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목록은 책 전체를 자세히 검토한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무작위적으로 체크하면서 발견한 몇 몇 오류들에 불과합니다.
1.
70면 마지막 단락-71면: "My concern here is with the process of 'intervening ideologically,' as Stuart
Hall describes the role of 'imagining'
or representation in the practice of politics in his response to the British
election of 1987. For Hall, the notion of hegemony implies a politics of identification of the imaginary"
(나병철) 여기서 나의 관심은, 스튜어트 홀이 1987년 영국 선거에 대해 논평하면서 정치학적 실천에서의 '이미지화' 혹은 '표상화'의 역할이라고 묘사한 것과도 같은, '이데올로기들 사이에 끼어드는' 과정에 있다. 홀에게 있어 헤게모니란 이미지화한 것에 대해 정체성을 형성하는 정치학을 의미한다.
(수정) 여기서 나의 관심은 '이데올로기적으로 개입하는' 과정에 있다. 즉 스튜어트 홀이 1987년 영국 선거에 대해 논평하는 가운데 정치적 실천에 있어서의 '상상하기' 혹은 재현의 역할이라고 묘사한 것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홀에게 있어 헤게모니라는 개념은 상상적인 것의 발견과 관련된 정치학을 함축한다.
2.
99-100면: "that even the same signs can be appropriated, translated,
rehistoricized and read anew."
(나병철) [즉, 제 3의 공간은] 똑같은 기호들조차도 새롭게 충당되고 전이되며 재역사화될 수 있음을 분명히 드러낸다.
(수정) 똑같은 기호들조차도 전유되고, 번역되고, 재역사화되며, 새로이 읽힐 수 있다→"read
anew" 번역 탈락
3.
100면 인용단락 바로 위: "인민들을 진정한 민족적 문화와 동일시했던 원주민 지식인들은 실망할 것이다" 다음에 오는 한 문장 통째로 생략. "The
people are now the very principle of 'dialectical reorganization' and they
construct their culture from the national text translated into modern Western
forms of information technology, language, dress."
4.
113면 마지막 문장: "The 'atmosphere of certain uncertainty'
that surrounds the body certifies its existence and threatens its dismemberment."
(나병철) 신체를 둘러싸는 '확실한 불확실성의 분위기'는 신체의 존재를 확실하게 하며 또한 그 해체의 위험을 드러낸다.
(수정) 신체를 둘러싸는 '확실한 불확실성의 분위기'는 신체의 존재를 확실하게 하며 또한 그 해체를 위협한다. → 정반대로 해석.
5.
123면 마지막 부분: "In
place of the symbolic consciousness that gives the sign of identity its
integrity and unity, its depth, we are faced with a dimension of doubling."
(나병철) 정체성의 기호에 그 전체성과 통일성, 즉 '깊이'를 부여하는 상징적 의식의 위치에서, 우리는 이중성의 차원에 직면하게 된다.
(수정) 정체성의 기호에 전체성과 통일성, 깊이를 부여하는 상징적 의식 대신, 우리는 이중화의 차원을 마주하게 된다.
→ 숙어 "in place of " 의미 오해, 문장 전체의 의미가 반대가 됨. "doubling"은 복제물을 생산하는 과정으로서의 "이중화"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
6.
139면 마지막 문장-140면: "Not directly, I would answer, but then, have our fables of identity ever been
unmediated by another; have they ever been more (or less) than a detour
through the word of God, or the writ of Law, or the Name of the Father:
(....)?"
(나병철) 나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정체성에 대한 우리의 우화들이 타자에 의해 매개되지 않아온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과연 우리의 정체성의 우화들이, 하나님의 말씀, 법의 문서, 아버지의 이름 (...) 을 통한 우회로 그 이상(혹은 그 이하)이었을까?
(수정) 나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다. 하지만, 정체성에 관한 우리의 우화가 다른 어떤 것에 의해 매개되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그것이 신의 말, 법의 문서, 혹은 아버지의 이름을 통해 우회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반어적 의문문을 잘못 해석하여 문장 전체의 뜻을 반대로 이해함 + "another"를 "타자" (the other)로 해석.
7.
141면 아래-142면: "The discourse of poststructuralism has
largely been spelled out in an intriguing
repetition of a, whether it is
Lacan's petit objet a or Derrida's différance. Observe, then, the agency of
this postcolonial a. There is
something supplementary about a that
makes it the initial letter of the Roman alphabet and, at the same time, the indefinite article."
(나병철) 탈구조주의의 담론은, 라캉의 소문자 대상 a이든 데리다의 차연이든 간에, a의 음모같은 반복 속에서 대부분 판독되어 왔다. 그러면 이 탈식민지적 행위자 a를 관찰해 보자. a에 관한 대리보충적인 어떤 것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a를 로마자 알파벳의 첫 문자이면서 그와 동시에 미결정적인 항목이 되게 한다.
(수정) 탈구조주의 담론은 라캉의 "대상-a"라는 개념이나 데리다의 "차연"이라는 개념에서와 같이 대체로
"a"라는 철자의 흥미로운 반복을 통해 설명되어 왔다. 그렇다면 이제 탈식민지적 "a"의 행위능력을 살펴보자. "a"라는 철자에는 무언가 대리보충적인 것이 있다. 그로 인해
"a"라는 철자는 로마자 알파벳의 첫 글자이면서, 또한 동시에 부정관사이기도 하다.
→"intriguing" (흥미로운), "indefinite article" (부정관사) 해석 오류.
8.
143면 중간: "It is
in this hybrid gap, which produces no
relief, that the colonial subject takes place, its subaltern position
inscribed in that space of iteration where अ
takes (the) place of 'er.'
(나병철) 이때 식민지 주체가 자리를 잡는 곳은 결코 제거할 수 없는 '혼성성'의 틈새 속이다. 즉, अ가 'er'의 자리를 차지하는 곳은 반복의 공간 속에 기입된 식민지 주체의 하위계층의 위치이다.
(수정) 어떠한 안도감도 주지 않는, 이러한 '혼성적인 틈새'에서 식민적 주체가 생성되며, 그의 하위주체적 위치는 (힌두어 알파벳) अ가
(영어 표기)"er"를 대신하는 반복의 공간에 새겨진다.
→ "take place" 는 마치 사건이 일어나는 것과 같이 주체가 생성된다는 의미.
9.
146면: "The force of cultural difference is, as
Barthes once said of the practice of metonymy, 'the violation of a signifying limit of space, it permits on the
very level of discourse, a counterdivision
of objects, usages, meanings, spaces and properties.'"
(나병철) 문화적 차이의 힘은, 바르트가 환유의 실천에 대해 말했던 것처럼, '공간의 한계영역'을 의미화하는 침범이며, 그것은 담론의 수준 그 자체에서 대상, 용법, 의미, 공간, 속성을 분리시키는 것에 반대하도록 한다.
(수정) 문화적 차이의 힘은, 바르트가 환유의 실천에 대해 말했던 것처럼, '공간의 의미생성작용의 한계를 어기는 것이며, 그것은 바로 담론의 수준에서 대상, 용법, 의미, 공간, 속성을 대항적으로 분할할 수 있도록 한다.
10.
147면: "There are times when he is too quick to name the Other, to
personalize its presence in the language of colonial racism."
(나병철) 이 때 그가 타자를 너무 빨리 명명함으로써 식민지적 인종주의의 언어 속에서 타자의 현존을 인격화하지 못하는 때가 있다.
(수정) 때때로 그는 너무 빨리 논의하느라 타자를 명명하지 못하거나, 식민적 인종주의의 언어에 현존하는 타자를 인격화하지 못하는 때가 있다.
→유명한 "too~to~" 구문을 정반대의 의미로 해석함.
11.
149면: "The former slave needs a challenge to his humanity."
(나병철) 예전에 노예였던 그는 자신의 휴머니티를 지향한 도전을 필요로 한다.
(수정) 예전의 노예였던 그는 자신의 휴머니티[인간으로서의 속성]에 대한 도전을 필요로 한다.
→ 정반대의 의미로 해석.
12.
153면 중간: "Nowhere is this subaltern activity more
visible than in his work itself, where a range of texts and traditions-from the classical repertoire to the
quotidian, conversational culture of racism-vie to utter that last word
that remains unspoken."
(나병철) 지금 여기에서는, 파농의 저서에서보다 그같은 하위계층의 활동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또한 일련의 텍스트들과 전통들 (고전적인 작품들에서부터 인종주의적인 일상의 담화적 문화에 이르기까지)이 여전히 아직 말해지지 않는 마지막 단어를 말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수정) 파농의 저서 자체에서보다 하위주체적 행위가 더 분명히 드러나는 곳은 없다. 그의 저서에서는 인종주의의 고전적 레파토리에서부터 일상적이고 대화적인 문화에 이르는 일련의 텍스트와 전통들이 [인종주의라는] 말하지 못한 채 남겨둔 그 마지막 단어를 입 밖에 내기 위해 다툰다.
→"nowhere"를 "now-where"로 착각하신 듯. 문장의 의미를 정반대로 해석. 두 번째 문장에서 "인종주의"가 포괄하는 구절에 대한 다른 이해.
13.
252면: "Tom Nairn reveals a basic ambivalence
between the symbols of English imperialism which would not help 'looking universal' and a 'hollowness [that] sounds
through the English imperialist mind in a thousand forms."
(나병철) 톰 나이언은, '보편적인 것으로 보일'수밖에 없는 영국 제국주의의 상징들과, '무수한 형식들 속에서 (...) 영국 제국주의 정신이 공동화되는 울림' 사이에서 나타나는, 근본적인 양가성을 드러낸다.
(수정) 톰 나이언은 '보편적인 것으로 보이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 영국 제국주의의 상징들과 '무수한 형식을 통해 영국 제국주의적 정신을 관통해 울리는 공허함' 사이에 나타나는 기본적인 양가성을 드러낸다.
→ 정반대의 의미로 해석. "would not help"를 "could not help"로 헷갈리신 듯.
14.
253면 첫 줄: "authoritative representation"
(나병철) 권위적인 대표성
(수정) 권위 있는 재현
15.
254면 주석 42번 뒤 한 문장 통째로 생략: "it is
always the split screen of the self and its doubling, the hybrid."
16.
258면 마지막 부분: "The
paranoid threat from the hybrid is finally uncontainable because it breaks
down the symmetry and duality of self/other, inside/outside. In the
productivity of power, the boundaries of authority---its reality effects---are
always besieged by 'the other scene'
of fixations and phantoms."
(나병철) 혼성물에는 궁극적으로 편집증적 위협이 담겨질 수 없는데, 왜냐하면 혼성은 자아/타자, 내부/외부의 대칭성과 이원성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권력이 생산되는 가운데, 권위의 경계선들(권위의 현실효과)은 항상 고착과 환각이라는 '타자의 눈으로 본 장면'으로 포위된다.
(수정) 혼성적인 것에서 비롯되는 편집증의 위협은 끝내 억누를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자아/타자, 내부/외부의 대칭성과 이원성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권력의 생산성 [주체를 생산하는 능력]에 있어, 권위의 경계선들과 그것의 현실화 효과는 항상 고착과 환영이라는 "다른 장면"에 의해 포위된다.
→ "uncontainable" 과 "productivity"의 해석 오류
17.
259면 중간: "For
the desire of colonial discourse is a splitting of hybridity that is less than
one and double; and if that sounds enigmatic, it is because its
explanation has to wait upon the
authority of those canny
questions that the natives put, so insistently, to the English book."
(나병철) 왜냐하면 식민지적 담론의 욕망은 '결코 단일하지 않고 이중적인 혼성성의 분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말이 수수께끼같이 들린다면, 그것은 원주민들이 영국 책에 대해 그토록 끈질기게 제기하는 불길한 질문들에 근거해서 그에 대한 설명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수정) 왜냐하면 식민지적 담론이 욕망하는 것은 '완전체에 미치지 못하는 분신'이라는 혼성성의 분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이 말이 수수께끼같이 들린다면, 그것은 그 설명에 있어 원주민들이 영국 책에 대해 그토록 끈질기게 제기한 재기발랄한 질문들의 권위를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
"double" 은 "복제물" "분신"을 의미함. "canny" "wait on" 해석 오류.
18.
261면 마지막 부분: "The Word, no less thecratic than
logocentric, would have certainly borne absolute witness to the gospel of
Hurdwar had it not been for the rather
tasteless fact that most Hindus were vegetarian!"
(나병철) 그처럼 로고스 중심적이면서 또한 그만큼 신정주의적인 말씀은, 설령 대부분의 힌두인들이 채식주의자라는 흥미 없는 사실을 찬성하지 않았더라도, 허드워의 복음에 절대적인 증언을 분명히 탄생시켰을 것이다!
(수정) 로고스 중심적이고 신정주의적인 [신의] 말씀은, 대부분의 힌두인들이 채식주의자라는 다소 무미건조한 사실만 아니었더라도 분명 허드워의 복음을 절대적으로 목격했을 것이다!
→ "had it not been for" 구문해석 오류. 성경책이 영국인에 의해 인도로 전해진 것이라는 영국인의 발언에 대해 한 인도인이 "소고기를 먹는 영국인이 어떻게 감히 신의 말씀을 전달할 수 있다는 말이냐"고 질문하는 일화가 앞서 소개됨.
19.
263면 아래에서 두 번째 줄: "mass conversion (집단적인 개종)"을 "집단적인 대화
(conversation)"로 해석
20.
280면 마지막 단락: "It is an undecidability that arises from a
certain culturalist substitution that Derrida describes as anti-ethnocentrism
thinking itself as ethnocentrism while 'silently imposing its standard concepts
of speech and writing.'
(나병철) 자기자신을 인종중심주의로 생각하면서도, 음성언어와 문자언어에 별다른 언급 없이 통상적 개념을 부과하는, 데리다가 반인종중심주의라고 설명한 어떤 문화적 대체물, 그것으로부터 나타나는 것이 바로 미결정성이다.
(수정) 그것은 데리다가 묘사한 것과 같이 '음성언어와 문자언어에 관한 표준 개념을 [타자에게] 조용히 부과하며' 자신을 자민족중심주의라 여기지만 [실제로는] 반-자민족중심주의[적 효과를 내는] 어떤 문화주의적 대체행위로부터 비롯되는 미결정성을 말한다.
→ 식민주의자들이 자기 민족의 문화라고 믿는 어떤 것은 타자와의 마주침 이전에 순수하고 고유한 성격을 갖고 따로 존재하던 것이 아니라 바로 타자에게 부과한다는 행위 자체를 통해 생성되는 것이라고 이해할 때, 타자에게 자신의 문화를 부과하는 행위는 소위 자기 민족의 문화라는 것을 그 기원에서부터 혼성적인 것으로 탄생시키는 과정이며, 따라서 이는 자민족중심주의적 믿음에 오히려 배치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는 의미를 함축하는 듯 함.
21.
288면 중간: "As I
understand the concept-and this is my tendentious reconstruction-it is an
insistence on the surface of emergence
as it structures the present of its enunciation: the historical caught outside
the hermeneutic of historicism; meaning grasped not in relation to some un-said or polysemy, but in its production of an authority
to differenctiate."
(나병철) 내가 그 개념을 이해한 바에 의하면-이는 내 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그것은 진술의 언표작용의 현재를 구조화하는 '생성의 표면'에 관한 주장이다. 즉, 그것은 역사주의의 해석학 바깥에서 포착되는 역사적인 것이다. 또한 그것은 어떤 말해지지 않은 것이나 다의미성에 연관해서 파악되는 의미이다.
(수정) 다소 과격하게 재구성해보자면 나는 [미결정성의 순간이라는] 개념을 연표작용의 현재를 구성하는 '생성과정의 표면'이라고 이해한다. 그것은 역사주의의 현상학 바깥에서 포착되는 역사적인 것이고, 의미를 어떤 말해지지 않았거나 다의적인 의미와의 관계에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라는 관념 자체를 창조할 수 있는 권위를 생산하는 과정 속에서 파악하는 것이다.
→ "not in relation to"의 의미를 정반대로 해석. 마지막 한 구절 통째로 생략.
22.
291면 중간: "A
colonial non-sense, however, that is
productive of powerful, if ambivalent, strategies of cultural authority and
resistance."
(나병철) 그러나 식민지적 비의미는, 비록 양가적일지라도 문화적 권위의 저항의 강력한 전략들을 생산적으로 만든다.
(수정) 그러나 식민지적 넌센스는 문화적 권위와 저항에 관하여 양가적일지라도 강력한 전략들을 생산한다.
23.
301면 마지막 두 줄: "But how untrue must you be to fail to be
happily, if haphazardly human?"
(나병철) 그러나 설령 되는 대로의 인간일지라도, 행복하게 존재하는 데 실수하는 것은 얼마나 진실하지 않은 일일까?
(수정) 하지만 도대체 얼마나 진실하지 않아야, 되는대로일지라도 행복하게, 인간으로 살 수가 없게 되는 것인가?
24.
306면 마지막 부분: "Metaphor, as the etymology of the word
suggests, transfers the meaning of home and belonging, across the 'middle
passage,' or the central European steppes, across those distances, and cultural
differences, that span the imagined community of the nation-people."
(나병철) 어원이 암시하듯이, 은유는 '중간통로'를 가로질러 의미의 본토와 소속을 변화시킨다. 이와 마찬가지로 본토 유럽인들은 국민-민족이라는 상상적 공동체에 걸쳐 있는 거리들과 문화적 차이들을 가로질러 앞으로 나아간다.
(수정) 어원이 암시하듯, 은유는 대서양 [middle
passage: 흑인들이 아프리카로부터 아메리카 대륙으로 노예로 팔려가는 동안 고통스럽게 통과한 경로를 의미함], 혹은 중앙 유럽 스텝지역을 가로질러, 지리적 거리와 문화적 차이를 가로질러, 민족-인민의 상상된 공동체를 포괄하는 고향과 소속의 의미를 전달한다.
→ 총체적 난국.
25.
313면 중간: "For
Bakhtin, it is Goethe's vision of the microscopic,
elementary, perhaps random, tolling of everyday life in Italy that reveals the
profound history of its locality, the spatialization of historical time, 'a
creative humanization of this locality, which transforms a part of terrestrial
space into a space of historical life for people."
(나병철) 바흐친에 의하면, 여기에는 이태리의 일상생활의 미세한 미립자적인 울림(종소리)에 대한 괴테의 비전이 (아마도 무심결에) 나타나 있다. 그것은 지역성의 깊은 역사, 역사적 시간의 공간화, 그리고 "지상의 한 곳을 국민을 위한 역사적 삶의 장소로 변화시키는 지역감각의 창조적인 인간화"를 드러낸다.
(수정) 바흐친에 의하면, 이탈리아에서의 일상생활이 갖는 미시적이고, 기본적이며, 아마도 무작위적인, 흐름에 대한 괴테의 시각은 이탈리아가 가진 지역성의 심오한 역사, 역사적 시간의 공간화, 그리고 이러한 지역성의 창조적인 인간화, 즉 육상 공간의 한 부분[에 불과한 땅]을 인민의 역사적 삶의 공간으로 전환시키는 것을 드러낸다.
26.
313면 중간: "The
recurrent metaphor of landscape as the inscape of national identity emphasizes
the quality of light, the question of social visibility, the power of the eye to naturalize the rhetoric of national
affiliation and its forms of collective expression."
(나병철) 국가적 정체성의 내적 요소로서 반복되는 풍경의 은유는, 불빛의 질, 사회적 시각표상의 문제, 그리고 국민적 친화의 수사학과 집단적 표현형식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시선의 힘을 강조한다.
(수정) 민족 정체성의 내적 풍경으로서의 "풍경"이라는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은유는 빛의 성질, 사회적 가시성에 관한 문제, 그리고 민족적 소속을 나타내는 수사와 그것을 집단적으로 표현하는 형식을 자연화 [인위적인 것을 자연적인 것으로 여기게 함]하는 시선의 힘을 강조한다.
→ "visibility" "naturalize"
"national affiliation" 등 해석 오류.
27.
321면 주석 34번 직전: "legitimacy"
(합법성) 을 "유산" (legacy)로 오독.
28.
326면 인요문 첫 줄: "where the one
doing the speaking speaks from the place of the referent."
(나병철) 어떤 사람이 행위하는 곳에서는, 담화가 지시대상의 위치에서 말을 한다.
(수정) 말한다는 행위를 하는 자는 [자신이] 언급하는 대상의 자리에서 말한다.
29.
326면 인용문 아래: "cultural mastery" (문화적 숙달)을 "문화적 지배"로 오역.
30.
329면 인용문 마지막 줄: "permit" (허용하다)를 "침투하다" (permeate)로 오독.
31.
338면: "This is followed by another image of the
perplexity and power of an emergent peoples,
caught in the shot of a dreadlocked
rastafarian cutting a swathe through a posse of policemen during the
uprising."
(나병철) 이어서 위급한 사람들의 혼란과 힘을 드러내는 또 다른 영상이 나타나는데, 그 장면은 폭동 중에 경찰대에 의해 여지없이 무너진 공포에 질린 래스터패리언의 쇼트로 제시된다.
(수정) 이어서 새로 부상하는 그룹의 사람들이 갖는 당혹스러움과 힘을 드러내는 또 다른 이미지가 나온다. 그 이미지는 드레드락 헤어스타일을 한 아프리카인이 봉기의 와중에 경찰들의 무리를 통과해 길게 이어진 길을 헤쳐나가는 장면에 포착되어 있다.
→ "the emergent"를 "emergency"로 오해하신 듯. 두 번째 문장은 거의 정반대의 의미가 됨. "dreadlocked" (레게머리)를 "deadlocked" (교착상태의)로 오해하신 듯.