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에 이는 바람은 모국어 'ㅜ' 모음의 바람이다. 그 바람은 'ㅜ' 모음의 울림처럼, 사람 몸과 마음의 깊은 안쪽을 깨우고 또 재운다. '숲'은 글자 모양도 숲처럼 생겨서, 글자만 들여다보아도 숲 속에 온 것 같다. -김훈, 가까운 숲이 신성하다-60쪽
숲의 시간은 헐겁고 느슨하다. 숲의 시간은 퇴적의 앙금을 남기지 않는다. 숲의 시간은 흐르고 쌓여서 역사를 이루지 않는다. 숲의 시간은 흘러가고 또 흘러오는 소멸과 신생의 순환으로서 새롭고 싱싱하다. 숲의 시간은 언제나 갓 태어난 풋것의 시간이다. -김훈, 가까운 숲이 신성하다-66쪽
된장국은 뜨거울 때 호호 불어가며 떠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가 있다. 젖을 뗀 후부터 줄곧 먹어 온 어머니의 된장국 맛은 이제 내 체질과 성격을 만들었다. -문순태, 늙으신 어머니의 향기-95쪽
"이놈아, 에미한테서 나는 냄새는 에미가 자식 놈들을 위해서 알탕갈탕 살아온, 길고도 쓰디쓴 세월의 냄샌겨." -문순태, 늙으신 어머니의 향기-99쪽
그것은 어머니가 살아온 신산한 세월이 발효하면서 풍겨져 나온 짙은 사람의 향기였다. 고통스러웠던 긴 세월의 더께 같은 것. 어머니의 냄새는 팔십 평생 동안 푹 곰삭은 삶의 냄새이며, 희로애락의 기나긴 시간에 의해 분해되는 유기체의 냄새가 분명했다. 나는 갑자기 어머니의 냄새가 내 몸의 모든 핏줄 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문순태, 늙으신 어머니의 향기-106쪽
당신에 대한 내 사랑도 부드러웠지만, 슬픈 거였어요. 당신이 날 사랑할 동안, 나는 낯선 별에 불시착해 있는 거였어요. 당신은 낯선 행성이었는걸요. -구효서, 밤이 지나다-130쪽
남자는 아내 곁으로 다가가 아내의 손을 쥐었다. 냉장고에서 깡통 음료수를 꺼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성란, 그림자 아이-237쪽
아내가 두통 발작으로 시트를 차내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때도, 나는 아내의 고통을 알 수 없었다. 나는 다만 아내의 고통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고통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훈, 화장-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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