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 - 세상에서 가장 기묘한 22가지 재판 이야기
도진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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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좋을 법 상식에 대해 모의재판 형식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책이다.

판사로 염라왕, 변호사로 소크라테스가 나오는데 설정이 어쩔 수 없이 좀 억지스럽고 전개가 유치한 부분이 많이 있다.

그래도 꽤 유익한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됐음.

착한 사마리안법 같은 경우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등에는 있지만 미국, 영국 포함 우리나라에는 없다고 한다. 도덕의 영역에 법이 어느 만큼 개입해야 하느냐에 있어 나라마다 다르게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이 좀 의외였다. 여행하다가 쓰러지면 구제받을 확률이 미국 영국보단 독일 프랑스에서 더 높겠구만;;

또 형법에서는 고의와 과실을 구분하여 고의만을 처벌하지만, 민법에서는 고의와 과실이 똑같이 취급된다고 한다.

그밖에 죄형법정주의, 미란다의 원칙, 증거 재판주의, 일사부재리의 원칙, 사적 자치의 원칙 등에 대해서도 정리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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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개정증보판 달인 시리즈 1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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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 봤을 때는 공부 방법에 대한 학습지침서인줄 알았다. 그런데 저자가 고미숙! <수유+너머> 활동가였다는 사실을 어려풋하게 알고 있었고,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라는 책을 읽으려고 사두었던 기억이 나서(2년 정도 된 거 같은데 아직 읽지 않았다;;) 적어도 세속적(?)인 학습지침서는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공부에 대한 거짓말들, 예를 들어 공부에는 때가 있다, 독서와 공부는 별개다 등의 인식이 굉장히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요즘 나이가 나이인지라, 문득문득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종종 할때가 있는데, 현재까지 유일하게 마음 먹은 한 가지는,

 

공부는 절대 강요하지 않을 것, 단 함께 책을 읽을 것.

 

다만 이 책에서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한다고, 고전을 읽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 거의 선언과 호소에 가까워 그래, 그래야지 하면서 마음이 순간 막 급해지는 건 사실인데, 정말 고전을 읽으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양식과 같은 지혜와 에너지가 생겨 날까,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전을 같이 읽을 학습모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한번 만들어봐..?

 

여튼 많은 독려가 됐다. 책 열심히 읽어야지.

 

 

멕시코 신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멕시코 원주민들의 조상은 옥수수신이란다. 옥수수신들이 처음 지상에 내려왔을 때, 신들은 질문을 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질문을 하면서 걷고, 걸으면서 질문하기로 결정했다. 걸으면서 질문하기! 요컨대, 신들이 지상에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질문의 힘이었던 것. 그렇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질문이 없으면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공부란 눈앞의 실리를 따라가는 것과는 정반대의 벡터를 지닌다. 오히려 그런 것들과 과감히 결별하고, 아주 낯설고 이질적인 삶을 구성하는 것, 삶과 우주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탐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공부다. 더 간단히 말하면, 공부는 무엇보다 자유에의 도정이어야 한다. 자본과 권력, 나아가 습속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야 비로소 공부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유영, <권학문>

부모가 자식을 기르면서 가르치지 않는 것

이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요

가르친다 하더라도 엄하게 가르치지 않는 것

이 또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부모가 가르치는데 자식이 배우려 하지 않는 것

이는 자식이 그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요

배우기는 하되 힘써 노력하지 않는 것

이 역시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말했다. "행복해지기 위해 어린아이에게 더 기다리라고, 노인에게 이미 지나갔다고, 노예나 매춘부에게 포기하라고 말해선 안 된다. 누구나 지금, 그 자리에서 함께 행복해야 한다." 공부 또한 그러하다. 공부하면 이 다음에 훌륭한 사람이 되고, 뭔가를 얻게 될 거라고 말해선 안 된다. 공부하는 그 순간, 공부와 공부 사이에 있다는 바로 그것이 공부의 목적이자 이유여야 한다. 고로 공부는 존재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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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서 마음으로 - 생각하지 말고 느끼기, 알려하지 말고 깨닫기
이외수 지음, 하창수 엮음 / 김영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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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을 하기 전에 문득 내가 이책 말고 이외수의 책을 읽은 적이 있었나 생각해봤더니 떠오르는 게 없다. 블로그내 검색을 해봤더니 역시나 검색되는 게 없다. 방송에 많이 나오고 구설수에도 자주 오르내리고 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읽은 책 하나 없다니, 안다는 건 엄청난 착각이었던 것;

 

그런데 좀 특이한(?) 작가인 것 같긴 하다. 아니, 특이한 작가라기 보다는 특이한 사람인듯. 책 후반부에 채널링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우주 생명체는 물론 모든 사물과 대화를 나누고 인식을 공유하는것을 뜻한다고 한다. 이 책에서 처음 접했는데 이외수가 두세달에 한번 이런 경험을 하고 있다고 하니 신기하고 특이하다고 생각됐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 <장외인간>이라는데 한번 읽어봐야 겠다. 달에 있는 친구와 채널링을 통해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는 내용인데 책 출간 기사가 나간 후 또라이 아니냐는 식의 엄청난 악플에 시달렸다고;; 

 

<벽오금학도>를 쓰게 된 계기도 좀 충격적이었다. 단칸방에 살던 이외수가 3,700만원짜리 집을 계약하고 계약금 40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를 지불할 능력이 안돼서 출판사 사장을 찾아가 2천만 원을 무이자로 빌려주면 1년에 안에 글을 써서 갚겠다고 청을 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사장은 코웃음 치며 거절했는데, 며칠 뒤 사장이 춘천까지 직접 2천만 원을 가지고 내려왔다고 한다. 청와대에 초청될 정도로 유명한 역술인이 이외수를 일컬어 "출판사 열 개를 살릴 작가"라고 했다는 것. 계약 직후 이외수는 <칼>이라는 소설을 썼고 출간되고 나서 스무배로 갚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후 돈을 벌기 위해 책을 썼다는 죄책감 때문에 5년 동안이나 글을 쓰지 않았다. 그 시간을 이겨낸 뒤 쓴 책이 <벽오금학도>라고. 읽어봐야겠다.

 

 

발췌

 

- 나는, 어쨌든, 인간은 만물을 사랑할 수 있는 가슴을 가진 존재라고 확신한다. 모든 사랑은 아름다움에서 비롯되고, 만물은 제각각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국 인간은 만물을 아름답게 볼 수밖에 없고, 그러면 만물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만물을 아름답게 보려면 저울이나 잣대를 버려야 한다. 그것들을 갖고 있는 한 그 저울과 잣대에 재어지는 것만 아름답게 보이고 그것만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다. 저울과 잣대의 눈금이 지워졌다는 건 만물이 지닌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보인다는 것이다.

 

- 문학은 조화를 위한 도구다. 조화가 아름다움이고, 균형이 아름다움이다. 예술은 결국 망가진 것, 상처받은 것, 부족한 것들을 고치고 치유하고 보완해서 온전한 아름다움을 갖게 하는 조화와 균형의 도구다. 슬픔에 빠진 사람들, 불우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문학이고 예술이다.

 

- 모든 이름들은 하나의 섬. 모든 영혼들도 하나의 섬.

모든 혹성들은 하나의 섬. 모든 성단들도 하나의 섬.

섬에서 섬으로 그리움의 바다가 흐른다. 가슴 안에 간절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자들만이 섬과

섬 사이를 오갈 수 있다.

 

- 자연 가운데서도 내게 최고의 멘토는 물이다. 물은 거대하면서도 미세하고, 녹아 흐르는 액체지만 딱딱하게 굳기도 한다. 처하는 장소마다 거기에 자신을 맞춘다. 그건 모든 걸 받아들인다는 얘기고, 모든 좋아한다는 것이다. 물은 자기 모습을 고집하지 않는다. 기준이 자기가 아니라 남이다. 그런데도 물은 늘 자신의 고유한 성질을 잃지 않는다. 본질인 H2O, 그건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물이 오염되었다"는 건 틀린 말이다. 그저 다른 것들과 섞여 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바탕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과 융화하고 조화하는 물의 본성이다.

 

- 사람은 의학적 죽음 이후에도 수분간 이야기를 듣는다고 한다. 그래서 죽음을 맞이한 사람에게 "사랑한다", "그동안 함께 해서 행복했다" 등의 말을 해주는 건 아주 의미 있는 일이다.

 

- 생각에 의존해서 사는 삶보다는 마음에 의존해서 사는 삶을 살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 내게는 구원이었다. 그런 뒤부터는 하는 일마다 잘됐다. ... 마음으로 다가가면 대상과 내가 쉽게 합일되고 만물을 볼때 즉각적으로 일체감이 형성된다. 그리고 존재의 가치나 의미가 당연시되기 때문에 의문이 일어나지 않는다. 명료하고 명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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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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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를 정말 잘했다.
독서에 대한 열정과 욕구가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볼만한 책이다.
책을 많이 읽는 것 보다 깊이 있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책이다.

이 책에 소개된 책들.

이철수, <산벚나무, 꽃피었는데-이철수 신작 판화 100선전>, <마른풀의 노래>, <이렇게 좋은 날>
최인훈, <광장/구운몽>
이오덕, <나도 쓸모 있을걸>
김훈, <자전거 여행>1-2,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개>, <화장>, <바다의 기별>
알랭드 보통, <불안>, <우리는 사랑일까>, <동물원에 가기>,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대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
고은, <순간의 꽃-고은 작은시편>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김화영, <행복의 충격-지중해, 내 푸른 영혼>, <바람을 담는 집>,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김화영 예술기행>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천상의 두 나라>
로버트 카플란, <지중해 오디세이>
알베르 카뮈, <이방인>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장 그르니에, <섬>
R.M.릴케, <말테의 수기>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리나>
법정,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손철주, <인생이 그림 같다-미술에 홀린, 손철주 미셀러니>,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오주석, <한국의 미 특강>, <오주석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1-2, <그림 속에 노닐다>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프리초프 카프라,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한형조, <붓다의 치명적 농담>

다음은 이 책에서 발췌한 문장들.

낯선 곳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예요. 니코스 카잔차키스도 말하죠. 익숙한 것을 두려워하라고. 땅버들 씨앗 같은 삶의 태도로 살았으면 좋겠다고요. 땅버들 씨앗들이 의도를 가지고, 이번 물살이 좀 안전하니까 이번에 타야지, 하고 가는 게 아니잖아요. 갑자기 급한 물이 내려오면 어쩔 수 없이 쓸려가야 해요. 우리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내 마음대로 직조할 수 없어요. 시대라는 씨줄과 내 의지라는 날줄이 맞아야 해요. 내가 아무리 날줄을 잘 세운다고 해도 씨줄이 너무 세게 밀고 들어오면 휘게 되어 있어요. 살다보면 우리 뜻대로 되지 않아요. 급한 물이 밀려올 때가 있죠. 그럼 타야지 어쩌겠어요. 그러고 나서 결국 어딘가에 닿았아요. 사실 나는 거기에 닿고 싶지 않았는데, 아래쪽으로 3미터쯤 더 가고 싶었는데 그 지점에 가지 못하고 닿았단 말이죠. 그럼 어쩌겠어요. 땅버들 씨앗처럼 거기서 최선을 다해 싹을 튀어야죠.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를 주먹을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트려 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카프카)

지중해에 산다고 칩시다. 햇살 가득한 하루가 축복이었어요. 그런데 해가 지면 불현듯 슬픔이 찾아옵니다. 죽음에 대한 예고처럼요. 해가 지는 것처럼 언젠가 죽임이 온다는 기이한 슬픔이 밀려들어요. 지중해에 살지 않는 우리들도 감미로운 기쁨과 정반대의 순간들을 만나지요. 특히 일요일 오후 언뜻 해가 질 무렵의 먹먹함과 허무함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합니다. 감미로운 기쁨이 있는 것처럼 뜻 모를 슬픔이 문득 찾아오는 것. 이렇게 삶이라는 건 열린 창문 사이로 밀려드는 햇살처럼 순간의 기쁨, 그리고 그 나머지의 슬픔으로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유한한 생명이 부여된 인간의 숙명일 수도 있겠네요.

인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어가기 시작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생명이 계속해서 날아가고 있어요. 내가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흘러가게 되어 있고, 어느 날엔 손안의 가는 모래처럼 다 사라질 거예요. 그리고 죽어 있을 거예요. 잡을 방법은 없어요. 그러니 빠져나가는 걸 보며서 슬퍼하지 말고 그 순간순간을 즐기라는 겁니다. 어차피 결과는 같아요. 빠져나가고 있는데 어떻게 하느냐며 안절부절 못하는 사람과 오늘을 즐기는 사람을 비교했을 때 후자가 답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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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 사랑과 희망의 인문학 강의
류동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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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의 빨간 책방 팟캐스트를 통해 알게 된 책이다. 편집자가 책표지와 제목을 뽑아내느라 하도 고생을 해서 이책을 끝으로 사표를 낼 생각까지 했었다고. 그런 수고끝에 만들어진 책이라 그런지(물론 어느책이나 다 그렇겠지만) 표지와 제목 모두 정말 탁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물자체로서의 마르크스뿐만 아니라 이런류의 사회과학 서적이 지극히 따뜻하고 말랑말랑하게 느껴지는 건 물론 8할 정도는 내용과 구성의 힘이겠지만, 나머지 2할과 +알파는 책이 지닌 외양의 힘인 것 같다.

 

책을 읽기 전 가졌던 이미지때문에 사회과학이란 말을 쓰긴 했지만 이 책은 사회과학 서적도 아니고 마르크스의 저작을 철저하게 비판, 분석한 책도 아니고 고전의 해석을 돕기 위한 해설서 같은 책도 아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공산당선언>, <독일이데올로기> 등에 언급된 내용들을 인용하고 있지만 그것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 책의 목적이었다면 이책은 지금까지 마르크스에 관해 쏟어져 나온 셀 수 없이 많은 책들 중 한 권이라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마르크스의 저작 뿐 아니라 알래드 보통, 가라타니 고진, 김훈, 홍상수 등의 작품을 인용하기도 하는데, 어렴풋이 알고 있던, 혹은 전혀 낯설기도한 이들의 저작이나 영화도 다시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학부 시절, <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 <공산당선언>을 비롯해 마르크스, 엥겔스, 심지어 알튀세르까지 그 사람들의 책 일부를 복사해 한데 모은 다음 두꺼운 책으로 제본해서 읽었었는데, 그러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을 수 있었다면 좋아겠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읽는 내내.

 

부끄럽지만 그때는. 그러니까 십년 전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혹은 알튀세르의 책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읽었다기 보다는 그 두꺼운 제본 꾸러기를 들고 다닌데에 오히려 더 큰 만족을 느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그게 전부이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때 내 생각이 더 유연하고 좀 더 깊었더라면.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때의 나는 정확히 'beside oneself' 즉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던 것 같다. 미쳤거나 정신이 나갔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내 안에 있지 못하고 옆에 서 있는 듯한 상태였다는 것.

 

생산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윤이 발생하는지,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착취가 어떤식으로 이루어지는지, 혹은 '전 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 우리가 잃을 것은 억압의 쇠사슬 밖에 없다' 같은 과학적이고 선언적인, 선동적인 어떤 표현들에 흥분하고 끌려다닐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혁명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시작하는 법" 이와 같은 말에 좀 더 무게를 두고 고민하고, 그 의미를 새겼더라면, 그동안 더 잘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더 잘 살았을 것이라는 말은, 내가 좀 더 주변 사람을 알뜰히 챙기고, 고마움을 느끼고 표현하며 살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물론 지금에라도 그렇게 살아야하지만;;;

 

"공산주의는 단지 사적 소유(자유 재산)를 철폐하고 국가계획을 도입함으로써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적 본질이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지는 상태, 인간과 인간의 충돌이 진정으로 해결되는 상태여야 하는 것입니다."(264)

 

마르크스가 정말이지 내게 아프냐고 물어오는 것 같다. 인간이 끊임없이 아플 수밖에 없는 이유인 '자기 소외'. 그 소외의 원인은 사회로부터 주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으로부터 기인하기도 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치유를 위한 구체적이고 정확한 처방을 내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왜 아픈지 뭐때문에 아픈지, 진단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그리고 위로가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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