국을 반대하여 단순히 명분주의자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정몽주는 정도전이 유배간 틈을 타 이색, 이숭인, 우현보, 심덕부, 이종학 등 이색 계열과 구세력들을 대거 유배지에서 불러들여 조정의 요직을 장악했다. 이로인해 조정은 뚜렷이 이성계 세력과 정몽주 세력으로 양분되었다. 곤장을 치는 사람으로 하여금 조준, 정도준의 목숨을 끊어놓아야 한다고 명령했다는데 피상적으로 갖고 있던 정몽주의 이미지와 너무 달라서 놀랐다. 또 이방원의 암살 계획을 사전에 알고도 이성계의 병문안을 간 것을 보면 대단히 배포가 큰 인물이었던 것 같다.
정몽주가 제거되자 공양왕은 이성계와 군신동맹을 맺으려고 했는데 이성계 핵심 세력들이 왕대비를 설득해 공양왕을 폐위시켜 버렸다. 결국 공양왕은 울면서 보위에서 내려왔다. 공손하게 왕위를 양보했다 하여 '공양왕'이라는 왕호를 얻었다고 한다. 태조 즉위 후 삼척에서 두 아들과 함께 교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