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탄생 - 우리 민주주의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나?
김육훈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교내 독서토론대회를 열기로 하고 관련 도서로 플라톤의 국가론, 홉스의 리바이어던, 김육훈 선생님의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탄생'을 선정했다. 세 권의 책 중 아이들이 그나마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바로 이 책 아닐까 싶다. 중간 중간 수업 시간에 활용하면 좋을 것 같은 자료가 있어서 옮겨 적었다.

 

 

"다섯 집이 합해서 1()이 되고 다섯 집에서 린장을 추대하고, 5린이 합해서 1()가 되고 5린이 추대한 사람이 이장이 된다. ... 그래서 왕이 나오고 천자가 나온다. 따라서 천자는 여러 사람이 추대해서 되는 것이다. 이 말은 여러 사람이 추대하지 않으면 그가 천자가 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 그러므로 나라가 잘못되면 그를 추대한 사람들이 의논하여 바꿀 수도 있다."

정약용, <탕론>

 

 

*고종과 보빙사로 미국에 다녀온 홍영식의 대화

"그 나라에서는 나랏일을 어떻게 나누어 처리하던가?"

"나랏일은 크게 셋으로 나누어 처리합니다. 상의해서 법을 만드는 의회가 있는데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되었으며, 여기서 법을 정한 대로 이를 처리하는 행정부가 있어 대통령이 그 책임을 맡습니다. 사법부가 따로 있어 재판을 통해서 법대로 잘되었는지를 판단합니다."

"대통령 임기는 얼마인가?"

"4년에 한 번씩 교체됩니다."

"그때마다 조정의 관리들도 바뀌나?"

"그렇습니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행정부 관리가 바뀝니다."

"정권이 교체될 떄마다 큰 폐단이 있을 텐데..."
"위싱턴이 나라를 세운 이래 100여 년이 지나도록 화폐 제도가 온전히 유지됩니다. 이 한 가지 일만 보더라도 큰 폐단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은 정치를 운영하는 방식이 다른가?"

"영국, 독일 같은 나라는 군주 자리를 세습하고, 관리도 바뀌지 않습니다. 아마도 군주제와 민주제에서 나라를 운영하는 법이 다른듯합니다."

"민주제를 하는 나라는 우리처럼 신분이 높은 사람과 보통 사람 사이의 차별이 두드러지지 않겠구나. ... 현재 민주 제도를 실시하는 나라는 몇 나라나 되며, 유럽에도 민주 국가가 있는가?

"유럽에는 스위스, 프랑스 등의 나라가 있고, 남아메리카는 멕시코와, 페루, 칠레 등 모든 나라가 민주국입니다."

-홍영식, <복명문답기> ​

 

* 김옥균, 박영효는 일본군을 따라 망명하였어요. 많은 이들이 그 뒤를 따랐지요. 그러나 정변의 또 다른 주역이었던 홍영식은 다른 선택을 하였어요.

"나는 이 땅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뜻을 세워 일을 도모하였다면, 일이 잘못되었을 때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사람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제 몫입니다. 동지들 서둘러 떠나시오. 그리고 꼭 살아 돌아와 승리해 주시오."

홍영식은 정변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했어요. 그러고 나서 살아서 훗날을 도모할 동지들을 서둘러 떠나보내면서도, 끝내 자신은 왕의 곁을 지켰습니다. 떠날 사람이 떠난 후, 청군은 궁궐을 접수하였고, 홍영식은 그들의 손에 피살되었지요. ​

 

* 하늘이 인간을 낳았으니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다. 사람은 누구나 생명을 보존하고,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졌으며, 이는 누구도 침해할 수 없다. 국가는 이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니, 정부가 이를 저버린다면 인민은 그 정부를 변혁하고 새롭게 세울 수 있다.

-박영효 상소문, 1888 (미국 독립 선언서 반영) ​

 

* <독립신문> 10월 2일자 논설

"꼭 대황제가 계셔야 자주독립 국가가 되나?"

"황제 즉위식이 뭐가 그리 급할까?"

"나라의 자주독립이 위태로운데, 이런 행사 치르기보다 독립의 내실을 다지는 데 더 힘을 기울여야 하지 않나?"

 

 

독립협회 해산 과정이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달라서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

 

* 독립관에서 의원을 선출하기로 한 날 황제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 왕권파를 등용, 독립협회 지도자를 구속, 해산을 명함. 군중의 시위가 확산되자 황제는 50명의 중추원 의관을 임명하기로 결정. 그러나 처음 약속과 달리 선출 절차도 없었고 보부상 단체나 지방 유림의 대표를 두루 집어넣음. 이에 독립협회 급진파는 다시 만민공동회를 개최. 왕권파는 독립협회가 아예 황제를 없애도 공화정치를 시도하려 한다고 비난. 1898년 12월 15일 중추원이 개원함. 독립협회 내 급진파가 중추원에서 대신 후보자를 추천하자고 밀어붙이자 황제는 군대를 동원, 집회를 강제 해산하고 모든 정치 사회 단체를 해산함. 그리고나서 대한국국제를 반포. 

 

*1913년 박상진도 중국으로 떠나 상하이를 거쳐 난징에 머물러 있던 쑨원을 만납니다. ​그는 쑨원에게 동양의 항구적인 평화를 위해서는 조선의 독립이 절대적임을 설명한 뒤, 도움을 요청합니다. 쑨원은 애국심에 불타는 조선 청년에게 미제 권총 한 자루와 따뜻한 격려의 말을 건냅니다. 박상진은 주권이일제에게 넘어가자 판사를 그만둔 뒤 독립운동에 가담하였습니다. 그는 쑨원의 혁명 사상에 공감하고, 쑨원의 혁명 운동에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

 

* <대동단결선언> 1917

융희 황제가 주권을 포기한 8월 29일은 즉 우리 동지들이 ​이를 계승한 8월 29일이니, 그 사이에 순간의 쉼도 없다. 우리 동지들은 주권을 완전히 상속하였으니, 황제권이 소멸한 때가 곧 민권이 발생하는 때요, 구한국 최후의 하루는 곧 신한국 최최의 하루다. ... 그러므로 경술년 융희 황제의 주권 포기는 곧 우리 국민 동지들에 대한 묵시적 선위이니 우리 동지들은 당연히 주권을 계승하여 통치할 특권이 있고 또 대통을 상속할 의무가 있도다.

-​여러 곳의 단체들이 모두 모여 유일무이한 최고 기관을 만들자.

-한곳에 본부를 두고, 한족을 통합하되 지역별로 지부를 두어 운영한다.

-헌법에 준하는 규칙을 만들어 인민의 의지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활동하자. ​

 

* 오늘 우리는 조선이 독립국이며, 조선인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세계 만국에 알리어 인류 평등의 대의를 분명히 하며, 자손만대에 깨우쳐 자주와 독립을 유지하는 올바른 민족의 권리를 영원히 누리도록 한다. <독립선언서>, 1919.3.1

 

*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 국민은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 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대한민국 헌법 전문> 1948

 

* 민주주의란 단어가 한여름 뜨거운 날씨처럼 온 천하를 횡행한다. <동아일보> 1920.4.21

 

* 현대 민주주의는 일부 소수의 정치적 자유만을 보장하게 되는 근대 민주주의를 한계를 넘어서 구성원의 실질적 평등을 보장함으로써, 사회 구성원의 진정한 자유를 보장하는 원리이다. <동아일보> 1920.4.2

 

* 시민 혁명 이후 자유주의 정치가 자리 잡았지만, 빈부 격차를 당연시하고 돈 있는 자들만의 자유를 옹호한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어났거든요. 노동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 평등을 주장하고 나섰고, 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사회주의 운동도 활발해졌어요. 그래서 민주 정치의 모범 국가라 불리는 나라들에서 정치적 자유와 사회적 평등의 조화를 꾀하는 움직임이 대세를 형성합니다. 그래서 현대의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적 요소와 사회주의적 요소가 함께 들어 있어요. 정치적 자유를 여전히 지상의 가치로 여기지만, 평등을 제도화함으로써 자유가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정치를 지향하거든요.

 

* ​조소앙과 그의 동지들은 일제를 물리친 뒤 세울 독립국가는 신민주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신민주국에서는 정치적 자유를 무조건 보장합니다. 그러나 투표권이 있어도 먹고살기 힘들어 투표장에 갈 여유가 없다거나, 출마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를 만큼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면 그 자유는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신민주국에서는 정치적 평등은 물론 경제와 교육의 균등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국가는 마땅히 이 세 가지 권리가 균등하게 배분되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것이지요.

 

(신민주라 함은 민중을 우롱하는 '자본주의 데모크라시'도 아니며 무산자 독재를 표방하는 '사회주의 데모크라시'도 아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범한민족을 지반으로 하고 범한국 국민을 단위로 한 전민적 데모크라시다. - 한국독립당 당의 해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천명관 지음 / 창비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래> 이후 두번째로 읽은 천명관의 소설이다.

 

봄, 사자의 서

동백꽃

왕들의 무덤

파충류의 밤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전원교향곡

핑크

우이동의 봄

 

 

총 8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책을 천천히, 곱씹으며 읽기로 해놓고 이번에도 역시 그러지 못했다.

막막한, 어디서부터인지 뭔가가 잘못된, 꼬여버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단편의 주인공 모두 저마다의 처지는 측은지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한데, 왠지 슬프지가 않다. 천명관 소설의 특징인가. 문체에 감정 과잉을 절제시키는 힘이 담겨 있는 것 같다.

 

누구나 각자의 삶에서는 비중을 논할 수 없는 주인공인데, 노동으로부터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소외됨으로써 엑스트라인척 연기해야 하는 사람들. 억울하고 속상한 일을 참고 살기에 인생은 너무 짧고, 마냥 편한 것만 좋은 것만 쫓아 살기에 인생은 너무 길다. 너무 단순하고 얕은 것도 문제지만, 너무 철저하게 재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소용없기도 하다는 걸 지금은 조금, 안다.

 

"믿을 건 몸뚱이 하나밖에 없었다. 평생 그렇게 살았고 앞으로도 그를 터였다. 하지만 이제 앞으로 얼마나 더 굴러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뼈는 노동에 닳고 살은 술에 녹아났다. 경구는 이렇게 평생 무거운 것을 들며 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앞으로 들어야 할 짐도 많이 남아 있었다. 도대체 그 무게는 얼마나 되는 걸까? 경구는 꽁꽁 언 칠면조를 들고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어갔다."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나 카레니나 세트 - 전3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안나는 그녀의 남편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와 이혼은 하지 않은 채 브론스키와 패테르부르크를 떠났다. 안나가 브론스키와의 사이에서 갖게 된 아이를 출산하는 과정에서 목숨이 위태로웠을 때, 그녀가 참회하는 모습을 본 알렉세이는 아내를 용서하게 된다. 하지만 용서 뒤에 자신에게 남은 건 아무 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되려 사람들에게 경멸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고 생각하자 괴로움에 빠지게 된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은 점점 변해 갔다. 책임과 의무를 져버린 사랑은 결코 오래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사랑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거나 행복의 만능 열쇠가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게 한다.

 

"그는 그녀가 가여웠으나, 그럼에도 그녀에게 화가 치밀었다. 그는 그녀에게 자신의 사랑을 맹세했다. 왜냐하면 지금은 그것만이 그녀를 진정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말로 그녀를 질책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녀를 비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입에 담기 부끄러울 만큼 저속하게 느끼는 그 사랑의 맹세를 들이마시고, 안나는 점차 침착해졌다. 이튿날 그들은 완전히 화해를 하고 시골로 떠났다."

 

사랑이 오래가지 못할 것임을, 어쩌면 이미 끝났음을 암시하는 부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파울로 코엘료의 최근작인가. 도서관에서 야자 감독하며 읽을 책을 고르다가 가볍게 읽을 수 있을줄 알고 집어든 책이다. 그런데 역시나, 파울로 코엘료의 책은 가볍게 읽히지가 않는다. 그의 책 어디서나 등장하는 공통의 요소, 예를 들어 산티아고 순례길, 마리아 같은 것들이 이 책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이 책 역시 종교적이다. 인간의 고통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를 얘기하는 부분에서 특히나 종교적이라고 느꼈다. (성경 공부의 필요성을 또 한번 느낌;; 아는 만큼만 읽히는 것 같다ㅜ)

 

브라질 여자 마리아는 배우를 시켜준다는 거짓말에 속아 제네바에 가게 되고, 고위직 남성을 상대하는 성매매업소에서 일을 한다. 그곳에서 섹스에 대해 다양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여러 남성을 만나게 된다.

 

흑사병 창궐 당시 그것이 신이 인간에게 내린 벌이라고 생각한 중세인들이 자기 몸에 채찍찔을 가해가며 신에 복종하고자 했던 것과 마친가지로 섹스 역시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고자 고통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인 인간들의 행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남성. 마리아는 그를 통해 섹스는 고통이며 그 고통이 인간을 쾌락으로 이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생각은 마리아가 어느날 그녀에게서 '순수한 빛'을 발견했다고 한 어느 화가를 만나고부터 바뀌기 시작한다. 육체적 행위가 아니고서도 인간은 오르가즘을 느끼며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즉 섹스의 전제는 상대를 욕망하는 마음이라는 것... 아 제대로 읽은 건지 모르겠다.;;

 

소설을 읽는 내내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굉장히 현실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읽었는데, 마지막에 마리아와 남자 주인공이 재회하는 부분에서 감동이 확 사라져버렸다. 그런 드라마틱한 요소가 꼭 필요했을까. 에잇..

 

 

- 발췌 -

 

- 우린 삶의 매순간 한 발은 동화 속에, 또 한 발은 나락 속에 담근채 살아가고 있다.

 

- 많은 것을 경헌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경험을 통해 배웄다. 뭔가에 대해 확실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모든 것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물질적인 부나 정신적인 부나 마찬가지다. 내가 종종 겪었던 것처럼, 확실히 자기 것이라고 여겼던 뭔가를 잃은 사람은 결국 깨닫게 된다. 진실로 자신에게 속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에게 속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면, 나에게 속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구태여 걱정할 필요가 뭐 있는가. 오늘이 내 존재의 첫날이거나 마지막 날인냥 사는 것이 오히려 낫지 않을까.

 

- 꿈꾸는 것은 아주 편한 일이다. 그 꿈을 이루지 않아도 된다면. 우리는 힘든 순간들을 그렇게 꿈을 꾸면서 넘긴다. 꿈을 실현하는데 따르는 위험과 꿈을 실현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욕구불만 사이에서 망설이며 세월을 보낸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다른 사람들은, 특히 부모와 배우자와 자식을 탓한다. 우리의 꿈을, 욕망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게 가로막은 죄인으로 삼는 것이다.

 

-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나는 세상의 제물일 수도 있고, 자신의 보물을 찾아 떠난 모험가일 수도 있다. 문제는, 내가 어떤 시선으로 내 삶을 바라볼 것인지에 달려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나 카레니나 세트 - 전3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책 첫 문장)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단어들의 조합인데, 이 문장에서 왜자꾸 눈이 떨어지지 않는지 모르겠다.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부부로 만나 자기들을 닮은 건강한 아이를 낳고 알콩달콩 살아간다는 게,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들 살고 있어서 별거 아닌 줄 알았는데, 막상 나이를 먹고보니, 그것 만큼 대단한 일이 없고,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드려야 할 일인지 새삼 느끼고 있다.

안나가 모스크바에서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브론스키와 미묘한 감정을 확인한 후, 배웅을 나온 남편을 처음 보자 "저 사람의 귀는 왜 저 모양으로 생긴 거지"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톨스토이의 위대함을 느꼈다. 사람을 좋하는데 딱히 이유가 없고, 사람을 미워하는데 아주 하찮은 사소한 것들이 이유가 되는.. 그런 감정을 이렇게 표현해내다니. 나한테도 귀가 못생겼다, 발가락이 못생겼다 등 이유가 같지 않은 이유로 사람을 미워하게 되는 날이 올까.

민음사에서 안나 카레니나를 총 3권으로 구성했는데, 1권에서 벌써 안나와 브론스키의 관계에 적색신호가 켜졌다. 나머지 2, 3권에서 어쩌려는 거지?

안나의 남편, 알렉세이가 애처롭게 느껴졌던 부분을 발췌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의원일지 모르나, 자기 감정을 이해하고 다스리는데 너무나도 미숙한 알렉세이. 그가 앞으로 안나를 어떻게 대하게 될지, 그게 가장 궁금하다.

"지금도 질투란 수치스러운 감정이고 아내를 믿어야 한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그는 자신이 비논리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무언가에 직면했음을 느끼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인생과 대면한 것이다. 그의 아내가 그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있다는 사실과 맞닥뜨린 것이다. 그에겐 이런 것이 무의미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왜냐하면 이것이 삶 자체였기 때문이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삶의 반영을 다루는 공무 분야에서 전 생애를 보냈다. 그래서 그는 삶 자체와 부딪칠 때마다 매번 그것을 회피했다. 이제 그는 낭떠러지 위에 놓인 다리를 침착하게 걸어가던 사람이 문득 그 다리는 허물어졌고 그 아래에 깊은 바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느꼈음 직한 그런 감정을 맛보고 있었다. 이 심해는 삶 자체였으며 다리를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가 살아온 인공적인 삶이었다. 그의 아내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그의 뇌리를 스쳤다. 그는 이러한 의혹 앞에서 전율했다." (311)

"그녀는 오늘따라 유난히 말이 많은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의 모습, 안나를 너무나도 자극하는 그 모습이 그저 그의 내면에 깃든 불안과 초조함의 표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심하게 다친 어린아이가 아픔을 참으려고 펄쩍펄쩍 뛰며 근육을 움직이듯,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에게도 아내에 대한 생각을 떨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정신 운동이 필요했다. 아내와 브론스키가 눈앞에 있고 브론스키의 이름이 끊임없이 들리는 이러한 상황에 내몰리자 그의 신경이 온통 아내에 대한 생각으로 쏠렸기 때문이다. 펄쩍펄쩍 뛰는 것이 아이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듯, 그에겐 훌륭하고 지적인 말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44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