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한 생활-연습이 지루할 때면 각 소리의 표정을 그려 봤다. 레는 곁눈질하는 느낌이고, 솔은 까치발 선 인상을 줬다. 미는 시치미를 잘 떼고, 파는 솔보다 낮지만 쾌활할 것 같았다. 나는 다섯 음에 적응해 갔다.-12쪽
침이 고인다-그녀는 '그러니까'와 '그렇지만' 사이의 깊은 협곡 아래로 굴러 떨어지며 선잠에 빠져든다. 물론 직장에 택시를 타고 갈 생각은 없다. 그녀는 자신이 아침마다 일어나는 데 필요한 것 중 하나가 결심이 아닌 '주저'라는 걸 알고 있다. -47쪽
침이 고인다-아울러 '그만둘까'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월급날은 번번이 용서를 비는 애인처럼 돌아왔다. -50쪽
칼자국-어머니의 몸뚱이에선, 계절의 끝자락, 가판에서 조용히 썩어가는 과일의 달콤하고 졸린 냄새가 났다.-178쪽
네모난 자리들-그러니까, 지하철은 턴테이블 같아요. 땅속에서 온종일 빙글빙글 돌며, 고독과 신산함의 음악을 만들어 내는. -227쪽
작가의 말-어서 전했으면 좋았을 말을 이제 전한다. 아껴서-부르지 못한 이름들에게 인사를. 그리고 내게 위안받았다고 말해 준 독자, 이름 모를 당신. 책 뒤에 붙는 이 한 바닥을 빌려 말하니 나도, 진심으로 당신에게 위안받았다.
마침내 시시해지는 내 마음이 참 좋다.-3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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