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소설로 그린 자화상 2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혼자 박완서 읽기' 세번째 책,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지금까지 읽은 박완서의 책 중(<오래된 농담>,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밖에 안 읽었지만) 최고인 것 같다.

<오래된 농담>보단 <그 산이->, 그리고  <그 산이->보단 이 책이 훨씬 좋았다. 박완서 작품의 특징이 이렇다할 정도로 선생의 소설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문장이 지닌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이 책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저자가 말했듯 자화상을 그리듯 쓴 글이기 때문에 더 그러한지 모르겠지만, 한 구절 한 구절이 섬세, 솔직 그 자체이다. 저자가 기억에 의존해 풀어해쳐 놓은 유년시절의 기억들을 보고 느끼며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50년에 이르는 긴 시간적 격차가 존재하지만 공통점이 많다는 사실에 순간 순간 놀라고, 헛웃음을 짓기도 했다. 이럴땐 시간 보다는 공간으로 공유될 수 있는 경험들이 더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친구 한 명이 똥 마렵다고 하면 우르르 몰려가 같이 엉덩이를 까고 쪼그려 앉아 똥이 나오길 힘주며 기다렸던 일, 하교길에 똥이 마려워 풀숲에 들어가 해결하고 넓접한 풀잎으로 뒷처리를 했던 일, 더운 여름날 하교길에 냇가에 가 가방이며 옷이며 훌훌 벗어 던지고 신나게 물놀이 했던 일, 정숙이 언니 미현이 진실이 동준이가 마당에서 "재인아, 놀~자"하고 부르면 잽싸게 튀어 나가 깡통 차기, 땅 따먹기, 비석치기 하며 해질때 까지 놀았던 일. "재인아, 놀~자~"할때의 박자와 음률을 떠올려 마음속으로 반복해 불러봤는데 까마득한 옛날 추억에 가슴이 젖어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시골에 나고 자란 게 이렇게 큰 행운 처럼 느껴지긴 처음이다.

 

박완서의 '엄마'는 확실히 케릭터가 강하다. 강하고 억척스럽다. 시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들도 모자라 딸까지 서울에서 교육받게 했다. "시어머니한테 같은 잔소리를 듣고도 숙모들은 부뚜막에서 눈물을 짰지만 엄마는 웃기는 소리로 단박에 분위기를 바꿔 버렸다"(67)고 할 정도로 기가 셌다. 겉으로는 투박하고 거칠지만 속으로는 오직 아들딸 자식 걱정뿐이었다.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웠던 건 일찍 돌아간 남편의 몫까지 해내기위해서였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서야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의 마지막 장면이 이해가 됐다. 박완서가 자신이 결혼하던 날 엄마가 집에 돌아와 대성통곡했다는 얘기를 듣고 엄마 없는 빈집에서 하루 종일 울었다는 얘기로 끝이 나는데, 그때 박완서의 눈물이 어떤 의미였을지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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