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불만을 사거나 비난을 받기 싫어하는 성격은 자신의 성적표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오랜 우등생 전력에서 비롯된 신경증일 뿐 상대를 위하는 마음은 아니었다. -축복 없는 봄-45쪽
명선에게는 때때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빠져나와 방치돼 버리는 위태로운 순간이 있었다. -세 개의 대문에 관한 꿈-114쪽
영우가 자신의 도움 없이 제 힘으로 살아갈 날이 오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소원은 그러므로 쉽게 이루어지지 않도록 되어 있었다. 대신 영우는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그것만이 영우가 자기 인생에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권한이었다. 자신을 함부로 방치하는 것이 자기 인생에 가장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길이었던 것이다. -바람의 신탁-143쪽
네이폴의 소설 <흉내>에서 자기 고향에 가도 영원히 방문자일 수밖에 없는 '뿌리뽑힌 이방인' 싱은 독백한다. '우리는 진짜인 척하고, 배우는 척하고, 인생에 대한 준비를 하는 척했으나, 사실은 새로운 세계의 한모퉁에 사는 흉내내는 사람들에 지나지 않았다.' -바람의 신탁-178쪽
인간은 강인함으로 인해 위대해지지만 약점을 통하지 않고는 완성되지 않는다. 위인이란 존재는 철인경기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종으로서의 긍지를 주어 인간을 고양시킨다. 반면 약점투성이인 사람은 때로 인간을 안심시키며 자신과 화해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바람의 신탁-191쪽
품위 없는 사회는 인간을 치사하고 비굴하게 만들었으며 그곳에서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소수의 싸움꾼과 매사에 막무가내인 갓난아기들 정도였다. -바람의 신탁-207쪽
내 사주에는 '외로울 고'와 역마살이 있다. 타인을 향해 달려가지만 가까스로 합해진 다음에는 떠날 궁리를 하고, 혼자가 되면 또다시 타인을 갈망하는 자. 무엇을 갖기 위해 애쓰고 가진 뒤부터는 거기로부터 떠나기 위해 애쓰고 또 그 다음에는 돌아오기 위해 애쓰는 자. -작가의 말-316쪽
영원히 머무는 것이 아니라 쉬 지나가는 것을 사랑하라고 여행자는 가르쳐 준다. 여행자는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것이기에. 그리고 모든 것은 이별이기에-생명이라는 것을. -김화영, <시간의 파도록 지은 성>-316쪽
사십을 넘긴 지가 언제인데 이제야 비로소 유치한 장식이 잔뜩 달린 채로 빛이 바랜, 청춘이라는 무거운 외출복을 벗어 놓는 느낌이 든다. 이제는 늙어 갈 수 있을 것 같다. -3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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